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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74화 (369/1,794)

템빨 26권 - 13화

클래스를 군인으로 선택하는 플레이어는 의외로 많다.

군부로부터 안정적인 수입과 퀘스트를 꾸준히 보장 받았고, 직급에 따라서 새로운 스킬을 배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처럼 다양한 스킬을 습득하는 클래스도 드물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점이 도리어 더 많다.

대표적인 예로 자유도가 턱없이 낮았다.

특정 시간에 게임에 접속해서 군대 훈련에 참석해야 한다거나.

퀘스트는 무조건 상부에서 내려주는 것만 수행해야한다거나.

상명하복의 원칙은 기본이오, 자유여행도 불가하다.

이에 혹자는 의문을 품었다.

군인 할 거면 게임 왜 하냐?

통제 받는 삶을 사는 체험이 즐겁냐? 무슨 재미냐?

군인 클래스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사람은 저마다 생각이 다른 법이다.

군인 클래스만의 장점을 무척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야심가다.

군인은 활약에 따라서 진급이 가능하며, 이에 따라서 권력의 중추로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 된 클래스인 바.

비록 통제받는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지언정, 군인 클래스를 선택한 플레이어 대다수는 이를 견뎌낼 끈기가 있었고 이들의 발전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그리고 여기.

에트날 해군 사령부 직할 특무대 R77에도 플레이어가 있었다.

그의 아이디는 솔져.

대놓고 자신이 군인임을 알리는 이름.

현실에서도 미국 군인 출신인 그는 군인으로서의 삶 자체를 즐겼다.

엄격한 규칙과 통제 속에서 발전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좋아하고, 합법적인 살상 행위로부터 희열을 느끼는 유형의 인물이다.

‘그리드라… 내 진급의 제물로 삼기에 이만큼 적합한 인물이 과연 또 있을까?’

라인하르트 골렘 침공전의 영웅.

사막화 된 유령도시 레이단을 부흥시킨 희대의 정치가.

체다카 길드와 은기사 길드를 집어삼킨 악마적 수완가.

방송이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전 세계인을 교란하고 파트리안을 탈취한 천재적 책략가.

유일한 레전드리 아이템 제작자.

국가대항전까지 포함해서, 그리드의 이력을 보다보면 그저 감탄밖에 나오질 않는다.

완전체다. 괜히 전설이 아니다.

솔져는 흥분됐다.

완전무결한 존재에게 흠집을 낸다면 자신의 전공이 더욱 눈에 띌 것이었기에.

‘그리드의 반란은 내게 있어서 절호의 기회다. 그와의 전쟁에서 전공을 쌓으면 몇 단계의 특진쯤은 우스울 것이다.’

단숨에 지휘관급으로 진급할 수도 있다.

‘우선 오늘. 코크로 섬 점령에 반드시 공헌한다.’

첨벙!

첨벙첨벙!!

깊은 밤.

R77 소속 부대원 30명이 일제히 함선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새카만 바다 깊숙이 잠수하여 적의 감시망을 피해 이동했다.

해군 마법사단이 개발한 3세대 마력잠수복을 무장한 그들은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고 있었다.

해군에 소속된 이후 철저히 훈련받은 <고급 수영 마스터리> 2레벨을 이용해서 해저 속을 질주하는 솔져.

전쟁 영웅을 꿈꾸는 그의 눈빛은 결의에 차있었다.

***

코크로 섬은 은기사 길드의 업적과 추억이 깃든 장소이다.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 또한 템빨단이 보유한 영토 중에서 가장 높았다. 무려 수십 개의 광산이 있었고 관광지로서 무척 유명한 까닭이다.

전 은기사 길드의 마스터이자 템빨단의 일원으로서 극검은 코크로 섬을 반드시 지키고 싶었다. 절대로 적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물론, 현실적으로 봤을 때 에트날 왕국의 공세를 버틴다는 건 불가능했다.

코크로 섬은 고립 된 상태.

그 어떤 보급도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병사의 숫자는 고작 1천으로 한정되었고 평균 레벨도 150에 불과했다. 네임드급 기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극검은커녕 그리드가 있어도 지킬 수 없는 영토인 것이다.

심지어 라우엘조차도 코크로 섬을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을 정도.

하지만 극검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나는 이순신 장군님의 정신을 계승한 의지의 한국인… 결코 순순히 포기하지 않는다.’

한 달.

단 한 달만이라도 지켜보이리라.

