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4권 - 18화
[뱀파이어들의 지하 도시(8)에 입장하였습니다.]
[던전의 입구가 봉쇄되었습니다.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됩니다.]
[던전 보스를 처치하거나 사망하기 전까지는 던전을 탈출할 수 없습니다.]
‘바로 여기가…’
‘그리드가 광속으로 레벨을 올릴 수 있었던 장소.’
‘8번이라는 건, 레이단에는 이런 도시가 최소 7개 더 있다는 뜻인가?’
‘무려 8개의 인던을 보유한 영지라니, 천문학적인 가치다. 템빨단원들이 랭킹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어.’
세계최고의 게임BJ 버니버니와 OGC 방송국의 촬영 스태프들.
그리드의 사냥방송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기 위해서 모인 그들이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당황했다.
“응? 너무 어둡잖아?”
“앞이 하나도 안 보여요.”
“조명 켜!”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이대로는 중계고, 나발이고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버니버니측 스태프들과 OGC스태프들이 일제히 조명을 밝혔다.
순간 환해지는 시야로 확인되는 것은 도시의 전경?
아니다.
족히 50마리는 될법한 박쥐와 늑대 패거리의 습격이었다.
“헉!!”
“크, 큰 이빨 늑대와 붉은 눈 박쥐다!!”
최소 270레벨이 넘는 강력한 몬스터들이다.
이런 괴물들이 불시에 수십 마리 나타나서 기습해오다니?
이대로는 전멸이라는 생각에 사색이 된 스태프들이 위축되는 반면, BJ 버니버니는 프로정신을 발휘하였다.
“시청자 여러분 보이십니까! 엄청난 숫자의 고레벨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아아! 우리는 이대로 전멸하는 걸까요! 그리드님의 레벨링 속도에 대한 비밀을 여러분께 전달하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일까요!!”
재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버니버니 탓에 더욱 큰 긴장감에 사로잡힌 시청자들이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순간이었다.
“파그마의 검무.”
다이아몬드 캡슐을 얻은 후부터 훨씬 더 자연스럽게 춤사위를 펼칠 수 있게 된 그리드.
망토와 흑발을 펄럭이며 몇 번의 발자취를 신속하게 남긴 그가 강력한 기파를 발생시켰다.
“초(超).”
콰아아아앙!!
폭발음과 동시에 격동하는 대기!
그리드 주변의 돌멩이들이 우르르 허공에 떠오른다.
나부끼는 흑발 아래로 날카로운 눈매를 번뜩인 그리드가 광속으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퍼펑!
퍼퍼퍼퍼퍼퍼퍼펑!!
검을 휘두를 때마다 쏘아지는 검기가 덤벼오는 박쥐와 늑대들을 격추시키고 잿더미로 만들어버리자…
“헐.”
“와… 엄청 세다.”
촬영 스태프들이 감탄을 연발했다.
그리드가 Satisfy 최강자 중 하나라는 사실을 그들 또한 알고는 있었지만, 사냥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 아닌가!
설마 200레벨 후반의 몬스터 50여 마리를 혼자서 순식간에 도륙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놀라움에 붕어처럼 입만 뻥긋거리는 그들에게 그리드가 면박을 주었다.
“다음에도 또 제멋대로 행동했다가 위험을 자처하면, 그때는 안 살려줄 겁니다.”
“아…! 아, 예! 죄송합니다!”
황급히 사과하는 스태프들과 달리 죄 없는 버니버니는 당당하게 질문했다.
“방금 나타난 몬스터들은 뱀파이어의 사역마들 같던데요. 도시 보스는 뱀파이어이고, 보스를 만날 때까지 사역마들을 몰이사냥하면서 레벨을 올리시는 건가요?”
그리드가 영문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여긴 뱀파이어의 도신데?”
“네? 아, 네. 그러니까요.”
“뱀파이어를 몰아 잡아야지.”
“…???”
뱀파이어는 고위종.
동레벨 몬스터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며 물리력과 마력, 거기에 지능까지 높은 삼위일체의 몬스터이다.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롭기 때문에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뱀파이어 사냥을 기피한다.
한데 그리드는 뱀파이어를 몰이 사냥한다는 듯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귀를 의심하던 버니버니가 이내, 자신의 방송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 들으셨습니까? 그리드님께서 뱀파이어를 몰아 잡는다고 하십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는 플레이어 한 명이 동시에 3~4마리의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엄청난 장면을 목격할 수도…! 헉!”
중계하던 버니버니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도시 내부에 즐비해있는 건축물들.
그리드의 뒤를 따라서 그중 하나로 발을 들이자, 수십 개도 아닌 수백 개의 관이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이렇게 많은 뱀파이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버니버니는 오늘 처음 알았다.
OGC 간판 아나운서 박신예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았다.
