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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33화 (328/1,794)

템빨 24권 - 23화

보르네오군을 몰살시키고 파트리안을 흡수한 이후.

그대로 보르네오까지 진격하여 장악한 라우엘이 에트날 왕국의 지도를 펼쳤다.

“파트리안과 보르네오를 점령함으로서 서부와 북부를 완전히 잇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북부에서 생산되는 자원을 원동력으로 삼아서 제국의 침략은 레이단을 거점으로, 에트날의 침략은 파트리안을 거점으로, 가우스의 침략은 보르네오를 거점으로 방어합니다.”

레이단, 파트리안, 보르네오 삼각 방위지대의 형성에 성공했다.

병력을 분산시켜야한다는 단점이 생겼지만, 후방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게 엄청난 이점이다.

‘현 시국을 봤을 때 향후 2년은 버틸 수 있을 공산이 크다. 버티다보면 역공을 노려볼 수도 있고.’

하지만 문제는 에트날 남해에 동떨어져있는 코크로 섬이었다. 보호가 불가능하다.

라우엘이 뼈아픈 결정을 내렸다.

“…코크로 섬은 포기합니다. 그곳에 상주 중인 템빨단원 전원을 레이단으로 귀환시키세요.”

극검이 강력히 반발했다.

“코크로 섬은 은기사 길드가 사투 끝에 쟁취했던 영토다!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꼴은 못 봐!!”

토반도 조심스럽게 동조했다.

“코크로 섬은 관광지로서의 수익이 높고 무려 23개나 되는 광산을 보유하고 있잖아. 우리의 영토 중에서 가치가 가장 높은 곳인데 순순히 포기한다는 건 많이 아쉽군.”

라우엘은 냉정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코크로 섬까지 자원이나 병력을 보급하는 건 불가능한데요.”

금싸라기 땅을 포기해야한다는 것은 라우엘 또한 아쉬웠다. 자꾸만 미련이 남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판단해야하는 입장이다.

극검처럼 감정적으로 나서서도 안 됐고, 토반처럼 해결책도 없이 의견만 피력할 수도 없었다.

라우엘에게는 그리드 대행으로서의 지고한 책임이 있었다.

“코크로 섬 자력으로는 에트날의 공세에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괜히 집착하면서 심력을 쏟다가 손해를 보느니 순순히 포기함이 옳죠.”

냉정하게 판단하는 라우엘에게 극검이 거수했다.

“내가 코크로 섬으로 가겠다. 그리고 단 하루라도 더 지켜 보이겠다. 대신 은기사 출신 길드원 10명만 차출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줘. 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는 있다만, 그래도 좀 부탁하자. 결과적으로는 이득이 되게끔 만들어 보일 테니까.”

“…”

극검의 실력은 템빨단 내에서도 최상위다.

국가대항전에서는 비록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지만, 그건 극검의 클래스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단순 전투능력만 놓고 보면 레가스, 폰 바로 아래였고 통솔력은 그들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분명, 당신과 은기사 출신의 정예들이라면 코크로 섬의 점령 기간을 연장시킬 수도 있겠죠.”

고작 두 달 정도 버티는 게 한계일 지언정.

그 두 달 동안 벌어들이는 자원과 세금을 템빨단으로 무사히 가져올 수만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는 게 라우엘의 생각이었다.

“극검이여, 코크로 섬에는 3차 전직자가 사냥할만한 레벨대의 몬스터가 없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기간 동안 당신의 성장은 정체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당신과 템빨단 전력에 큰 손실로 작용할 터. 그렇기에 저는 당신을 보낼 수 없…”

“아니, 굳이 사냥하지 않더라도 성장할 방법은 있어.”

라우엘의 말을 도중에 자른 극검이 극괭이. 아니, 곡괭이를 꺼내보였다.

“비전시 상태일 때는 광산에만 틀어박혀있겠다.”

꾸준히 노가다를 하다보면 채광 스킬이 오를 뿐만 아니라 스탯도 오른다. 조금씩이나마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덩달아 광석까지 얻었으니 1석 3조였다.

