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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30화 (325/1,794)

템빨 24권 - 20화

“이등병?”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던 노틸러스가 재차 물었다.

“네가 말단 병사라고?”

스스로를 아스라고 밝힌 병사.

깊이 눌러쓴 투구 탓에 두 눈만 내놓고 있는 그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잘못 들었…’

“나는 말단 병사가 아니라 일개 병사다.”

“이런 미친놈이 말장난을!!”

말단 병사이든, 일개 병사이든 그건 상관없다. 병사라는 자체가 문제다.

적기사단 내에서도 아홉 번째로 강한 이 나의 검을 막아놓고도 고작 병사임을 자처하다니?

41년 살면서 들은 개소리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나를 기만하는가! 네가 앞서 내 검을 두 번이나 멈춘 고수임을 알고 있다! 대결에 앞서서 진짜 정체를 밝혀라! 그게 예의다!!”

노발대발하면서 외친 노틸러스가 단도를 집어던졌다.

라우엘을 한동안 석상으로 만들어놨던 마비독이 묻은 단도였다.

단창으로 원을 그려서 막아낸 병사 아스. 아니, 아스모펠이 쯧, 혀를 찼다.

“암기를 다루는 주제에 예절을 논하는가? 철면피로군.”

아스모펠의 안목으로 봤을 때 로브의 사내는 필시 정식 기사였다. 그것도 사하란 제국 적기사단의 검술을 익힌 기사.

옛날이었다면, 적기사가 암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명예에 어긋나는 행위였으니까.

‘적기사단도 타락할 대로 타락했나.’

생각하며 안타까워하던 아스모펠이 문득 쓴 미소를 흘렸다.

‘하긴, 지금의 적기사단은 예전과 다르니까.’

황비 마리에게 누명을 쓴 전대 적기사단원들은 모조리 죽거나 뿔뿔이 흩어진 상태이다.

당대의 적기사단은 그저 이름만 같은 조직일 뿐, 완전히 새롭게 편성된 상태였고 성향도 달랐다.

‘마리…’

전우들과 그들의 가족을 모조리 멸살시키고 내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빌어먹을 여인!

‘그리드님께서 사하란 제국을 집어삼키는 그 날, 그대의 수급은 반드시 내가 취하도록 하겠… 헉.’

상념에 빠졌던 아스모펠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나는 일개 병사 아스다.’

일개 병사가 제국의 황비를 논해서야 안 어울린다. 세상 대부분의 평범한 병사들은 제국 황비의 얼굴과 이름조차 모를 테니까!

현재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심호흡하면서 마인드 컨트롤하는 아스모펠에게 노틸러스가 덤벼들었다.

“나를 앞에 두고 감히 딴 생각을 하다니!”

슈슉!

슈슈슉!!

2개씩의 점을 만들며 쏘아지는 노틸러스의 검.

Y자 칼날 끝이 매번 아스모펠의 심장과 목젖, 그리고 두 눈 등의 치명적인 급소만을 노린다.

발생하는 기파에 날아오른 모래알갱이들이 검기에 스칠 때마다 반으로 쪼개졌다.

‘대단한 실력이다.’

레가스와 폰, 그리고 페이커가 감탄을 거듭했다.

로브를 뒤집어 쓴 NPC의 레벨은 최소 400 이상으로 추정되는 바.

4차 전직자의 강함은 아직 3차 전직자에 불과한 템빨단원들에게 압도적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템빨단원들이 보고 놀라는 대상은 사실, 로브의 사내가 아니라 아군 병사였다.

‘이등병이 왜 저렇게 세?’

어째, 로브 사내보다 우리 이등병이 더 센 것 같다?

황당해서 할 말을 잃고 있던 레가스, 폰, 페이커 세 사내가 라우엘의 외침을 듣고 번뜩 정신 차렸다.

“언제까지 넋을 잃고 계실 작정입니까! 어서 길드원들을 도와서 보르네오군을 격살하세요!”

“그, 그래…”

현재 전장에서 가장 위협적으로 보이는 로브 사내는 우리군의 이등병님께서 잘 견제해주고 계시니, 우리는 안심하고 우리의 역할을 수행하면 될 것 같다.

“그래서, 저 이등병 대체 누군데?”

“아스라잖나.”

“그러니까 아스가 누구냐고.”

“나도 모른다.”

“그리드님이 또 어디서 주워온 네임드 NPC겠죠.”

“하여튼 그리드도 대단해.”

오해하면서 자리를 이탈하는 세 남자였다.

한편, 노틸러스와 아스모펠의 전투는 점차 더 심화되어가고 있었다.

채채채채채챙!

찌르기 위주의 쾌속 검술을 구사하는 노틸러스와, 범위가 넓은 창대를 방어용도로 활용함으로서 수비에 집중하는 아스모펠.

