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357화 (352/1,794)

뮤크가 보유한 <동대륙 이동 포탈 스크롤>은 이제 단 2장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안개 섬을 너무 빨리 만난 바람에 포인트가 부족해서 발생한 현상이다.

하여, 판게아에서 이도저도 못한 채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내왔던 뮤크.

그의 생각이 오늘 다시 바뀌었다.

‘나는 정말로 운 좋은 놈이었어!’

괴물 같던 햄스터들이 하루아침에 약해져있다니?

‘하늘이 도운 거야!’

햄스터 사냥이 무척 수월해졌다.

전에는 2마리에게 다굴 맞을 때마다 위험한 순간이 찾아왔었고, 4~5마리를 사냥하면 꼭 몇 분씩 휴식을 취해야만 했었지만 이젠 아니다.

체력과 마나를 잘만 안배하면, 30분 동안 쉬지 않고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햄스터들이 약해졌다.

물론 주는 경험치양이 적어지긴 했다.

하지만 동시간대에 사냥 가능한 숫자가 대폭 늘어났으니 결과적으로는 이득이었다. 군락의 중심부까지 진격하는 과정에 경험치가 쭉쭉 올랐다.

쓸개도 꾸준히 드롭되었으므로 머잖아 ‘순수’ 중독 저항률 3퍼센트를 달성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레벨도 엄청 잘 오르는데 그냥 여기서 죽치고 사냥이나 할까? 중독 저항률을 30퍼센트까지만 올려도 서대륙에서 못 잡았던 독트롤을 잡을 수 있게 되겠는데?’

솔직히 황금 호두 값이 너무 아깝던 차이다.

‘강해지는 한편 호두 값도 아끼고… 이게 바로 일석이조 아니겠어?’

갈등하기 시작하는 뮤크에게 에반이 일침을 놓았다.

“레벨은 서대륙에서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큰 독 쥐의 쓸개는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모을 수 있고.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마라. 우리의 진짜 목적은 칭호, 스킬, 아이템의 선점이잖냐.”

레인이 동조했다.

“에반의 말이 맞아. 뮤크, 당장 눈앞의 이득에 심취하지 말고 냉정해지도록 해라. 우린 하루라도 더 빨리 이 지긋지긋한 판게아를 벗어나야할 의무가 있어.”

“각종 이득의 선점을 위해선 신속하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지. 선두주자들과의 격차가 더 이상 벌어져선 안 돼. 영영 못 쫓게 될 수도 있다고.”

오시호츠도 덧붙이자 결국 뮤크는 갈등을 접었다.

“맞아. 너희들의 말이 정답이다.”

타이밍 좋게 동대륙을 찾아온 루키.

일명 ‘가면 쓴 놈’.

이용해먹을 수 있는 패가 생긴 지금이야말로 판게아를 벗어날 적기다.

재차 마음을 추스른 뮤크가 파티창을 확인했다.

레인-레벨311

클래스:???

뮤크-레벨310

클래스:???

에반-레벨312

클래스:???

오시호츠-레벨310

클래스:???

???-레벨320

클래스:???

레인, 뮤크, 에반, 오시호츠 4인방은 서로를 동대륙에서 처음 알게 된 사이이다.

같은 처지끼리 위로하고 의지하고는 있었으나,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기에는 알고 지낸 기간이 너무 짧았다.

아주 가끔씩 큰 독 쥐 군락에 도전할 때를 제외하면 파티를 맺는 경우도 없었고, 설령 파티를 맺더라도 지금처럼 클래스는 비공개로 설정해놨다.

그렇기에 가면 쓴 놈의 클래스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크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는 게 뮤크의 판단이었다.

‘어차피 똑같은 3차 전투 클래스라면 PvP격차는 크지 않아. 밸런스가 맞다.’

레벨이 무려 320이라는 점이 거슬리기는 한다.

320레벨에 배울 수 있는 스킬은 강력하기로 유명했으니까.

하지만 이쪽은 숫자가 넷, 가면 쓴 놈은 혼자에 불과하다.

만약 이용해먹으려는 작전이 실패해서 가면 쓴 놈이 우리에게 이를 드러내게 될 지라도…

‘위험할 일은 없다는 뜻!’