“아마도… 그리드는 관 속에 잠들어있는 뱀파이어들을 조용히, 한 마리씩 각개 격파하는 식으로 레벨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됩니… 꺄악!!”
박신예 아나운서가 비명을 질렀다.
너무 놀란 까닭이었다.
“연살파(聯殺派).”
미친 그리드.
다짜고짜 광역기를 사용하더니, 잠들어있는 수백 마리 뱀파이어를 동시다발적으로 깨워버린다.
-와, 클라스 보소ㅋㅋ
-촬영팀 전멸각!
-꿀잼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이 치킨 먹는 것도 잊었다.
그리드가 뱀파이어의 도시로 진입한 이후 보여주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너무 놀랍고 흥미로웠던 까닭이다. 몰입도가 장난 아니었다.
단, 절망적이기는 했다.
그리드의 레벨링 비결.
설령 오늘 알게 될지라도, 그를 따라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으니까.
***
파트리안 인근.
‘이것 참 오합지졸이로군.’
레이단군과 합류한 발틴 후작의 감상이었다.
레이단의 병사들은 그만큼 볼품없었다.
죄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는, 마치 여름날 지친 개처럼 혀를 길게 내민 채 헥헥거리고 있었다.
‘평소에 얼마나 훈련을 안 했으면.’
고작 사막 한 번 횡단했다고 이만큼이나 지쳤는가? 저질 체력이다. 정녕 한심할 따름이다.
‘하긴… 평소에 훈련 받을 체력조차 없었겠지.’
사막화되고 피폐해진 레이단의 사정은 유명하다.
먹을 식량조차 구하기 어려워한다고 들었다.
주린 배 채우기도 힘든 마당에 군사를 훈련시킬 여유가 어디 있었겠는가?
레이단의 병사들이 나약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3천 명의 인원을 모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도시민이 2만밖에 안 되는데 병사는 3천.
젊은 남자는 죄다 데리고 나온 것 같다.
‘여기서 전멸이라도 했다가는 레이단도 그 길로 끝이군.’
피식.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은 발틴 후작이 콧방귀 뀌는 사이.
라우엘은 레이단군 후미의 템빨단원들과 길드채팅을 나누고 있었다.
&지슈카: 우리가 예정보다 반나절은 빨리 도착했는데도 딱 맞게 합류했네?
&토반: 어떻게 알고 시간을 맞춘 거야?
&라우엘: 쥬드님이라면 병사들을 혹사시켜서라도 달려올 것 같았거든요. 생각해본 끝에 저 또한 발틴 후작과의 만남을 앞당겼습니다. 뭐, 속전속결이 좋은 상황이기도 하니까 차라리 잘 됐죠.
&폰: …쥬드? 쥬드 이야기가 왜 나와?
&라우엘: 뭐죠, 그 반응은? 설마 확인 안 하신 겁니까? 현재 레이단군 사령관은 쥬드님이실 텐데요? 아스모펠님은 제 허락 하에 자유 활동 중이시거든요.
&반트너: 헐. 말도 안 돼. 그 대단한 사령관이 쥬드였다고?
&이벨린: 아니, 라우엘. 너 미쳤냐? 무슨 생각으로 바보 쥬드한테 군을 맡긴 거야? 차라리 지슈카 누나나 극검 형한테 맡기지.
&라우엘: 이번 전쟁에서 사령관의 역할이라고 해봤자 행군지휘밖에 더 있어? 아무리 쥬드님이라도 쉽게 수행할 수 있는 임무였다.
애초에, 템빨단원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발틴 후작과 대면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뛰어난 자들을 부각시킬 경우 괜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으니까.
행군 중에는 수송대의 호위임무가 가장 중요하기도 했고 말이다.
한편, 레이단군을 살펴보는 발틴 후작의 시선은 쥬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굉장하군. 마치 오우거와도 같은 풍체다.’
커다란 키와 돌보다도 단단해 보이는 근육이 일견하기에도 엄청나다.
과연, 에트날의 대영웅이라고 칭송 받는 인물답게 체격부터가 남다르다.
그렇다.
발틴 후작은 쥬드를 그리드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시선은 오로지 정면만을 응시하는가?’
무려 1만의 대군을 이끌고 원군으로 합류해준 내게 다가와 감사를 표할 생각도 않고, 그저 앞만 보는 그리드(쥬드).
눈빛은 공허하여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인지 모르겠다. 말로만 듣던 무념무상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고 할까.
어떻게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범상치가 않다.
발틴 후작이 감탄하고 있는 그때였다.
“잔챙이들이 모였군.”
높이 20미터.
레이단군과 보르네오군 병사들 모두에게 위압감과 절망감을 선사하던 파트리안의 높디높은 성벽 위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르르르릉!!