둘의 실력은 누가 봐도 호각이었다.

그렇기에 노틸러스는 분개했다.

“뭐냐…! 대체 네 정체가 뭐냔 말이냐!! 이따위 소국에 어찌 너 같은 고수가 숨어있는 거지!!”

“레이단의 이등병 아스다.”

“언제까지 개소리를 지껄일 셈이냐! 일개 병사가 너처럼 강할 수는 없는 법이다!! 순순히 정체를 밝혀라!!”

“아니, 레이단식 창술을 터득하면 어떤 일개 병사라도 나처럼 강해질 수 있다.”

레이단식 창술.

아스모펠이 피아로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끝에 만들어낸 창술이다.

사하란 황실에게 인정받은 극소수의 기사들에게만 전승되는 <황가창법>의 장점만을 모아 간결하게 확립시킨 창술로써, 레이단의 모든 병사들이 이 창술을 습득하고 있었다.

단, 습득 난이도가 꽤 높은 까닭에 상위 경지에 오른 병사는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아스모펠은 당연히 오의를 터득하고 있었지만.

“레이단식 창술 2식 종장. 용의 꼬리.”

퍼엉!

아스모펠이 단창을 종으로 휘두르자 폭음과도 같은 파공성이 노틸러스의 달팽이관을 흔들었다.

“뭣…!”

휘청거리는 와중에 간신히 아스모펠의 공격을 방어한 노틸러스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자신의 검과 맞물린 아스모펠의 단창이 거짓말처럼 휘어지더니 목덜미로 꽂혀온 까닭이다.

‘낭패…!’

푸욱!

“컥!”

목젖 바로 옆을 찔린 노틸러스가 각혈했다.

그 와중에도 두 수 앞을 예견, 아스모펠의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예측하고 반격해보았지만 아스모펠이 그를 가뿐히 회피했다.

“고작 두 수 앞을 보아서는 영원히 내 손바닥 안이다.”

“으윽.”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서 대륙 최강의 기사단이 어디냐고 물을 경우, 열이면 열 모두 적기사단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노틸러스는 그 적기사단원 중에서도 아홉 번째로 강하다.

노틸러스 스스로 자부하기로도 대륙에 자신보다 강한 사람은 30명 내외밖에 없었다.

한데 그중 하나가 레이단에서 병사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이등병 노릇을!!

“대체… 대체 왜 너 같은 자가…!”

큰일이다.

이대로 가다간 <솔로 넘버 나이트, 이등병에게 맞아 죽다>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생겼다. 막말로 개망신이다.

어떻게든지 도망쳐야한다고 판단한 노틸러스가 <오러 레이지>를 전개, 분노 깃든 오러를 사방으로 분출함으로서 아스모펠을 위협함과 동시에 일대에 모래폭풍을 일으켰다.

‘이 틈에 어서… 헉!’

아스모펠의 시야를 교란시켰다고 믿은 노틸러스가 도망치다가 멈췄다.

“적기사가 등을 보이다니 희한하군. 본래 강자란,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날 경우 더욱 더 투지를 불태우며 한계를 넘고자하는 본능을 지녔는데 말이야. 너는 사실 약잔가?”

빌어먹을 놈의 목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온다?

‘전 방위를 폭격하는 오러 레이지에서 어떻게 벗어난 거지?’

등줄기가 오싹해져서 몸서리치는 노틸러스에게 허공의 아스모펠이 창을 짧게, 여러 번 찔러 넣기 시작했다.

파팡!

파파파파파팡!!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열 번!

계속, 계속! 계속해서!

푸푸푸푸푸푸푸푸푹!!

“크어어억!! 제길!! 제기랄!!”

폭우처럼 쏟아지는 창의 찌르기에 대처하고자 발악하는 노틸러스였으나 아스모펠의 창격이 워낙에 빨랐다. 노틸러스의 저항을 모조리 무력화시키면서 지속적인 타격을 입혔다.

“레이단식 창술 3식 종장.”

쿠르르르르르르르르!!

노틸러스의 튼튼한 몸을 찌르고, 찌르고, 또 찌르고 있는 아스모펠의 단창에 차츰 금빛 오러가 맺혔다.

레이단식 창술의 극의, <사해 가르기>의 전조였다.

“금빛 오러…? 이런 말도 안 되느으으은!!!”

창날에 깃든 금빛 오러가 급기야 폭풍처럼 휘몰아치자 노틸러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혹시라도 자신의 정체가 노출될까 염려하여, 적기사의 상징이자 제국 기술의 정수인 <레드 아머>를 무장하지 않은 것이 이 순간 그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푸우우욱-!

금색으로 물든 창날이 노틸러스의 가슴을 반으로 쪼개버렸고,

“크아아아아아악!!”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노틸러스가 쓰러졌다.

