템빨 26권 - 17화
<보르네오 탈환전 제1차>
난이도:역량에 따라서 다름
보르네오가 <템빨단>이라는 이름의 불온 세력에게 점령당했습니다.
보르네오는 에트날 왕국과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요새도시로서, 우리 가우스 왕국의 방위에 반드시 필요한 중요거점입니다.
칵투스 국왕전하께서 명합니다.
감히 가우스의 영토를 침략하고 전란을 일으킨 악질적인 집단 <템빨단>에게 단죄를 내리고 보르네오를 탈환하라! 국가에 충성하는 자에게는 합당한 보상과 영위를 내릴지다!
퀘스트 수락 조건:레벨 130이상.
퀘스트 승리 조건:본대의 3일치 식량이 떨어지기 전까지 보르네오를 점령.
퀘스트 승리 보상:레벨 1 상승. 모든 스킬 경험치 10퍼센트 상승. 유니크 무기 1종과 에픽 방어구 1종.
*템빨단 소속의 NPC나 플레이어를 해치울 경우 추가 보상을 획득합니다.
“보상 엄청나네. 방송에서 봤던 SS급 퀘스트의 보상과 비견되는 것 같아.”
“이건 무조건 참전이다. 보상이 탐나는 것도 있지만, 매번 템빨단 놈들만 날뛰는 것도 눈꼴시어서 못 보겠고 말이야.”
“애초에 성공 가능성 100퍼센트의 퀘스트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에트날 왕국 탓에 중앙 대륙으로의 진출이 어려운 가우스 왕국.
이곳은 에트날 왕국보다 더 변방으로 분류된다.
플레이어들이 소속 국가로 선택할만한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에 플레이어 숫자가 무척 적었고 이렇다 할 랭커를 배출하지도 못했다.
라이트 유저들만 모인 국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하지만 템빨단원은 그 숫자가 채 400도 안 되지 않은가? 그들이 보유한 병력 전부를 합쳐봤자 총 숫자 6천에 불과하다.
반면 가우스 소속 플레이어 중 130레벨이 넘는 사람의 숫자는 21만. 이중 10분의 1만 퀘스트에 참여해도 템빨단보다 숫자가 배는 많다.
심지어 보르네오에 배치 된 템빨단의 숫자는 채 1천도 안 된다는 정보가 있다.
본대의 식량이 3일치밖에 없다는 제한은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 것이다.
‘워낙에 라이트 유저가 많아서 퀘스트 참가율이 떨어질 것 같긴 하다만.’
‘그래도 우리가 숫적으로 압도하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가우스 플레이어들은 보르네오 탈환이 결코 어렵지 않다고 믿었다. 그냥 불도저처럼 밀어버리면 간단히 해결 될 일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푹! 푸푸푸푸푸푹!!
“컥!”
“키약!!”
요새도시가 괜히 요새도시가 아니다.
특히 보르네오는 대마법사 아슈르를 적으로 상정하여 증축을 거듭한 요새.
가우스군 병사들의 마법폭격을 무력화시키는 견고한 성벽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 성벽 위에 배치 된 템빨단의 궁사들.
NPC병사들 주제에 레벨이 무려 180을 넘고 있다.
평소의 템빨단이 병사 육성에 얼마나 큰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사실, 병사들의 레벨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고 가우스군 플레이어들은 새삼 깨달았다.
템빨단이 왜 템빨단인지!!
“미친…! 병사들의 공격력이 말도 안 되게 높…! 크아아악!!”
가우스군 플레이어들과 병사들의 화살은 템빨단 병사들의 갑옷을 꿰뚫을 수 없는 반면, 템빨단 병사들의 화살은 그들의 갑옷을 쉽게 꿰뚫어버린다.
템빨단 병사들이 무장한 칠흑의 대궁이 발휘하는 위력은 비상식적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봤을 때, 일개 병사 따위에게 보급될만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사하란 제국이라도 못할 일이었다.
최고의 아이템을 양산해서 병사들에게 보급하는 일, 단지 돈만 있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아이템을 양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대장장이를 보유해야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이게 바로 그리드의 저력…!”
가우스군 플레이어들은 막말로 귀신에 홀린 심정이었다.
전쟁터에 그리드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건만, 그리드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거대하게 와 닿아서 두려웠다.
“쏴라! 계속 쏴라!!”
템빨단의 병사들은 쉬지 않고 화살을 쏘고 있었다.
아스모펠 밑에서는 정예병사로서의 소양을 쌓고, 피아로 밑에서는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갈고닦은 그들.
쥬드에게서 배운 용맹과 지슈카에게 배운 궁술을 앞세워 속사와 연사를 자랑한다.