잠시 후 비가 오려는지 천둥번개가 내리친다.
번쩍이는 하늘 아래, 귀신처럼 하얀 얼굴을 드러내는 사내.
다름 아닌 아슈르 백작이었다.
반백년 나이가 무색하게도 젊고, 아름다운 그가 입을 열었다.
“레이단의 반란이야 예상한 바이다만, 설마 발틴 후작 귀공이 동조하리라고는 쉬이 생각할 수 없었소. 명예를 모르는 졸렬한 자로군.”
발틴 후작이 크게 웃었다.
“거친 입담은 여전하구나, 아슈르! 하지만 오늘의 나는 네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다!”
마음에 여유가 넘친다.
본래는 두려워해야할 대상인 아슈르 백작이지만 그리드가 곁에 있으니 든든하다.
‘그리드가 놈을 견제하고, 레이단군이 화살받이를 하는 동안 나와 내 군대는 파트리안으로 진입해서 모조리 짓밟으면 간단해.’
원군의 입장이므로 희생을 강요받을 처지도 아니다.
씨익!
이를 드러내며 웃는 발틴 후작의 곁에 잠자코 있던 라우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아슈르 백작에게 공손히 예의를 갖췄다.
“그리드 공작각하를 섬기는 라우엘이라고 합니다. 위대한 대륙의 10대 마법사 중 한 분인 귀하를 이렇게나마 뵐 수 있어 영광입니다.”
낚싯대와 미끼를 준비한 라우엘.
그가 우선 낚싯대를 던졌다.
“귀하께서도 알고 계시다시피, 블란드 공의 신변은 현재 저희가 확보하고 있습니다.”
라우엘이 눈짓하자, 젊은 여덟 기사의 곁에 서있던 블란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아버지…”
“블란드…!”
아슈르 백작의 두 눈이 떨렸다.
그의 동요를 놓치지 않고 캐치한 라우엘이 즉각 협상을 시도했다.
“왕위계승서열 1위였던 렌 왕자를 시해한 사람은 그리드 공작각하가 아니라 바로 아스란 국왕입니다. 그가 친형을 죽여 놓고 모든 죄를 그리드 공작각하께 뒤집어씌운 것이죠. 진실은 블란드 공께서 입증해주실 겁니다.”
“뭐…?”
아슈르 백작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고, 라우엘의 말은 계속 됐다.
“아슈르 백작, 진즉부터 정통성을 상실한 왕실에 언제까지고 충정을 바칠 의무는 없습니다. 그리드 공작각하께로 오십시오. 그리드 공작각하께서는 당신의 충정을 기만하는 거짓 왕실을 처단하고, 이후 당신에게 더 없이 큰 명예와 권력을 쥐어줄… 윽.”
라우엘이 신음을 토하며 휘청거렸다.
소리도 없이 날아온 단도에 가슴을 찔린 까닭이었다.
“무슨…!”
“라우엘 백작각하를 지켜라!!”
라우엘 곁에 서있던 블란드가 당황했고, 여덟 기사들이 황급히 달려 나갔다.
그리고 높은 성벽 위로부터 하나의 인영이 떨어졌다.
로브를 걸치고 있는 사내였다.
사하란 제국 적기사단의 아홉 번째 기사.
단신으로 일개 도시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절대무력, 솔로 넘버 나이트의 출격이다.
칼날 끝이 Y자로 갈라져있는 기이한 검을 꺼내 무장한 그가 광속의 검술을 선보였다.
채채채채챙!!
“윽.”
“컥.”
피아로와 아스모펠이 직접 선별하고, 키운 젊은 여덟 기사가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그들은 정체불명 로브 사내의 검을 눈으로 쫓지도 못했다. 간신히 치명상을 면하여 목숨을 연명하는 게 고작이었다.
“라, 라우엘 백작각하…!”
여덟 기사들이 절규했다.
독 묻은 단도에 찔려 마비 된 라우엘.
어느새 그의 지척까지 도달한 로브 사내의 검이 휘둘러지고 있음에.
“빨라!”
군대의 후미에서부터 달려가기 시작한 템빨단원 전원이 경악했다.
레가스와 폰, 그리고 페이커를 긴장시킬 정도로 로브 사내의 검술은 굉장한 것이었다.
표적이 된 라우엘의 감상은 오죽하겠는가?
‘죽었다!’
낭패다.
파트리안에 이런 괴물이 숨어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방심했다.
‘난 왜 항상 변수에 약한가!’
스스로의 부족함에 통탄한 라우엘이 질끈, 두 눈을 감는 순간이었다.
쩌엉!
레이단군의 진형으로부터 날아온 돌멩이가 솔로 넘버 나이트의 검을 멈춰버렸다.
“?!”
병졸들 사이에 고수가 숨어있다!
솔로 넘버 나이트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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