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5권 - 2화
로드가 갓 태어났던 무렵의 그리드와 현재의 그리드는 격이 다른 존재다.
번헨 열도에서 연마한 컨트롤 실력과 스탯, 국가대항전에서 쌓은 경험, 레이드와 제작을 토대로 강화한 템빨, 뱀파이어의 도시에서 올린 레벨.
꾸준히 진보해온 그리드가 모든 스탯과 칭호, 그리고 아이템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순간 활성화되는 오감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천장 위 숨어있는 <그림자의 왕> 카심의 기척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정도로!
“마력 탐지!!”
파아앗-!
너무나도 미약한 기척인지라 확신할 수 없었던 그리드가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순간 전개 된 마나가 로드의 침실 전체를 샅샅이 훑었다.
천장 위 카심의 존재가 명확하게 포착되는 순간이었다.
“어떤 놈이 감히!”
내 아들의 침실에 숨어들었는가!
격노한 그리드가 <이야루그트>와 <검은 귀신>을 뽑아 천장을 갈랐다.
하지만 정작 대상을 베진 못했다.
‘피했다고?’
그리드가 깜짝 놀랐다.
천장 위 누군가의 반응속도가 소름 돋을 정도로 빠른 까닭이었다.
‘강한 놈이다!’
경계심이 짙어진다.
애초에, 템빨단원들에게 들키지 않고 로드의 방까지 숨어든 상대다.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제길!”
로드의 안전이 최우선!
잠들어있는 로드를 황급히 품에 안은 그리드가 천장 위 누군가를 향해서 파그마의 검무, 파(波)를 쏘았다.
천장 위 카심이 당황했다.
‘문답무용인가!’
최소한, 누구냐고 질문이라도 해주었다면 자신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공격부터 퍼붓고 있다. 자신을 적이라고 확신한 듯하다.
개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는 카심 또한 저항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 이동!’
스팟!
천장 전체를 덮쳐오는 검기의 파도를 피하고자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긴 카심.
이어서 무너지는 천장의 잔해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그림자를 타고 나타난 그의 눈앞으로 칠흑의 검이 쇄도해왔다.
어느덧 <도살귀의 안대>까지 착용하고 카심의 기척을 쫓은 그리드가 파그마의 검무, 살(殺)을 쏜 것이다.
카심이 질색했다.
‘몇 달 못 본 사이에 이만큼이나 성장하다니!’
쿠오오오오-!
들끓는 살의를 내포한 채 날아오는 찌르기!
피하려던 카심이 갓 핸드들의 측후면 습격을 포착했다.
‘피할 길을 모조리 차단했다고?’
누적 된 전투경험이 얼마나 많은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능숙한 솜씨다. 대충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망설이다가는 목숨이 날아갈 거라고 판단한 카심이 저항의 강도를 높였다.
“그림자 병사여!”
퍼퍼퍼퍼퍼퍼퍼펑!!
침실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그림자들이 카심의 외침에 반응했다.
일제히 몸을 일으키더니 크고 작은 병사의 형태를 갖췄고, 이어서 카심을 보호하는 장벽이 되었다.
이를 토대로 그리드의 살(殺)과 갓 핸드들의 공격을 방어한 카심이 표창을 던졌다.
그리드가 아닌 갓 핸드를 노리고 날린 표창이었다.
그가 표창을 던지자, 그에 반응한 그림자 병사들 또한 일제히 그림자 표창을 함께 던졌다.
정확히 67개였다.
터터터터터터터터터터터터텅!!
[갓 핸드(1)이 경직됩니다.]
[갓 핸드(2)가 경직됩니다.]
[갓 핸드(3)이 경직됩니다.]
[갓 핸드(4)가 경직됩니다.]
[갓 핸드(1)이 경직됩니다.]
[갓 핸드(2)가 경직됩니다.]
…
..
“미친!”
그리드가 경악했다.
터번으로 얼굴 전체를 꽁꽁 싸매고 있는 정체불명의 침입자, 믿기지 않는 그림자 활용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그림자를 이용해서 이동, 방어, 공격의 용도로 써먹었고 심지어 방어력과 공격력은 최상급이다.
국가대항전에서 만났던 그림자의 주인 <타르마>와는 비교불허의 실력자다.
