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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53화 (348/1,794)

템빨 25권 - 16화

플레이어들은 이제 더 이상 7대 길드를 논하지 않는다.

7대 길드를 전부 합한 것보다 템빨단 하나의 포스가 훨씬 더 강력했고, 이때부터 7대 길드는 위용을 잃었다.

최강이라는 칭호와 멀어진 채, 7대 길드는 서서히 쇠락해갔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인재들의 가입요청이 쇄도하던 시절은 안녕이 된 것이다.

“우리 길드는 연합에서 탈퇴하겠다.”

프랑스 최강자 봉드레.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무패>라는 칭호를 지녔던 얼음술사 랭킹 1위.

최강의 마법사 집단 <아이스 플라워>의 마스터이기도 한 그가 연합으로부터의 탈퇴를 표명했다.

다른 7대 길드 마스터의 수장들은 그를 말리지 않았다.

도리어 봉드레의 연합 탈퇴 선언은 도화선이 되어서 다른 길드 마스터들 또한 족족 연합 탈퇴를 선언하기 시작했다.

퇴물이 된 연합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연합의 대표격인 지발 또한 이들의 입장을 포용했다.

“굳이 말리지 않겠다.”

제2회 국가대항전 이후 지발은 많이 변했다.

레이드와 사냥에 있어서만큼은 본인이 최고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가, 그리드에게 패배하고부터 인식이 바뀐 까닭이다.

나는 최고가 아니다. 스스로 자만할 자격도 없고 남에게 무엇을 강요할 입장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지발은 더 이상 7대 길드에 집착하지 않았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수단으로 스스로의 성장을 택했다.

이제 막 번헨 열도라는 곳에 발을 들이게 된 지발.

7대 길드들이 연합에서 탈퇴하였다는 문구를 확인하면서, 피식 웃은 그가 열도에 입장했다.

***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이스 플라워 길드원들은 다소 불안한 기색이었다.

아이스 플라워.

전원 마법사 랭커들만 모인 소수 정예 길드로서 그 숫자는 불과 30밖에 되지 않는다.

연합에서 탈퇴한 이상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 발생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은원관계에 얽혀있는 놈들이 두려움 없이 시비를 걸어올 테고, 길드에 생산직 플레이어가 없는 까닭에 아이템 거래에 있어서 불리하게 됐다.

걱정하는 길드원들을 봉드레가 안심시켰다.

“우리는 전쟁의 신에게 간다. 이로써 우리의 생활은 전보다 훨씬 더 윤택해질 것이며 찬란한 미래를 보장받게 될 것이다.”

“전쟁의 신?”

“그게 누구죠?”

어리둥절해하는 길드원들에게 봉드레가 설명해주었다.

“아레스. 독보적인 능력과 세력을 거느린 비공식 랭커다. 그리드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일 거다.”

“헐…”

우리 마스터를 몇 번이나 묵사발로 만든 그리드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실력자라니?

아이스 플라워 길드원들은 믿기지가 않았다.

“그만한 실력자가 어째서 알려지지 않은 거죠?”

“그러게. 나도 처음 듣는 데요.”

“Satisfy는 넓으니까. 너희는 현실에서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각 분야의 실력자들을 모조리 알고 있나? 알기는커녕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못하겠지. 그런 면에서 Satisfy도 현실과 마찬가지다.”

사실, 봉드레도 얼마 전까진 아레스를 몰랐다.

하지만 3일 전 접촉해온 스캇이라는 인물이 아레스에 대해서 알려줬고, 그 정보를 접한 순간 봉드레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세상은 넓고 지존은 많았던 거야.”

아레스의 길드에 가입하고 탄탄대로를 걷게 되리라, 생각하며 희열에 차는 봉드레의 귓가로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세상은 넓지. 하지만 그래봤자 모조리 내 발 아래다.”

“누구냐!”

아이스 플라워 길드원들이 일제히 경계했다.

영지로 돌아가는 길목을 수십의 스켈레톤 워리어가 가로막고 있었으니 무척 당혹스러웠다.

위험을 감지하고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하는 그들의 귓가로 낯선 사내의 음성이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봉드레, 패왕의 제물이 되어라.”

오싹!

봉드레와 아이스 플라워 길드원들의 등골에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정체불명 사내의 음성에 깃들어있는 광기가 그들에게 본능적인 공포심을 선사했다.

‘단지 말하는 것만으로 공포 상태를 유발한다고?’

보스 몬스터인가?

‘하루에도 수천의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보스가 나타났다고?’

말도 안 된다.

“모습을 드러내라!”

8레벨 아이스 커터의 캐스팅을 순식간에 끝낸 봉드레가 그대로 마법을 쏘았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정확히 노린 일격이었다.

