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375화 (370/1,794)

템빨 26권 - 14화

<그리드의 곡괭이>

등급:유니크

내구력:117/180 공격력:233

*채광 속도 20퍼센트 상승

*찍기 공격력 10퍼센트 상승

*형태 변환 가능

황새 주둥이 모양의 날이 양쪽으로 길게 달려있는 연장입니다.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가 만들었습니다.

얼핏 보면 일반적인 곡괭이와 다를 바 없지만 명백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양쪽으로 달린 날을 필요에 따라서 접을 수 있고, 자루 부분의 절반이 칼날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검처럼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 이상적인 검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어설픈 실력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용 조건:채광 스킬 혹은 농사 스킬. 고급 소드마스터리 1레벨. 근력 1,200.

무게:880

사실, 처음에 이 곡괭이를 보급 받았을 당시 극검은 이해하지 못했었다.

도구는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을, 그리드는 왜 굳이 곡괭이를 무기겸용으로 만든 것일까?

어차피 따로 칼을 갖고 있는 마당에 굳이 곡괭이로 칼질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극검은 생각했었지만 이게 웬걸.

역시 세상일이란 모르는 것이다.

극검은 그리드의 곡괭이 특유의 형태 때문에 이를 토대로 발검술을 구사할 수 있었고, 마침 우연히 코크로 섬에 잠입한 적의 특수부대원을 일격에 박살내버렸다.

그리고 선빵… 아니, 선수필승의 이치로다가 기세를 몰아 R77부대를 괴멸시켰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에트날 해군의 비밀공작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죽은 적군의 시체에서 신호탄을 발견하였습니다. 적군을 교란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갓리드… 역시 넌 최고야.”

그리드는 오늘 날의 사태를 예견하고 곡괭이를 무기겸용으로 제작한 것이리라.

극검은 그리드의 선견지명에 전율하였고 그리드를 더욱 더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드가 곡괭이를 무기겸용으로 만든 진짜 이유.

사실은 순전히 피아로를 위해서였던 거지만 뭐, 해석은 하기 나름이다.

***

탄력이 넘치는 구릿빛 피부가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든다.

붉은 머리카락은 타오르는 홍염과도 같이 강렬했고, 윤기가 맴도는 입술에는 뇌쇄적인 미소가 머물러 있다.

남미 최고의 미녀라는 그녀, 바로 지슈카다.

요새도시 파트리안의 높디높은 성벽 위에 오른 그녀가 매의 눈으로 전장을 살피고 있었다.

“플레이어의 참전 비율이 매일 늘어나네.”

에트날 왕국이 그리드와 템빨단을 배신자라고 명명한 이후.

에트날 왕국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이와 관련한 퀘스트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그리드 척살.

템빨단 척살.

바이란 점령.

레이단 점령.

파트리안 점령.

그리드의 가족 확보 등등.

하나 같이 그리드와 템빨단을 위협하는 내용의 퀘스트들이었고 이는 플레이어들에게 막대한 보상을 약속했다.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퀘스트를 거부할 수 없었다.

보상이 탐나는 건 둘째고, 에트날 왕국민으로써 반란군을 제압하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의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플레이어들은 몰입하고 있었다.

에트날 왕국민으로써의 삶을.

지금의 그들은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세상’의 주인공으로써 존재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몰입감.

이게 바로 가상현실게임의 진정한 묘미였다.

“어쩌지?”

지슈카 곁에 선 토반이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적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에트날 왕국군 1만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저들의 평균 레벨은 고작 160. 템빨단의 최정예가 집결한 이쪽의 전력을 위협할 수는 없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문제가 되었다.

수천 명의 플레이어들은 레벨이 천차만별이었고 개중에는 랭커급 고레벨 플레이어도 포함되어 있었다.

직업군이 다양하여 위험요소도 허다하다는 것이 치명적이다.

긴장하는 토반에게 지슈카가 피식 웃어주었다.

“뭘 어째?”

끼릭-!

대궁을 꺼내 무장한 지슈카가 활시위를 크게 당겼다.

화르륵!

시위에 매달린 화살 끝 촉에 불꽃이 맺힌다.

“다 쓸어버려야지. 감히 우리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강아지들에게 일일이 베풀 자비 따위 없잖니?”

“…아니, 무슨.”

