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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39화 (334/1,794)

템빨 25권 - 6화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혼란에 휩싸여있는 그리드의 귓가로 브라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설의 불사 지속 시간은 단 5초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황금? 아니, 다이아몬드보다도 훨씬 더 귀중한 시간이다.

그리드는 이 한정적인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고맙다.”

브라함 덕분에 정신 차린 그리드가 즉시 행동에 나섰다. 그는 몇 가지 확인을 해볼 요량이었다.

‘우선.’

쩌정! 쩡!

그리드가 처음으로 한 일은 백린목의 잔해들을 칼로 찌르고, 베는 것이었다.

이 빌어먹을 나무가 줄기로부터 떨어져 나온 후에도 여전히 단단한지, 또는 폭발을 하는지 확인해볼 의도였다.

결과, 여전히 단단했고 폭발은 없었다.

‘죽었다고 표현하는 게 옳나? 불속에 던져 넣는다고 해서 폭발할 일은 없겠군.’

백린목이 아무리 단단해봤자 결국은 나무다.

불에 탄다는 가정을 붙일 경우, 장작으로 삼아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굳이 이 X같은 나무를 장작으로 쓰겠단 심보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뭔가 특별한 효과라도 있는 건가?

‘당연히 있겠지.’

무슨 효과일까?

‘조만간 알게 될 거다. 내가 직접 실험해볼 거니까.’

저벅.

그리드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중이었다.

멀쩡한 백린목을 찾아서 신속히 나아감과 동시에 살(殺)을 쏘았다.

쩌엉-!!

[<+9실패작>의 내구력이 6 하락합니다.]

[손목에 강한 통증을 느낍니다. 일시적으로 마비됩니다.]

[저항하였습니다.]

[불사 상태입니다. 생명력을 손실하지 않습니다.]

[백린목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칫, 살(殺)로도 안 되나.”

백린목의 방어력은 그리드에게도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단일 공격력 최강을 자랑하는 살(殺)로도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는 것은 즉, 방어무시 효과가 귀속 된 스킬이 아닌 이상 백린목을 베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과 같았다.

“그럼 이건 어때?”

서걱!

그리드가 이번엔 극(極)을 전개했다.

호선을 그리면서 떨어진 실패작이 백린목의 줄기를 가로질렀다.

[백린목에게 소폭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백린목이 불꽃을 토해냅니다!]

극살(極殺)과 비교하였을 때 극(極)의 공격력은 약한 편이다. 100퍼센트 방어무시가 아니라는 점이 크다.

극(極)은 백린목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고, 극(極)을 맞고도 백린목은 폭발하지 않았다. 가지 하나를 떨굴 뿐이다.

‘이게 차라리 낫…’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륵!!

그리드를 향해서 백린목이 불꽃을 토했다.

분출되는 광염의 열기가 풍경을 일그러뜨린다.

그리드를 덮치는 불꽃은 마치 범의 송곳니처럼 날카롭고 흉포했다.

하지만 불사 상태의 그리드는 무적이다.

불꽃에 휩쓸리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백열하는 화염 속에서, 그가 다소 평온해진 어투로 중얼거렸다.

“극(極)으로만 벌목하면 되겠어.”

극살(極殺)은 위력이 너무 강해서 안 된다.

백린목의 폭발은 반경 4미터를 잿더미로 만드는 위력을 발휘하는 바.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대처하기 어려웠다.

반면 극(極)에 맞은 백린목이 토해내는 불꽃은 범위가 한정적이었다.

<도살귀의 안대>와 <신속한 몸놀림>을 활용하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브라함이 물어왔다.

‘매직 미사일은 시험해보지 않는 거냐?’

불사의 지속 시간이 끝났다.

불꽃을 토해낸 후 다시금 잠잠해진 백린목으로부터 물러난 그리드가 반문했다.

“매직 미사일은 베는 게 아니라 관통하는 거잖아? 벌목에는 부적합하지 않나?”

‘가지를 조준하면 되지. 어차피 극(極)으로도 가지 하나를 베는 게 고작이라면, 매직 미사일을 위주로 사용해서 가지를 보다 빠르게 얻는 편이 좋지 않나?’