쩌어어엉-!!

회전하면서 날아간 날카로운 얼음의 칼날이 허공에 멈췄다. 그리고 동시에 산산조각 났다.

갑자기 생성 된 불투명한 어둠의 장막에 가로막힌 탓이었다.

‘내 마법을 이토록 쉽게 막아내다니?’

쏴아아아아-

반짝이며 흩날리는 얼음결정의 잔해 속에서,

“아그너스?”

촤아아악!

어둠의 장막을 찢어발기며 등장하는 사내를 목도한 봉드레가 질색했다.

아그너스.

크라우젤, 지발, 유라 등의 최상위 랭커들이 랭킹계에서 사라지자 자연히 통합랭킹 3위에 등극한 사내.

천외천 크라우젤조차도 기피한다는 소문의 사이코패스.

“킥킥킥!!”

특유의 광소를 터뜨리는 그의 번들거리는 황금색 눈동자에 담기는 봉드레의 모습, 겁먹은 쥐새끼 그 자체다.

***

“사냥터하고 거리가 은근히 멀단 말이야. 다음에 나갈 땐 귀환 주문서를 준비해놔야겠다.”

본래 그리드는 한속봉 배 대장간 대회에 맞춰서 판게아에 귀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단의 프라이팬을 획득한 순간 계획을 바꿔서 곧바로 판게아에 귀환했다.

이단과의 호감도를 높이는 일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까닭이다.

이유는 프라이팬의 정보에 있었다.

<이단의 프라이팬>

등급:유니크

내구력:35/260 공격력:89

*착용 시, 중급 요리 마스터리 2레벨 생성.

요리에 조미료를 사용하는 순간 요리사가 아니다!

이와 같은 요리철학을 지닌 이단의 가문이 지난 수백 년 동안 대대로 사용해온 프라이팬입니다.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조미료가 묻은 적이 없기 때문에 식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기에 최적화되어있습니다.

또한, 프라이팬에 전대 요리 장인들의 염원이 담겨있으므로 간혹 특별한 일이 발생합니다.

이단이 이 프라이팬으로 음식을 조리할 경우, 높은 확률로 버프 능력을 지닌 음식이 완성되고 매우 희박한 확률로 스탯을 상승시켜주는 음식이 완성됩니다.

단, 그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는다는 전제가 붙습니다.

사용 조건:초급 요리 마스터. 이단이 착용할 경우에만 특수한 효과 발생.

무게:40

‘크라우젤이 이단의 맛없는 요리를 4번이나 먹은 이유가 있었어.’

이단.

그는 무려 엘릭서를 낳는 황금 거위였다.

비록 맛없는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였지만 그 가치는 천문학적.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모셔야할 인재다.

그리드는 결심했다.

반드시 이단을 자신의 전속 요리사로 삼겠다고!

“이단!!”

판게아 북쪽 거리.

곧바로 이단의 식당으로 달려온 그리드가 날파리를 쫓고 있는 종업원에게 물었다.

“이단은 어디에 있지?”

“사장님께서는 식재료를 구하러 나가셨습니다.”

“식재료를 납품 받지 않고 직접 구해?”

“네, 아무래도 강시의 썩은 간을 납품하려는 업자는 없으니까요.”

“강시의 썩은 간…?”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식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기에 최적화 된 이단의 프라이팬.

이것으로 강시의 썩은 간을 조리한다면?

‘…이건 진짜 엿 됐다.’

환장하겠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이런 미친… 왜 하필이면 썩은 간을 조리한다는 거지?’

심지어.

‘강시 그거 사람 시체 아닌가?’

이단을 전속 요리사로 들일 경우.

매번 말도 안 되는 식재료로 조리한 음식을 먹어야하는 걸까?

‘…아니, 그럴 리가.’

매번 이상한 요리를 만들 리가 없다. 평범한 요리도 만들 것이다.

‘지도 먹고 살아야지. 만약 아니더라도 내가 부탁하면 만들어줄 거고.’

믿어 의심치 않은 그리드가 종업원에게 재차 물었다.

“강시는 어디에 있지?”

“남문으로 나가서 북쪽으로 걷다보면 묘지가 나와요. 거기에 출몰해요.”

“좋아, 이단이 거기에 있다 이거지?”

강시라는 몬스터의 정보도 확인할 겸, 그리드가 식당을 나서려하는 순간이었다.

“으음? 자네는?”

이단이 식당으로 돌아왔다.

그의 한쪽 손에는 시커먼 뭔가가 가득 담겨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썩은 냄새를 풀풀 풍기는 그것을 애써 외면한 그리드가 이단에게 프라이팬을 건네주었다.

