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5권 - 13화
[최상급 마나 물약을 복용하였습니다.]
“에라이.”
레이단의 연금술 시설에서 생산되는 <극상급 마나 물약>.
그것을 복용할 수만 있었다면, 그리드는 단 하나의 물약으로도 마나 전부를 채웠을 것이다.
하지만 최상급 물약으로는 2분의 1을 약간 넘기는 정도의 마나밖에 못 채웠다.
‘라빗 녀석…’
동대륙으로 넘어오기 전.
그리드가 물약의 보급을 요청하였을 때 행정관 라빗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제작해놨던 물약은 전쟁에 참전한 템빨단원분들께 소량씩 보급하자 고갈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빌어먹을 연금술!
이야루그트에 <멋짐>이라는 옵션을 귀속시킨 전력이 있는 그 시설의 가치에 대해서 매번 의문이 생긴다.
레이단의 경제를 급속도로 회복시키고 성장시킨 라빗의 유일한 실태가 바로 연금술에 대한 집착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돈 먹는 하마 주제에 효용성이라고는 거의 없으니, 원.’
하지만 연금술 시설의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아이템에 귀속 시킬 수 있는 옵션의 종류가 늘어나고, 또한 먼 훗날에는 강화석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일 또한 가능해진다고 한다.
여태까지 연금술에 쏟아 부운 골드만 해도 무려 수천 만 단위에 달하는 시점.
이제 와서 연금술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언젠가는 쓸모가 생기리라고 희망을 품어보는 수밖에 없다.
“뮤아앙! 남편의 원수웃!!”
분노한 여왕 쥐의 발 빠른 추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드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달렸지만 여왕 쥐와의 거리는 점차 좁혀질 뿐이었다.
상념을 털어낸 그리드가 갓 핸드를 소환했다.
“내가 나설 때까지 시간을 벌어라.”
천막마다 함께 있던 햄스터 부부들의 레벨 차이는 대략 20이였다.
암컷 쥐가 수컷 쥐보다 레벨이 20가량씩 높았다.
이를 토대로 여왕 쥐의 레벨은 최소 420이상이라고 추측한 그리드는 여왕 쥐와 정면으로 맞붙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 막 새롭게 습득한 알람 마법을 활용해서 자신에게 보다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전투에 임할 계획이었다.
쿵!
쿵쿵!
그리드보다 족히 머리 2개는 더 큰 여왕 쥐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흔들리는 대지.
그리드의 손목보다 발목이 얇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이런 체중을 실는지 모르겠다.
‘괴물 같은 놈!’
휘청, 자칫하면 자빠질 뻔한 그리드가 갓 핸드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우선은 <궁극 강화의 묠니르>를 무장한 대장 갓 핸드가 여왕 쥐에게 선공을 날렸다.
무한 경직의 전조였다.
100퍼센트 명중률을 자랑하는 궁극 강화의 묠니르가 여왕 쥐의 커다란 머리통을 힘껏 후려쳤다.
퍼억-!
[궁극 강화의 묠니르가 대상을 0.15초 동안 경직을 겁니다.]
‘뭣…!’
본래 궁극 강화의 묠니르는 대상을 0.3초 동안 경직시킨다.
한데 0.15초라니?
‘상태이상의 효과를 확정적으로 50퍼센트 절감시키는 건가? 아니면 레벨 차이 때문에?’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지는 동안.
발 빠르게 경직에서 회복 된 여왕 쥐가 뒤따라 묠니르를 휘두르는 다른 갓 핸드들의 공격은 모조리 삼지창으로 막아버렸다.
그리고 붉은 눈을 번뜩이면서 대장 갓 핸드를 때렸다.
[갓 핸드(1)이 강력한 충격을 받고 경직에 걸립니다.]
‘빌어먹을!’
0.15초는 짧아도 너무 짧다.
다른 갓 핸드들의 연계가 들어가기 전에 회복해버리는 여왕 쥐에게 무한 경직을 건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보였다.
“뮤아아앙!!”
갓 핸드들을 모조리 후려쳐 경직시킨 여왕 쥐가 그리드에게 삼지창을 투척했다.
쿠와아아아아앙!!
마치 전투기가 날아오는 듯한 기세다.
