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4권 - 17화
『최초의 레전드리 클래스 전직자! 최초의 공작위 획득자! 역대 국가대항전 최다 메달 보유자! 템빨단의 주인! 그 이름도 찬란한 그리드!! 단기간 동안 랭킹을 무려 33계단이나 상승시킨 그의 레벨 업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요? 궁금하십니까? 알고 싶습니까? 네! 알려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지상최고의 게임방송국 OGC에서 그리드의 사냥 영상을 공개합니다! 무려 생중계!! TV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라디오에서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OGC 채널을 이용해주십시오!!』
OGC는 이번 방송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무조건 흥행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회사의 모든 자본을 총동원하여 광고비로 투자했다.
그 결과, OGC의 광고는 수십 개 국가의 인터넷과 TV, 그리고 신문과 잡지를 비롯한 각종 언론매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중이다.
완벽한 선택이었다.
전 세계로 송출 된 광고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OGC인터넷 채널로 접속자가 폭주하기 시작했고, OGC는 투자한 자금 이상의 광고비를 빠르게 확보해나갔다.
OGC는 축제분위기였다.
“이건 완전히 초대박이야..! 기대 이상이라고!!”
“성공할 수밖에 없었지. 국가대항전과 비견되는 시청자수를 거의 독점적으로 확보하는 셈이니.”
“10억 뷰는 며칠 내로 우습게 찍겠네요.”
“버니버니의 개인 방송국에도 시청자가 수백만 명 모였다더군요.”
“이게 바로 그리드의 영향력인가! 괜히 갓리드가 아니군!!”
“그리드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사냥을 하기에 레벨을 빠르게 올리는 것인지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으니까요.”
“레벨링 비결을 얻어서 너도나도 랭커가 되기를 꿈꾸겠지.”
“좋아…! 완벽한 방송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OGC가 세계를 장악할 기회다!!”
잠시 후.
그리드 사냥 방송의 생중계가 시작됐다.
시청자수가 계속해서 폭등했고, 이에 비례해서 Satisfy 동시접속자수가 비약적으로 줄었다.
거의 국가대항전 방영 당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라우엘의 의도대로였다.
***
“전진. 전진. 전진.”
쥬드를 필두로 삼은 레이단의 군세.
행군 속도가 무척 빠르다.
발이 푹푹 꺼지는 사막을 마치 달리듯이 횡단하고 있다.
병사들은 죽을 맛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지글지글 끓는 사막을.
무거운 갑옷과 무기를 무장한 채로 쉬지 않고, 그것도 달리듯이 행군하는 일.
지옥 그 자체다. 감당불가의 고난이다.
피아로 밑에서 밭일을 할 때도, 아스모펠 밑에서 정신교육을 받을 때도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허억… 헉! 목… 목말라! 물 마실 틈 정도는 줘라, 제발.”
“헉헉! 이러다가 우리 죽는 거 아니야?”
“아아… 저 아지랑이 너머로 작년에 죽은 우리 집 개가 보여… 녀석이 내게 꼬랑지를 흔들고 있다고…”
“헛것을 봐도 여자가 아니라 개를 보다니… 연애 한 번 못해본 녀석답다…”
한계다.
이미 진즉부터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병사들의 대오가 무너지기 직전이다.
차라리 죽여 달라는 눈빛을 보내며, 혹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며 눈물콧물 질질 짜는 병사들이 태반이었다.
‘대열조차 맞추지 못하는 군대는 이미 군대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것과 같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사기가 최악으로 떨어졌어.’
‘이럴 수가… 이건 완전히 패잔병 꼴이잖은가. 어찌 싸우기도 전에 군대가 무너지는가.’
‘그것도 정예 중의 정예인 우리 레이단군이…!’
피아로와 아스모펠이 직접 선별하고 훈련시킨 여덟 명의 젊은 기사들.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는 있으나, 그들 또한 크게 지친 상태였다.
쥬드의 뒤를 따르며 병사들을 살피던 그들이 결국 참지 못하고 나섰다.
“쥬드 사령관, 행군을 서두르는 이유가 뭔지 혹시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라우엘 백작각하께서 지정하신 도착 예정시간까지는 충분한 여유가 있습니다. 굳이 병사들의 사기와 체력을 저하시키면서까지 서둘러야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만…”
쥬드는 무려 5년 동안이나 그리드를 섬긴 기사였다. 심지어 그리드가 그를 친히 등용하였다는 소문이다.
사막화되어 피폐해졌던 레이단.