쏟아지는 적의 공격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로지 목표물만을 노리는 그들의 손끝을 타고 날아간 <야파 화살>은 <그리드의 대궁>의 위력과 결합되어 압도적인 공격력을 뽐냈다. 적의 방패와 투구, 갑옷을 속절없이 꿰뚫었다.
가우스군 병사들은 감히 보르네오군의 성벽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앞서 달려갔다가 벌집이 된 아군들이 만든 피의 강이 마치 깊은 늪처럼 가우스군 병사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숫적 우위가 우습게도 전의를 상실하기 시작하는 그들에게 재앙과도 같은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크크큭! 크하하하하핫!!”
전장에 울려 퍼지는 광소.
그에 호응하듯이 대지에 흐르는 피의 강이 꿈틀거린다.
블러드 워리어 카츠의 등장이었다.
대량의 혈액을 확보할 수 있는 무대에서만큼은 레전드리 클래스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한다는 절대강자.
“벌레 같은 네놈들의 하찮은 피가 내게 도움이 됨을 영광으로 알아라. 블러드 레인.”
쿠오오오오오오오-!!
전쟁터 곳곳에 흐르고 있는 혈액들이 서서히 하늘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역행하는 비.
붉은 빗줄기가 허공에 맺힌 채 전쟁터 일대를 지배하였고 가우스군 병사들은 겁에 질려서 굳어버렸다.
“큭큭큭! 네놈들은 이곳에서 모조리 죽는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카츠의 선언과 동시였다.
허공에 떠올랐던 붉은 핏줄기들이 이내 폭우처럼 쏟아지며 가우스군 병사를 덮쳤다.
전쟁터가 아비규환이 되는 순간이었다.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무한히 메아리쳤고 그들이 흘린 피는 다시금 카츠의 수족이 되어서 더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최악의 사태가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다.
“큭큭! 크하하하하하핫!!”
병력을 바이란과 파트리안으로 분산시켜야하는 에트날 왕국과 달리 보르네오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었던 가우스 왕국.
부질없게도 피의 마왕을 만나 제1차 탈환전에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그들은 선봉대에 불과했다.
이틀 후 도착한 제2차 탈환군은 제1차 탈환군보다 숫자가 많았고 질도 더 뛰어났다.
더욱 더 절망적인 사실은, 2차 탈환군에 <영혼 약탈자> 수에론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카츠와 마찬가지로 전쟁터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존재.
“그리드 놈에게는 갚아줄 것이 있어서 말이지.”
퍼퍼퍼퍼퍼펑!!
전쟁터에 즐비한 시신으로부터 영혼을 탈취, 이를 매개로 옥빛의 영혼 창을 수십 개 만들어낸 수에론이 성벽 위 템빨단 병사들을 학살하였고,
“라우엘 그 자식… 앞으로 나흘을 무슨 수로 더 버티라는 거지?”
카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
“여러분 보이십니까! Satisfy가 오픈한 이래 가장 큰 전쟁입니다!!”
만 단위의 플레이어와 NPC들이 죽고, 죽이는 전장.
상공에서부터 촬영되는 대살육의 현장은 그 어떤 레이드 영상보다도 치열하고 자극적이었다.
시청자들은 전쟁의 끔찍함에 위축되기보다도 피가 끓어오르는 흥분감에 도취됐다.
생각해보라!
세상에 그 어떤 게임이 만 단위 전쟁을 재현할 수 있겠는가?
Satisfy가 오픈하기 전, 가장 진보한 게임으로 손꼽히던 MMORPG L.T.S조차도 전쟁 참가인원 한도가 고작 2천에 불과했었다.
-파트리안 요새전 대박… 1만 5천 명이 뒤엉켜서 싸우는데도 렉이 없네;;
-보르네오는 2만 명임 ㅋㅋ
임철호는 누누이 말했었다.
Satisfy는 게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세상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없다고.
-애초에 가상현실을 구현했던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임철호 외계인설 사실인 듯.
시청자들은 피가 끓어올랐다.
Satisfy를 플레이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이 감사했고, 수천 병사를 이끌고 패권을 다투는 템빨단원들의 모습이 멋지고 부러웠다. 자신들 또한 템빨단원들과 나란히 서고 싶었다.
그런데……..
-그리든 왜 안 보임?
-며칠 전에 보니까 몇 시간 만에 레벨 2개 올렸던데. 버그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고, 어디서 대단한 퀘스트 수행 중인 가봄.
-와… 길드원들은 전쟁터로 몰아넣고서 혼자 열렙 중이라니ㅡㅡ;;
-아니면 무슨 변고라도 당한 거 아니야?
여론이 들끓었다.
