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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63화 (358/1,794)

템빨 26권 - 2화

그리드가 상상하는 주작궁과 하얀 망치의 대장장이들이 증언하는 주작궁에는 명확한 공통점이 있었다.

활대가 희다는 점과, 강력한 화염을 생성한다는 점이었다.

그리드가 주작궁 도안의 주재료를 백린목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다.

백린목은 단단하기가 용철과 비견될 뿐만이 아니라 가볍고, 자체적으로 강력한 화염을 생성하는 바.

주작궁의 활대로 삼기에 무척 적합했다.

하지만 판게아의 다른 대장장이들은 백린목을 사용하겠다는 발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주작궁의 재료가 백린목이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무척 드물었다.

바보라서?

아니다.

단지 상식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혔기 때문이다.

백린목이란 ‘결코 벨 수 없는 나무’라는 것이 대장장이들. 아니, 세상사람 모두의 상식인 바.

백린목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겠다는 발상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해냈다.

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백린목을 벨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저거 설마 백린목이야?”

“말도 안 돼…”

수만 명의 관중이 지켜보고 있는 무대.

숲처럼 꾸며놓은 푸른 소나무로 둘러싸인 그곳 한쪽으로 사람들의 이목이 일제히 집중됐다.

하얀 망치의 신입 대장장이가 꺼낸 하얀색 나뭇가지들 때문이었다.

곧게 뻗어있는 흰 나무.

백린목과 완전히 일치하게 생겼다.

하지만 백린목일 리가 없다는 게 사람들의 판단이었다.

“백린목은 벨 수 없는 나무잖아?”

“맞아. 설사 베더라도 폭발해서 온전히 취할 수 없다고 들었어.”

“저게 백린목이라는 건 불가능하다. 단지 백린목과 닮은 나무에 불과할 거야.”

하지만 백린목과 닮은 나무가 세상에 존재하던가?

하얀색 나무는 많을지 몰라도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나무는 백린목이 유일하다.

조금도 휜 부분이 없는 나무 또한 백린목이 유일했다.

부정하면서도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가소로운 하얀 망치 놈들! 실력으로는 도통 사람들의 관심을 살 수 없으니까 쓸데없는 퍼포먼스를 준비해왔구나!”

무대의 사방위 중 한쪽.

하얀 망치의 무대와 마주보고 있는 푸른 불꽃의 무대로부터 튀어나온 외침이었다.

에녹의 목소리였다.

에녹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작년 대회 우승자인 자신보다 하얀 망치를 주목하고 있었으니 자존심이 매우 상했던 것이다.

심지어 하얀 망치는 실력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 아니라 비상식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가짜 백린목을 꺼내들다니?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저 자극적인 행위다.

망신만 자처하고 있다.

더화이트.

한때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였던 인물.

그가 쌓아올린 하얀 망치가 이 순간 완전히 명예를 잃고 몰락하려하고 있음에 에녹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더화이트!’

어째서 화이트 따위를 후계자로 삼아서 하얀 망치를 여기까지 무너뜨린단 말인가! 자신의 일생을 바쳐 쌓아올린 업적이 아깝지도 않았단 말인가!

‘위대한 당신조차도 혈연 앞에서는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는 게 슬프다!’

꽈악!

이를 악 문 에녹이 준비해온 최고급 장작들을 용광로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푸른 불꽃의 비기를 사용하여 풀무질을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불꽃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화르륵!!

에녹이 풀무질을 진행하자 푸른 불꽃의 용광로 속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뜨거운 열기가 무대를 끓어오르게 만들었고 관중들을 자극시켰다.

“오오! 엄청난 불꽃이야!!”

“역시, 푸른 불꽃의 풀무질은 끝내주게 화끈하군!”

푸른 불꽃의 풀무질 솜씨는 초국 최고다.

더화이트 생전에도 풀무질만큼은 푸른 불꽃을 인정해주었었다.

최하급 철광석마저도 최고급 철광석처럼 정련해내는 푸른 불꽃의 풀무질은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길이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짜 백린목으로 현혹하는 하얀 망치의 신입 따위, 관중들은 금세 외면해버렸다.