“왜놈들로부터 간신히 지켜냈던 코크로 섬은 내게 있어서 각별한 영토야. 생긴 것부터가 독도랑 닮았다고. 그러니까 라우엘, 부디 나를 코크로 섬으로 보내다오. 내가 최대한 오랫동안 지켜 보이겠다.”

몇 번이고 목숨을 바칠 각오도 되어있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아니, 어쩌면 세 달, 네 달 동안 코크로 섬을 수호함으로서 템빨단의 자금을 확보해주리라.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다짐하는 극검에게 라우엘이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당신의 고집은 그리드님의 고집과 비견되니 저로서는 꺾을 엄두가 안 나네요.”

한국인들은 죄다 이런 건가 싶다.

생각해본 라우엘이 피식 웃었다.

적을 대면할 때 표출되는 광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상냥한 미소가 그의 얼굴 전체에 번져나갔다.

“극검, 당신을 믿겠습니다.”

라우엘은 개인적으로 극검을 좋아했다.

뜯어말릴 수 없는 고집과 템빨단을 위하는 숭고한 마음이 긍정적인 조화를 이루는 유형의 인물로써, 그리드와 꼭 닮아있었으니까.

“코크로 섬을 최대한 오랫동안 지켜주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부탁하는 라우엘에게 극검이 자신해보였다.

“버티고, 또 버티면서 자원을 모아 모조리 길드 창고로 갖고 오마.”

극검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날 바로 보르네오를 떠나 코크로 섬으로 향했다.

은기사 출신의 엘리트 10명과 함께.

그들의 인벤토리 구석에는 하나 같이 곡괭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후.

레이단, 파트리안, 보르네오 3개의 영지에 템빨단원들을 분산 배치시킨 라우엘이 그들에게 최우선 과제가 무엇인지 주지시켰다.

“늘 전쟁에 대비한다는 마음으로 무조건 레벨 업에만 열중하세요. 그동안 각자 모아놓은 재산을 모조리 물약 값으로 지출하겠다는 각오로 사냥만 반복하시면 됩니다.”

라우엘은 레이단에 자리를 잡았다.

그 본인은 아이린 공작부인과 로드 공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던 것이다.

***

“드디어 시작되는가.”

그림자의 왕, 카심.

로드가 태어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곁을 지키며 스승 <란스티어>의 술법을 전수해줬던 그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단이 사하란 제국과 적대하게 되었단 소식을 접한 까닭이다.

전쟁에 대비하여 분주히 움직이는 레이단의 백성들과 병사들을 보면서 그가 읊조렸다.

“두려워마라. 나의 그림자가 그대들을 비호할지니.”

제국의 손에 의해 멸망한 네로족.

네로족의 마지막 생존자인 카심의 제국에 대한 증오심은 여전히 굉장한 것이었다.

복수에의 열망과 함께 살기를 피워 올리는 그에게 로드가 다가와 말했다.

“쓰승님, 씽호흡하세요. 어쌔신은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하는 고에요.”

“허… 허허, 그래. 내 아직 부족하여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구나.”

하루가 멀다하고 성장하는 로드를 보고 감격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카심이었다.

스르륵.

카심이 다시금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때.

“로드 공자, 공부하실 시간입니다.”

현자 스틱세이가 로드를 방문했다.

로드가 영 달갑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도 대악마에 대해서 공부하는 곤가요?”

“예, 대악마는 지상 모든 종족의 적. 훗날 수많은 인간들의 위에 군림하게 될 당신께서 대악마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습득해 놓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도리지요.”

“우웅… 대악마 싫은데.”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카심에게 감정을 잘 다스리라고 조언했던 로드가 본인의 감정은 잘 다스리지 못했다.

입을 비죽 내밀고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아무리 대륙급 천재라도 아직 채 4살이 안 된 어린애였으니 감정을 완전히 제어할 순 없는 것이었다.

“대악마 이야기 싫어요. 너무 무서워요. 그러니까 우리 다른 공부해요. 네~? 쓰승님?”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서 초롱초롱,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오는 로드.

어머니와 아버지의 장점만을 빼닮은 외모를 지닌 아이가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자 스틱세이는 심장에 격한 통증을 느꼈다.

