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4권 - 12화
[중급 뱀파이어를 해치웠습니다.]
[상급 뱀파이어를 해치웠습니다.]
[상급 뱀파이어를 해치…]
[칭호 <뱀파이어 학살왕>을 획득하였습니다!]
[뱀파이어를 공격할 때마다 1,000의 고정 된 데미지를 입힙니다!]
“헐… 헉! 와! 유후!!”
그리드가 온갖 감탄사를 연발했다.
템빨과 성녀의 힘이 결합 된 갓 핸드의 위력이 자꾸만 그를 놀라게 만드는 것이다.
저벅.
그리드가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퍼퍼퍽!!
콰콰콰쾅!!
<홀리 웨폰>과 <홀리 임팩트>를 부여받은 갓 핸드들이 <묠니르>로 뱀파이어 4마리를 후려쳤고, 이때 수십 마리의 뱀파이어가 동시다발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쉽게 말해서, 그리드는 그냥 손 놓고 있어도 뱀파이어들이 픽픽 쓰러지는 상황이라 이거다.
‘미쳤어! 이건 진짜 미친 거야! 개사기야!!’
너무나도 손쉬운 사냥!
들떠서 환희하던 그리드가 문득 불안감에 휩싸였다.
‘…나, 이러다가 계정 정지 당하는 거 아닌가?’
갓 핸드라는 이름의 <불법 매크로>를 제작하였다는 죄로…..
“하, 나란 남자.”
그리드가 죄의식을 느낄 정도로 갓 핸드의 효용성은 뛰어난 것이다.
모든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고, 스스로 움직이며 몬스터를 척살하는 아이템.
심지어 체력과 스태미나에 구애 받지도 않는다.
세상에 이런 개사기 아이템이 또 있을까!
“오빠는 어떻게 이런 아이템을 만들 생각을 다 했어요? 완전 천재! 너무 멋짐!”
예림은 연신 환호하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노에, 랜디, 갓 핸드를 이용하여 뱀파이어들을 학살하는 그리드의 모습.
가끔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절대자와 흡사하였으니까.
지켜보고 있노라면 흥분된다.
반면 세희의 감상은 달랐다.
“멋지다기보다는 뉴스에서 봤던 중국인 작업장 같은 느낌이…”
중국인 작업장!
펫을 대량으로 육성한 중국인들끼리 모여서, 자리 잡고 앉아 무한 사냥을 반복하는 장소를 뜻한다.
펫으로 빠르게 사냥을 진행하고 모인 잡템을 현금으로 처분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다.
“…음, 좀 쉴까.”
세희의 말을 한 귀로 흘린 그리드가 자리에 앉았다.
떨어진 스테미나를 회복시키기 위함이었다.
그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노에, 랜디, 갓 핸드는 계속해서 사냥을 진행했다.
[중급 뱀파이어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중급 뱀파이어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를 획득…]
휴식 중에도 계속해서 차오르는 경험치를 보면서 그리드가 감회에 젖었다.
“오래 전에 꾸었던 꿈을 이룬 기분이야…”
“꿈이 뭐였는데요?”
질문하는 예림에게, 그리드를 대신해서 세희가 대답해주었다.
“악덕사장.”
알바들만 죽어라 부려먹으면서 가게 수익을 유지하고 본인은 흥청망청 노는.
그리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꿈꿨던 시절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만…”
민망해진 그리드가 뺨을 긁었다.
“당연히 지금 내 꿈은 그때와 달라.”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이에 따라서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상대적 약자를 등쳐먹겠다는 생각 따위 이제 추호도 안 한다.
가끔은 도리어 돕고 싶다고 느낄 때가 있다.
최근에는 유니X프에 무려 월 3,300원짜리 정기후원을 신청하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이러다가 죽어서 천국 가는 거 아닌지 몰라.’
정말 난 훌륭한 사람이다.
그렇듯 자아도취하고 있는 그리드에게 세희가 물었다.
“마지막 건물에 보스가 있는 거야?”
8번 도시에는 건물이 총 7개밖에 없었다. 건물마다 잠들어있는 뱀파이어의 숫자도 적은 편이었으니, 다른 도시보다 규모가 훨씬 더 작은 셈이다.
하지만 경험치 총량은 비슷했다.뱀파이어들의 평균 레벨이 다른 도시보다 높다는 뜻이고, 그리드는 이를 토대로 8번 도시 보스가 고위 귀족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맞아. 이제 보스만 남았어.”