한편 그리드 또한 에녹의 풀무질을 목격하고 감탄하고 있었다.

‘저 정도로 풀무질을 잘하는 대장장이는 처음 보는군.’

장인급 대장장이들의 풀무질 실력이 저렇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딱 장인급 대장장이의 실력.

전설의 대장장이보다는 한참 못하다.

그리드는 놀라워하면서도 실망했다.

‘하얀 망치의 단조질을 보고 공부가 됐던 것처럼 푸른 불꽃의 풀무질을 보면 공부가 될 줄 알았더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얀 망치의 기술이 유난히 특별했던 거군.’

자꾸만 거론되는 더화이트라는 이름의 대장장이가 초월적인 실력자였던 것 같다.

생각하면서, 그리드가 용광로에 백린목을 집어넣었다.

순간.

퍼어어어어엉!!

“……!”

하얀 망치의 용광로에서 발생한 불길이 폭음과도 같은 소리를 터뜨렸다.

일제히 깜짝 놀란 관중들과 대장장이들이 다시금 하얀 망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경악했다.

“뭐, 뭐지, 저 불꽃은?”

“용광로를 집어삼키다니…?”

엄청난 크기의 불길이었다.

용광로 속에서 타올라야할 불길이 용광로 바깥까지 솟구쳐 나오더니 용광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의 표면처럼 붉은 불꽃이 마구 들끓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는 사람들과 달리 에녹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풀무질의 풀자도 모르는 놈이로구나!! 그저 강하기만 한 불길로는 제대로 된 정련의 과정을 거칠 수 없다!! 그건 단지 모든 것을 불태울 뿐이며… 허걱!!”

등장 이후 쉴 틈 없이 지껄여대던 에녹이 처음으로 말문을 닫아버렸다.

푸욱. 푸욱. 푸욱.

그리드.

하얀 망치의 신입 대장장이가 풀무의 손잡이를 휘어잡더니 당겼다가, 집어넣기를 반복하는 동작을 시작하자.

화르륵! 화륵!

걷잡을 수 없이 커졌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그라지다니 용광로 속으로 갈무리되는 게 아닌가?

에녹은 물론이고 검은 모루의 대장 벽산과 붉은 집게의 대장 라호추 모두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미 통제 불가능하리라 보았던 강력한 불꽃을 순식간에 진정시키는 풀무질 솜씨라니…?’

‘풀무를 다루는 손놀림이 말도 안 되게 뛰어나다. 저 청년의 손은… 그래, 마치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과도 같아.’

‘저놈은 뭐지? 피부를 녹여버리는 열기 앞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풀무를 다루다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건가? 아니면 피부가 적화마의 가죽이라도 되는 거야?’

쿠르르르르르르릉!!

하얀 망치의 용광로 속에서는 천둥과도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드가 용광로 안으로 갈무리시킨 불꽃의 강력한 열기가 온도를 팽창시키며 발생시킨 소리였다.

“대,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온도가 너무 높은 거 아닐까요? 이래서야 철을 넣어도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릴 것 같은데요?”

조심스럽게 말해오는 화이트에게 그리드가 설명해주었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지만 이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뿌리로부터 떨어져 나온 백린목은 단지 단단하기만 할뿐이지 화염을 생성하지는 못하거든요.”

하지만 화염인자는 살아있다.

백린목 내부에는 화약성분을 생성하는 섬유질이 있었고 이는 고온에서 자극받을 경우 활성화됐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안목과 지식>이 시스템 보정효과를 토대로 그리드에게 가르쳐준 지식이었다.

화르르륵!!

가까이 다가가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온도를 방출하는 용광로의 불길.

화이트를 비롯한 하얀 망치의 대장장이들이 용광로로부터 한 걸음, 두 걸음 뒷걸음치는 반면 그리드는 도리어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준비해뒀던 백린목을 용광로 속으로 집어넣은 뒤 풀무질을 가속화시켰다.

푸욱! 푸욱! 푸욱!!

쉴 새 없이 주입되는 공기가 용광로의 온도를 걷잡을 수 없이 상승시켰고,

‘저건 불가능한 일이다!!’