조국에게까지 버림받았던 우리의 영토를 구원해준 그리드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영웅인 바.
그에게 인정받고 5년이나 곁을 지켰다는 쥬드를, 젊은 기사들은 자연스럽게 선망하고 있었다. 감히 쥬드의 능력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순전히 믿고 따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쥬드가 군대를 통솔하는 방법은 너무나도 무식했다.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었다.
어쩌면, 쥬드는 군략에 취약한 게 아닐까?
흔들리는 시선을 보내오는 젊은 기사들에게 쥬드가 대꾸했다.
앞만 보고 전진하면서 말이다.
“약속 장소엔. 빨리. 빨리. 주군의. 말씀. 빨리.”
“…허.”
목숨 걸고 싸우게 될 전쟁터를 고작 약속 장소라고 표현하다니?
젊은 기사들이 전율에 휩싸였다.
‘이분께 있어서 전장이란…’
‘동네 친구가 기다리는 술집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곳이란 뜻인가?’
‘실로 엄청난 그릇이다…! 이게 바로 대영웅을 바로 곁에서 모셔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의 위엄…!’
“헉?”
젊은 기사들이 갑자기 경악했다.
어째서인지 사막의 열기가 한 순간 더욱 더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바로 눈앞에 불의 바다가 보였던 까닭이다.
“사, 사막이 불타고 있다?”
“허억! 전군 멈춰! 멈춰라!!”
무슨 영문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사막은 불타고 있었고, 그게 하필이면 파트리안으로 향하는 경로였다.
소중한 병사들과 함께 불바다로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젊은 기사들은 다급히 명령을 내렸고 병사들이 일제히 행군을 멈췄다.
하지만 쥬드만큼은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모래사막을 새카맣게 불태우는 시뻘건 화마를 보고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고, 그냥 전진했다.
“아니, 뭐하시는 겁니까!”
“멈추십시오!”
젊은 기사들이 쥬드를 뜯어말리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늦었다.
잠시 병사들을 돌보는 사이, 쥬드는 이미 저만치 달려가 불바다 속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저런 미친…!”
또라이였어?
젊은 기사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그때.
솨아아아아아아---
쥬드를 집어삼켰던 불바다가 마치 허상처럼 사라져버렸다.
활활 끓던 화염이 있던 장소에 존재하는 것은 찬란한 오아시스.
맑고 푸른 물이었다.
그를 본 레이단의 3천 병력 모두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불바다는 환상이었어…! 아슈르 백작이 만들어놓은 함정이었어!”
“쥬드 사령관은 그걸 대번에 간파하셨던 거야!”
“굉장해…! 저분 굉장해!!”
오아시스에 몸을 적시고 있는 쥬드.
아무 생각 없이 불바다로 뛰어들었다가, 영문도 모른 채 시원해진 그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물. 좋다. 맑다. 쥬드. 목마르다. 마신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레이단 군세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지친 기색 따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젊은 기사들은 쥬드에게 탄복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휴식 포인트를 미리 파악하고 계셨던 건가? 철두철미하시다.’
‘아슈르 백작이 레이단 견제용도로 파놓은 환술을 대번에 간파하는 혜안까지 갖추셨고.’
‘우리와는 차원이 달라. 괜히 그리드 공작각하의 기사가 아니야.’
젊은 기사들과 3천 병력이 ‘아무 생각 없는’ 쥬드를 100퍼센트 신뢰하게 된 순간이었다.
쥬드에게 새로운 칭호가 생겼다.
<신뢰받는 사령관>
지휘하는 병력의 체력과 방어력이 소폭 상승하고, 스태미나 하락 속도가 줄어듭니다.
***
“이거 굉장한데?”
“과연 아스모펠 경이랄까.”
“제국의 기둥이라고까지 불렸던 인물답군.”
3천 군대의 후미.
템빨단의 호위를 받고 있는 수송대의 행군속도는 그 특성상 무척 느렸다. 저마다 짐마차를 끌고 있었던 까닭에 본대의 행군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에 템빨단원들은 불신을 품었다.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식량수송대를 완전히 등한시하고 앞서가는 아스모펠.
어쩌면 그는 무능한 사령관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의심은 잠시 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앞서가는 3천 병력의 행군속도가 빨라짐으로서 발생하게 된 진동과 흙먼지.
사막의 지하까지 소란을 전달함으로서 자이언트 웜의 출현을 억제시키는 효과를 발휘하였으니까.
