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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29화 (324/1,794)

템빨 24권 - 19화

불과 19초.

성벽에서 뛰어내린 솔로 넘버 나이트가 여덟 기사를 해치우고 라우엘에게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슈욱!

섬광처럼 쏘아지는 Y자 검이 라우엘의 목을 덮친다.

빠르다.

라우엘의 죽음은 바뀔 수 없는 필연처럼 보였다.

하지만 라우엘은 살아남았다.

레이단 진형으로부터 날아온 하나의 ‘돌멩이’가 솔로 넘버 나이트의 검을 멈춰버렸으므로.

‘이럴 수가?’

솔로 넘버 나이트.

대륙 최강이라는 적기사단에서도 최상위 아홉 명을 지칭하는 호칭.

그 강함은 전대 적기사단의 단장이었던 피아로 이상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당대의 적기사단원들, 전원이 검호의 경지를 이뤘으니까.

아홉 번째 기사 <노틸러스>는 자신의 검이 고작 돌멩이에 막혔다는 사실을 겪고도 믿을 수 없었다.

‘돌멩이 하나로 내 검을 막을 수 있는 고수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그것도 이따위 소국에?

‘그리드 공작인가?’

아니, 그자의 실력과 재능은 이미 꿰뚫고 있다.

그가 렌 왕자와 전쟁을 벌일 당시, 멀리서 지켜보면서 전투능력을 완전히 파악했다. 그가 강한 건 사실이지만 나보다는 몇 수나 아래다. 그가 평생을 수련해봤자 이 정도 경지에는 오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굴까?

‘설마… 피아로?’

그 반역자가 마지막으로 숨어든 장소가 바로 에트날 왕국이라는 정보가 있다.

아주 어쩌면, 이곳에 피아로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아니다. 피아로일 리가 없어.’

전성기 시절의 피아로라고 해도 지금의 나보단 못하다. 과거보다 실력이 한참 떨어졌을 지금의 그가 던진 돌멩이 따위에 내 검이 멈췄을 리 없다.

‘도대체 누구지?’

약 1초.

노틸러스가 혼란을 느끼고 있는 사이.

“라우엘님. 지킨다.”

쿵쾅거리면서 달려온 쥬드가 +8다인슬레프(모작)을 휘둘러왔다.

칠흑의 검광이 노틸러스의 머리 위로 벼락처럼 떨어졌다.

쩌엉!!

“큭!”

쥬드의 검을 정면으로 막은 노틸러스의 팔과 다리가 후들거렸다.

‘뭐지, 이 괴력은?’

단순히 근력이 높아서가 아니다.

눈앞의 거한은 1의 힘으로 2~3의 힘을 발휘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쾅-!

콰쾅!!

쥬드의 공격을 두 차례 더 방어하는 과정에서 노틸러스가 깨달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놈이군.’

목숨이 10개는 되는 놈 같다.

반격에 당할 거라는 염두는 아예 두지 않고,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은 채 오로지 적을 파괴하기 위해서 전력으로 검을 휘두른다.

그저 본능으로 행동하는 짐승이기에 더 강하고 위협적이다.

‘듀리마 출신인가?’

살인병기로 키워진 무감정의 인형들이 즐비한 그 미친 부족 말이다.

‘어찌됐든 약하다.’

냉정을 되찾은 노틸러스가 쥬드의 사선 베기를 무릎 굽혀 회피한 후, 검을 위로 추켜세우며 다시금 무릎을 펼쳤다.

서걱!

백광의 오러가 용솟음치며 쥬드의 두터운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아로새긴다.

그대로 허공에 떠오른 노틸러스가 휘청거리는 쥬드의 어깨에 검을 찔러 넣었다.

“우. 아프다.”

“쥬드!!”

군대의 후미에서부터 달려오고 있던 템빨단원들이 일제히 질색했다.

그들은 혹 쥬드가 죽기라도 할까, 걱정하며 이동속도를 높였으나 3천 병사들의 틈새를 뚫고 이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병사들의 머리 위를 가볍게 밟으며 날 듯이 달리는 중인 페이커가 가장 빨랐으나 아직 한참 멀다.

“끝이다.”

노틸러스의 검이 쥬드의 미간을 겨냥하는 그 순간이었다.

쩌엉-!

또 한 번 날아온 돌멩이가 노틸러스의 검을 가로막아버렸다.

“미친…!”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노틸러스가 황급히 성벽 위 아슈르 백작에게 소리쳤다.

“군에 공격 명령을! 그 틈에 제가 블란드 공을 구출하겠습니다!”

진실을 전하려는 라우엘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어서 빨리 개전하기를.

정체불명의 고수로부터 두려움을 느낀 노틸러스의 다급한 바람이었으나, 아슈르 백작은 영리한 사람이다.

그는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우선 생각해보고 있었다.

‘그리드가 렌 왕자를 죽여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없다.

