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5권 - 10화
[큰 독 쥐를 해치웠습니다.]
[35,970,411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큰 독 쥐의 쓸개를 획득하였습니다.]
[큰 독 쥐의 가죽을 획득하였습니다.]
[수컷 큰 독 쥐를 해치웠습니다.]
[21,899,050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햄스터는 ‘시작의 마을 인근’에 서식하는 몬스터이다.
동대륙 먹이사슬 최하위층에 위치하는 존재일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한데도 주는 경험치가 어마무시했다.
암컷을 기준으로, 하급 뱀파이어보다 7배, 중급 뱀파이어보다 5배, 상급 뱀파이어보다 3배 이상이었다.
‘수컷만 따로 성별이 명시되어 있고 경험치도 적게 주는 걸 보면 모계 중심의 몬스터인가?’
사실, 수컷이 경험치를 적게 준다고 표현하는 것도 웃기다. 수컷만 해도 상급 뱀파이어보다 2배 이상의 경험치를 줬으니까.
‘그건 그렇고 정말 대단하네…’
그리드가 대략적으로 추측해 보건데, 크라우젤이 동대륙으로 넘어온 시점은 3차 전직 전이었다.
한데 이런 괴물 같은 몬스터를 한 마리씩, 천천히나마 사냥할 수 있었다고?
만약, 햄스터에게 은신과 중독, 그리고 혼란 스킬이 없었다면 ‘역시 크라우젤’이라며 단순히 감탄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햄스터가 아무리 강해봤자, 크라우젤의 피지컬이라면 어떻게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하지만 상태이상에는 어떻게 대처했던 거지?
해독 물약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10초고 혼란 회복 물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햄스터는 전투 내내 주둥이를 벌리고 악취를 풍김으로써 중독과 혼란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발시켰다.
‘때마침 크라우젤이 중독과 혼란에 저항하는 액세서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사냥이 가능했겠지만…’
당시에도 상태이상에 저항하는 액세서리가 풀렸을지는 의문이다.
‘설마, 그냥 코 막으면 되나??’
현실성 높은 Satisfy의 시스템을 고려해서 직접 코를 막아보는 그리드였다. 하지만 악취를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웁.”
헛구역질하면서 천막으로부터 벗어나는 그리드.
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지켜보던 브라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판게아의 요리사가 했던 말을 그새 잊은 게냐? 이곳에 몬스터 군락이 생긴 시점은 판게아가 침략을 당한 이후다.’
햄스터들은 판게아 침공 실패 후 패퇴하였다가 이곳에 정착한 몬스터 중 한 개체일 가능성이 높다.
‘태생은 마을 인근의 몬스터가 아니라 강력한 종족일 수도 있단 뜻이다. 큰 독 쥐가 동대륙에서 가장 약한 몬스터일 생각일랑 접어둬라.’
“음… 하긴.”
동대륙으로 진입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Satisfy 오픈 이래 거의 3년 동안 단 31명만이 동대륙을 찾아왔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서대륙보다 압도적인 상위 컨텐츠임은 확실하단 뜻이다.
하지만 Satisfy는 밸런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게임이다.
훗날, 동대륙과 서대륙의 교류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양대륙간의 격차가 메울 수 없이 커선 안 됐다.
‘맞아. 아무리 동대륙이 상위 컨텐츠라고는 해도 쥐돌이랑 쥐순이들이 가장 약한 몬스터일 리는 없어.’
만약 햄스터가 최하위 몬스터라고 가정한다면 동대륙 병사들도 최소 햄스터급의 강함을 간직했다는 뜻인데, 그건 말이 안 됐다.
“뭐가 어찌됐든, 나는 여기서 광렙이나 하면 되는 거잖아? 애초에 그러려고 온 거고.”
쓸데없이 복잡해질 필요 없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결정한 그리드가 전리품의 정보를 확인했다.
<큰 독 쥐의 쓸개>
독을 품은 쓸개입니다.
복용 시, 10분 동안 중독되어 온갖 상태이상에 걸립니다.
단, 중독 내성과 혼란 내성이 0.03퍼센트씩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무게:1
<큰 독 쥐의 가죽>
냄새나고 질긴 가죽입니다.