적의 병력을 최대한 오랫동안 묶어두고 코크로 섬의 세금을 조금이라도 더 모아 템빨단에 보탬이 되리라.

극검의 의지는 숭고한 것이었고 지난 5일 동안 그는 정말로 사력을 다해서 싸웠다.

코크로 섬 영주 시절 본인이 직접 증축하였던 해안가의 요새들을 적극적으로 활용, 에트날 해군의 함선을 몇 척이나 침몰시켰다.

은기사 길드 출신의 정예 10명과 코크로 섬의 병사들이 함께 분투해준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극검의 해전 능력이 너무 탁월했다.

과거, 코크로 섬의 패권을 두고 다퉜던 사쿠라 길드와의 긴 전쟁 경험이 그를 훌륭한 해전사령관으로 성장시켰던 것이다.

“형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요?”

은기사 길드의 2인자 출신 안창살이 극검을 걱정했다.

사비까지 털어서 구입한 버프 물약들을 쉬지 않고 복용하면서 싸우는 극검이 걱정되지 않을 리 없었다.

“정말로 힘들게 번 돈이잖수? 개털이 되어가지고 장가도 못 가고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물약을 먹어대는 거요?”

그 똑똑한 라우엘이 말했었다.

코크로 섬을 일주일 이상 지키는 건 어려울 거라고.

최초에는 부정했지만 직접 전쟁을 겪어보니 라우엘의 말이 맞았다.

안창살을 비롯한 은기사 출신 정예들이 봤을 때, 에트날 해군의 공세를 일주일 이상 버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전력의 차이가 워낙 컸고 자신들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휴식만 취하고 계속해서 싸우느라 병사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수. 어차피 이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일 것 같은데 괜히 쓸데없이 손해 보지 말고 물약이라도 그만 잡수는 것이…”

“쓸데없는 손해가 아니다.”

극검이 안창살의 말을 도중에 잘랐다.

“템빨단을 위한 일이다.”

나 하나 희생함으로써 템빨단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극검이었다.

자신의 고집을 수용해준 그리드와 라우엘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최선을 다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곡괭이를 든다.

깊은 밤.

너무 어두워서 포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적의 함대가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함을 확인한 극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산에 다녀오겠다.”

“아이고…”

안창살이 혀를 내둘렀다.

“어째 매일 밤마다 곡괭이질입니까? 쉴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쉬셔야지, 그러다가 진짜로 골로 가시겠수.”

“이곳에는 마땅한 사냥터가 없잖아. 레벨을 못 올리는 대신 체력이랑 끈기 스탯이라도 조금씩 올려야지. 갓리드라면 그리했을 거야. 두 유 노우 갓리드?”

반복적인 노동은 작지만 꾸준한 스탯 상승을 약속한다.

특히 채광은 딱 극검 취향의 노동이었다.

곡괭이로 벽을 때리다보면 하나씩 툭, 툭 뽑혀져 나오는 광물이 그에게 속 시원한 쾌감을 선사해주곤 했다.

“너희들은 쉬고 있어라. 다녀오겠다.”

동료들을 뒤로한 극검이 홀로 광산으로 떠났다.

해안가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광산.

코크로 섬에 있는 여느 광산들과 비교하면 채광률이 현격히 떨어지는, 수명이 다해가는 광산이었지만 극검은 그곳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광산들은 요새와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적이 침공해올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위치에 광산이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다.’

따앙! 따앙!!

어두운 광산.

횃불 몇 개를 밝혀놓은 극검이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단단한 벽을 때리고, 부수면서 채집할만한 광물을 찾았다.

서두르지는 않았다.

애초에 광물이 목적도 아닐뿐더러, 스태미나를 안배해야할 필요성이 있었으니까.

또한 노동은 진득하게 해야만 스탯이 오르는 법이다.

[끈기 스탯이 1 상승하였습니다.]

[체력 스탯이 1 상승하였습니다.]

[중급 채광 스킬의 레벨이 올라 3이 되었습니다.]

“크…! 좋구나!”

어찌 이리도 즐겁단 말인가!

까앙! 까앙!

곡괭이질을 멈추지 않는 극검의 얼굴이 석탄 탓에 새카매지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나가는 그때였다.

터엉-

터어어어엉-

“…?”

광산의 가장 깊은 곳.

그러니까 갱도의 끝부분으로부터 희미한 소음이 들려왔다.

극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바람 소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게감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벽 너머로부터 들려온 소리다.

“…설마?”

극검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비밀 던전이라도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대박이다.