“약속했던 물건입니다.”

“흐음.”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 보았던 집안의 가보.

그것을 단 이틀 만에 구해올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프라이팬을 살펴보던 이단이 이내 두 팔을 번쩍 들면서 환호했다.

“오…! 오옷!! 우오오오옷!! 이럴 수가!! 우리 집안의 가보를 이토록 빨리 되찾을 줄이야!!”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단이었다.

그가 프라이팬을 품에 안는 순간 그리드에게 알림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큰 영웅의 흔적을 찾아라!>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30퍼센트의 캐릭터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이단과의 호감도가 10 올랐습니다.]

“어?”

호감도 10?

무려 가보를 되찾아주었는데 호감도가 고작 10밖에 안 올랐다고?

그리드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호감도 최대치는 아니더라도 최소 50은 오를 줄 알았는데?’

당황하고 있는 그리드를 이단이 한쪽 테이블로 가서 앉혔다.

“아직 저녁 식사 전이지? 자, 앉게. 내 자네가 되찾아준 우리 집안의 가보를 사용해서 근사한 저녁을 대접하겠네.”

“아, 네.”

잘하면 능력치를 올려주는 음식을 먹을 기회다.

망설이지 않고 착석한 그리드가 뒤늦게 깨닫고 말했다.

“참고로 저는 간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강시 간으로 만든 요리 따위 내놓지 말라는 뜻!

순간, 이단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굳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쯧, 혀를 찬 이단이 주방으로 향했다.

그의 쌀쌀맞아진 태도에 그리드가 최악의 가정을 세웠다.

‘설마, 지금 내가 호감도 떨어지는 행동을 한 건가?’

어쩌면 이단은 본인의 요리를 군소리 없이 먹어주는 사람에게만 호감도가 오르는 NPC일 가능성이 높다.

‘거의 확실해.’

이단의 프라이팬을 되찾아주고도 호감도가 고작 10밖에 오르지 않은 이유.

처음 만난 날, 오크 크림 파이를 먹다가 남겨서 호감도가 엄청 크게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진심 엿 됐네.’

이단을 전속 요리사로 영입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높은 호감도가 요구되는 바.

그 호감도를 높이는 방법이라는 것이, 이단이 만들어주는 요리를 군소리 않고 먹는 것이라니?

그리드가 좌절하는 그때.

“자, 자네 요구대로 간만 쏙 빼서 조리한 내 시그니쳐 메뉴 ‘간 잡채’일세.”

“…”

뒤끝 있는 이안이 그리드에게 잡채 한 접시를 내주었다.

잡채.

명백히 한국인에게 익숙한 음식으로써 그리드도 좋아하는 메뉴였다.

‘휴, 다행이다. 잡채가 맛없기는 어렵지.’

채소, 고기와 잘 버무려진 탱탱한 잡채 면.

젓가락으로 양껏 집은 그리드가 거리낌 없이 그것을 입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먹자마자 뿜었다.

흙 내음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흙이 씹히는 채소들. 겉만 살짝 익힌 돼지고기에 한가득 박혀있는 차가운 비계 덩어리. 탱탱하기는커녕 팅팅 분 면.

심지어 이것들은 간도 하나도 안 되어있었다. 재료 본연의 맛들이 무척 강하게 올라와 어우러지지 않고 입 속에서 따로 놀았다.

“아니, 씹…”

이딴 걸 먹으라고 내놓은 건가?

너무 화가 난 그리드가 반사적으로 욕설을 지껄이다가 멈췄다.

눈앞에, 조금 전 자신이 뱉은 잡채의 잔해를 얼굴에 가득 묻히고 있는 이단이 슬그머니 눈웃음을 보내오고 있었던 까닭이다.

“뱉는 걸 보니 입에 맞질 않나 보군?”

“아뇨? 참 맛있는데요. 맛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란 탓에 저도 모르게 조금 뱉어냈네요.”

조금만 참자.

이를 악 문 그리드가 코를 막았다. 그리고 잡채 한 접시를 입속에 한꺼번에 쑤셔 넣었다.

우물우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잡채를 씹어 삼키는 그리드에게 이단이 물었다.

“왜 코를 막고 먹는 겐가?”

“제 식습관입니다.”

“허, 그래? 특이한 식습관이군.”

‘네 요리가 더 특이…’

그리드가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간신히 참아내는 그때였다.

[이단의 요리를 섭취한 효과로 지력 능력치가 1 영구적으로 올랐습니다.]

“아…!”

이단은 역시 꼭 필요한 인재임을 되새기는 순간, 기쁨보다 슬픔이 더 커지는 그리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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