무슨 수를 써도 악취가 사라지지 않는 까닭에 실생활에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무게:30
“헐.”
그리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복용만으로 상태이상 저항률을 높여주는 아이템은 처음 본 까닭이다.
‘돈 많은 갑부라면 억만금을 투자해서라도 쓸개를 사재기해서 복용하겠네.’
상태이상 저항 패시브를 지닌 그리드에게 있어서 상태이상 저항률을 높여주는 아이템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전설이 아닌 자들.
무려 20억 명의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상태이상이란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제였다. 저항률을 높이는 것을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거 꽤 비싸게 팔 수 있겠군!’
현금으로 최소 백만 원대 가치는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리드는 쓸개를 굳이 경매장에 등록하겠다는 생각을 품지 않았다.
남들이 자신과 똑같이 점차 상태이상에 저항하게 된다면 무척 아니꼽고 배 아플 것 같아서였다.
‘모아다가 경매장에 올리지 말고 길드원들한테 팔아야지.’
그냥 공짜로 준다는 생각은 추호도 않는 그리드였다.
인벤토리를 닫은 그가 울타리 너머의 다른 천막으로 숨죽인 채 접근했다. 그리고 입구로부터 안을 들여다보니, 같은 짚단을 뒤집어 쓴 채 잠들어있는 햄스터 부부 한 쌍이 보였다.
“또 부부야…?”
어째 기분이 복잡미묘해진다.
‘설마 매번 부부를 사냥해야 되는 건가?’
이래서야 개쓰레기 가정파괴범밖에 더 되는가?
잠시 망설이던 그리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NPC를 넘어서 이제는 심지어 몬스터에게까지 감정이입해선 한도 끝도 없었다.
마음을 빠르게 다스린 그가 <+7검은 귀신>을 단도와 장도로 분리시켰다.
그리고 파그마의 검무, 초(超)를 사용한 후 단도를 연속적으로 휘둘렀다.
펑.
퍼퍼퍼퍼퍼퍼펑.
장검이나 대검으로 쏘는 초(超)의 검기는 강력하고 파괴적인 반면, 단도로 쏘는 초(超)의 검기는 작고 비교적 은밀했다.
그리드가 천막 안 햄스터 부부를 폭격해도 큰 소란이 발생하지 않았고, 덕분에 주변 천막 안에 잠들어있는 다른 햄스터들은 깨어나질 않았다.
“뮤오오옹! 아프다!”
“인간! 죽인다! 뮤옹!”
꿀맛 같은 낮잠을 즐기던 도중에 얻어맞은 햄스터 부부가 분노를 금치 못했다.
곳곳이 찢어져나간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보고 더욱 더 광분한 그들이 동시에 삼지창을 챙겨들더니 그리드를 덮쳤다.
물론, 그들의 공격은 그리드에게 닿지 못했다.
묠니르를 무장한 갓 핸드들이 그리드를 비호하였기 때문이다.
퍽!
퍽퍽퍽퍽퍽퍽퍽!!
“뮤옹! 뮤옹! 뮤옹!”
묠니르에 선타를 허용한 이상 답이 없다.
햄스터 부부가 나란히 무한 경직에 빠졌다.
황금 망치에 커다란 머리통을 좌로부터 한 방, 우로부터 한 방 번갈아 얻어맞으면서 급기야 생명력을 큰 폭으로 손실했다.
이번에도 역시 평타로 놈들을 마무리한 그리드가 대량의 경험치와 함께 쓸개를 얻었다.
“드롭 확률이 의외로 높은 건가?”
아니, 상태이상 저항률을 영구히 높여주는 비약의 드롭률이 높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리드는 다르게 해석했다.
“맞아, 드롭률이 높은 게 아니야. 이건 순전히 내 행운 스탯의 효과야!”
무려 16이나 달성한 행운 스탯!
그리드는 이에 큰 의의를 두고 있었으나, 사실 16이라는 스탯 수치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실제로 쥬드만 봐도 지력이 20인데 멍청이지 않은가?
16의 행운 스탯은 있으나마나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한없이 긍정적이었다.
평생 불행하게만 살아오다가 얻게 된 행운 스탯이었으니 그는 너무 각별하게 느껴졌다.