이런 괴물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걸까?
의문에 휩싸이는 그리드의 뇌리에 문득 하나의 이름이 스쳐지나갔다.
‘그림자의 왕…!’
카심!
‘이 빌어먹을 새끼가 또 한 번 나를 노리는 건가!!’
그리드가 아직 윈스톤에서 활동하던 시절.
샤이라는 어쌔신에게 고용됐던 그림자의 왕 카심이 그리드의 목숨을 노렸던 바 있다. 후로이와 유페미나에게 저지당하고 도중에 물러나긴 했지만 말이다.
“노에! 랜디!”
상대를 카심이라고 확신한 그리드가 전력을 드러냈다.
카심은 네임드 NPC.
오래 전 만났을 때 이미 3차 전직을 했던 몸이니만큼 현재는 4차 전직을 이뤘을 터.
혼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으로 펫들을 소환, 방어태세를 취하게끔 만든 뒤 그리드 본인은 연살파(聯殺派)의 춤사위를 펼친다.
쿠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로드의 방 한쪽 벽면이 폭발하면서 레이단 성 전체가 뒤흔들렸다.
그리드의 궁극기라고도 할 수 있는 연살파(聯殺派)의 압도적인 위력이었다.
하지만 그림자를 유영하는 카심을 논타켓 스킬로 타격한다는 것은 무리가 컸다.
연살파(聯殺派)가 쏘아낸 여덟 줄기 검기가 만들어낸 그림자들을 순차적으로 타고 이동한 카심이 어느새 그리드의 후위를 장악했다.
“그리드 공작, 우선 진정하고 내 말을…”
카심이 그리드와 대화를 시도해보았으나.
“어딜!”
그리드의 모습을 복제한 랜디가 연(聯)으로 카심을 위협했고,
“캬옹!”
주둥이를 크게 벌린 노에는 카심을 집어삼키고자 시도했다.
이어서 묠니르를 무장한 갓 핸드들이 쇄도해왔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다는 생각에 카심이 결국 비장의 한 수를 사용했다.
그림자를 한 점으로 끌어 모아, 이를 통해서 주변의 모든 사물을 집어삼켜버리는 기술 <탐(貪)>의 발현이었다.
그림자 술법과 다루카의 술법, 거기에 란스티어의 술법까지 착안해서 창조한 카심의 고유 기술이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꺄아악!”
“니양! 무섭다옹!!”
랜디, 노에, 갓 핸드, 방 안의 가구들.
그리드 부자를 제외한 모든 것이 순식간에 그림자에게 집어삼켜진다.
마치 블랙홀 같았지만, 사실 우주의 힘과 비견될 정도의 기술은 아니다.
카심의 <탐>은 대상을 최대 3초밖에 삼키지 못하고 잠시 후면 뱉어낸다.
물론 이 3초라는 시간이 전투 중에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었지만.
“그리드 공작! 저는 적이 아닙니다!”
“적이 아니라면 뭐지?”
드디어 발언의 기회를 얻은 카심이 외치자 그리드가 반응을 보였다.
카심이 다급히 말했다.
“저는 당신의 우군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우군? 네가?”
그리드가 영문 모르겠단 표정을 짓는 그때였다.
“우우웅…”
며칠 동안 너무 고생한 바람에 깊은 잠에 빠졌던 로드.
전투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않던 그 아이가 드디어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카심이 있음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쓰승님!”
“스승?”
그리드의 어안이 벙벙해졌고,
“앗! 아빠마마앗!!”
본인이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음을 뒤늦게 깨달은 로드가 기뻐하며 그리드를 껴안았다.
마침 <탐>에서 뱉어진 노에가 신경질적으로 꼬리를 휘둘렀다.
“괜히 고생했다냥. 처음부터 대화로 해결하지 그랬냐냥…”
인간계에서 태어난 까닭일까.
전투와 살육을 즐기는 지옥제일마수 멤피스의 본능을 점차 상실해가는 노에였다.
평화주의 마수랄까.
***
“그런 사연이 있었군.”
긴 시간.
