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342화 (337/1,794)

템빨 25권 - 9화

“마력 탐지.”

<마력 탐지(강화)>레벨 2의 캐스팅 대기 시간은 5초, 재사용 대기 시간은 8분대다.

1레벨 마력 탐지와 비교하면 상당히 단축된 것이다.

“마력 탐지.”

북문을 나선 이후.

몬스터 군락으로 향하는 길의 그리드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는 족족 마력 탐지를 사용했다. 브라함의 부츠 등에 귀속 된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옵션 덕분에 그리드는 약 5분 30초마다 마력 탐지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왜 반복해서 마력 탐지를 쓰는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함과 동시에 마력 탐지의 레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마력 탐지.”

동대륙이야말로 마력 탐지의 레벨을 올리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

본래, 마력 탐지는 회당 2천의 마나를 소모하는 마법으로써 자주 사용하기가 힘들었지만 동대륙의 환경은 마나의 회복량을 상승시켜준다.

스킬의 마나 소모율을 절반으로 줄이고 마나 회복량은 높여주는 <부조리의 반지>까지 보유한 그리드였기 때문에 동대륙에서 그는 마나가 넘친다고 표현해도 좋았다.

그가 예상하건데, 사냥 중에도 마력 탐지를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반지 정말 너무 좋단 말이지.”

흑요로부터 획득한 부조리의 반지.

어지간한 장비 아이템보다 훨씬 더 가치가 높은 효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기본적으로 액세서리란, 기본 능력치가 낮은 대신 특별한 옵션이 귀속되어있는 바.

부조리의 반지는 액세서리의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주지시켜주는, 액세서리의 정점 같은 아이템이었다.

‘나도 액세서리를 만들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물론, 단순히 ‘착용할 수 있는’ 액세서리 정도는 그리드도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액세서리의 존재 이유는?

심미안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장비 아이템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특별한 옵션들을 귀속시키기 위함이다.

그리드가 제작하는 액세서리는 완성도가 형편없이 낮아 예쁘지도 않았고 옵션도 귀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

만들어봤자 시간, 재료, 인력 낭비인 것이다.

마치 이단의 요리처럼.

“아우… 아직도 속이 느글거리네. 그 형편없는 요리사의 식당이 용케 망하지 않고 버티는 것도 신기하다.”

왜 안 망하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괜히 안 망할 리가 없는데. 설마, 요리에 맛과는 차별화되는 어떤 특별한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건가?’

몬스터에게 점령당한 이후로 쭉 정비되지 못한 북쪽의 대로.

잡초와 균열이 무성한 그 위태로운 길을 따라 이동하는 그리드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하다.

공략은커녕 기본적인 정보조차 하나 없는 미지의 땅.

여태까지와 달리 선두주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영역에 발을 들인 그리드는 새삼 실감 났다.

‘내가 앞서가고 있구나.’

늘 비교대상을 크라우젤에게 두고 있어서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크라우젤이 개척한 길을 뒤따라갈 뿐인 느낌.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리드 또한 크라우젤과 비견되는 선두주자였다.

‘그리고 머잖아 크라우젤도 앞서갈 수 있을 거고.’

동대륙을 방문했을 당시의 크라우젤보다 현재의 그리드가 훨씬 더 강하고 만능성을 갖췄다.

그리드는 크라우젤보다 반드시 앞서나갈 자신이 있었고, 이는 그에게 높은 긍지를 안겨주었다.

‘게임 나오고 1년 동안은 멀리서 랭커들을 구경만 하던 내가…’

지금은 누구보다 위를 향해가고 있다.

부러워하고 동경했던 존재들이 이제는 대부분 내 아래다.

‘밥 먹고 게임만한 보람이 있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위업을 남기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고, 현재 전 세계를 주도하는 문화가 바로 Satisfy다.

이곳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이 즉 세계 최고라는 의미다.

그리드는 감회에 젖었고 전율에 휩싸였다.

급기야 야호! 신나서 큰 소리로 외치며 뛰어다니기 시작하는 그리드였다.

동대륙.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플레이어는 없고 NPC만 즐비한 그곳에서 그리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마치 풍족한 무인도에 떨어진 기분!

이곳에서만큼은 템빨단 수장으로서의 체통도 내려놓고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 그리드는 게임이 훨씬 더 즐거웠다.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소나무 숲으로 달려가면서 헤헤헤! 하하하! 웃는 그의 모습은 마치 동네에 하나씩 꼭 있다는 광인 같았다.

‘하지만 놀랍군.’

갑자기 정신 줄을 놓고 발정난 개처럼 뛰어다니는 그리드.

처음에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지켜보던 브라함이 이내 감탄했다.

그리드가 겉으로는 바보 같이 행동하면서도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단 점을 엿본 것이다.

‘마음이 크게 들뜬 상태로도 방심은 없다?’

한 마디로 빈틈이 없다.

