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6권 - 3화
“좋았어!!”
주작궁이 완성됨과 동시에 그리드가 환호했다.
체통 따위 개나 줘버리고 솔직하게 기쁨을 표현했다.
“아싸! 이예!! 개이득!!!”
“…?”
발정한 수캐가 짝을 만났을 때처럼 기뻐하다니?
화이트는 황당했다.
8시간 내내 진중하게 아이템을 제작하며, 마치 환국의 양반들처럼 존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그리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존경심을 피어오르게 만들던 그가 한 순간에 변모하자 보고도 믿기질 않았다.
‘사람이 갑자기 180도 변할 수가 있나…? 망치질 하다가 실수로 본인의 이마라도 찧으신 건가?’
쓸데없는 의문이다.
대장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리드도, 솔직하게 기뻐하는 그리드도 모두 진짜 그리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리드가 기뻐하는 이유야 당연히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아이템 제작의 결과가!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하여 모든 능력치가 +10 영구적으로 상승, 대륙 전역에 명성이 +500 상승합니다.]
[극상의 이로운 효과입니다. 행운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백린목 도끼에 이어서 레전드리 아이템이 2연타로 제작된 순간이다.
그리드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최고의 행운이었다.
순식간에 31까지 치솟은 행운 스탯을 바라보는 그리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 한 번 악운을 이겨냈다!’
솔직히 말해서, 이단의 섭외 과정이 무척 힘들고 <신장> 패시브 효과가 잘 안 터지는 바람에 그리드는 고단하던 차였다.
하지만 황금 호두를 공짜로 얻고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하는 등, 악운에 상응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자 큰 힘이 됐다.
하는 일들이 결과적으로 잘 풀리고 있다는 느낌을 팍팍 받았다.
‘행운 스탯 덕분이겠지?’
그게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감격하며, 행운 스탯에게 감사하고 있는 그리드의 시야에 알림창이 갱신됐다.
[완성 된 아이템의 등급이 너무 높습니다. <아이템 승급>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아이템 승급.
그리드가 20번째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하면서 획득한 새로운 스킬이다.
비록 제약은 많았지만 그리드에게는 든든한 보험과도 같은 힘이었다.
<아이템 승급>
자신이 제작한 아이템의 등급을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제작하고 5분이 지난 아이템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이템 하나당 한 번의 승급만 가능합니다.
*이 스킬은 <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사용 횟수가 3회씩 늘어납니다.
사용 가능한 횟수:24/24
“쩝.”
아무리 봐도, 스킬의 적용 대상이 ‘만든 지 5분 이내의 아이템일 것’이라는 조건이 무척 아쉽다.
‘기존에 만든 아이템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진짜 초대박인데.’
<갓 핸드>의 등급을 올리는 용도로 사용했다면?
갓 핸드의 등급이 레전드리가 되는 순간 그리드의 전투력은 비약적으로 치솟았을 것이다.
‘녹인 다음 다시 만들까?’
현재 사용 중인 갓 핸드들을 녹여서 재료를 추출하고 다시 제작할 경우.
새로운 갓 핸드는 레전드리 등급으로 제작 될 여지가 생긴다.
설령 유니크 등급으로 완성되더라도 승급으로 레전드리를 꾀할 수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역시 쉽사리 시도하기에는 무리가 컸다.
‘어차피 갓 핸드는 등급 성장형 아이템.’
초조해하지 말고, 지금처럼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하다.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는 아이템 승급을 함부로 막 사용했다가는 필시 훗날에 큰 후회를 하는 순간이 찾아올 터였다.
‘그런데…’
생각하던 그리드가 실망감에 휩싸였다.
‘레전드리 아이템을 그 이상의 등급으로 승급시키는 건 역시 불가능한가보군.’
주작궁이 레전드리 등급으로 완성되는 순간.
그리드는 주작궁을 신화 등급으로 승급시켜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기대했었다.
하지만 승급으로 올릴 수 있는 등급은 레전드리가 한계인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건 스킬이 아니라 주작궁의 한계일 수도 있어.’
주작궁 자체가 신화 등급으로 승급하기에는 자격이 부족하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방신 무구라기에 레베카교의 삼신기와 최소 동급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 이하일 수도 있는 거겠지.’
잠시 상념에 잠겼던 그리드.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대회 종료를 알리는 사회자의 외침과 동시에 폭발하는 관중들의 환호성을 들은 그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드디어 주작궁의 상세정보를 확인했다.
<주작궁(모작)>
등급:레전드리
내구력:901/901 공격력:2,360
*연사 속도 60퍼센트 상승.
*명중률 20퍼센트 상승.
*대상의 갑옷 방어력을 무시하는 관통 데미지.
*화살을 쏠 때마다, 혹은 활로 적을 가격할 때마다 불꽃을 생성. 불꽃은 적에게 4,000의 고정 된 피해를 입히며 상태이상 ‘화상(大)’를 유발합니다.
*스킬 <날아오르라!> 생성
기술이 만개한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가 해석한 주작궁입니다.
단단한 백린목을 활대로 삼았으나 미노타우르스의 뿔과 힘줄을 첨가하여 높은 탄성이 추가됐습니다.
더 멀리, 강하게, 빠르게 쏠 수 있으며 강력한 불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상적인 만궁(彎弓)의 형태를 갖췄으므로 활자체의 성능만 놓고 본다면 원본 주작궁보다 훨씬 더 우수합니다.
단, 사용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단점을 지녔습니다.
