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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319화 (314/1,794)

템빨 24권 - 9화

[뱀파이어들의 지하 도시(8)에 입장하였습니다.]

[던전의 입구가 봉쇄되었습니다.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됩니다.]

[던전 보스를 처치하거나 사망하기 전까지는 던전을 탈출할 수 없습니다.]

“헤에, 여기가 바로 말로만 듣던 인스턴트 던전이구나.”

“타인과 엮이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별개의 공간이라고 했던가? 치근덕거릴 남자들이 없다고 생각하면 기쁘네.”

“나는 이용해 먹을 남자들이 없다는 게 아쉬운데… 흐음~ 뭐, 영우 오빠와의 데이트를 방해받지 않아도 된다는 건 기쁘지만!”

세희와 예림은 인스턴트 던전이 처음이었다.

새로운 체험을 앞두고 들뜬 그녀들에게 그리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180레벨이 되도록 인스턴트 던전이 처음이야? 제대로 된 레이드는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거네?”

“게임하는 시간이 매번 짧았으니까. 진득하게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콘텐츠는 어쩔 수 없이 피했지.”

“인던 첫 경험이 오빠와 함께라서 기뻐요. 기왕이면 다른 처음도 오빠랑…”

“그래, 내년되면 술도 가르쳐주고 그럴게.”

“아이, 참~ 제가 말하는 처음은 그런 하찮은 게 아니라.”

“네, 네, 거기까지.”

“웁! 웁웁!!”

세희에게 입을 가로막힌 예림이 팔을 휘저으며 발을 굴렀다.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오는 그녀를 보면서, 그리드는 빙그레 웃을 따름이었다.

‘계속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네. 언제까지고 그런 순수함을 간직해주길 바란다.’

‘병신.’

‘뭐?’

다짜고짜 욕이라니?

브라함의 영문 모를 욕설에 그리드가 울컥하는 그때.

“근데 여긴 굉장히 어둡네?”

간신히 예림을 진정시킨 세희가 입을 열었다.

빛 한 점 들어오질 않아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도시 내부.

이 상태로는 몬스터의 습격에 무방비하게 당할 공산이 커 보인다.

판단하고 라이트 마법을 사용하려는 세희를 그리드가 말렸다.

“시간이 지나면 어둠에 차차 시야가 적응할 거야. 불을 켰다간 몬스터들의 표적이 되기 쉬우니까 천천히 더듬어 나가는 편이 좋아.”

“그렇구나.”

경험이 녹아있는 그리드의 조언에 세희와 예림이 감탄했다.

그리드야말로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라고 믿는 그녀들의 입장에서는, 그리드가 아주 조금만 그럴듯한 모습을 보여도 설렐 따름이었다.

“…으음.”

마치 대단한 사람을 보는냥 초롱초롱한 시선을 보내오는 세희와 예림.

그녀들 탓에 그리드가 부담감에 휩싸였다.

‘괜히 긴장되네.’

동생들 앞에서 자칫 실수라도 했다간…

‘오빠로서의 내 체면이… 브라함, 여차할 때는 잘 서포트 해줘. 알았지?’

‘…’

그리드의 애틋한 부탁이 무색하게도 브라함은 묵묵부답이다.

도시에 입장한 후로 말수가 부쩍 적어진 그였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숨기듯이.

‘다짜고짜 욕을 하질 않나, 얜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세희가 성녀임을 알고서 무진장 놀라더니만, 성녀에게 뭔가 안 좋은 추억이라도 있는 걸까?

‘하긴, 애초에 성녀라는 건 이름부터가 마족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 같으니.’

그리드는 생각해보면서 앞을 더듬어나갔다.

시가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타나는 몬스터들이라고 해봤자 뱀파이어의 패밀리어들.

평소 같았으면 어둠이고, 나발이고, 갓 핸드를 위시하여 거침없이 전진했겠지만 지금은 세희와 예림이 함께다.

혹시라도 그녀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그리드는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서 이동했고 이에 따라서 속도가 더뎠다.

“…”

계속되는 정적.

선두에 선 그리드가 조심히, 묵묵히 이동하자 세희와 예림 또한 함부로 떠들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무거워졌고 긴장감이 맴돌았다.

사뭇 진지한 오빠를 보면서 세희와 예림은 새삼 깨달았다.

‘맞아. 이곳의 몬스터들은 레벨이 최소 300을 넘긴다고 했지.’

‘우리가 오빠를 돕기는커녕 발목을 붙잡는 존재가 될 수도 있어. 짐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자.’

들떴던 마음은 진즉 다스렸다.

세희와 예림은 영리한 소녀들이니만큼 그리드에게 폐가 될 짓은 최대한 지양했다. 신중한 태도로 그리드에게 호응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도시의 구조가 어렴풋이나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그때.