‘아직 한창 성장 중인 단계인지라 능력적으로 부족한 점은 많다지만, 전설로서 갖춰야할 최소한의 소양은 이미 충만하단 뜻.’

만약, 칠렐레 팔렐레하고 있는 현재의 그리드를 보고 누군가가 빈틈을 엿봤답시고 습격할 경우.

‘죽는다.’

브라함이 생각하는 동시였다.

저벅.

솔잎향이 가득한 소나무 숲에 그리드가 한 걸음 진입한 순간,

“캬오!!”

한 마리의 거대한 짐승이 포효하며 나타나 그리드를 덮쳤다.

그래, 짐승이었다.

몬스터가 아닌.

이 뒤에 자리 잡고 있는 몬스터의 군락으로부터 도망쳐 숲에 숨어 지내는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겨라!”

다가오는 사냥감을 숨죽인 채 기다리던 호랑이의 존재를 <마력 탐지(강화)>로 포착하고 있던 그리드다.

일말의 당황과 망설임도 없이 호랑이를 베어버리고, 정말로 가죽을 획득한 그가 주변을 살폈다.

“엄청 조용하네. 이 숲 바로 너머가 몬스터 군락이라는데도 어떻게 몬스터가 한 마리도 안 보이지?”

‘접근할 수 없는 거다. 너도 혹시라도 여기선 마기를 사용하지 마라.’

“아, 혹시 이것 때문인가?”

그리드가 숲에 진입한 순간 떠오른 알림창을 살폈다.

[상쾌하고 정순한 기운이 넘쳐나는 숲입니다. 마나와 생명력의 회복 속도가 20퍼센트 상승합니다.]

“군락에서 사냥하다가,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오면 이리로 피신하면 되겠군.”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다니, 너치고는 장족의 발전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한다면 제법 괜찮아지겠군.’

쓸데없이 거칠게 말하는 브라함이었으나 그리드는 이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브라함의 영혼으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에 악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고 호의와 감격만이 가득함을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리드도 한 성깔 하는 인물이다. 곱게 넘어가줄 생각은 없었다.

“쯧쯧, 하여튼 말본새 봐라. 하나밖에 없던 친구한테 배신당한 이유가 있었네.”

‘…’

브라함이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한테 배신당해 죽었던, 정말로 슬프고 뼈아픈 과거를 현재의 친구인 그리드에게 조롱거리로 삼아지자 굉장히 슬펐다.

하지만 전설의 대마법사가 고작 말 한 마디에 동요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는 애써 침착하고자 노력했다.

‘그, 그놈은 친구…도… 아…니었다.’

“…”

부들부들 떨리는 브라함의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음을 눈치 챈 그리드가 뒤늦게 미안함을 느꼈다.

민망하여 헛기침한 그가 빠르게 숲을 빠져나갔다.

소나무 숲은 규모가 매우 작았기 때문에 금방 벗어날 수 있었다.

숲을 벗어난 그의 시야로, 숲 뒤에 위치한 몬스터들의 군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강을 사이에 두고 아치형 천막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군락이었다.

천막의 숫자는 대략 500.

천막 하나당 2마리의 몬스터만 리젠 된다고 가정해도 무려 천 마리나 되는 숫자였다.

“천막 주변에 있는 생활도구들을 보면 꽤나 지능이 높은 몬스터들의 서식지 같은데? 리자드맨류인가?”

브라함의 의견을 구해보는 그리드였지만, 브라함은 말이 없었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전설의 대마법사로서 그는 본래 정신력이 무척 강했고, 또한 기본적인 성향이 잔혹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호감이 있는 대상에겐 한없이 나약했다.

브라함의 속도 모른 그리드가 쯧쯧, 혀를 찼다.

“언제까지 삐쳐있게? 애도 아니고, 나이도 수백 살이나 먹었다면서 뭘 그 정도로 삐쳐?”

사실, 그리드도 템빨단원들을 제외하면 친구가 없다.

친구를 사귀기에는 그의 성격이 썩 좋은 편도 아니었고 눈치도 없었으니까.

말인 즉, 그리드와 브라함은 끼리끼리 뭉친 것이다.

끝까지 말문을 닫고 있는 브라함을 계속해서 놀리면서, 그리드는 몬스터 군락의 특징들을 빠르게 파악해나갔다.

‘몬스터계의 전원주택 단지인가?’

군락에 자리 잡은 500여개의 천막들은 각각 50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있었고, 낮게나마 울타리를 둘러서 서로의 영역을 독립적으로 구분 짓고 있었다.

개인의 공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몬스터들인 것 같다.

‘사용하는 도구들을 보면 인간형 몬스터인 건 확실한데, 리자드 맨은 아니야. 놈들은 서로 살을 부대끼면서 사는 걸 좋아하니까.’

