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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71화 (366/1,794)

템빨 26권 - 10화

“템빨…?”

수애와 주작단원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다.

그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융합 철갑귀는 부모 잃은 아이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키야아아아아악!!”

압도적인 힘으로 무수히 많은 인명을 해쳐왔던 융합 철갑귀.

오늘은 반대로 놈이 사냥감의 입장이다.

사냥꾼은 당연히 그리드.

20억 유저의 정점을 노리는 그에게 있어서 융합 철갑귀는 경험치 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너, 약하네.”

융합 철갑귀를 비웃는 그리드였다.

은사에 얻어맞기 직전, 쫄아서 오금을 저렸던 일 따위 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푹! 서걱! 푹!!

그리드의 실패작이 철갑귀를 베고, 찌르고, 또 베기를 반복하며 다져버렸다.

어둠 속에서 공격력이 20퍼센트 추가되는 +9대검의 위력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푸화하하하하학!!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철갑귀의 혈액이 분수처럼 솟구친다.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그것만큼은 허용할 수 없었다.

뒤로 힘껏 몸을 날려서 최대한 많은 혈액을 피하고, 채 피하지 못한 혈액들은 갓 핸드를 이용해서 막았다.

치이이이익!!

갓 핸드에 닿은 혈액들이 증발하여 사라진다.

“큭큭큭!”

증기를 내뿜는 황금 손가락 틈새로 융합 철갑귀를 바라보는 그리드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역시 템빨이 갑이야.’

철갑귀의 은사.

정작 맞아보니 예상한 것보다는 약했지만, 생각해보라.

만약 그리드에게 란스티어의 망토와 삼겹갑이 없었다면?

그리드는 몇 배나 되는 피해를 입었을 것이고 큰 위기에 봉착했을 것이다.

은사를 수십 가닥이나 다루는 융합 철갑귀는 진짜 정말 강했다.

다만, 그리드의 템빨 앞에서만 무력했을 뿐이지.

“캬아아아아아!!”

은사로 연결되어 있는 철갑귀의 대가리 두 개가 동시에 포효하면서 온 몸의 근육을 팽창시켰다.

그러자 놈의 혈관과 연결되어있는 은사들이 다시 팽팽하게 쏘아지더니 그리드를 덮쳤다.

정확히 27가닥의 은사가 하나로 얽혀서는 마치 드릴처럼 맹렬히 회전, 그리드의 심장을 노렸다.

‘진짜 유연한 무기네.’

거미줄처럼 만들어서 방어용도로 활용할 수 있고, 드릴처럼 만들어서 살상력을 높일 수도 있는 은사.

보면 볼수록 탐이 난다.

탐욕을 불태우며 입맛을 다신 그리드가 은사의 드릴이 자신을 가격하기 직전에 맞춰서 반격기를 사용했다.

“회(回).”

쩌저저저저저정!!

국가대항전에서 최상위 랭커들과 승부하고 컨트롤 솜씨가 대폭 상승한 그리드였기에 반격기를 사용하는 타이밍도 절묘할 수밖에 없다.

퍼억!

원을 그리는 실패작의 칼끝을 따라서 궤도가 뒤틀린 은사의 드릴이 융합 철갑귀의 대가리를 꿰뚫어버렸다.

[2인 융합 철갑귀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259,504,141을 획득하였습니다.]

[은사(銀絲)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세컨드 클래스 보유자로서 레벨 업 보너스를 받습니다. 스탯 포인트를 총 12개 획득합니다.]

[세컨드 클래스 <전설의 대마법사>의 영향으로 포인트 6개가 지력에 강제 투자됩니다.]

“후…”

그리드의 생명력 상태는 매우 준수했다.

전투 도중 철갑귀의 타격을 거의 허용하지 않았고, 일부 허용한 은사의 타격은 <수호의 부적>이 상승시킨 방어력과 템빨로 대부분 무력화시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쉬운 전투는 아니었다.

총 여섯 마리의 철갑귀를 해치우기 위해서 그리드는 노에, 랜디, 갓 핸드 전부를 소환했고 거의 모든 스킬을 사용했다.

전력을 쏟아 부운 셈이다.

레벨 업을 한 덕분에 스태미나는 완전히 회복되었지만 그리드는 심적으로 꽤 지쳤다.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길 바라며 휴식이 불가피했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그가 인벤토리를 열었다.

획득한 전리품들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썩은 가죽, 썩은 뼈 등.

별 가치 없어 보이는 잡템들을 제외하고 은사는 단 2개만 들어와 있었다.

<은사(銀絲)>

공격력:100~????

내구력:1,000/1,000

긴 세월, 은갑옷의 파편이 철갑귀의 혈관 안에서 단련되고 형태를 갖춰서 탄생한 실입니다.

거죽에 은을 얇게 입힌 보통의 은사와는 달리 순수한 은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철갑귀의 강력한 마력도 깃들었습니다.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를 갖출 수 있으므로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보조 무기로 분류됩니다.

사용 조건:보조 무기 마스터리 고급 5레벨 이상. 손재주 2,000 이상.