또한 주작신의 기운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능력치가 원본 주작궁보다 낮습니다.
*주작신의 기운을 받을 자격이 있는 활입니다.
사용 조건:고급 보우 마스터리 마스터.
무게:1,200
“헐.”
일반적인 원거리 무기와 대형무기는 랜타(랜덤 데미지)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안정감이 뛰어난 한손 무기와 달리 공격력 수치가 ???~???으로 적용된다.
최대 공격력은 높지만 최소 공격력이 낮은 식이다.
적을 공격할 시, 운 좋으면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지만 운 나쁘면 적은 피해밖에 못 입힌단 뜻이다.
그리고 이는 그리드처럼 운 나쁜 사람에겐 좋은 시스템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대형무기와 원거리 무기의 랜타 개념을 잠재력이라고 인식하고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그리드는 랜타를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대검을 주무기로 고수했던 것은 어리석은 아집이었고.
하지만 어찌됐든, 주작궁은 마치 한손 무기처럼 공격력이 깔끔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심지어 높다!
이런 활은 드물다.
‘거기에다가 빠른 연사 속도와 높은 명중률까지 보정 받고.’
쏘는 화살에 강력한 화염 데미지까지 추가한다.
주작궁은 그리드가 의도한 모든 것들이 이상적으로 구현된 아이템이라고 단언해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원본 주작궁보다 훨씬 더 우수하며, 주작신의 기운을 받을 자격이 있는 활이라고 한다.
주작신의 기운을 받게 될 경우, 그리드가 제작한 주작궁은 원본 주작궁을 월등히 초월하는 위력을 뽐낼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는 사방신 무구가 레베카교의 삼신기와 동급이라는 뜻이 된다.’
주작의 기운이 깃들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레전드리 등급이다.
주작의 기운을 얻을 경우 당연히 신화 등급까지 성장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주작의 기운을 얻기 위해선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리드가 이내 미소를 피어 올렸다.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까닭이다.
“주작…! 주작…궁!!”
헐레벌떡 무대 위로 달려온 사내.
판게아의 영주 한속봉.
푸른 불꽃, 검은 모루, 붉은 집게의 장인들이 제작한 활은 모조리 무시하고 지나친 그가 곧장 그리드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대는… 아니,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드를 바라보는 한속봉의 눈빛에 깃든 것은 강력한 호감이었다.
퀘스트 클리어.
즉, 대회에서의 우승을 확신하게 된 그리드가 한속봉에게 정중히 대답했다.
“지나가던 대장장이입니다. 이곳 판게아에 우연히 들렀다가 화이트 선생을 보고 감명 받아 잠시 의탁하게 되었지요.”
그리드는 한속봉, 화이트 둘 모두와 호감도를 높여야하는 입장이었고, 그렇기에 신중하게 생각하여 대답한 것이다.
효과는 컸다.
“오오…! 화이트 대장의 솜씨가 판게아에 귀인을 불러들였구려!”
“그리드님…!”
한속봉과 화이트 모두가 감격하는 그때.
“인정할 수 없습니다!”
작년도 대회 우승자로써 한속봉과 큰 친분을 쌓았다고 자부하고 있던 에녹이 반발을 일으켰다.
“엄밀히 따져서 저자는 하얀 망치 소속의 대장장이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번 대회는 무효가 되어야 합니다!”
끝까지 얄밉게 구는 에녹이었다.
그리드와 화이트는 뜨끔하였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주작궁의 복원을 원했고, 바로 이 귀인께서 내 바람을 이뤄주셨소! 또한 이 모든 결과는 화이트 대장의 솜씨와 인덕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하얀 망치의 우승을 부정해선 안 될 것이오!!”
한속봉이 직접 나서서 하얀 망치를 옹호했다.
에녹은 주둥이를 닫을 수밖에 없었고 그리드와 화이트는 안도의 숨을 뱉었다.
동시에.
[퀘스트 <한속봉 배 대회에서 우승하라!>를 완료하였습니다.]
[하얀 망치의 대장 화이트와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화이트는 당신을 위해서 그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얀 망치 대장간에서 판매하는 모든 상품을 원가로 구입할 수 있게 됩니다!]
[하얀 망치 대장간에 아이템을 판매할 경우 시세보다 20퍼센트 비싸게 판매할 수 있게 됩니다!]
[하얀 망치 대장간의 모든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대장장이의 자애> 효과로 화이트의 대장장이 기술 레벨이 3 상승하였습니다!]
[화이트의 대장장이 기술 레벨이 고급 8이 되었습니다!]
[판게아의 영주 한속봉과의 호감도가 80 올랐습니다! 당신이 큰 실수를 범하지 않는 이상 한속봉은 당신에게 무한한 호의를 베풀 것입니다!]
[판게아 성 던전의 출입권을 얻습니다!]
[레벨이 1 올랐습니다!]
[한속봉을 따라가십시오.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귀인의 존함이 어찌되시는지?”
잃어버린 주작궁을 복원하지 못할 경우 자신은 물론이고 초국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던 상황.
한속봉은 그리드를 구국의 은인으로 인식했고,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던 그리드는 이번에도 정중히 대답했다.
“그리드입니다.”
“그리드…”
이 순간.
위대한 이름이 초국 전체에 각인됐다.
몇 번이고 그리드의 이름을 곱씹은 한속봉이 그리드를 친히 안내했다.
“자, 우선 제 성으로 가시지요. 아, 그전에 주작궁은 저희 쪽에 넘겨주시고.”
“?????”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리드는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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