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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60화 (355/1,794)

템빨 25권 - 22화

“대회에서 우승하면 어떤 혜택을 얻습니까?”

“한 해 동안 영주군에 독점적으로 무구를 납품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관광객들에게 추천 대장간으로 소개되어 결과적으로 커다란 매출을 올릴 수 있지요.”

판게아는 에트날 왕국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레이단보다 배나 큰 도시이다. 레이단과 달리 인구도 충만했고 유동인구도 많았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게 되는 대장간은 실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단 뜻이다.

덤으로 판게아 최고의 대장간이라는 명예까지 얻었으니, 한속봉 배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판게아의 모든 대장간이 꿈꿀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화이트가 우승을 꿈꾸는 목적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영주성 던전에 입장할 자격을 얻습니다.”

“영주성 던전?”

던전을 보유한 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들었다.

예를 들면 크리스가 보유한 영지의 성이 그랬다.

크리스는 자신의 성 지하던전에 출몰하는 뱀파이어 보스를 독식하고 엘릭서를 축적한 인물로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그리드가 지배하고 있는 영지들은 전용던전이 없었지만 말이다.

‘희귀 아이템을 수집하기에 성 던전처럼 좋은 곳도 없다고 들었는데…’

라우엘의 템빨단 강화계획에는 서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성을 점령한 후 그곳의 던전들을 독식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현 가능성은 없겠다만.’

탐욕으로 번들거리던 그리드의 눈빛이 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동시에 날카롭게 변모했다.

“판게아 영주 성 던전에는 무엇이 있기에?”

“철갑귀…”

“철갑귀?”

“제 부친을 살해한 원수이며, 판게아의 대장장이라면 모두가 갖기를 꿈꾸는 ‘은사(銀絲)’를 생산하는 괴물입니다.”

‘은으로 만든 실?’

일반적인 은사는 치장용에 그친다.

단순히 평범한 은사라면 판게아의 모든 대장장이가 갖기를 꿈꾸진 않았을 터.

“보통 은사가 아닌가보군요?”

“철갑귀가 입고 있는 은갑옷의 파편이 철갑귀의 썩은 혈관에 박힌 채 녹고, 굳기를 수년 동안 반복함으로써 생산되는 은사입니다. 결코 끊어지지 않으며 신비한 효력을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께서 철갑귀의 손에 명을 달리하셨다는 건…”

“예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수년 전 한속봉 배 대회의 우승자셨던 제 부친께서는 은사를 얻고자 던전에 출입하셨고, 거기서 도리어 철갑귀에게 살해당하셨지요.”

화이트의 아버지 더화이트는 한속봉 영주가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던전 토벌군에 보조병으로 지원하였다가 험한 꼴을 당한 것이다.

화이트 또한 혹 아버지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까봐 두려웠지만, 두려움보다는 분노와 욕심이 더 컸다.

“저는 반드시 주작궁을 재현하여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고, 던전의 출입권을 얻어 영주군에 자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철갑귀 소탕에 힘을 보탬으로써 부친의 원수를 갚고 은사를 얻어 하얀 망치 대장간을 명실상부 최고의 대장간으로 만드는 게 꿈입니다. 그게 제 부친의 꿈이었거든요.”

“…흐음.”

화이트를 바라보는 그리드의 눈빛이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했다.

따뜻함이 깃든 눈빛이었다.

파그마의 후예가 지닌 <홍익 대장장이 정신>에 의거하여 <대장장이의 자애>가 발현되는 것이다.

‘꿈꾸는 대장장이의 모습은 보기 좋군.’

그 순간이었다.

띠링~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한속봉 배 대회에서 우승하라!>

난이도:SSS

파그마의 기술은 물론이고 그 의지까지 계승한 당신! 당신은 파그마의 유지를 받들어 ‘널리 대장장이를 이롭게 하라’는 홍익대장장이 이념을 가지고 있다.

하얀 망치를 판게아 최고의 대장간으로 만들겠다던 아버지의 유지를 잇고자 노력하는 젊은 대장장이의 모습이 당신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화이트를 도와 한속봉 배 대회에서 우승하라!

하얀 망치 대장간을 판게아 최고의 대장간으로 등극시키는 순간, 당신은 판게아에 절대적인 우군을 두게 될 것이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유니크 이상 등급의 <주작궁>을 복원.

퀘스트 클리어 보상:화이트와의 호감도 MAX. 한속봉 영주와의 호감도 30~80 상승. 한속봉 영주와의 호감도 결과에 따라서 차등 보상을 획득. 판게아 영주성 던전 출입권 획득. 레벨 1 상승.