*손재주 2,000 이상 시, 은사를 빠르게 쏘아낼 수 있습니다.

*손재주 2,500 이상 시, 5가닥 이하의 은사를 꼬아서 원하는 형태를 만들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손재주 3,000 이상 시, 10가닥 이하의 은사를 꼬아서 원하는 형태를 만들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손재주 4,000 이상 시, 은사를 제어하는 속도가 2배 빨라집니다.

*손재주 5,000 이상 시, 20가닥 이하의 은사를…

..

*은사는 아이템 제작 재료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장인급 대장장이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무게:5

최소 데미지는 무척 낮지만 최대 데미지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

조금 전, 27가닥의 은사를 드릴처럼 꼬아 쐈던 융합 철갑귀의 공격을 허용했다면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치명상을 면치 못했으리라.

‘대단하군… 하지만 보조 무기 마스터리는 익히고 있는 사람이 드물 뿐더러 아직 고급 레벨이 등장하지도 않았을 텐데?’

길이 10미터의 반짝이는 실.

현재 시점에서는 완전히 그리드 전용의 보조무기였다.

‘여기서 손재주를 더 올려야할 필요성이 생기다니…’

두 가닥의 은사를 손가락 사이에 낀 채 이리저리 만져보는 그리드.

손재주를 더 올리면 아이린이 참 기뻐하겠구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에게 수애가 다가왔다.

“상처는 괜찮으신가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녀에게 그리드가 웃어주었다.

“보다시피 제가 좀 튼튼해서.”

은사에 찔렸던 상처들은 이미 대부분 아물어가고 있었다.

엄청난 회복 속도였다.

체력 스탯이 높기 때문에?

그건 기본이고.

그리드의 회복 속도가 빠른 이유는 갓 핸드. 정확히 말하면 파브라늄에 귀속되어 있는 <레베카 여신의 축북>효과 덕분이다.

레베카 여신의 축복이 그리드의 생명력 회복 속도를 300퍼센트 상승시켜주었고 이는 그리드의 강함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 중 아주 큰 부분이었다.

‘이 남자…’

그리드를 바라보는 수애의 눈빛에는 점차 큰 호감이 깃들고 있었다.

철갑귀 여섯 마리를 혼자서 해치워버리는 강함과 더불어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 태도, 거기에 또 튼튼한 신체까지.

기본적으로 주작궁을 복원한 대장장이 실력자이면서 ‘판덕공’의 칭호를 얻을 정도로 덕이 넘치는 인물이다.

호감을 품지 않을 수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물론, 이성적인 호감은 아니고 보다 순수한 존경이었다.

여성과 눈조차 제대로 못 마주치는 동정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품기에는 수애의 성격상 무리가 있었다.

‘역시, 신선이신 걸까?’

신선.

도를 닦고 해탈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다는 반신의 경지.

무릉도원에서 영생을 누린다고 알려진 그들은 저마다 신비한 권능을 구사한다고 들었다.

정황상 그리드 또한 신선일 가능성이 높았다.

“험험.”

그리드가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수애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두근거려서 얼굴이 붉어졌고, 이를 감추고 싶은 마음에 주위를 분산시키는 행동이었다.

그를 본 순간 수애는 확신했다.

‘신선은 아니셔.’

신선은 해탈한 존재다.

정녕 그리드가 신선이라면 이성에게 부끄러움을 느낄 리 만무했다.

애초에, 그리드의 무력은 신비함을 초월한 압도적인 것이다.

신선과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임이 확실했다.

‘마치 환국의 양반 같은…’

물론 양반일 리도 없다.

세상사람 대부분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지만, 양반은 평범한 인간을 벌레 이하의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쓰레기들이니까.

만약 그리드가 양반이었다면 수애와 주작단원들이 죽든 말든 구경만 했을 터였다.

‘애초에 이분께서 신선이나 양반이었다면 굳이 은사를 바라지도 않으셨을 테지.’

그렇다면 이자는 결국 평범한 사람이란 뜻.

‘일반인이 수련을 거듭해서 여기까지… 아.’

깊은 생각에 잠겼던 수애가 뒤늦게 자신이 실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드가 자신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음을 눈치 챈 것이다.

“예의가 없었습니다. 죄송해요.”

고개까지 숙여가며 사죄하는 수애에게 그리드가 손을 저었다.

“미안해할 필요는 없고. 그것보다 이 은사라는 건 원래부터 얻기가 힘든 겁니까?”

여섯 마리의 철갑귀를 해치웠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2가닥의 은사밖에 획득하지 못했다.

직접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고 제작재료로도 활용할 수 있는 은사였으므로 그리드는 최대한 대량으로 확보하고 싶었다.

그리드의 손에 들린 은사를 뒤늦게 발견한 수애가 깜짝 놀랐다.

“은사를 얻으셨군요…!”

본래 은사는 얻기가 무척 힘들다.

철갑귀가 죽는 순간, 놈들의 혈관과 연결되어있는 은사가 순식간에 부식되어 소멸하는 까닭이었다.

