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5권 - 20화
“전설적 대장장이의 감정!”
인벤토리 구석에 고이 간직한 호두 주머니.
그로부터 하나의 호두를 꺼낸 그리드가 현존 최고의 감정 스킬을 사용하자 호두의 진짜 정체가 드러났다.
[전설이 된 대장장이가 범인을 초월하는 뛰어난 안목으로 물품을 감정합니다. 대상 물품에 숨겨진 기능이 존재할 경우 숨겨진 기능을 발견합니다.]
[6등급의 일루젼 마법이 감지되었습니다.]
[헛된 환상이 당신의 안목에 간파당하고 신기루처럼 흩어집니다.]
[호두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황금 호두>
자연이 내린 축복이라고도 불립니다.
동대륙 모든 나라의 귀족과 왕족들이 즐겨먹는 간식이자 비약입니다.
복용 시 모든 능력치가 1시간 동안 10퍼센트 상승합니다.
또한, 매우 낮은 확률로 능력치 하나가 영구적으로 5 상승합니다.
무게:0.1
[숨겨진 기능을 발견하였습니다!]
<황금 호두>
자연이 내린 축복이라고도 불립니다.
동대륙 모든 나라의 귀족과 왕족들이 즐겨먹는 간식이자 비약입니다.
동대륙 어딘가에는 이 호두를 주식으로 삼는 영물이 존재할 것도 같습니다.
복용 시 모든 능력치가 1시간 동안 10퍼센트 상승합니다.
또한, 매우 낮은 확률로 능력치 하나가 영구적으로 5 상승합니다. 호두 껍질을 잘 깔수록 능력치가 오르는 확률이 높아집니다.
무게:0.1
헤벌쭉.
그리드의 입이 찢어져라 커졌다.
어마어마한 호두의 가치를 되새기고 기쁨에 전율하는 것이었다.
그가 웃는 낯 그대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여운 사람들이군.”
황금 호두에 환각 마법이 걸려있다는 사실.
뮤크 일행은 꿈에도 몰랐을 터다.
만약 알았다면 몬스터에게 먹이로 주겠다는 발상을 했을 리 없다.
그리드가 다짐했다.
‘그것 참 불쌍한 호구들이야. 나라도 잘 해줘야겠어.’
그리드는 뮤크 일행에게 과거의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
그들이 평생 손해만 보고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면서 미약한 동질감과 큰 동정심을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잘 해줘야겠단 생각을 품다니? 나도 정말 착하군.’
하긴, 착하지 않았다면 유니X프에 매달 3,300원씩이나 후원할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리드는 정말로 스스로를 착하다고 믿었다.
‘호두를 되돌려줄 정도로 착한 건 아니지만 뭐, 나 정도면 천사지.’
에헷, 뿌듯해하면서 가슴을 당당히 편 그리드.
황금 호두 하나를 더 까먹으려던 그가 참았다.
‘아껴먹어야 돼. 이건 열화판 엘릭서이기에 앞서서 최강의 버프 물약이야.’
능력치 상승 계열의 버프 물약은 대게 지속 시간이 1분에서 10분 사이에 불과하다.
반면 황금 호두의 버프 지속 시간은 무려 1시간이다.
또한 ‘모든 능력치’를 올려주는 버프 물약은 그리드가 아는 한 호두 외에 하나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달콤한 사탕>.
<명성 상점>에서 계정당 단 5회만 구매할 수 있는 버프 물약으로써 모든 능력치를 30퍼센트나 상승시켜주는 사기 아이템이다.
‘그건 나중에 드래곤이라도 만나지 않는 이상 먹기가 너무 아까울 것 같고. 사실상 이 호두가 최고의 버프 물약이라고 보는 게 옳겠지. 그러니까 아껴 먹자.’
드래곤!
‘플레이어가 사냥하라고 만든 존재가 아니다.’라고 S.A그룹에서 못박아둔 바 있는 Satisfy 최강의 생명체.
그리드는 앞으로 죽는 날까지 드래곤과 조우하고 싶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피해 다닐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모르는 법이다.
특히 그리드는 운이 없다.
현재 레이단 곳곳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광물 탐지기’ 마이너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었다.
“드래곤 레어에서 최고의 광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럼 내가 거길 안 갈 수도 없고…”
제발 그딴 일만큼은 발생하지 않기를.