반면 아스란 왕자는 렌 왕자가 죽음으로서 나라를 손에 넣었다.

렌 왕자를 시해한 진범이 아스란이라는 라우엘의 주장을 허황된 것으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블란드까지 증언을 해주겠다고 하니…’

그리드는 정말로 누명을 쓴 것일까?

생각해보던 아슈르 백작이 흠칫 놀랐다.

‘블란드는 볼모의 신분이다.’

레이단에 잡혀있는 동안 끔찍한 고통과 수모를 겪었을 것이다. 심신이 피폐해진 지금의 블란드가 하는 말을 믿을 순 없다. 협박에 못 이겨서 거짓을 고할 수도 있었다.

‘블란드의 구출이 우선이다. 진실을 말할 수 있게끔 안전을 확보시켜야해.’

판단한 아슈르 백작이 드디어 명령을 내렸다.

“쏴라!”

파팟!

파파파파파파팟!!

성벽 위에 대기하고 있던 2천의 궁병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과연 <에트날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파트리안의 병사들답게 활솜씨가 뛰어났다. 수천 발의 화살이 백발백중의 기세로 포물선을 그렸다.

하지만 병사들의 활솜씨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슈르 백작의 마법이었다.

병사들이 쏘아낸 ‘모든’ 화살에 동시다발적으로 화염속성과 가속력을 더해버렸다.

유성처럼 쏟아지는 화살세례를 보면서 레이단 병사들은 사색이 되었다.

“히익…! 마, 막아!!”

“어서 방패를 들어라!!”

“살고 싶다면 서둘러라, 녀석들아! 레이단에 두고 온 가족들과 재회해야지!!”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일념이 병사들의 집중력을 높여줬다.

힘든 훈련을 이겨낸 보람이 있게도, 레이단 병사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화살세례 대부분을 방패로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꼭 재수 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악!”

“으윽…!”

방패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눈 먼 화살에 관통당하는 병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급소를 연달아 맞아 즉사했고, 또 누군가는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야할 팔자가 됐다.

“레오! 프랑!”

피를 쏟는 전우들을 보고 사색이 되는 병사들.

다시 한 번 쏘아지는 적군의 화살세례를 막아내고자 방패를 고쳐 쥐는 그들의 얼굴에 삶에 대한 열망이 더욱 더 짙게 떠오른다.

채챙!

푹!

“캭!”

날카로운 쇳소리와 비명소리가 빗발치기 시작하는 전장은 더없이 치열하고 참담했다.

난무하는 핏줄기에 담긴 것은 슬픔과 분노의 싹이다.

병사들 사이에서 방패를 쥐고 있는 아스모펠이 개안했다.

‘이것이 바로 병사의 눈으로 보는 전장…’

아스모펠은 명문 귀족 출신이다. 군에 입대하자마자 기사의 작위를 얻었던 그는 항상 군대를 지휘하는 입장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기에 늘 병사들을 소중하게 다루기는 했지만, 병사들의 입장이 되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감상?

끔찍하다.

손짓 한 번으로, 말 한 마디로 수만, 수십 만 병사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했던 사령관 시절에는 전쟁이 이토록 참혹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병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전쟁에 담긴 대의도, 결과에 따른 보상도 아니다.’

오직 생존이다.

화살 하나조차도 두려워해야하는 약자들이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모습이 처량하고 안타깝다.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려다가, 지척에 몰려있는 병사들 탓에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방패를 세워 막은 아스모펠.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에 눈살을 찌푸리던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패의 틈새로, 적의 투석기가 날린 커다란 바위가 떨어지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도, 도망쳐어어!!”

운석처럼 떨어지는 바위에 쫓기게 된 병사들의 절규가 메아리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하는 그들에게 밀쳐지고, 또 밀쳐지면서도 버티고 선 아스모펠이 이를 악 물었다.

‘여태까지 내가 체험했던 전쟁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리드 공작각하께서 나를 일개 병사라 지칭하시며, 내게 병사로서의 삶을 체험해보라고 종용하신 데에는 다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야.’

사실, 그리드는 아스모펠에게 병사체험을 권유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어찌됐든 아스모펠은 그렇게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말단 병사들의 마음조차 헤아릴 수 있는 사령관이 되겠다. 병사들에게 쉽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겠다. 늘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해보이겠다.’

하지만 그 전에,

‘병사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는 것이 우선!’

아스모펠이 손에 쥐고 있던 단창을 힘껏 집어던졌다.

아군을 향해서 떨어지는 바위를 겨냥한 투척이었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허공의 바위가 산산조각 났다.

[아스모펠이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아스모펠이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아스모펠이 새로운 칭호를 습득하였습니다.]

***

“뭐가 저렇게 단단하지?”

“아무리 화살을 쏴서 맞춰도 잘 죽질 않아…?”