대기를 격동시키며 쏘아지는 삼지창의 속도와 위세는 어마무시했다.
그리드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파그마의 검무.”
다음 물약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벌기 위해 도망치는 동안.
알람 마법을 어떻게 활용해야 저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그리드다.
활성화 된 상태의 두뇌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곧바로 지상최고의 반격기, 회(回)를 사용해서 대처하는데 성공했다.
쩌어어어어어엉!!
선회하는 검광과 삼지창이 맞부딪쳤고,
푸우우우욱!!
[대상에게 190,3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회(回)에 얻어맞은 삼지창이 날아왔던 그대로 되돌아가 여왕 쥐의 가슴에 찔렸다.
무려 20만에 육박하는 피해를 한 번에 입은 여왕쥐였으나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았다.
“뮤옹!”
가슴에 박힌 삼지창을 뽑아내더니, 더욱 더 기세를 올려 그리드를 뒤쫓으며 삼지창을 재차 투척했다.
여기서 그리드는 여왕 쥐의 특징 하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일정 수준의 거리를 벌리면 무조건 투척 공격을 하는 거군?’
미리 알고 있다면 대처하기 어렵지 않다.
쿠오오오오오!!
짐승처럼 포효하며 직면해오는 삼지창.
때마침 돌아온 마나 물약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확인한 그리드가 <흑화>와 <신속한 몸놀림>을 사용했다.
퍼엉!
삼지창에 꽂히기 직전, 그리드가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제자리에 남은 것은 너울거리는 흑색 마기의 잔해뿐이다.
“뮤옹?”
그리드를 찾아내고자 여왕 쥐가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게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리드는 자리를 이탈하는 순간 <투명 후드 짚업>을 착용, 모습을 감췄으니까.
제아무리 여왕 쥐라도 그리드를 찾아내기까지 수 초가량의 시간을 소요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드는 이 시간 안에 승기를 잡을 요량이었다.
“파그마의 검무.”
아무 것도 없던 공간에서 나타난 그리드가 검무를 펼친다.
그 위치, 여왕 쥐의 머리 위였다.
“뮤오옹!!”
갑자기 나타난 그리드의 위치를 뛰어난 청각과 감각으로 즉각 파악한 여왕 쥐!
녀석이 말도 안 되는 반응 속도를 보였다.
그리드의 극(極)을 피함과 동시에 반격의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여왕 쥐는 곧바로 공격하지 않고 찰나지간 망설였다.
이유는 갓 핸드에 있었다.
경직에서 풀린 갓 핸드들이 묠니르를 위시해서 여왕 쥐를 덮쳐오고 있었던 까닭이다.
‘인간을 죽이면 끝이다! 뮤옹!’
여왕 쥐는 판단도 빨랐다.
망설임은 잠시 뿐.
갓 핸드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내 남편을 죽인 원수 인간을 향해서 꼬리를 휘둘렀다.
퍼억!
마치 벌의 독침처럼 날카롭게 날아간 꼬리가 그리드의 안면에 직격했다.
그 대가로 여왕 쥐는 갓 핸드들의 묠니르 공격을 허용했고 총 0.3초 경직에 빠졌다.
이때.
스르륵.
꼬리에 강타당한 그리드가 소녀 랜디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바닥으로 추락하였고,
“파그마의 검무.”
‘진짜’ 그리드의 목소리가 경직에 빠져있는 여왕 쥐의 후방에서부터 울려왔다.
“…묘옹!”
가짜였다고?
깜짝 놀란 여왕 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햄스터와 꼭 닮은 모습으로 띠용! 하는 표정을 짓자 솔직히 귀여웠다.
하지만 그리드는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스킬을 끝까지 연계시켰다.
“연살(聯殺)!!”
“뮤아아아아앙!!”
늦었다.
0.3초의 경직도 너무 짧았다.
경직에서 풀린 여왕 쥐가 재차 연계되는 갓 핸드들의 다음 공격을 회피한 후 뒤를 돌았다.
자신을 공격하려는 인간 놈에게 도리어 반격하여 응분의 대가를 치루게 만들 계획이었다.
한데…
“뮤옹?”
여왕 쥐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조금 전, 바로 등 뒤에서 분명히 인간이 스킬을 사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었는데?