‘으윽… 너무 귀여워서 자극이 심하다.’

제대로 하트 어택 당한 탓에 자칫하면 죽을 뻔했다.

헉헉, 심장병을 원망하며 거친 호흡을 뱉은 스틱세이가 진정하고 로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로드 공자, 싫기 때문에 배워야하는 겁니다.”

“…”

다소 철학적인 말.

그리드라면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테지만, 한창 어린 그의 아들 로드는 대번에 이해했다.

마음을 가다듬더니 곧 이어 시작되는 스틱세이의 강의에 집중했다.

[새로운 지식을 얻었습니다. 일부 하급 마족의 약점을 간파하는 능력을 획득합니다.]

[새로운 지식을 얻었습니다. 암흑 마법 회피, 방어율이 상승합니다.]

현자의 방대한 지식이 로드에게 차츰 계승된다.

하나를 가르치면 스물을 깨우치는 제자와, 가르칠 수 있는 지식이 무한대에 가까운 스승의 결합이 위대한 결과를 낳고 있었다.

***

“어째서 OGC 방송 중계까지 버니버니가 하게 된 거야?”

“박신예는 갑자기 어디 갔지?”

광고 타임이 끝난 후.

그리드의 사냥 방송이 재개되자 시청자들이 당황했다.

OGC의 간판 아나운서 박신예가 예고도 없이 증발한 까닭이었다.

광고가 흘러나오던 10분 동안에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청자들이 의문에 휩싸였고, 박신예 아나운서는 자신만만했다.

‘그리드, 당신은 내 인기가 얼마나 많은 줄 모르죠?’

OGC를 대표하는 아나운서로서 무수한 팬을 확보하고 있는 나를 죽도록 방치하다니, 내 팬들이 이 진실을 밝혀낸 후 그리드를 비난하리라.

확신하며 그리드의 인지도 하락을 기대하는 박신예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드디어, 뱀파이어 도시의 최종보스가 등장하였으므로.

사람들의 모든 관심이 보스와 그리드에게로 집중됐다.

애초에 박신예라는 존재는 그리드 앞에서 한없이 미약했던 것이다.

『크크큭! 이 몸은 위대한 진혈족! 뱀파이어 자작 스테크님이시다!!』

혈빛의 마기를 너울거리면서 강림하는 뱀파이어.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좌중을 압도하며 칠흑의 삼지창을 투척하는 그의 포스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끝판 왕의 위엄이랄까.

국가대항전에 등장했던 드레이크보다도 강해보였다.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혼자서 레이드하는 건 불가능한 대상 같았다.

하지만 그리드는 국가대항전 당시보다 훨씬 더 강해진 상태였고, 자작급 진혈족 뱀파이어는 겉으로 표출되는 위압감이 무색하게도 드레이크보다 약했다.

퍽! 퍽퍽퍽퍽퍽!!

“허어으억!!”

갓 핸드가 휘두르는 묠니르에 연속적으로 얻어맞고 무한 경직에 빠지는 스테크!

아무런 저항도 못하게 된 그에게 파그마의 검무를 연속적으로 날리고 잿빛으로 산화시킨 그리드가 시청자들에게 조언해주었다.

『준네임드 이하의 보스는 경직처럼 지속 시간이 짧은 CC기엔 저항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경직을 무한으로 걸은 다음에 레이드하면 간단하죠.』

“…”

아니, 그러니까 무한 경직을 무슨 수로 거냐고.

시청자들이 슬슬 열 받기 시작하는 그때.

그리드를 비롯한 버니버니와 OGC스태프들은 공략을 완료한 뱀파이어의 도시로부터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드의 사냥 방송이 종영되는 순간이었다.

317레벨을 달성한 그리드가 새로운 사냥터로 눈을 돌렸다.

‘동대륙.’

압도적인 레벨링 속도로 랭킹 1위를 고수했던 크라우젤의 발자취를 따를 계획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앞서는 게 목표다.

‘이제는 당신이 내 뒤를 쫓게끔 만들어주겠어.’

그리드의 의욕이 불타올랐다.

늘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그였기에 매너리즘에 빠질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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