그리드는 카심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카심의 과거. 네로족의 멸망. 제국에 대한 원한. 도란과의 관계. 그리드를 관찰하게 된 계기. 관찰 과정에서 품게 된 생각. 아이린과 로드를 보호하며 종국에는 로드의 스승을 자처하게 된 이유 등등.
카심은 그리드에게 전부 낱낱이 고했다.
이에 대한 그리드의 감상은.
“감사한다.”
비록 첫 만남은 최악이었을지언정, 그것은 지난 이야기다.
카심이 아이린과 로드를 지켜준 것은 여러 정황상 사실이었고, 로드가 직접 증언해주기까지 했다.
이를 알고도 감사함을 느끼지 못할만큼 그리드는 파렴치한이 아니다.
정중하게, 깊이 고개를 숙여서 카심에게 감사를 표했다.
또한 그리드는 욕심을 품고 있었다.
현존 최강의 어쌔신이며 <란스티어의 술법>의 유일한 전인인 카심.
그리드는 그가 탐이났다. 반드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가질 수 있는 방법 또한 알고 있다.
숙였던 고개를 서서히 든 그리드가 카심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카심, 당신의 염원을 내가 이뤄주겠다. 그러니 오늘부터 정식으로 나를 섬겨라.”
어차피 사하란 제국과는 적대해야하는 입장.
보다 더 큰 명예와 재물을 쟁취하기 위해서, 또한 피아로와 아스모펠을 위해서라도 제국을 멸하는 게 그리드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다.
단, 힘든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도전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내게서 가능성을 엿봤다고 했지? 그러니까 한 번 믿고 섬겨봐.”
카심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애초에 본인이 원하던 일이기도 했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곧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 카심이 서약했다.
“당신의 그림자가 되겠습니다.”
[<그림자의 왕> ‘카심’을 기사로 영입하였습니다!]
[‘카심’이 레이단 소속이 되었습니다!]
[매력 능력치가 100 오릅니다!]
‘좋아!’
이게 웬 떡인가 싶다.
전율한 그리드가 곧바로 카심에게 역할을 주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내 가족들을 지켜주길 바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쌔신의 육성에 힘써주면 좋겠군. 가능할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은룡대 출신의 어쌔신을 몇 명 거느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은 다루카의 술법을 습득하고 있으니만큼 어쌔신 육성은 그들에게 부탁해도 충분한 성과를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족한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부터 당신의 직책은 템빨 그림자단 단장이다.”
“…예.”
템빨이라는 게 당최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어감만 보아서는 썩 멋지진 않다.
카심은 떨떠름했지만 어쌔신이 주군의 명을 어길 순 없는 법.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그리드가 <대영주의 검>으로 관찰했다.
이름:카심
나이:36세 성별:남
직업:템빨 그림자단 단장
칭호:네로족의 마지막 생존자
*네로족은 피부가 검어 어둠과 동화되기 쉽습니다. 네로족의 유일한 생존자인 카심은 <은신>사용 시 큰 보너스 효과를 얻습니다. 단, 너무 긴 팔 탓에 일부 체술의 위력이 떨어집니다.
칭호:그림자의 왕
*<그림자 술법>의 효과와 위력이 극대화됩니다.
칭호:란스티어의 제자
*<란스티어의 술법> 이론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단, 직접 연마할 정도의 재능은 없습니다.
레벨:401
근력:2,107 체력:1,158
민첩성:4,409 지력:933
끈기:3,550
스킬:<함정 설치(A)>, <다루카의 술법(A+)>, <진화한 체술(A)>, <진화한 검술(A)>, <진화한 투척술(S)>, <진화한 암살(S)>, <네로족 은신술(S)>, <궁극의 그림자 술법(S+)>, <란스티어의 술법 지식(SS)>
특수 스탯의 개방이 <끈기> 하나밖에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쉽지만, 그 유일한 특수 스탯인 끈기의 수치가 비상식적으로 높다. 노가다를 밥먹듯이 해온 그리드의 끈기보다 훨씬 더 높았으니 말 다했다.
어떤 임무를 수행하게 될지언정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높은 근력과 민첩성을 보아 진정한 실력을 발휘할 때의 전투능력은 최대 아스모펠급으로 추정됐다.
‘대량의 그림자가 형성되는 장소에서는 피아로급일 수도.’
그리드는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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