어찌된 것인지 뒤를 돌아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당황하는 여왕 쥐를 갓 핸드들이 재차 때렸고,
“연살파(聯殺派)!!”
하늘 위로부터 그리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렇다.
진짜 그리드는 하늘 위였다.
조금 전, 여왕 쥐의 등 뒤에서 울렸던 그리드의 목소리는 <알람> 마법에 녹음시킨 허상에 불과했다.
그리드는 새로운 마법을 습득하자마자 실전에서 제대로 응용하고 있던 것이다.
쿠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대지를 박살내는 검기의 폭격!!
“꺄하하하하하하항!!”
적중당한 여왕 쥐가 비명을 토하며 고통에 몸서리쳤다.
이틈에 갓 핸드는 계속해서 여왕 쥐를 공격하고 있었고 그리드 또한 계속해서 마나 물약을 복용하며 어떤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작업이란 바로 매직 미사일의 축적.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초당 1회 사용할 수 있는 3레벨의 <매직 미사일(강화)>를 그리드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소환, 알람 마법을 귀속 시켰다.
그 결과.
쿠오오오오오오오오…
지금, 하늘 위에 떠있는 그리드는 마치 태양처럼 찬란했다.
그의 주변에 백광의 마나 덩어리가 무려 20개나 맴돌고 있었으므로.
“파그마의 검무.”
“우웃…!”
이제 여왕 쥐는 그리드의 스킬 이름을 알아듣고 있었다.
검기의 폭격과 갓 핸드들의 묠니르 공세를 한 번에 얻어맞는 와중에도, 귓전에서 울려 퍼지는 그리드의 스킬 소리를 포착한 그녀가 대처에 나섰다.
큰 독 쥐를 이끄는 여왕의 특권, <품위 유지>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파아아앙!!
품위 유지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위협을 1회 무효화시키는 스킬로서 일족을 이끄는 몬스터 왕들 중 극소수가 보유한 유니크급 스킬이다.
그 효과는 절대적.
여왕 쥐로부터 쏟아져 나온 황금빛이 갓 핸드들을 뒤로 물려버렸고, 여왕 쥐가 걸려있던 짧은 경직을 해제시켜버렸다.
“뮤아아아아앙!!”
분노한 여왕 쥐가 바로 측면에서 들려온 그리드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손을 뻗었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내 남편의 원수를 잡아 죽이겠다는 집념이 깃든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여왕 쥐는 허탕만 치고 말았다.
진짜 그리드는 여전히 하늘 위였고, 그녀가 정신없이 공격당하는 와중에 들었던 그리드의 목소리는 알람 효과로 발생한 가짜였으니까.
“이 마법 개사기네. 그치?”
씨익!
하늘 위 그리드가 여왕 쥐를 조롱하듯이 웃었다.
이에 여왕 쥐의 분노가 더욱 더 치솟는 순간.
“어딜 보냐옹!”
여왕 쥐의 후방에서 갑자기 나타난 노에가 주둥이를 쩌억, 벌려서 여왕 쥐를 집어삼켜버렸다.
영혼 착취의 발동이었다.
가장 높은 스탯을 대량으로 빼앗긴 여왕 쥐가 급속도로 약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여왕 쥐의 위기가 여기서부터 본격화됐다.
“지고의 검.”
노에의 침에 축축이 젖어 볼품없어진 털과 함께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여왕 쥐.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의 눈앞에 악마가 서있었다.
백발의 노인 악마였다.
서걱-!
“뮤아아아아앙!!”
한때 대악마조차도 위협하였던 검.
더 이상 오를 곳 없이 높다 하여 ‘지고의 검’이라고 명명 된 검술이 여왕 쥐의 가슴을 크게 베었다.
이에 큰 데미지를 입은 여왕 쥐가 비명을 토하며 몸서리쳤고 하늘 위 그리드는 하강하며 그녀를 덮쳤다.
파그마의 검무, 극살(極殺)을 전개하는 그를 따라 50개의 매직 미사일이 한꺼번에 방출된다.
그리고…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지난 2년.
판게아 주민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몬스터 군락의 중심부가 초토화됐다.
이제 갓 동대륙에 넘어온 단 한 명의 사내가 만들어낸 파격적인 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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