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4권 - 16화
“가자! 템빨골!!”
딱! 딱딱딱!!
레이단 사막.
흑발의 청년이 누리끼리한 해골 2마리와 함께 사막을 횡단하고 있었다.
휘이이잉~~~~~~~
“어푸! 퉷! 퉷퉷!!”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눈과 입으로 들어오자 고통스러워하는 청년.
그의 뒤를 따르던 해골 2마리는 난리 블루스를 추기 시작한다.
달칵달칵!!
딱딱! 딱!!
바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온 몸의 관절들을 사방팔방으로 비틀어대는 해골들!
타고난 춤꾼처럼 현란하게 움직이던 놈들이 이내, 팔다리가 하나씩 부러져나가면서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템빨골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템빨골(1)이 흙으로 되돌아갑니다.]
[템빨골(2)가 흙으로 되돌아갑니다.]
[템빨골은 경험치를 잃지 않습니다.]
“…”
8번 도시의 공략을 끝낸 이후.
그리드는 사막에 돌아다니는 새끼전갈들을 시험 삼아 사냥해볼 요량이었다.
새끼전갈의 레벨은 고작 20~30대.
몬스터로 분류되기보다는, 몬스터의 먹잇감으로 분류되는 바.
그리드는 본인이 잘만 서포트 한다면, 템빨골만으로도 놈들을 우습게 사냥하고 템빨골의 레벨을 올릴 수 있으리라 보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새끼전갈을 만나기도 전에 바람을 맞은 템빨골들이 흙으로 되돌아가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드의 어안이 벙 쪘다.
“와… 진심 구리다.”
언데드계열 몬스터들은 내구도가 약하기로 유명하다.
생명력과 별개의 개념으로 몸이 쉽게 부러졌고, 이는 전투력 하락으로 직결됐다.
하지만 템빨골은 해도 너무했다.
기본 스탯부터가 쓰레기였기 때문에 몸이 부러지는 족족 죽어버렸다.
그리드가 여태까지 만났던 언데드 중에서 가장 약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형편없는 해골이었다.
“직계 뱀파이어 잡고 얻은 힘이 고작 이따위라니…”
템빨골이 발전가능성 높은 해골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 키워봤자 태생부터 차원이 다른 데스나이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약할 것이란 건 자명한 사실이다.
굳이 이놈들을 고생해가면서 키워야할 가치가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템빨골들은 죽어도 경험치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놈들이 죽던, 말던.
끊임없이 반복 소환해서 사냥을 시킨다면 레벨을 꾸역꾸역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레이단으로 귀환하면 토끼 사냥부터 시켜야겠네.”
별달리 의욕 없이 다짐한 그리드가 로그아웃했다.
수면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틀 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서 몸과 머리가 천근만근 무겁다.
***
그리드가 잠자리에 든 사이.
언제나 그랬듯이, 라우엘은 그리드를 대신해서 동분서주 중이었다.
길마보다 늘 열심히 일하는 참모의 모습은 템빨단원들에게 귀감이 됨과 동시에 동정심을 유발했다.
가우스 왕국.
에트날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대륙 최북단에 위치한 국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는 늘 사이가 좋지 않은 법.
가우스 왕국 또한 에트날 왕국과 앙숙 관계였다.
중앙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에트날 왕국을 거쳐야하는 가우스.
바다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가우스 왕국을 거쳐야하는 에트날.
무역을 위해서는 서로에게 별도의 관세를 지불해야하는 관계였으니 피차 이게 영 거슬렸다.
특히 중앙 대륙으로 쉽게 진출할 수 있는 에트날 왕국보다 가우스 왕국이 더 아쉬운 입장이었다.
“아슈르 놈만 없었어도…!”
발틴 후작.
가문대대로 가우스 왕국을 섬겨온 인물로서, 요새도시 보르네오의 방위를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보르네오는 가우스 왕국의 국경지대를 수호하는 아주 중요한 거점이다.
에트날 왕국의 요새도시 파트리안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었고, 그 특성상 파트리안과 충돌을 자주 일으켰다.
역사적으로 보르네오와 파트리안의 전쟁 횟수는 무려 수십 회에 달할 정도이다.
하지만 당대에는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
에트날 왕국에서 대륙 10대 마법사가 출현한 까닭이다.
아슈르 백작.
놈이 파트리안의 영주가 된 후로, 발틴 후작은 감히 파트리안을 넘볼 수가 없어졌다.
아무리 군대를 잘 훈련시켜서 진격시키면 뭐하는가?