씨익!

음침하게 웃은 뮤크가 손을 들었다.

“모두 대기.”

어느덧 군락의 중심부에 가까워졌다.

달이 뜨지 않아 새카만 밤.

저 멀리, 여왕 쥐가 머무는 거대한 천막의 윤곽이 어렴풋이나마 시야에 들어온다.

“반가면 님.”

‘나?’

반쪽짜리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해서 반 가면인가?

‘작명 센스 한 번 구리군…’

기왕지사 별명을 붙여줄 거라면 마스크 맨처럼 폼나는 이름이 어땠을까 싶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그리드가 대답했다.

“네.”

“저기 커다란 천막이 보이시죠?”

“네.”

“바로 저곳에 이 군락의 대장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걔들 내가 죽였는데.’

필드 보스의 리스폰 시기는 평균 3일이다.

특히 그리드가 앞서 죽인 여왕 쥐는 네임드 보스였을 공산이 크다.

여왕 쥐가 죽자마자 큰 독 쥐들이 전반적으로 약해진 점을 보면 가능성이 높은 추측이다.

앞으로 리스폰되는 여왕 쥐는 기존의 여왕 쥐와 달리 무척 약할 것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뮤크 일당은 여왕 쥐가 사냥 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꿈에도 상상 못했다.

“우리 파티로 대장 부부를 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특히 여왕 쥐가 엄청나게 세죠. 얼마나 세냐면… 음, 그래. 크라우젤, 지발, 그리드 같은 초네임드 플레이어들 있죠? 그런 거물들이 파티를 맺고 오지 않는 이상은 못 잡을 정도입니다.”

‘왜 내 이름이 맨 끝이지?’

크라우젤은 몰라도 지발보다 뒤에 언급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한다.

울컥한 그리드가 쌀쌀맞게 물었다.

“그래서요?”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리는 대장 부부를 제압해야할 의무가 있어요. 왜냐? 여기보다 훨씬 더 좋은 환상의 사냥터로 진입하기 위해서지요.”

‘그 환상의 사냥터라는 게 이 다음 몬스터 군락을 말하는 거라면… 여왕 쥔 이미 죽었으니까 그냥 가도 될 텐데.’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여왕 쥐를 자신이 죽였다고 밝혔다가는 여러모로 설명해야했으니 귀찮았다.

‘애초에 이들이 무슨 수로 여왕 쥐 부부를 제압한다는 건지, 그 방법이 궁금하기도 하고.’

흥미를 품는 그리드에게 뮤크가 작은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리드에게 뮤크가 하하, 사람 좋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열어보세요. 그냥 호두입니다.”

“호두?”

“큰 독 쥐 전부가 그렇지만, 개중에서도 특히 여왕 쥐가 호두에 사족을 못 쓰거든요. 이걸로 녀석을 낚는 겁니다.”

“흠.”

그리드가 주머니를 열어보자 진짜로 호두가 들어있었다.

껍질을 까기 전 온전한 상태의 호두들.

하나 같이 큼직하고 표면이 매끈한 것이 특등품 같았다.

“그걸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부터 시작해서 여왕 쥐 천막의 입구까지 2미터 간격으로 하나씩 놓아주세요. 여왕 쥐 부부가 호두 냄새에 홀려서 자리를 비우게끔 유도하는 겁니다.”

“그 틈에 댁들은 이 군락을 떠나고?”

가면 너머 번뜩이는 그리드의 눈동자를 목도한 뮤크가 흠칫 놀랐다.

‘뭐지?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단순히 사납다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눈빛이다.

마치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과 여유가 함께 깃들어 있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하늘의 제왕을 마주한 듯한 감각이다.

가면 사내의 눈빛은, 마치 지상의 먹잇감을 관조하는 맹금류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거역하기 어려운 힘이 느껴졌다.

이는 그리드가 태생적으로 타고난 날카로운 눈매와 높은 위엄 스탯이 맞물리면서 발생한 일이다.

“하하…”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눈이 휘둥그레져있던 뮤크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애써 웃는 낯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죠. 우리만 떠나는 게 아니라 당연히 반가면님도 함께 떠나야죠.”