“음?”
몸서리치면서 기도하던 그리드.
황금 호두를 대량으로 확보하는 방법이 없을까?
새로운 궁리를 시작하던 그가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어느덧 벌써 아침 먹을 시간이 다가오는 까닭이었다.
‘아, XX.’
운동을 시작한 이후부터 그리드는 식성이 무척 좋아졌다.
특히 Satisfy상에서는 하루 세끼를 전부 챙겨 먹지 않으면 스태미나 최대치가 일시적으로 낮아졌다.
어지간해서는 끼니를 거르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오늘만큼은 끼니를 거르고 싶었다.
아침부터 이단의 요리 같지도 않은 요리를 먹어야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아니… 오늘은 다를 거야.’
어제 분명히 말해 놨다.
소고기와 닭고기, 그리고 달걀을 좋아한다고.
어떻게 조리해도 맛있을 수밖에 없는 식재료들이다.
그것들을 재료로 사용하는 이상, 제아무리 이단이라도 개밥보단 나은 음식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는 게 그리드의 생각이었다.
‘서두르자. 어서 가서 밥 먹고 한속봉 대회 구경해야지.’
뮤크 일행이 다소 신경 쓰이긴 했지만.
‘어차피 여왕 쥐도 없으니 뭐, 알아서 눈치껏 군락을 벗어나하겠지.’
저벅.
발걸음을 돌린 그리드가 그대로 판게아로 떠났다.
***
새카만 어둠에 잠식되어있던 큰 독 쥐 군락.
새벽 동이 트자 차츰 그 웅대한 규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군란 한쪽에 쥐 죽은 듯이 숨어있던 뮤크 일당이 불안감에 휩싸였다.
“햄스터들이 깨어날 시간인데.”
“어쩌지? 이대로는 고립되게 생겼어.”
“뭘 어째? 이제와서 도망칠 수도 없고 기다려야지.”
가면 사내와 헤어지고 15분이 지났다.
시간상 잠시 후면, 가면 사내가 여왕 쥐의 천막 바로 앞에 마지막 호두를 내려놓을 시점이다.
“1분. 1분만 더 기다리면 돼.”
“가면 쓴 놈이 여왕 쥐의 천막 앞에 마지막 황금 호두를 놓는 순간.”
“모든 큰 독 쥐들은 놈을 뒤쫓게 될 거야.”
큰 독 쥐들에게는 재미있는 습성이 있다.
여왕 쥐가 자신의 천막에서부터 조금만 멀리 떨어져도 일제히 여왕 쥐의 위험을 감지, 여왕 쥐의 위치를 포착하여 뒤쫓는 습성이었다.
그렇다.
이들은 그리드가 여왕 쥐와 큰 독 쥐 전부를 몰이하는 동안 큰 독 쥐 군락을 벗어날 계획이었다.
그리드를 철저히 희생양 삼으려는 것이었다.
한데…
“어째 좀 이상한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예상한 시간이 다 되었건만 큰 독 쥐 군락은 조용하기만 했다.
파티창에 보이는 가면 사내의 생명력도 여전히 최대치였다.
여왕 쥐가 출몰하지 않았다는 뜻이며, 가면 사내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니, 그 멍청한 놈은 대체 정체가 뭐기에 고작 호두 놓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 거지?”
“설마… 설마 황금 호두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걸 갖고 도망친 거 아닐까?”
“그런 재수 없는 말 하지 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환상 마법은 지속 시간이 단 1시간에 불과하지만 최상급 감정스킬도 차단할 수 있어. 엄청난 정교함을 자랑한다고.”
“그럼 지금 이 상황은 뭔데? 어째서 큰 독 쥐들이 조용한 거야?”
만약, 가면 사내가 예정대로 여왕 쥐의 유인에 성공했다면 지금쯤 모든 천막의 큰 독 쥐들이 발광하며 튀어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쥐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상황.
설마, 가면 사내가 우리의 함정을 간파하고 역으로 뒷통수를 때린 게 아닐까?
최악의 가정을 떠올린 뮤크 일행이 초조해졌다.
그들이 파티 채팅으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저기… 반가면 님?
-반가면 님 안 계시나요?
-호두는요?
-여왕 쥐 유인 해주셔야죠?
연신 반가면을 부르는 뮤크 일당!
그들에게 반가면 그리드가 뒤늦은 답변을 날려주었다.