이 상황에 겁먹기는커녕 도리어 자비를 운운하다니, 이 여자는 어찌 이리도 겁이 없을까.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지슈카를 보고 토반이 혀를 내두르는 그때였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앙!!

전장을 가로지른 불의 화살이 적군 한복판에 도달하여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삽시간에 수십 명이 죽어나가는 순간이었다.

이에 에트날 왕국군측 플레이어들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홍염의 궁사… 수성전 최고 사기 캐릭이라는 말이 사실이었군.”

“저 화살 세례를 어떻게 뚫지?”

불과 수 초.

지슈카가 연달아 쏜 불의 화살이 하늘을 새카맣게 태우고 있었다.

이어서 전장이 불바다가 되었다.

실로 엄청난 화력.

대량살상에 최적화 된 힘이었다.

에트날 왕국군과 템빨단원 모두가 지슈카의 힘에 새삼 경탄하였으나 정작 지슈카 본인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활이 내 능력을 완전히 못 살리고 있어.’

그리드에게 의뢰하여 제작하고 사용 중인 활.

벌써 22레벨이 오르는 동안 교체하지 못하고 있다.

마땅한 대체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슈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레벨에 비하면 레벨 제한이 한참 낮은 활이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

‘스테임 후작이 필요 이상으로 신중하다.’

레이단.

라우엘은 골치가 아팠다.

파트리안을 점령했던 가장 큰 이유가 뭔가?

그야 당연히 레이단과 북부를 잇고 스테임 후작의 지원을 받기 위함이었다.

한데 의외로 스테임 후작이 간을 보고 있었다.

그리드를 왕으로 추대해줘도 부족할 판국에 섣불리 그리드 편에 서질 않았다.

‘심지어 아이린님이 레이단에 계시는 상황인데도 초조해하지 않다니.’

스테임 후작은 소위 말하는 딸바보다.

또한 아이린은 스테임 후작의 유일한 후계자였고 그리드는 아이린의 남편이다.

라우엘은 이번 전쟁에서 당연히 스테임 후작이 그리드의 편을 들어줄 줄 알았다. 그리드를 왕으로 추대하여 자신의 딸을 왕비로, 손주를 왕자로 만들기를 바라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스테임 후작은 라우엘의 예상보다 더 신중한 인물이었다.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았고 대의 앞에서는 혈육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으로 북부의 수백 만 백성들이 전화에 휩쓸릴 수도 있는 상황.

백성들의 안위를 염려한 스테임 후작은 보다 확실한 때를 노리고 있었다.

“뭐… 원망할 일은 아니지.”

라우엘은 스테임 후작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했다.

그만큼 백성을 생각하는 귀족이 또 있을까 싶었다.

다만 답답하기는 했다.

‘북부를 부흥시킨 당신의 정치적 업적은 인정하지만, 백성이라는 도구에 도리어 발목이 붙잡혀서 대세에 편승하지 못하는 면은 아둔하기 짝이 없군요.’

훗날 그리드님의 왕국을 세웠을 때 요직에 앉힐만한 인물은 못 된다.

판단하며 쯧, 혀를 찬 라우엘이 랭킹 목록을 열었다.

이는 일종의 습관이었다.

대국을 읽어야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하이랭커들의 레벨 추이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니까.

“…어라?”

그리드와 적대할 가능성이 있는 세력에 포함 된 랭커들의 레벨을 확인하고자 랭커 목록을 살펴보던 라우엘.

그가 두 눈을 의심했다.

불과 3시간 전까지만 해도 322레벨이었던 그리드의 레벨이 그새 324가 되어있는 까닭이었다.

“뭐, 뭐지?”

동대륙으로 향한 뒤로 레벨 업 속도가 부쩍 상승한 그리드이다.

통합랭킹 15위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그렇지, 단 3시간 만에 레벨이 2개나 오르다니?

“통합랭킹 9위라고…? 그리드님,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시는 겁니까?”

이거 또 그리드가 버그 썼다고 난리나게 생겼다.

발칵 뒤집힐 언론의 반응을 예상하며 너털웃음을 흘리던 라우엘이 문득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거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서대륙으로 돌아오시는 거 아니야?’

<그리드:눈 떠보니 왕이더라> 프로젝트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귀환하시면 안 되는데?

***

“…”

어둠 속.

숨을 죽인 페이커가 아이린과 로드 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페이커는 머잖아 깨닫게 된다.