‘자이언트 웜이 위축되게 만듦으로써 출몰을 저지시키다니? 자이언트 웜의 특성을 완전히 이해하고 이용하는 군략이다.’
‘덕분에 군대의 후방과 식량이 완벽하게 안전해졌어.’
‘지친 병사들은 오아시스로 인도하여 곧바로 휴식을 주고.’
‘오아시스의 위치는 언제 파악해놓고 있던 거지?’
과연 라우엘은 대단하다.
아스모펠이라는 인재의 능력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3천 병력을 과감하게 위임시키더니, 벌써부터 훌륭한 효과를 보고 있다.
템빨단의 미래는 밝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템빨단원들이었다.
***
요새도시 파트리안.
아슈르 백작은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거리에 모험가들이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기분 나쁜 침묵이 도시를 지배했고, 이어서 레이단과 파트리안을 잇는 길목에 설치해두었던 함정 중 하나가 소멸해버렸음이 감지됐다.
“…드디어 그리드가 움직이는가?”
그리드의 파트리안 침공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드는 자신에게 칼날을 들이댄 렌 왕자를 확실하게 척살한 전력이 있다.
에트날 왕실과 적대할 것임을 이미 진즉부터 공표한 셈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아슈르 백작은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놨다.
그리드가 북부, 혹은 왕성으로 진격할 수 있는 유일한 루트인 이곳 파트리안의 방비를 철저히 했다.
사막에 설치한 불바다 환술도 그중 하나였다.
‘환술은 어째 쉽게 풀린 것 같다만…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그리드의 강함은 익히 잘 안다. 직접 체험해보았으니까.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에는 그리드를 너무 우습게보고 방심했던 게 크다. 또한, 정체모를 거지꼴 검사에게 호되게 당하여 혼란스러웠었다.
하지만 이젠 그리드의 전력을 파악하고 있다. 방심하지 않을 것이며, 철저히 대비하기까지 해놨으므로 싸워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애초에, 전쟁에서 마법사의 화력은 압도적인 법이다.
특히 수성하는 쪽이 훨씬 더 유리하다.
어떻게 봐도 파트리안이 점령당할 가능성은 없었다.
‘단 하나 변수가 있다면.’
볼모로 잡혀있는 내 아들 블란드의 존재다.
부인과 첫째 아들을 떠나보내고 유일하게 남은 혈육.
‘나는 그 아이를 외면할 수 있을까?’
가문대대로 에트날 왕실을 섬겨왔다.
냉정한 관점에서 보자면, 혈육보다는 조국의 수호를 택하는 게 옳다.
‘나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모두 조국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래, 알고 있다.
자식은 얼마든지 낳을 수 있지만 조국은 유일한 것이니까.
‘알고는 있다만…’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태어난 순간부터 부여받은 수호자로서의 숙명이 원망스럽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존재를 외면해야하는 상황이 더 없이 슬프다.
‘블란드… 이 못난 아비가 만약 너를 죽음으로 몰아붙이게 된다면, 나 또한 뒤를 따라 죽겠다. 레이단을 박살낸 후에!’
공허한 눈빛으로 창밖을 응시하는 아슈르 백작.
그에게 한 사내가 다가왔다.
“백작각하의 슬픈 마음을 이해합니다.”
사내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파트리안에서 식객 생활 중인 사내였다.
정체?
아슈르 백작도 몰랐다.
그저, 아스란 국왕이 친히 보내준 원군이기에 곁에 두고 있을 뿐이다.
안 그래도 기분이 나빴던 아슈르 백작이 로브의 사내에게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에도 기척 없이 다니는 이유는 스스로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오?”
아스란 국왕이 로브의 사내를 표현하기를, 혹시 모를 그리드의 습격에 대항하여 파트리안을 지킬 수 있는 ‘무력’이라 하였다.
실제로 그가 엄청난 실력자라는 사실을 아슈르 백작도 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달갑지 않다.
정체도 모르는 인물을 곁에 두고 있어야한다는 건 영 찝찝했다.
적개심을 보이는 아슈르 백작에게, 로브의 사내가 공손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각하의 아드님은 제가 반드시 구출해보이지요. 한 번 믿어보십시오.”
“…?”
터무니없이 광오한 선언을 하는 로브의 사내.
그가 허리를 숙이자 언뜻 드러나는 칼날의 끝부분은 기이하게도 Y자로 갈라져있었다.
작년, 차디찬 밤의 사막에서 렌 왕자를 시해한 진범.
검호 척슬리를 우습게 제압하였던 <솔로 넘버 나이트>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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