풀무질에 일가견이 있는 푸른 불꽃의 대장장이들은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 그리드는 인간 같지 않았다. 지옥의 불길을 유영한다는 대악마처럼 보였다.

특히 에녹은 그리드에게 두려움마저 느끼는 시작하는 그때.

“성공이다.”

풀무질을 멈춘 그리드가 용광로 속으로부터 백린목을 꺼냈다.

백린목은 본래의 모습보다 훨씬 더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은은한 백광을 발산하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그것을 집게로 붙잡아 고정시킨 그리드가 모루 위에 올렸다.

그리고 오로지 파그마의 후예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망치를 꺼내 단련을 시작했다.

떠어어엉-!!

그리드가 내리꽂은 망치가 백린목을 강타하는 순간.

“헛!”

검은 모루의 벽산과 붉은 집게의 라호추가 동시에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드의 단조질 실력.

조금 전 선보였던 풀무질 실력 이상으로 뛰어났기에!

‘저 청년은…!’

‘완전체다!!’

전성기 시절의 더화이트를 월등히 상회하는 실력자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전설의 대장장이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의.

따앙! 따앙! 따앙!!

그리드의 단조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용철처럼 단단한 백린목을 몇 번이고 때리면서 단련시킴과 동시에 형태를 변화시키는 그리드.

땀을 뻘뻘 흘리는 그의 시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인내심 효과가 발동합니다.]

[1시간 동안 집중력과 체력, 방어력이 극도로 상승합니다.]

평소라면 무척이나 반겼을 효과.

하지만 지금의 그리드는 무념무상의 단계에 진입하고 있었다.

더 나은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오로지 주작궁의 제작에만 전념했다.

지슈카의 활을 만들어줄 때면 늘 사용하던 미노타우르스의 뿔을 첨가, 활대에 부족한 탄력을 추가시키고 굽게 만들어서 만궁(彎弓)의 형태를 갖췄다.

겉모습만큼은 주작궁을 직접 보았다는 화이트의 의견을 새겨서 따른 것이다.

‘애초에 만궁은 활의 가장 발달한 형태라고도 하고.’

분주히 움직이는 그리드의 손끝에서 활이 모습을 갖춰갈수록.

‘좋아. 이건 진짜 좋다.’

그리드의 만족도와 자신감이 상승했다.

‘최악의 경우.’

설사 주작궁이 에픽 등급으로 완성될지라도 문제될 건 없다.

아이템 승급을 사용해서 유니크 등급으로 승급시키면 퀘스트는 무사히 클리어다.

아이템 승급 또한 창조와 마찬가지로 횟수에 제한이 있었지만, 이번 퀘스트에는 충분한 투자가치가 있다는 것이 그리드의 판단이었다.

‘화이트도 화이트지만 한속봉과의 호감도를 반드시 높여야해.’

이유야 간단하다.

한속봉이라면 주작궁과 같은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사방신 무구>의 정보를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

그리드는 동대륙에 있는 동안 모든 사방신 무구의 제작법을 획득할 계획이었다.

진정한 사방신 무구의 가치는 신급 아이템에 필적하리라는 것이 그리드의 판단이었고, 이를 양산할 수만 있다면 그리드의 군대는 절대무적이 될 터였다.

한편, 멀찍이 떨어진 채 그리드를 바라보는 에녹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저딴 애송이가 저만한 실력을…?”

더화이트는커녕 그의 아버지인 더더화이트가 와도 저 흑발 놈 앞에서는 미약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에녹은 그리드의 실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장장이로써 그는 그리드의 실력에 무한한 존경심을 느꼈다.

이는 항거할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리고…

[주작궁이 완성되었습니다!]

대회 시작 후 7시간 59분 49초를 지난 시점.

드디어 그리드가 손을 멈췄다.

그의 눈앞에 놓인 순백의 활은 유려한 곡선을 이뤘으며, 이는 대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아름다운 형태였다.

“주작…궁!”

영주석.

대회 내내 그리드를 주시하고 있던 영주 한속봉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그리드가 제작한 활로부터 날아오르는 주작의 기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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