성벽 위 파트리안의 병사들이 차츰 의욕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레이단 병사들이 무장하고 있는 갑옷이 어찌나 단단한지, 아무리 화살을 맞춰도 사상자가 조금밖에 나오질 않는 까닭이었다.

“지체 높은 기사들이나 입을 법한 갑옷을 병사들이 무장하고 있다니… 레이단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인가?”

“사막도시가 부자일 리가 있냐? 저건 레이단의 군주가 병사들을 아낀다는 증거지. 그리드 공작이 병사들을 소중하게 여기니까 무리해서라도 좋은 갑옷을 입힌 거야.”

“그런 멋진 주군을 두다니… 레이단의 병사들이 부럽다…”

아군의 사기가 급속도로 저하되기 시작하자 아슈르 백작이 당황했다.

‘분위기를 반전시켜야한다.’

마침, 레이단군이 화살받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동안 보르네오군이 성문으로 진격해오고 있었다.

쿵!

쿵!!

보르네오군의 공성병기가 성문과 성벽을 가격할 때마다 성벽이 진동하며 병사들이 두려움에 떤다.

결국,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던 아슈르 백작이 친히 나섰다.

마법사의 가치는 전쟁에서야 비로소 빛을 발휘하는 법!

“대륙 10대 마법사의 위용을 보여주마!”

쿠르르르르릉!!

쩌렁쩌렁, 전장 전체에 울리는 목소리로 외친 아슈르 백작이 마법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지축이 흔들리고 대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광역 몰살마법 <파이어 스톰>의 전조였다.

때마침 마비에서 회복 된 라우엘이 곁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블란드에게 소리쳤다.

“뭐하고 있는 겁니까! 어서 가서 당신의 아버지를 말리세요!”

“…제게 자유롭게 행동하라 이겁니까?”

당황하는 블란드에게 라우엘이 반문했다.

“제가 당신의 자유를 억압한적 있습니까?”

“…”

더 이상 긴 말은 필요치 않다.

플라이 마법을 전개한 블란드가 하늘을 날아올랐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 마법의 주문을 외우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외쳤다.

“아버님! 라우엘 백작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

아슈르 백작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볼모 신분인 내 아들이 어찌 전장 한복판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단 말인가?

‘혹시…! 어쩌면!’

마법의 주문을 멈추는 아슈르 백작에게, 지상의 라우엘이 질문했다.

“아스란 국왕이 렌 왕자를 시해하였고, 그리드 공작각하께서는 단지 누명을 쓰신 것뿐이라면. 그것이 진실이라면 당신은 에트날 왕실을 버리고 그리드 공작각하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에트날 왕실에 배신감을 느낄 수는 있으나 그리드 공작을 섬길 생각은 없다. 난 무능한 자를 섬기고 싶지 않으니까.”

씨익!

사악한 미소를 머금은 라우엘이 드디어 미끼를 던졌다.

“말인 즉, 그리드님께서 유능하시면 섬기겠다 이거지요? 좋습니다. 그리드님의 유능함을 지금 이 자리에서 즉시 증명해보이도록 하지요.”

“…?”

내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이 처신하는 라우엘.

어리둥절해하는 아슈르 백작에게 그가 선언했다.

“에트날 왕실이 수백 년 동안 점령하지 못했던 가우스 왕국의 요새도시 보르네오를 하루아침에 함락해보이지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드디어 전원 라우엘의 곁으로 모인 템빨단원들이 성문을 공략 중인 보르네오군 1만 병사의 후방을 덮쳤다.

퍼퍼퍼퍼퍼퍼펑!!

쏟아지는 마법과 스킬의 폭격이 보르네오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고,

“이, 이 무슨…!”

발틴 후작이 혼란에 빠졌으며 아슈르 백작은 경악했다.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라우엘이 장담해보였다.

“에트날 왕국과 가우스 왕국은 모조리 그리드 공작각하의 손아귀에 떨어질 것입니다.”

“……!”

아슈르 백작이 전율에 휩싸이는 그때였다.

“아슈르 백작! 현혹되지 마십시오! 지금 저자는 망발만을 지껄이고 있습니다!”

뒤늦게 당도한 레가스, 폰, 페이커에게 둘러싸인 채 발이 묶여있던 솔로 넘버 나이트, 노틸러스.

세 사람을 다소 힘겹게 뿌리친 그가 라우엘을 노리고 몸을 날렸다.

라우엘만 처단하면 당장의 혼란을 어떻게든지 수습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은 채.

“꺼져라!!”

적병들이 길을 가로막았지만 가소로울 따름!

수십의 병사들을 순식간에 도륙내고 라우엘에게 도달한 그가 오러 묻은 검을 휘둘렀으나.

쩌엉!

갑자기 나타난 병사 하나가 노틸러스의 공격을 막아냄으로서 라우엘을 지켰다.

“넌 뭐냐!!”

이를 가는 노틸러스에게 단창을 겨눈 병사가 답했다.

“이등병 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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