그리드의 눈빛이 평소대로 되돌아왔다.

“에이, 뭐야. 내가 천막 입구까지 호두를 놓으러 갔다가는 필시 여왕 쥐의 표적이 될 텐데? 내가 공격당하는 동안 댁들만 도망치려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여왕 쥐는 호두에만 정신이 팔려서 반가면 님은 거들떠도 안 볼 거예요.”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그럼 댁들이 이 역할을 맡던가요.”

“하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좋은 사냥터를 많이 알고 있다고요. 늘 이 방법으로 환상의 사냥터까지 이동하곤 했습니다. 여왕 쥐의 천막 입구까지 호두를 놓는 일이야 우리가 늘 하는 일이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죠. 굳이 반가면님께 이 역할을 맡기는 이유는, 이번 기회에 경험을 해보시고 다음부터는 반가면님 혼자서도 환상의 사냥터로 이동하라는 일종의 호의입니다.”

‘착한데?’

진실이 어떤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말만 들어서는 호의가 가득하다.

애초에 지금은 여왕 쥐도 없는 상황.

위험할 것도 없었고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그럼 저는 당신들을 믿고 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리드로부터 시선을 뗀 뮤크가 안도함과 동시에 비열한 미소를 피어 올렸다.

‘여왕 쥐가 호두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 고기를 더 좋아하지. 호두를 먹기에 앞서서 당신부터 시식하려고 들 거야.’

계획대로 희생양이 되어라.

그 틈에 우리는 이곳을 벗어나 지긋지긋한 판게아와 작별할지니!

희열에 찬 뮤크 일행이 그리드에게 뒤를 부탁한 후 자리를 떠났다.

멀어지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리드가 주머니로부터 호두 하나를 꺼냈다.

“정작 여왕 쥐가 없는데 이걸 바닥에 뿌릴 필욘 없지.”

듀크 일행이 다음 사냥터로 넘어가기 위한 작업을 하는 동안 호두나 까먹는 게 좋을 것 같다.

파작!

무려 3천에 육박하는 근력.

플레이어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높은 근력을 보유한 그리드 앞에서는 단단한 호두 껍질도 무의미했다.

쉽게 으스러지면서 속살을 노출했다.

놀라운 사실은, 껍질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호두 알갱이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그리드의 전설적인 손재주가 빚어낸 비상식적인 결과였다.

“얌.”

탱탱하게 살이 오른 호두 알갱이를 그리드가 입 안에 넣었다.

순간.

‘맛있다!’

그리드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호두를 입안에 넣자마자 견과류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폭발하면서 적절한 쌉쌀한 맛이 식욕을 돋궈주는 게 아닌가?

씹으면 씹을수록 은은히 퍼지는 단맛도 일품이다.

이단의 음식 같지도 않은 음식을 먹느라 망신창이가 되었던 미각이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했다.

“더 먹어야… 엉?”

기꺼운 마음으로 호두 하나를 전부 씹어 삼킨 그리드가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멈췄다. 마치 석상처럼 완전히 굳어버렸다.

믿기지 않는 효과가 발생한 까닭에 크게 놀란 것이었다.

[황금 호두를 섭취하였습니다.]

[1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가 10퍼센트 상승합니다.]

[황금 호두의 알갱이가 손상도 없이 완전합니다. 이로 인해서 온전한 영양분이 공급됩니다.]

[지력이 영구적으로 5 상승하였습니다.]

“…엥?”

그리드는 이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

의문에 휩싸였던 그리드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느낀 감정.

그것은 기쁨보다 측은함이었다.

“저 사람들… 호구구나.”

이런 엄청난 호두를 평범한 호두인 줄 착각하고서 몬스터에게 먹이로 주려했다니?

불쌍하다.

제 밥그릇도 못 챙길 인간들이다.

“에이구, 쯧쯧. 사기꾼일리는 없겠네.”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찬 그리드가 호두 주머니를 인벤토리 한쪽에 잘 챙겨 넣었다.

뮤크 일행에게 호두를 돌려줄 생각은 당연히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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