“하지만 내가 쏘는 매직 미사일은 약해.”

아무리 방어무시 효과가 붙어있다지만, 고작 매직 미사일로 백린목에게 흠집이나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투덜거릴 시간에 시험해보지 그래?’

“음…”

브라함의 의견을 수렴한 그리드가 백린목의 가장 얇은 가지를 찾아 매직 미사일을 발사했다.

펑!

“…”

역시나.

그리드의 매직 미사일은 백린목에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그리드가 입맛을 다셨다.

“쩝, 역시 극(極)밖에 없다.”

극(極)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현재 모든 효과를 다 합칠 경우 2분가량이다.

2분마다 가지 하나를 자를 수 있다는 뜻이다.

‘썩을, 나무 두 그루치 장작 패가려면 하루 종일 걸리겠네.’

경험치 12퍼센트 공으로 얻으려다가 도리어 시간만 낭비하게 생겼다. 이래서야 뱀파이어의 도시에서 사냥하는 것보다 효율이 못하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그리드가 잠시 고민했다.

‘차라리 동화를 쓸까?’

브라함의 마스터 레벨 매직 미사일이라면 비교적 빠르게 장작을 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썩 내키질 않는다.

천하에 둘 도 없는 전설의 대마법사님께 벌목을 부탁하였다가는 사달이 날 것이 뻔했으니까.

‘고작 이딴 일로 자신의 힘을 빌리는 거냐면서 지랄발광을 하겠지…’

사실, 그리드부터가 동화를 사용하는 건 내키질 않았다.

동대륙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강의 패를 바로 사용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리드, 네가 정 원한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다만? 딱히 네가 잘되길 바라서가 아니라 오래간만에 바깥 공기를 쐬고 싶… ’

브라함이 뭐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지만 그리드는 집중하느라 듣지 못했다.

“지금!”

극(極)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왔음을 확인한 그리드가 다시금 실패작을 휘둘렀다.

서걱!

화르르르륵!!

백린목의 가지가 썰려나감과 동시에 쏘아지는 화염.

그리드는 <도살귀의 안대>의 힘을 빌려서 경로를 읽었다. 하지만 불꽃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게 문제였다.

‘제길.’

완전히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리드가 결국 <신속한 몸놀림>까지 사용해서 간신히 불꽃으로부터 벗어났다.

“휴우…”

십년감수하면서 백린목의 가지를 줍는 그리드.

그가 갑자기 이를 악 물었다.

전설의 대장장이임과 동시에 일국의 공작인 자신이 고작 장작이나 패면서 이딴 개고생을 하다니, 생각해보니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흐르려고 했다.

“염병, 퀘스트 하나 잘못 받았다가 완전히 꼬여버렸네. 그 화이튼지 블랙인지 뭔지 하는 흑인놈 완전히 사기꾼… 어? 가만.”

그리드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하얀 망치의 대장장이들은 철은 철 망치로, 미스릴은 미스릴 망치로 단련했었지?’

여기서 불현듯이 떠오르는 것.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를 가공하기 위해서는 같은 다이아몬드가 필요하다.

다이아몬드를 부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많지만, 깎을 수 있는 것은 같은 다이아몬드밖에 없었으므로.

‘어쩌면 백린목도…’

쉽게 파괴되지 않는 성질을 지닌 백린목.

같은 성질을 지닌 백린목으로 벤다면, 다이아몬드와 비슷한 이치로 벨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자 그리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힘들게 모은 백린목 가지와 줄기의 잔해들을 주섬주섬, 모조리 챙긴 뒤 대장장이의 관점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단조와 단련은 충분히 가능해. 하지만 정련은? 애초에 그 과정은 필요가 없나?’

그리드는 궁리하고 또 궁리해봤다. 더 큰 성장을 꿈꾸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초조해하지 않고 집중했다.

그리고 한참 후.

“…좋아, 어디 한 번 시도해보자.”

만면에 미소를 피어올린 그리드가 <제작법>의 <도끼> 카테고리로 들어갔다.

그가 꺼낸 도안은 <벌목용 도끼>였다.