“사냥은 비교적 쉬워. 천막 안에 잠들어있는 놈들을 스킬로 선타 때리고 갓 핸드와 내가 평타로 마무리하면 부부 한 쌍 정도야 간단.”
천막과 천막 사이의 거리가 멀다는 점이 그리드를 돕고 있었다.
크게 소란을 피우지 않는 이상 위험할 일은 없어 보인다.
씨익, 만족의 미소를 피어 올린 그리드가 또 옆집 천막으로 이동해서 부부를 학살했다.
다음 천막에서도 부부를, 또 다음 천막에서도 부부를…
‘이런 빌어먹을.’
서로를 부둥켜안고서 죽어가는 햄스터 부부를 목도한 그리드가 치를 떨었다.
아무래도 사냥이 너무 찝찝했다.
이러다가 혹시 <부부 살육자>라는 칭호라도 얻었다간 사람들에게 인성을 의심당할 게 뻔할 뻔자였다.
브라함이 콧방귀 뀌었다.
‘한낱 미물에게까지 측은지심을 느끼는 게냐? 한심할 정도로 나약하구나.’
“아니, 이게 어쩔 수 없는 게 생긴 것만큼은 귀엽잖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도 같고. 그러니까 아무리 상대가 몬스터라도 찝찝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이면 부부가 사냥 대상인 이유를 모르겠다.
플레이어를 부부 학살자로 만들다니, Satisfy제작진 중에는 필시 사이코패스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좋아. 이걸로 외곽은 정리했다.”
아치형 천막이 500여개 늘어서있는 햄스터들의 군막.
그중 외곽부터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정리한 그리드가 군막의 조금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원형을 이루고 있는 군막의 특성상, 외곽보다는 중심부와 가까운 곳일수록 땅이 좁아졌고 천막과 천막간의 간격도 자연히 좁혀졌다.
자칫 잘못 공격했다가는 햄스터를 최소 4마리씩 상대해야할 정도였다.
“뭐, 나쁘진 않으려나.”
햄스터들의 경험치 드롭율은 진혈족 뱀파이어와 비슷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강함은 진혈족 뱀파이어보다 못했다.
물론, 진혈족 뱀파이어도 저마다 급이 다르긴 했지만 평균적으로 따져 봐도 그랬다.
진혈족 뱀파이어조차도 이제 여러 명 동시에 사냥할 수 있는 그리드에게 있어서 햄스터 따위 문제도 아닌 것이다.
“기왕이면 놈들의 낮잠 시간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숫자를 줄여놓는 게 더 좋기도 해. 자, 그럼 본격적으로 가볼까.”
스으윽.
그리드가 손짓하자 그의 등 뒤로 4개의 황금 손이 떠올랐다.
평소보다 최소 1.5배는 빨라진 마나 회복 속도를 만끽한 그리드가 갓 핸드들에게 명령했다.
“쏴라.”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우선 매직 미사일 폭격으로 햄스터들의 혼을 쏙 빼놓은 후.
타앗!
갓 핸드와 함께 돌진한 그리드가 햄스터들을 기습했다.
햄스터들은 방어, 혹은 반격을 시도했으나 전투에서 갓 핸드와 묠니르의 조합은 완벽하다.
“회(回)!!”
쩌저저저저저저저정!!
뱀파이어의 사냥터에서 갓 핸드와 함께 싸우면서 그리드는 보다 효율적인 전투방식을 터득해나갔었다.
적의 공격을 갓 핸드에게 방어시키기보다, 본인이 직접 대처한 후 그 틈에 갓 핸드가 묠니르를 보다 완전하게 휘두르게 만든다.
이후 경직되는 대상은?
“연살(聯殺).”
푸욱! 푹! 푹푹!!
확실하게 마무리 짓는다.
“좋아.”
2쌍의 부부… 아니, 4마리 햄스터를 여유 있게 해치운 그리드가 바닥에 떨어진 쓸개들을 줍는 도중이었다.
“…어?”
천막 한쪽.
현대인들의 눈에도 무척 익숙한 물건이 보인다.
그건 바로 프라이팬이었다.
당장 가서 그것의 정보를 확인한 그리드가 깜짝 놀랐다.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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