생활수준이 높고 독립성이 강한 인간형 몬스터라.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질 않자 혼란스러워하던 그리드가 도중에 깨달았다.

‘그래, 여긴 동대륙이다.’

서대륙에서의 상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분석해봤자 무의미하다.

‘직접 보고, 겪는 수밖에.’

스르륵.

그리드의 모습이 사라졌다.

<투명 후드 짚업>을 두른 것이다.

은밀히, 조심스럽게 이동하여 몬스터의 군락까지 도착한 그가 가장 가까이에 서있는 천막에 접근했다.

‘인기척이 없어?’

여기가 정말로 몬스터들의 군락이 맞는 걸까? 혹시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군락은 한없이 조용했다. 각 천막마다 생활흔적은 보였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전부 다 자리를 비운 건가?’

하지만 1천의 숫자가 대규모로 이동했다면 필시 흔적이 남아야한다.

‘설마…’

죄다 낮잠 타임이라도 되는 건지?

1천 마리 몬스터가 동시에 낮잠을 잔다니,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보면서, 더욱 더 숨을 죽인 그리드가 천막 안을 슬그머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쥐.

아니, 정확하게는 햄스터.

천막 안에는 사람보다 더 큰 햄스터 부부가 잠들어 있었다.

‘몬스터가 귀엽다고?’

아니, 귀여운 건 둘째 치고 기본 패시브로 은신을 보유한 몬스터 같다. 눈으로 보고 있어도 기척을 읽기 어렵다.

‘사기잖아?’

그리드가 당황하는 그때.

“뮤옹?”

킁킁, 햄스터 부부가 코를 벌렁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그리드가 서있는 자리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노려봤다.

“캬악!”

아가리를 크게 벌리는 햄스터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없이 귀엽던 놈들이 괴물 중의 괴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큭!”

햄스터의 커다란 주둥이 속에 가득 솟아있는 수백 개의 날카로운 이빨을 목도한 그리드가 아찔함을 느꼈다.

수백 개의 톱날 같은 이빨이 주둥이 속에 촘촘하게 박혀있는 모습.

소름 돋을 정도로 징그러웠고 또한 비위생적이었으니까.

“와! 브라함, 봤어? 저 쥐새끼들 이빨에 썩은 음식물 장난 아니게 끼여 있… 윽!”

얼굴을 찌푸린 그리드가 코를 막았다.

햄스터.

정확히는 <큰 독 쥐>라는 이름을 가진 몬스터가 주둥이를 벌린 순간 발산 된 악취가 그의 후각을 괴롭힌 까닭이었다.

단지 맡기만 해도 혼란과 중독을 유발할 정도로 끔찍한 악취였다.

전설의 패시브 효과 덕분에 상태이상에는 저항했지만 불쾌함은 상당하다.

“인간! 뮤옹! 죽인다! 뮤옹!”

침입자의 채취를 맡고 흥분한 큰 독 쥐들이 삼지창을 들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귀여운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동그랗고 검었던 눈동자는 붉게 물든 채 쫙 찢어졌고, 앙증맞게 튀어나와있던 앞니는 검정색 액체가 뚝뚝 떨어지는 독니로 변모해서 그리드를 위협했다.

‘빠르다!’

삼지창을 휘두르고, 찌르는 큰 독 쥐들의 공격속도는 최소 진혈족 뱀파이어와 동급이었다. 때때로 날아오는 꼬리 공격은 급소를 정확하게 찔렀다.

퍼엉!

햄스터에게 포착당한 순간 은신에서 풀리고 투명 망토대신 란스티어의 망토를 두른 그리드.

그가 조금 전까지 서있던 지면이 큰 독 쥐의 창에 강타 당하자 폭발하듯 무너진다.

주둥이를 벌리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에게 상태 이상 혼란과 중독을 유발하는 이 큰 독 쥐들, 거기에 빠르고 공격력까지 강한 것이다.

은신까지 보유한 점을 감안해봤을 때 이놈들은 서대륙에서 ‘고위종’이라고 평가받는 몬스터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에 그리드는?

당황하지 않고 도리어 크게 들떴다.

동대륙의 몬스터들이 강할 거란 사실은 이미 진즉부터 예상했던 일이고, 놈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높은 경험치를 준다는 뜻이었으니까 기쁠 뿐이다.

“살(殺)!!”

인간에게는 다소 큰 천막 안.

검무의 동작을 회피의 동작으로 활용, 햄스터들의 공격을 피해낸 그리드가 공격을 연계시켰다.

쩌엉-!!

하필이면 일렬로 위치한 타이밍에 살(殺)을 맞은 햄스터 부부가 동시에 타격을 입고 게거품을 물었다.

평타로 놈들을 마무리지은 그리드의 시야로 충격적인 알림창이 떠올랐다.

[큰 독 쥐를 해치웠습니다.]

[35,970,411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켁.”

어마어마하다.

기대를 아득히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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