-님들아 거기에 여왕 쥐 없으니까 그냥 자유롭게 움직이시면 되요. 전 아침 좀 먹으러 가볼게요. 그럼 이만.
[????님이 파티에서 탈퇴하였습니다.]
“…??”
뮤크 일당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들은 그리드의 말 중 태반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왕 쥐가 없다니?’
‘아침을 먹겠단 이유로 파티에서 탈퇴하다니?’
우선, 여왕 쥐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최소 3일 이내에 레이드 당한 상태라면 없었겠지만.
여왕 쥐 레이드?
불가능하다.
현재 판게아에 남아있는 플레이어 중에 여왕 쥐를 잡을 수 있는 실력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판게아에 정체되어 있는 플레이어라고는 뮤크 일당 네 명밖에 없었으니까.
아, 물론 반가면도 얼마 전 합류했으나 그가 혼자서 여왕 쥐를 레이드했을 가능성은 당연히 제로다.
‘이 빌어먹을… 호두는 어떻게 된 거지?’
사냥터까지 나왔다가 고작 식사한다는 이유로 파티를 탈퇴하는 플레이어는 지극히 드물다.
대부분 사냥터에서 음식을 조리해서 함께 먹었다.
하지만 반가면은 아침을 먹어야한다면서 파티에서 탈퇴했다.
정황상 명확하다.
‘우리는 당한 거야!’
망했다.
반가면에게 속았다.
뒤통수 한 번 쳐보려다가 역으로 뒤통수 맞은 꼴이다.
“그놈은… 그놈은 처음부터 우리의 꿍꿍이속을 알았던 거야…!”
우리에게 속아주는 척, 내내 어리바리하게 행동하다가 중요한 타이밍에 몇 배나 세게 뒤통수를 후려치다니.
사악하고도 영리한 놈이다.
“제길…! 제기랄!!”
완전히 당해버렸다.
황금 호두를 구매하고자 탕진해버린 재산이 아무 의미 없이 허공에 흩어졌다.
한 마디로 망했다.
모두가 좌절하는 그때 뮤크가 희망을 주었다.
“어이, 너희들 정신 차려라. 가면 놈이 아무리 영리할지언정 호두의 정체까진 간파하지 못했을 것이다.”
“맞아…! 황금 호두가 평범한 호두인 줄 알고 그냥 길가에 버리고 갔을 수도 있어!”
“좋아! 우리는 지금부터 황금 호두를 수색한다! 가면 놈에게 복수하는 건 일단 호두를 되찾은 후에 하면 돼!!”
“오오오!”
희망을 되찾고 사기를 북돋아보지만 그건 잠시에 불과하다.
“…근데, 이 넓은 군락에서 호두를 무슨 수로 찾아?”
“이제 곧 완전히 밝아지면 큰 독 쥐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해질 시간인데… 천막에서 나와 단체로 몰려다니게 될 놈들을 어떻게 상대해야하지? 놈들이 약해졌다지만 숫자가 많아지면 상대하기 어려울 텐데.”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여왕 쥐야. 오전에는 종종 천막에서 나와 주변을 어슬렁거리잖아. 혹시라도 마주쳤다간 우린 그대로 끝이라고.”
“…”
좌절의 연속이다.
어째야할까?
고민하던 듀크 일행이 해답을 찾았다.
“우리는… 여왕 쥐와 햄스터들의 낮잠 시간이 될 때까지 여기 숨어서 대기한다.”
낮잠 타임까지 10시간만 쥐 죽은 듯이 숨죽이고 있으면 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햄스터들이 잠에 들면 그때부터 호두 탐색 작전을 개시하는 거야.”
한 나흘정도만 이 짓을 반복하다보면 황금 호두를 발견할 수도 있다.
천막에서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는 햄스터들을 보고 숨죽이기 시작하는 뮤크 일행.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역시 사람은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진리를 되새기는 날이었다.
***
“지금쯤이면 다들 무사히 다음 사냥터로 이동했겠지?”
여왕 쥐를 레이드한 일이 뮤크 일행에게 큰 도움이 될 줄이야?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인연이라는 건 참 신기하군… 후훗.”
불쌍한 사람들을 도왔다는 생각에 흐뭇해진 그리드.
축제를 앞두고 북적거리는 판게아에 도착한 그가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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