그는 뒤늦게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 이자가 바로 대륙 제일 창…’

키리누스!

설마 그 괴물이 레이단에 병사로 숨어있었을 줄이야!

‘레드 아머만 무장했어도 내게도 승산이 있었을 텐데… 아쉽군…’

잿빛으로 산화하는 노틸러스.

그는 꿈에도 몰랐다.

아스모펠은 키리누스가 아닐뿐더러, 창술보다 검술실력이 훨씬 더 뛰어난 인물이라는 사실을.

***

“우와…”

“어, 엄청나다.”

평범한(?) 이등병이 적장을 물리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레이단군 병사들.

그들이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게 되었다.

우리 또한 레이단식 창술을 열심히 연마해나간다면, 언젠가는 저 이등병 아스처럼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의욕을 불태우는 레이단군 병사들의 사기가 창천을 꿰뚫을 듯이 높아졌으므로, 지금이야말로 적기라고 판단한 라우엘이 명령을 내렸다.

“전군! 이대로 돌진해서 보르네오군을 쳐라!! 그리고 이등병 아스는 지금 이 순간부로 병장으로 특진시키겠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누구도 막지 못했던 적장을 혼자서 해치워버린 아스에게 내려지는 포상치고는 얼핏 적어보였지만, 평민 출신 병사에게 3계급 특진은 파격적인 대우였다.

특히 병장부터는 오십인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승진하기가 비교적 쉬운 위치였다.

‘우리도 아스처럼 공을 세우자!’

의욕을 불태운 레이단군 병사들이 보르네오군을 덮쳤다.

잠시 후.

후방에 단 둘만이 남게 된 라우엘이 아스에게 속삭였다.

“설마 당신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스모펠님.”

“이등병 아스입니다.”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 노력하는 아스모펠이었지만 라우엘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후훗, 굳이 제게도 정체를 숨길 필요 없습니다. 당신께서 몸소 병사로 분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군요. 당신께서는 병사들에게 레이단식 창술의 강점을 주지시킴으로서 앞으로 병사들이 더욱 더 훌륭한 자세로 훈련에 임할 수 있게끔 유도하신 거지요? 언제나 늘 군사를 발전시킬 생각만 하다니… 과연 훌륭한 사령관이십니다. 당신은 마치 그리드님, 피아로님과 같아 마안을 지닌 저조차도 완전히 간파하기가 어렵군요. 큭큭.”

“…?”

멋대로 해석하는 라우엘이 아스모펠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부정하려다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다고 판단한 아스모펠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저는 이등병 아스입니다.”

“하하, 뭐,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종종 병사로 분하여 활동해주십시오. 아스 병장님.”

싱글벙글 웃는 라우엘에게 아스모펠이 재차 말했다.

“저는 이등병 아스입니다.”

“…이등병 패티쉬 있습니까?”

“병장부터는 오십장의 역할을 맡아야지 않습니까.”

일개 병사 체험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직책이다. 그렇기에 거절한다.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하는 아스모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우엘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재정 지출을 줄일 수 있겠군.’

이등병 녹봉과 병장 녹봉은 차이가 크다.

안 그래도 군사령관으로서의 녹봉과 템빨 마법기사단장으로서의 녹봉을 다 받아 챙기고 있는 아스모펠에게 병장 녹봉까지 지불하기엔 다소 아깝던 차다.

“좋습니다. ‘아스’일때의 당신은 이등병인 것으로 하지요.”

사하란 제국의 솔로 넘버 나이트.

레이단의 일개 병사에게 패배하여 죽다.

안타깝게도, 이 파격적인 소식은 조용히 묻혔다.

로브 사내 노틸러스가 솔로 넘버나이트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스란 국왕과 아스모펠을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길고 치열했던 전쟁이 끝났다.

보르네오군 1만이 레이단군 3천에게 패배했다.

템빨단원들의 활약이 컸지만, 그보다는 레이단군 병사들과 보르네오군 병사들의 아이템 차이가 긴요하게 작용했다.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가 제작한 <양산형 그리드 세트>는 레이단군 병사들을 일당십으로 만들어주었고 보르네오군 병사들은 그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등병 아스의 활약은 군계일학이었고 말이다.

같은 시각, 뱀파이어의 도시.

“뱀파이어는 이렇게 몰아서 잡으면 간단하게 처리됩니다. 갓 핸드에게 묠니르를 쥐어준 다음에 그냥 때려잡는 거죠. 어때요? 참 쉽죠? 시청자 여러분도 따라해 보세요.”

“…”

그리드는 전 세계 시청자들을 우롱하고 있었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고, 말주변이 없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일이었다.

그리드는 그냥 있는 그대로 설명할 뿐이었으며 이에 시청자들만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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