퀘스트 실패 시:화이트와의 호감도 하락. 판게아 명성 하락.

‘좋다.’

안 그래도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던 차였다.

이제 명분이 생겼고 덤으로 보상까지 챙길 수 있었으니 그리드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질문하는 알림창에 명시되어 있는 단 두 개의 선택지.

YES 혹은 NO.

그리드가 망설임 없이 YES를 선택하였고,

“저, 그리드님.”

퀘스트 시작에 반응한 화이트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사실 저희는 백린목을 완벽히 다룰 자신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백린목을 베어다주신 덕분에 전보다 더 나은 화력을 낼 수는 있게 되었지만, 그 화력을 완전히 통제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전설의 나무꾼이신 당신이라면 장작을 지피는 일에도 일가견이 있으시겠지요? 그… 염치불구하고 여쭤봅니다. 저희 대장간의 일원으로써 이번 대회에 참가해주실 수 있으실지요?”

“…”

전설의 대장장이를 나무꾼으로 착각하여 불이나 지피라니?

예상과 다른 전개에 그리드는 당황하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흔쾌히 돕지요.”

“오오…! 오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전설의 대장장이는 당연히 풀무질도 잘한다. 불을 지피는 일이야 그리드에게 어렵지 않았다.

‘어떤 형태로든 대회에 참가하기만 하면 돼.’

일단 대회가 시작되면.

‘내가 주도한다.’

***

“흐으음.”

한속봉.

몰락한 귀족가문의 후손으로써 찢어지게 가난한 유소년기를 보낸 인물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어머니 밑에서 수학한 덕분에 벼슬에 오를 수 있었고, 문관으로 대성했다.

지금의 초국이 있는 것은 첫째, 초왕 덕분이며 둘째, 한속봉 덕분이다. 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한속봉이 만든 정책들은 초국을 강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급기야 50세가 되는 해에 판게아의 영주로 임명 된 한속봉.

집안에서는 가문을 일으킨 영웅이오, 평민들에게는 귀감이며, 국가적으로는 보배인 그가 최근 몇 년 동안 시름에 잠겨있었다.

판게아의 보물 주작궁을 잃어버린 까닭이었다.

‘결국 환국의 양반들까지 움직이게 만들다니!’

사방신의 힘이 깃든 4개의 보물.

청룡도는 동쪽 가야에.

백호창은 서쪽 파국에.

주작궁은 남쪽 초국에.

현무보옥은 북쪽 씽에.

환국은 이 4개의 보물을 각국에 하사하였고 이를 잘 지키라고 명한 바 있다.

한데 초국은 주작궁을 잃어버렸다.

하필이면 한속봉이 판게아의 영주가 된 후에 말이다.

‘양반들은 앞으로 딱 반 년의 시일만을 주겠다고 하였다…’

만약 반 년 내로 주작궁을 되찾지 못할 경우, 한속봉의 안위만이 문제가 아니다.

초왕이 환국으로 불려가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석고대죄를 올려야할 판국이었다.

나라의 위상이 곤두박질치고 국정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찾아오는 것이다.

“하아!”

한속봉은 원망스러웠다.

3년 전, 자신이 병상에 누워있는 틈을 노리고 판게아를 침략해 급기야 주작궁을 빼돌린 정체불명의 도사.

놈의 배후는 어째서 초국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일까?

‘우리 초국이 약화 될 경우 가장 큰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나라는 북쪽의 씽… 하지만 사방신 보구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씽왕이 작금의 사태를 불러일으켰을 리는 없다.’

어쩌면 적은 내부에 있을 공산이 크다.

초왕의 세력이 약화될 경우 정권을 탈취할 수 있는 인물로 후보를 좁혀본다.

‘석현공.’

초왕의 동생.

‘하지만 그는 담대하지 못하며 지지기반이 약하다.’

최악의 경우.

‘누군가가 사방신 보구의 의미를 알고 악의적으로 주작궁을 취해갔을 수도…’

이 경우 가야의 청룡도와 파국의 백호창, 그리고 씽의 현무보옥도 노려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위험하다.

종국에는 대륙 전체가 혼돈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아니, 거기까진 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닌가.’

사태가 심각해지면 환국의 양반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할 것이다.

아마도.

‘나는 주작궁을 되찾는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주작궁이 어디로 빼돌려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북쪽에 형성 된 몬스터 군락들 때문에 외부와의 연락도 한계가 있다.

주작궁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보물을 만드는 편이 차라리 현실적이었고, 한속봉은 판게아의 대장장이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부디… 부디 올해에는 주작궁을 재현해주길 바라오.”

백옥을 깎아 만든 비석 앞.