새로운 던전을 발견한 대가로 커다란 보상을 얻는 건 기본이었고, 던전에 서식 중인 몬스터들을 이용해서 적군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도 있을 터였다.

‘마침 전장과 가까운 장소에 위치한 던전이다. 몹몰이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적군을 치는 용도로 써먹을 수도 있을 거야.’

인던이면 안 된다는 전제가 붙기는 하지만 기대를 품어보기에는 충분하다.

꿀꺽!

기대감과 긴장감에 휩싸인 극검.

곡괭이를 고쳐 쥔 그가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막혀있는 벽면을 겨누었다.

‘숨겨져 있는 장소이니만큼 커다란 가치를 지녔기를.’

간절히 바란 극검이 꽈악! 곡괭이를 쥔 손에 강한 힘을 실었다.

그리고 익숙한 발검의 자세를 갖췄다.

발검자세에서 무기나 도구를 휘두를 시 적용되는 직업보너스 효과를 누리기 위함이었다.

또한, 농술과 검술을 조합하여 더욱 더 막강해진 피아로를 재미삼아 따라해 보는 것이기도 했다.

“발검.”

스릉-!

그리드가 제작해준 곡괭이.

일반적인 곡괭이와는 차원이 다른 내구력과 공격력을 보유하여 무기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는 그것이,

“아(牙).”

파아아아아아앗!!

극검의 손끝을 타고 빛살처럼 쏘아지는 것과 동시였다.

쿠르르르르르르르릉!!

극검이 부수고자 표적으로 삼았던 벽면이 갑자기 저 혼자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잉?”

무너진 벽면 너머에서부터 웬 정체불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디는 솔져.

극검과 같은 플레이어였다.

“?????”

“?????”

찰나의 시간.

극검과 솔져의 시선이 마주쳤고 둘의 머릿속에는 똑같은 의문이 맴돌았다.

‘누구야?’

실로 짧은 시간이었다.

극검과 솔져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보다 이미 극검이 쏘았던 발검술이 솔져의 미간을 꿰뚫는 게 더 빨랐다.

푸욱-!!

“크… 크어억…!”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얼굴에 석탄을 잔뜩 묻히고 있는 저 광부 놈.

어째서 이 위급한 전시상황에 채광이나 하고 있는 것이며, 채광을 해도 왜 하필이면 이 비밀갱도 앞에서 하고 있단 말인가?

“비… 빌어먹을…”

훗날 에트날 왕국 군부의 실세가 되실 이 몸께서 고작 곡괭이에 맞아 죽다니?

비틀비틀.

극대화되는 혼란 속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휘청거리는 솔져.

곡괭이에 찍힌 이마로부터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그의 몸이 서서히 잿빛으로 산화하기 시작했다.

발검술.

발동과 회수에 긴 시간을 소요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녔지만, 위력만 놓고 보면 최강의 칭호를 가져도 손색이 없는 스킬.

평범한 곡괭이도 아니고 그리드의 곡괭이를 매개로 시전 된 그 스킬의 위력은 엄청나게 강력했던 것이다.

10만등대 랭커로 분류되는 250레벨 플레이어 솔져를 일격에 해치워버릴 정도로.

이게 바로 극검의 저력이었고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어서 적에게 항거할 수 없는 위압감을 선사했다.

“너… 너는 뭐냐!”

눈앞에서 동료가 다짜고짜 살해당하자 당황하며 뒷걸음치는 R77 부대원들.

멀뚱멀뚱.

잠시 어리둥절하고 있던 극검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답했다.

“농… 아니, 광부다. 코크로 섬의 평범한 광부.”

“뭐라고!”

아무리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일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에이스 솔져가 단 일격에 죽었다.

눈앞의 광부는 평범한 광부일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R77 부대원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행색이 영락없는 광부였으므로 딱히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철컥!

한편, 피 묻은 곡괭이를 회수한 극검은 재차 발검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물론 이번에는 곡괭이가 아니라 검을 발검의 수단으로 삼았다.

칼집 위로 손을 얹은 채 크게 허리를 비트는 극검을 보면서 R77 부대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광부 아니잖아!!”

뭐가 어찌됐든 이미 늦었다.

R77 부대원들은 망했다.

천하의 극검에게 시간을 주었으므로.

“섬(殲).”

쿠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에트날 해군 사령부가 직접 운용하는 특무대 R77.

온갖 전쟁에서 숱한 무공을 세우고 전설처럼 회자되는 최강의 정예부대가 지금 이 순간 소멸한다.

에트날 해군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들 희대의 대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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