벌써 3일째 전쟁을 계속하면서 템빨단의 전력이 차츰 약화되고 있는 이때, 정작 템빨단의 주인인 그리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리드 인성이 쓰레기라느니, 그리드가 Satisfy를 접었다느니, 템빨단에서 쫓겨났다느니, 아니면 교통사고를 당했다느니 등등.
대부분 자극적이고 비약 된 추측들이었다.
이에 언론들이 나섰다.
2류, 3류 언론사들이 지향하는 것은 팩트의 전달이 아니라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
사실여부도 파악하지 않고 추측성 기사와 뉴스를 쏟아냈다.
『아무래도 그리드는 특정 인던에 갇힌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강남 XXX에서 슈퍼카가 전봇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죠? 그 슈퍼카의 주인이 그리드였다는 소문이…』
『그리드는 도망친 거라고 보는 편이 옳지요. 템빨단이 현재는 개개인의 강함을 앞세워서 적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다지만, 저게 언제까지 가능할 것 같습니까? 하루 이틀만 더 지나면 전세는 뒤엎어질 것이고 조만간 템빨단은 몰락할 것입니다. 모든 병력과 영토를 잃고 빈털터리가 되겠죠. 그리드는 이번 전쟁에 희망이 없음을 진즉부터 깨우치고 길드원들을 방패삼아 혼자서 도망을…』
본래 언론이란 어그로 끌기의 대가들이다.
온갖 찌라시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는 커다란 이슈가 되어서 전 세계로 전파됐다.
안 그래도 주목도가 높았던 템빨단의 3영지 방위전은 세계적으로 더 큰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이와 관련 된 방송들은 높은 시청률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때.
『여러분, 들리십니까?』
요새도시 파트리안 상공.
세계 최고의 게임 BJ 바니바니가 비룡을 타고 등장했다.
푸랄랄라라라라랄!!
하필이면 가장 강력하고 화려하다는 화염의 비룡이다.
녀석이 요란하게 소리치며 브레스를 내뿜자,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전쟁터의 모두와 이를 찍고 있던 방송사 카메라들이 자연히 바니바니를 주목하게 되었다.
만족한 바니바니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방송용 증폭기를 달고 있는 그의 외침이 전쟁터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리드님으로부터의 전언입니다! 1분 후, 내가 도착할 때까지 퇴각하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이 있으면 모조리 죽인다!』
“…”
전쟁에 참전하면서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 이가 있던가?
단순히 죽인다는 협박 따위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풋, 웃기고 앉았네.”
“오만한 놈! 죽일 테면 와서 죽여보라지!”
“죽인다면 죽어 줄께! 그리고 부활해서 다시 덤벼줄게!”
에트날 왕국군 플레이어들이 위축되기는커녕 도리어 언성을 높였다.
제아무리 강한 사람일지라도 개인의 힘으로는 전쟁의 판도를 뒤엎을 수 없다는 사실, 이미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당장 지슈카만 봐도 그렇다.
전쟁 이튿날까지만 해도 쉬지 않고 화살을 쏘면서 천 단위를 학살하던 그녀가 이제는 기세를 잃고 잠잠해졌다.
스태미나의 고갈로 인해서 화살을 쏘는 횟수가 현격히 줄어든 여파였다.
그리드 또한 같으리라.
모두가 생각하였고 비룡 위 바니바니는 즐거워서 실실 웃었다.
‘좋아, 좋아. 여기서 너희들이 쉽게 퇴각하면 그건 방송이 안 되지.’
버티고 또 버텨라.
그리고 잠시 후 등장하실 그리드님께 학살당하면서 내 방송의 시청자수를 폭등시켜라.
간절히 바란 바니바니가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30초 남았네요.』
“흥! 올 테면 와보라고 해!”
『20초.』
“그리드가 무슨 신도 아니고 혼자서 우리를 어떻게 감당하겠어?”
『10초.』
9초, 8초, 7초, 6초…
카운트가 5초에 이르렀을 때 전장에 적막이 맴돌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 좋게 떠들던 에트날 소속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마른 침을 삼켰다.
자신들이라면 충분히 그리드를 감당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그래도 역시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함은 사실이었으니 긴장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0! 자, 그리드님께서 등장하십니다!!』
바니바니가 그리드의 등장을 암시하는 이 순간.
바니바니의 방송은 물론이고 전 세계 방송사들의 전쟁 방송 시청률이 정점을 찍었다.
사람들은 기대했다.
하늘에서부터 강림한 그리드가 폭풍과도 같은 검기로 적군을 쓸어담는 광경을!
한데…
“…안 오는데?”
『…』
어찌된 것이 그리드는 등장하지 않았고 바니바니는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해버렸다.
같은 시간, 동대륙의 판게아 성.
“어떻게 돌아가지?”
그리드는 서대륙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몰라 초조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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