본래는 주작궁이 놓여있어야 할 그곳에 앉은 채 기원하는 한속봉의 귓가로 노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루가 지날수록 얼굴에 근심이 커지는군. 의미 없는 근심을 키워봤자 독밖에 더 되겠소?”

“어머니…!”

목소리의 주인을 즉각 알아챈 한속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느덧 나이 여든을 바라보고 계신 어머니께서 성의 지하까지 내려오셨으니 그는 걱정스러웠다.

“계단을 오르내리시면 무릎에 무리가 간다니까요.”

헐레벌떡 다가와서 부축해주는 한속봉에게 그의 어머니가 붓과 먹을 건네주었다.

“이 어미는 아직 정정하니 영주께서는 괜한 근심 마시오. 마음에는 늘 여유가 있어야하는 법임을 잊지 말아야하오. 자, 그런 의미에서 심신을 단련하십시다. 후.”

한속봉의 어머니가 백옥 비석의 사방에 밝혀져 있는 촛불들을 직접 입으로 불어 껐다.

그리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이 새카매진 공간을 확인하더니 자리를 깔고 앉았다.

“이제부터 난 떡을 썰 터이니 영주께서는 글씨를 쓰시도록.”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늘 이러셨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면 어찌 알고 나타나 글씨를 쓰게 하셨다.

‘마음의 눈으로 글씨를 써내려갈 때면 늘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진정되곤 하였지.’

흐뭇한 얼굴로 웃은 한속봉이 붓글씨를 써내려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쓰는 글씨는 개발새발이었다.

악필도 이런 악필이 없었다.

“아얏!”

한속봉의 어머니는 떡을 썰다가 손가락을 베였다.

자주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크게 베이진 않았고 요령껏 약간만 베였다.

***

“어이쿠, 이게 누구야? 한 물도 아니고 두 물 간 하얀 망치 대장간의 검정색 화이트 아니신가?”

대회를 한 시간 앞둔 시점.

대회에서 사용할 자재들을 열심히 검토 중인 하얀 망치 대장간의 대장장이들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푸른 불꽃 대장간의 주인, 에녹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대회에 출전하는 족족 망신만 당하던 하얀 망치가 올해도 또 대회에 참가할 줄이야, 이것 참 상상도 못했군. 꼴찌하는 재미에 맛 들리셨나?”

에녹은 무척 인자하고 푸근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목소리와 말투는 비열하기가 짝이 없었다.

“더 까맣던 더화이트가 저승에서 슬퍼하고 있겠군. 불조차 다루지 못하는 대장장이를 후계자로 삼은 까닭에 하얀 망치가 곧 망하게 생겼으니까 말이야.”

“…”

죽은 부친의 이름까지 입에 담는 에녹.

화이트는 강한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화를 표출하지 않고자 노력하고 인내했다.

에녹의 말에 틀린 점이 없었던 까닭이다.

지금 자신이 화를 내봤자 비웃음밖에 더 사겠는가?

‘그저 아버님께 죄송할 따름.’

못난 아들임이 죄스럽다.

꾸욱-

이를 악 문 화이트가 불끈 말아 쥔 주먹으로부터 주르륵,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리는 그때였다.

“자고로 대장장이라면 손을 소중히 여겨야지.”

잠자코 사태를 지켜보던 그리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물약도 못 사먹던 초보자시절 사용하던 붕대를 꺼내 화이트에게 건네준 그가 에녹에게 이죽거렸다.

“당신은 불을 잘 다루나보지?”

에녹이 황당해했다.

“이건 또 뭐야? 처음 보는 놈인데? 네놈, 완전히 신참 주제에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끼어들어? 개념이란 게 없는 거냐?”

“어른은 개뿔. 나랑 10살 정도밖에 차이 안 나 뵈는구만.”

“하, 역시 하얀 망치는 수준이 낮군.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잡것을 신입으로 들이다니 말이야. 쯧쯧, 하기는. 인재란 인재는 죄다 우리 대장간으로 모여들고 있으니. 뭐, 올해 성적도 뻔하군. 꼴찌를 미리 축하하도록 하지. 푸하핫!”

‘웃기는 놈일세.’

굳이 남의 대기실까지 찾아와서는 시비만 걸다가 가다니?

완전히 개양아치다.

그리드가 싫어하는 유형의 인물이었다.

“우선 풀무질부터 이겨줘야겠군.”

판게아 최고의 풀무질 실력을 자랑하는 푸른 불꽃을 상대로 풀무질을 이기겠다는 나무꾼(?)의 황당한 발언.

화이트는 듣지 못했다.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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