저들에게는 자신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감자?’

로드를 품에 앉은 채 책을 읽어주고 있는 아이린.

그녀가 등지고 있는 성벽 위, 병사들에게 새참으로 감자를 가져다주던 일꾼이 실수로 감자 하나를 성벽 아래로 떨어뜨려버렸다.

그것도 하필이면 살이 실하기로 유명한 레인보우 포테이토였다.

광속으로 떨어지는 감자가 아이린의 정수리를 직격하려하자 페이커가 황급히 몸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아핫.”

아이린의 품속에 안긴 채 방실방실 웃고 있던 로드가 갑자기 품에서 단도를 꺼내더니 하늘 위로 집어던졌다.

어찌나 신속하면서도 은밀한지, 아이린은 로드가 단도를 집어던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다.

퍼억!

로드가 집어던진 단도에 얻어맞은 감자가 반으로 쪼개지자 멍한 표정을 지은 페이커가 이내 깨달았다.

‘내 호위… 필요 없겠는데.’

비단 로드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다.

아이린과 로드의 주변에 머물고 있는 200여 명의 미소녀들.

그녀들 또한 감자로부터 아이린을 지키고자 어느새 각자 무기를 꺼내 쥐고 있음을 페이커는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심지어 로드의 그림자 속에는 그림자의 왕 카심도 있었다.

“…레이단이 망해도 저 둘은 무사하겠군.”

페이커는 허무했다.

이미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을 호위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

[철갑귀 10마리 토벌에 성공하였습니다.]

[<철갑귀 토벌(1)>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주작단과의 호감도가 상승하고 은사 5개를 획득합니다.]

[주작단과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철갑귀 토벌(2)>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철갑귀 토벌(2)>

난이도:S

판게아 성 던전에는 여전히 많은 수의 철갑귀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판게아를 위협할 수 있는 그들을 토벌함으로써 판게아에 평화를 안겨주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철갑귀 20마리 토벌.

퀘스트 성공 보상:은사 5개.

총 10마리가 넘는 철갑귀를 해치우면서 얻은 은사라고는 단 2개가 전부였다.

철갑귀의 은사 드롭률은 가히 최악이었던 것이다.

그리드는 철갑귀 토벌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만이 은사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20마리 잡아서 고작 5개 준다니…’

철갑귀의 출현 빈도는 너무 낮다.

20마리를 사냥하려면 꼬박 하루가 더 걸릴 수도 있었다.

‘재수 없으면 이틀이 걸릴 수도…’

한숨 쉰 그리드가 주작단원들과 함께 던전을 빠져나갔다.

“오오! 판덕공! 무사하셨군요!!”

“그리드님!”

우물 앞.

그리드가 던전에 입장한 후 반나절이 훌쩍 지났건만, 한속봉과 화이트는 여전히 그리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드가 어지간히도 걱정됐던 것이다.

그들에게 수애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드가 압도적인 힘으로 대량의 철갑귀를 해치우고 아루베에게 단죄를 내렸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그리드를 바라보는 한속봉의 시선에 더 큰 호감이 깃들었다.

“정말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판덕공. 의도치 않게 큰 도움을 받고 말았군요. 자, 지치셨을 텐데 우선 식사부터 하시지요. 판덕공을 위해서 판게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미를 한 상 거하게 준비해놨습니다.”

[한속봉 영주가 당신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판게아 성에 당신을 위한 숙소가 생겼습니다. 스태미나 회복에 좋은 온천이 있는 숙소입니다.]

[판게아 성의 모든 편의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원할 때마다 식사를 제공받습니다.]

“진미…”

마침 배가 고팠던 그리드가 꿀꺽, 침을 삼켰다.

맛있는 음식들이 뇌리를 스치며 그의 식욕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노력과 인내의 대가인 바.

끓어오르는 식욕을 간신히 억눌렀다.

“밥은… 밖에서 먹고 오도록 하죠.”

이안의 식당으로 가야한다.

설령 식중독에 걸릴지언정 스탯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물을 삼킨 그리드가 성을 떠났다.

터덜터덜.

의욕 없는 발걸음으로 길을 걷는 그의 손에는 아루베가 드롭한 표식과 반지가 들려있었다.

“별 기대는 안 된다만… 전설적 대장장이의 감정.”

자신의 예상은 대부분 반대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그리드도 이제 슬슬 인정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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