마법 한 방에 모조리 잿더미가 되어버릴 텐데!
“젊을 때 나도 마법이나 배울 것을…”
괜히 검술 배웠다.
쯧, 혀를 차면서 창밖을 응시하는 발틴 후작의 귓가로 부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트날 왕국에서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흠.”
가우스 왕국이 에트날 왕국과 앙숙관계라고는 하나, 교류가 없을 수는 없다.
그래도 명색이 이웃나라이니만큼 표면적으로는 많은 정책을 함께 시행하는 등 가까이 지냈다.
또한 에트날 왕국에서 가우스 왕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르네오를 거쳐야만 했으므로, 보르네오에는 에트날 왕국의 사신이나 귀족이 자주 방문하는 편이었다.
“드시라 하게.”
발틴 후작이 예의바르게 손님을 맞이했다.
속내야 어찌됐든 간에 그는 프로 정치인으로서 가식이 몸에 배어있었다. 혹시라도 조국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에트날에서 방문한 손님에게 흠 잡히지 않고자 노력했다.
잠시 후.
발틴 후작의 집무실로 한 사내가 발을 들였다.
앳된 티가 남아있는 은발의 청년이다.
‘아니, 아직 소년인가?’
손님이 매우 젊다.
내심 당황한 발틴 후작이 웃는 낯으로 물었다.
“보르네오에 온 것을 환영하오. 한데 귀공은 누구시오?”
은발의 소년이 정중히 인사한 후 자신을 소개했다.
“에트날 백작위에 있는 라우엘이라고 합니다. 레이단에서 그리드 공작각하를 보필하고 있습니다.”
“허…”
발틴 후작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라우엘과 그리드라는 이름.
발틴 후작에게도 생소하지 않고 무척이나 익숙했다.
그들의 이름을 모를 리 없다.
수년 전, 골렘 대군에게 침공당한 왕성 라인하르트를 구원한 인물들.
에트날에서는 <구국의 영웅>이라고까지 칭송받는 그들에 대해서 발틴 후작은 진즉부터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의 상황도 잘 알고 있다.
‘왕위서열 1위였던 렌 왕자를 그리드가 죽였다지.’
그 탓에 현 에트날 왕실과 레이단은 사이가 무척 나쁘다고 들었다.
아마도 레이단은, 이미 진즉에 에트날 왕국 내에서 고립 된 상태일 것이다.
그곳에서 내게 사람을 보냈다는 것은…
‘이것 참,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기대감에 사로잡힌 발틴 후작.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묻는다.
“귀공이 그 유명한 라우엘 백작이었소이까? 허허, 귀공의 명성은 우리 가우스 왕국까지도 자주 들려오더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오.”
친히 악수를 청해오는 발틴 후작의 두꺼운 손을 라우엘은 최대한 예의바르게 맞잡았다.
그리고 화답했다.
“저야말로 <가우스의 사자> 발틴 후작각하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대단한 대륙의 10대 마법사 아슈르 백작조차도 각하를 두려워한다지요?”
“하하핫! 그렇기는 하지!!”
발틴 후작은 아슈르 백작에게 열등의식을 갖고 있다.
라우엘의 화술은 그의 비위를 맞춰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한, 라우엘이 거짓을 말한 것도 아니다.
발틴 후작은 수성전에 특화 된 병법을 터득하고 있는 바.
보르네오를. 더 나아가 가우스 왕국을 수호하는 역할에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실제로 아슈르 백작이 보르네오를 먼저 침공하지 않은 이유도 발틴 후작의 수성전 병법을 경계해서였다.
기분 좋게 웃던 발틴 후작이 자연스럽게 용건을 물었다.
“예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요?”
라우엘이 단도직입적으로 밝혔다.
“에트날 왕실의 견제가 레이단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그리드 공작각하께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에트날로부터 독립하겠다는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그리드가 공작위를 얻게 되었을 당시, 에트날 왕실이 아닌 비스바덴 국왕 개인에게만 충성을 맹세한 것은 워낙에 유명한 일화이다.
또한, 현재의 그리드는 렌 왕자를 시해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그리드와 에트날 왕실은 사이가 나쁘다.
그렇기에 라우엘은 확신했다.
발틴 후작은 내 말을 의심할 수 없다고.
“그리드 공작각하께서 완전히 독립하기 위해서는 스테임 후작각하의 도움이 필요한 바. 북부와 서부를 잇고자 그리드 공작각하께서는 우선 파트리안을 침공, 점령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
발틴 후작은 참고, 또 참았다.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억누르기 위해서 애썼다.