스태미나가 회복된 것을 확인한 그리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세희와 예림에게 최대한 멋진 표정을 짓고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오빠 혼자 간다.”
도시 보스가 남작~자작급 귀족이라면 1대1로 레이드할 자신이 있다. 그만큼 지금의 나는 강하니까.
하지만 백작급 이상의 귀족부터는 확신이 없다. 특히, 아주 만에 하나 직계라도 나타났다가는 위험해진다.
세희와 예림까지 죽음에 내몰 수는 없다.
생각하며, 홀로 전장으로 향하려하는 그리드에게 세희와 예림이 의문을 표했다.
“어차피 오빠가 레이드에 실패하면 우리도 죽는 거 아니야?”
“보스를 쓰러뜨리거나, 죽어야만 탈출할 수 있는 던전이잖아요? 무사 탈출 확률을 높이려면 어떻게 봐도 같이 싸우는 편이 좋은 거 아닌가요?”
“응…”
그냥 폼 한 번 잡아본 거다.
결국, 세희와 예림을 대동한 그리드가 마지막 건물의 문을 열었다.
그의 곁에는 뱀파이어 잔당들을 해치우고 돌아온 노에, 랜디, 갓 핸드가 함께였다.
‘기필코 레이드를 성공해보이겠다.’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하다.
설령 전성기 시절의 크라우젤과 싸울지라도 이길 자신이 있다.
그리드가 자신감을 불태우는 그때였다.
[8번 도시의 주인, 뱀파이어 자작 라티나가 출현합니다.]
붉은 융단이 깔려있는 복도 끝.
잿빛 왕좌에 흑발의 여성이 앉아있었다.
분명한 미인이었으나, 얼음처럼 차갑게 보이는 피부와 새파란 입술이 기괴한 느낌을 준다.
“어머, 이게 얼마만의 인간이야? 오래간만에 포식하겠네.”
붉은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미소 짓는 라티나.
그녀가 손을 한 번 휘젓자.
꾸득!
꽈드드드득!!
어두운 대전 곳곳의 지면이 갈라지더니 해골과 좀비들이 나타났다.
딱! 딱딱!!
끼힛! 끽끽!!
관절 부위에서 기괴한 마찰음을 흘리며 다가오는 해골들.
우워어…어…
비틀비틀, 목을 뒤로 반쯤 젖힌 채 공허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좀비들.
그 숫자가 족히 1천은 될 것 같다.
“이게 무슨…”
뱀파이어 중에 네크로맨서도 있었나?
긴장하며,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좀비들로부터 뒷걸음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경고했다.
‘라티나는 어머니께서 낳은 아홉 직계 중 하나다.’
“……!”
최악이다.
그리드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뱀파이어 자작 라티나가 달콤한 마력을 방출합니다.]
[현혹됩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 마나 회복 속도가 80퍼센트, 마법 저항력이 50퍼센트 하락합니다. 스킬 발동 시 실패할 확률이 생깁니다.]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물리공격력이 50퍼센트, 모든 속도가 30퍼센트 하락합니다.]
[저항하였습니다.]
‘애들은…!’
그리드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세희와 예림을 걱정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징그러운 해골과 좀비들을 보고 잔뜩 겁먹었을 아이들이, 이런 무식한 상태이상까지 걸렸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염려하는 그리드였지만 세희와 예림은 멀쩡했다.
아니, 도리어 신나보였다.
“언데드는 밥이지.”
“해골 귀여워.”
“…?”
무려 1천이 넘는 해골과 좀비들을 보고도 위축되지 않다니?
거기에다가 직계의 위압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그리드와 라티나 둘이 동시에 당황하는 그때였다.
“회개의 빛.”
솨아아아아아아-
세희가 손을 모아 기도하자, 그녀로부터 광명이 쏟아지며 일대를 정화해나갔다.
따뜻한 빛에 휩싸인 해골과 좀비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고, 그중 몇은 눈물을 흘리며 잿빛으로 산화했다.
[몬스터를 혼자서 해치웠습니다.]
[100퍼센트 공헌도를 획득한 대가로 파티원과의 레벨 차이를 무시하고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최소 250레벨 이상일 것이 분명한 언데드. 그것도 숫자가 1천에 육박하는 대량의 언데드들을 일제히 무릎 굽히는 것으로 모자라 일부는 소멸시켜버리다니?