한속봉 영주가 성 던전 원정대 주작단을 편성하고 지난 4년 동안 획득한 은사가 총 7가닥에 불과했으니 말 다했다.

“은사를 벌써 2가닥이나 얻으시다니, 정말로 운이 좋으셨어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수애였다.

그녀의 반응을 통해서 은사의 드롭률이 최악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리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 던전의 크기는?”

“그건 저희로서도 가늠할 수 없어요. 우리 주작단 또한 던전의 깊은 곳까지는 진입한 바 없거든요.”

주작단은 그리드처럼 강하지 못했다.

매일 같이 성 던전에 입장하여 철갑귀를 토벌하고는 있었지만 그 숫자는 하루 2~3마리가 고작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던전 끝까지 진출해서 철갑귀의 발생 원인을 조사하고 그들을 멸살시키고 싶어요. 하지만 마음과 달리 매일 제자리걸음이네요.”

“…”

“저희는 그래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있기 때문에 철갑귀의 판게아 진출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이고 판게아의 주민들이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거니까.”

아름답다.

수애는 외면뿐만이 아니라 내면까지도 예쁜 여인이었다.

‘비록 변태이긴 하지만…’

그때였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철갑귀 토벌(1)>

난이도:S

판게아 성 던전에는 많은 수의 철갑귀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판게아를 위협할 수 있는 그들을 토벌함으로써 판게아에 평화를 안겨주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철갑귀 10마리 토벌.

퀘스트 성공 보상:주작단과의 호감도 상승. 은사 5개.

‘철갑귀가 세긴 오지게 센 게 맞구나.’

일정양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퀘스트 난이도가 S등급으로 분류되는 경우는 그리드가 알기로 없다.

역시 철갑귀는 강했다.

생명력만 해도 600만 이상이었고 방어력은 일반 몬스터의 2배 수준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검술 솜씨가 뛰어나고 변칙의 극의를 선보이는 은사와 뜨거운 혈액을 무기로 삼는다.

그리드가 예상하기로, 평범한 300레벨대의 플레이어는 철갑귀와 1대1 하기도 벅찰 것이다.

다만, 그리드가 철갑귀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게 문제였지만.

“좋아요. 그럼 제가 당신들을 대신해서 철갑귀를 최대한 많이 소탕해드리죠.”

은사 5개 보상, 반드시 얻어야한다.

의욕을 활활 불태운 그리드가 동굴 안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수애가 그를 말렸다.

“혹시라도 무리하셨다가 옥체가 상하기라도하면 어쩌시려고요? 귀인께서는 고작 타인을 위해서 어디까지 분투하실 작정이신가요?”

진심으로 걱정하는 수애에게 그리드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저는 은사를 얻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고작 타인이라기에는 당신이 꽤 마음에 들기도 하고.”

“…아?”

그리드는 사심 없이 솔직한 마음을 밝힌 것이었지만 그 파장은 컸다.

수애의 얼굴이 붉어져버린 것이다.

판게아의 꽃이라고 불리는 그녀.

그 어떤 멋진 남성이 달콤한 말을 속삭여도 동요하지 않던 그녀가 남성 앞에서 얼굴을 붉히다니?

그리드는 모르지만 이는 엄청난 대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리드는 때마침 들려오기 시작하는 철갑귀의 발소리를 감지했다.

‘시험해볼까.’

파앗!

그리드가 철갑귀가 다가오는 방향을 노리고 은사를 던졌다.

가벼운 실을 빠르게 쏜다는 것, 무척 어려운 일이었으나 3,000을 훌쩍 넘는 손재주를 지닌 그리드에게 있어선 간단한 일이었다.

퍼퍽!

“캬아아아악!!”

그리드가 던진 은사에 찔린 철갑귀가 비명을 토하더니 접근해오는 속도를 높였다.

콧방귀 뀐 그리드가 은사를 회수하더니 재차 쏘았다.

[대상에게 93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37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더럽게 쪼잔한 피해량이다. 최소 데미지가 100에 불과하였으므로 방어력 높은 철갑귀에게 거의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동요하지 않았다.

은사를 던지는 것으로 소모되는 자원이 없었으니 아무런 부담이 없었던 것이다.

‘꼬아볼까?’

스르륵.

그리드가 엄청난 속도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2가닥의 은사가 금방 하나가 되더니 보다 두꺼워졌고 끝이 살짝 뾰족한 형태를 갖췄다.

‘…실뜨기도 잘하셔?’

이 남자, 못하는 게 있기나 할까?

‘…설마, 뭐든지 다 잘하시는 걸까?’

여기서 말하는 뭐든지란 이하 생략이다.

퍼억!

감탄한 수애가 묘한 상상을 시작하는 동안 그리드가 쏜 화살 모양의 은사가 철갑귀에게 2천이 넘는 피해를 입혔다.

‘대충 알겠군.’

그리드는 충분히 만족했다.

은사의 대량 확보를 더욱 더 갈망하게 된 그가 철갑귀에게 접근, 실패작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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