기쁨에 전율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 그에게, 라우엘이 간절히 부탁했다.
“후작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레이단은 본래부터 황폐한 땅입니다. 인구가 채 2만이 안 되며 병력도 적습니다. 병사들의 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고요. 우리만의 힘으로는 절대로 파트리온을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니, 부디 후작각하께서 도와주십시오. 보르네오의 강력한 병사들을 지원군으로 보내주시어 파트리안의 점령에 힘을 보태주십시오.”
고개까지 숙여가며, 최대한 비굴하게 부탁하는 라우엘.
그는 절실함을 연기하고 있었다.
현재의 정세를 봤을 때 그를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발틴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우스 왕국이 그리드 공작을 돕는 대가로 얻는 것은?”
“파트리안의 점령에 성공하여 북부와 서부를 잇고, 종국에 이르러서 그리드 공작각하께서 에트날 절반의 주인이 되신다면.”
라우엘이 미리 준비해두었던 서류를 발틴 후작에게 건네주었다.
“그리드 공작각하께서는 우선 모든 관세를 철폐하실 것이며, 이후 매달 가우스 왕국에 공물을 바칠 것이라고 약조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흐으음…”
계약서의 내용을 읽어나가는 발틴 후작의 입가로 차츰 미소가 번졌다.
너무 멋진 조건이었던지라, 더 이상 표정관리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의심해보았다.
“그리드 공작의 장인이 바로 스테임 후작이라고 알고 있소. 스테임 후작은 북부의 패자. 파트리온 공략에 그의 힘을 빌리지 않고 굳이 내게 손을 벌리는 이유는?”
“아스란 왕이 북부와의 모든 교신을 차단하고 있으므로 스테임 후작각하와 연락할 수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드 공작각하께서는 더더욱 파트리안에 집착하시는 거고요.”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쉽게 유추할 수 있던 부분이다.
납득한 발틴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알겠소. 단, 아슈르 백작의 처리는 그리드 공작쪽에서 해줘야할 게야. 우리로서는 병력을 잃는 일을 최대한 지양하고 싶거든.”
“물론입니다. 믿어보십시오. 우리의 실력은 후작각하께서도 충분히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구국의 영웅… 아슈르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겠지. 좋아, 그럼 바로 군대를 정비해보도록 할까.”
보르네오의 병사들은 정예 중의 정예다. 언제라도 전쟁에 투입될 수 있도록 육성되었고 그렇기에 전쟁에 목말라 있었다.
‘물론 나 또한!’
흥분한 발틴 후작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우스 왕실로 서신을 보내는 일이었다.
이번 전쟁에 대해서 왕실에 이야기를 전달한 후, 군대를 정비하여 라우엘과 함께 파트리안으로 향했다.
그 숫자가 무려 1만이다.
***
레이단의 총 병력은 4천.
그중 3천이 이번 원정에 참여했다.
만에 하나라도 이번 원정에 실패할 경우, 레이단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템빨단원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리드를 제외한 모든 템빨단원들이 참전하는 전쟁에서 패배할 가능성을 찾기란 어려웠던 까닭이다.
특히 블러드 워리어 카츠의 존재가 모두에게 강한 믿음을 주었다.
피가 난무하는 전장에서 그보다 강한 존재를 꼽기는 어려웠으니까.
“근데, 어찌된 게 행군 속도가 너무 빠르다?”
광활한 사막을 횡단하는 3천 병사들의 후미를 뒤쫓는 템빨단원들.
그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군대의 행군 속도에 당황했다.
아무리 레이단의 병사들이 사막에 익숙하고, 또한 강인하다지만 행군 속도가 이토록 빨라서야 쉽게 지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동료들을 토반이 안심시켰다.
“아스모펠 사령관에게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겠지. 그의 용병술은 우리 이상이다. 우리는 그저 믿고 따르면 돼.”
“흠, 하기는.”
불시에 기습해올 자이언트 웜으로부터 수송대를 보호하고자 후방에 위치한 템빨단원들.
그들은 현재 최전방에서 군대를 통솔하고 있는 인물이 ‘당연히’ 아스모펠인 줄 알았다.
아스모펠이 이 중요한 시국에도 행방불명 상태일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간다. 목적지. 파트리안.”
최대 지력 20.
영문도 모른 채 사령관을 맡게 된 쥬드가 쾌속의 진격을 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