<벌목용 도끼>

등급:노말~레전드리

나무를 베기에 최적화 된 구조를 가졌습니다.

경력 꽤 있는 나무꾼이라면 누구나 갖기를 꿈꾸는 도끼입니다.

사용 조건:나무꾼. 레벨 100 이상. 초급 벌목 기술 레벨 7.

이제는 자존심 문제다.

전설의 대장장이인 내가 고작 장작 패기에 좌절할 순 없다.

의욕을 불태우면서 휴대용 용광로를 꺼내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조언해주었다.

‘네가 무얼 하든, 되도록이면 템빨골들은 늘 소환해두도록 해라.’

“그 녀석들은 왜?”

‘너를 관찰함으로서 새로운 스킬이나 마법을 습득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드가 깜짝 놀랐다.

“엥? 해골이라는 게 원래 학습능력도 있는 거야?”

네크로맨서야말로 진정한 사기캐라는 뜻인가?

오해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설명해주었다.

‘아니, 일반적인 해골에게는 당연히 학습 능력이 없다. 하지만 템빨골에게는 지능이 있지 않느냐? 고유 개체로 인정받기 때문에 소멸하더라도 나중에 또 다시 소환할 수도 있고. 마치 데스나이트와 리치처럼 말이다.’

“지능이라고 해봤자 한 자릿순데…”

‘뭐, 시도나 해보라 이거다. 어쩌면 저급한 수준의 마법이나 스킬이나마 학습할 수 있지 않겠느냐.’

“흐음… 그래,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고 네 말대로 해야겠다. 템빨골들이 쓰레기 같은 스킬이라도 익히면 상황에 따라서 쓸모가 생길 수도 있을 테니까.”

그리드는 간과하는 부분이지만, 브라함은 세상 대부분의 힘을 저급한 것이라고 치부하는 존재다.

***

“제기랄! 역시 이대로는 안 돼! 더욱 더 강한 화력이 필요하다!!”

하얀 망치 대장간.

화이트와 9명의 대장장이들이 초조해하고 있었다.

판게아의 위대한 영주 한속봉이 매해 개최하는 대장간 승부 대회.

이곳에서 올해는 반드시 우승함으로써 향후 1년 동안 영주군에 무구를 납품하는 것이 하얀 망치 대장간의 목표였지만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하얀 망치의 대장장이들이 만든 무구는 다른 4대 대장간의 대장장이들이 만든 무구보다 수준이 다소 뒤떨어졌다.

“완성품의 상태를 보아하니 올해도 우승은 물 건너갔군요…”

“스승님이 돌아가신 후로 5년 내내 우승을 못 하네요…”

하얀 망치 대장장이들의 스승은 화이트의 아버지, 더화이트였다.

5년 전 그가 명을 달리한 후로 하얀 망치 대장간은 쭉 하락세다.

‘하얀 망치는 4대 대장간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지껄이는 사람들까지 슬슬 나타나는 실정이었다.

화이트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화이트는 치가 떨렸다.

‘다 내 탓이다. 아버지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풀무질을 등한시한 까닭에 이 모양이야.’

화이트는 대장일의 백미가 단조질이라고 믿었다. 하얀 망치의 후계자답게 망치질 단련에만 쭉 힘써왔고 풀무질은 다소 등한시한 경향이 있었다.

화염의 온도가 단 1도만 차이나도 무구의 성능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는 사실을, 아직 젊은 시절의 그는 잘 몰랐던 것이다.

“불꽃을 더… 조금만이라도 더 뜨겁게 만들 수 있다면…”

고개를 숙인 채 염원하는 화이트와 대장장이들.

그들에게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작 배달 왔다.”

“장작?”

화이트를 제외한 대장장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사용할 장작은 이미 새벽에 들여놨잖아? 근데 뭔 배달?”

애초에, 장작 배달왔다고 말하면서 등장한 흑발의 청년은 낯선 인물이었다.

평소에 거래하는 나무꾼이 아니다.

대장장이들이 청년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그때.

“장작을… 구해왔다고?”

화이트는 마누라가 바람났을 때보다 더 당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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