세희의 비상식적인 강함에 놀란 그리드가 넋을 잃고 말았다.
한데 예림도 만만치 않았다.
자체적으로 지닌 성속성 버프를 몸에 둘둘 두르더니, 세희가 무력화시켜놓은 언데드들을 하나둘씩 베어나갔다.
“헐…”
할 말을 잃고 있는 그리드의 귓가로 브라함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영원히 순회할 수 있는 대악마의 영혼조차도 멸하는 게 바로 성녀다. 하찮은 언데드들 따위는 그녀 앞에서 고개조차 들 수 없어.’
“아…”
듣고 보니, 대악마에 비견되었다는 브라함과 이야루그트, 그리고 대악마 헬가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죽어 육신을 잃고도 영혼만큼은 소멸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점이다.
‘강한 마족의 영혼은 영원불멸한 건가?’
그 영혼을 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성녀이고.
세희의 가치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음을 깨달은 그리드가 전율하는 사이.
‘라티나만 불쌍하게 됐군.’
브라함이 옛 형제를 동정했다.
***
‘이게 무슨 영문이지?’
라티나는 시조 베리아체가 친히 잉태한 아홉 직계 중 하나다.
비록 작위는 낮았지만 그건 귀찮은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스스로 거부한 것일 뿐.
그녀의 권능은 절대적이었다.
특히 형제 중 유일하게 죽은 자를 다스릴 수 있었고, 이는 제1악마 바알의 권능과 닮은 것이었기에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높았다.
마리로즈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녀는 본인이야말로 모든 뱀파이어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존재라 믿었다.
그만큼 대단한 라티나를 지금, 고작 인간 따위들이 당황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인간.
뱀파이어의 먹잇감에 불과한 하등종.
‘본래라면 나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려야할 놈들이…!’
흑발의 인간 수컷 하나와 암컷 둘.
하나 같이 예사롭지가 않다.
내 위대한 마력 앞에 무릎 꿇기는커녕 꼿꼿이 버티고 섰고, 심지어 죽은 자들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니, 인간 중에도 꽤 강한 놈들이 있다고 들었다.’
수백 년 전에는 소위 ‘전설’이라 칭송 받는 괘씸한 것들이 있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런 부류의 놈들로 추정된다.
‘그래봤자 내겐 하찮다.’
씨익!
음침하게 웃은 라티나가 죽은 자들에게 소리쳤다.
“일어나 싸워라!!”
끼긱! 끽!
우워어…
무릎 꿇고 있던 해골과 좀비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라티나가 죽은 자들에게 공급하는 마력의 양을 늘리자 아직 저레벨에 불과한 성녀의 힘은 더 이상 통하질 않게 된 것이다.
“호호호! 그럼 그렇지!”
기세가 오른 라티나가 명령했다.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
끼익! 끽!
우워!
해골과 좀비들이 일제히 그리드 일행을 덮치는 순간이었다.
“역시, 우리는 아직 도움이 되기 어렵네. 오빠, 힘내줘. 홀리 웨폰. 홀리 임팩트.”
사아아아아-
그리드의 곁에 부유하고 있던 갓 핸드들이 일제히 백광에 휩싸였고,
퍽!
퍽퍽퍽퍽퍽!!
쿠콰콰콰콰콰쾅!!
버프 받은 갓 핸드들이 묠니르로 언데드들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난무하는 뼛조각과 썩은 살점들을 목도한 라티나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왜 이렇게 세…?”
말이 안 되는데?
어이없어하던 라티나가 문득, 인간 수컷의 빈틈을 포착했다.
저 홀로 떠다니는 황금 손들을 제어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고 할까.
‘귀찮지만 직접 나서는 수밖에!’
결정한 라티나가 그리드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몸을 연기로 흩어지게 만든 후, 소리도 없이 그리드에게 접근하여 날카로운 발톱을 찔렀다.
하지만 그녀의 발톱보다 그리드의 검은 귀신이 더 빨랐다.
“낚이기는.”
심장을 꿰뚫리고 경악하는 라티나에게 비릿하게 웃어준 그리드.
머리가 백발로 변하더니, 무방비한 상태로 있는 라티나의 안면에 손을 얹고 <파이어 볼(강화)> 마스터 레벨을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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