“캬오오오!!”

접근 중인 인간의 기척을 감지하고 숨죽인 채 기다리던 <큰 이빨 늑대>들이 그리드 일행을 불시에 덮쳤다.

세희와 예림은 조금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행해진, 실로 완벽한 기습이었다.

어지간한 300레벨대 랭커들도 당황할 정도의!

“앗…!”

놀란 세희가 <+7나무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늑대의 발톱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성녀의 기사> 예림은 스킬 <성녀를 위한 희생>을 즉각적으로 전개, 세희가 입을 피해를 대신 맞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사실, 그녀들의 행동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녀들의 대처보다 그리드의 대처가 훨씬 더 빨랐으므로.

서걱!

푸욱!

퍽!

“캬오오오오!”

<파그마의 검무> Lv.3.

도검류 무기를 착용해야한다는 전제가 붙기는 하지만, 비활성화 시 그리드의 물리 공격력을 32퍼센트, 치명타 확률을 22퍼센트, 치명타 공격력을 15퍼센트 상승시켜 준다.

활성화 시에는 살(殺), 연(聯), 초(超) 등의 액티브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고.

말인 즉, 파그마의 검무 비활성화 시의 그리드는 평타가 엄청나게 강력하다는 뜻이다.

굳이 액티브 스킬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수준의 ‘약한 대상’을 상대로 그가 날리는 평타는 재앙 그 자체였다.

세희를 덮쳤다가 그리드의 검격에 한 대씩 얻어맞고 생명력이 대폭 하락한 늑대들이 깨개갱! 자지러지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험치 덩어리들을 놓칠 그리드가 아니었다.

곧바로 갓 핸드에게 추격을 시킴으로서 놈들에게 마무리 일격을 가했다.

퍽퍽퍽!

마치 마늘 빻듯이 늑대들의 대가리를 후려 찍는 황금 망치들!

그 광경, 잔혹한만큼 압도적인 위용을 뽐낸다.

세희와 예림이 감탄했다.

“굉장해…!”

“그렇게 강한 몬스터를 쉽게 해치우다니! 너무 멋져요!”

평소 같으면 으쓱해했을 그리드였지만.

“얘네들은 엄청 약한 애들이야. 도시에서 생활하는 뱀파이어 중에서도 최고로 약한 하급 뱀파이어들의 패밀리어거든.”

진짜 싸움은 시가지에 진입하고부터다.

“오빠가 지켜줄 테니까,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고 꼭 붙어서 따라와.”

“…”

세희와 예림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깨닫고 보니, 자신들이 이미 그리드의 짐짝이 되어있었던 까닭이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들은 오빠를 돕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거지, 방해를 하려고 따라온 게 아니니까!

“아니, 오빠는 앞만 보면 돼.”

“우리 몸은 우리가 알아서 건사할 게요. 오빠는 사냥에만 열중하세요.”

주제파악 못하는 약자들의 아집이 아니다.

성녀 세희가 보유한 <올곧은 마음>패시브 스킬은 마족과 언데드의 접근을 차단하는 효과를 지녔다. 또한, 성녀의 기사 예림에게는 적의 공격을 최대한 버틸 수 있는 강인한 맷집이 있었다.

최소한 스스로의 몸을 지킬 능력은 있다는 뜻이다.

애초에.

“뱀파이어들은 우리에게 시선을 돌릴 여유조차 없을 거야. 홀리 웨폰. 홀리 임팩트. 홀리 아머. 홀리 익스플로전.”

[파티원 ‘그리드’에게 성스러운 공격력을 부가합니다. 5분 동안 유지됩니다.]

[파티원 ‘그리드’가 공격할 때마다 성스러운 스플래쉬 데미지가 적용됩니다. 3분 동안 유지됩니다.]

[파티원 ‘그리드’에게 악을 차단하는 방어력을 부가합니다. 5분 동안 유지됩니다.]

[파티원 ‘그리드’가 공격을 받을 때마다 성스러운 폭발이 발생합니다. 2분 동안 유지됩니다.]

‘스플래쉬 데미지? 폭발?’

후로이의 버프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효력은 어떨까?

‘뭐… 크게 기대는 못 하겠지.’

세희의 레벨은 고작 180이다.

퍼센트 힐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힐러로서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버퍼로서는 글쎄?

딱히 큰 기대는 할 수가 없다.

실제로 상태창에 표기 된 추가 신성 공격력은 고작 500에 불과했다.

마족과 언데드를 상대로 500의 고정된 데미지를 추가로 입힐 수 있다는 뜻.

데미지를 누적시킬수록 그 효과가 크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극적인 효과까지는 못 된다.

+10 묠니르가 3,800의 신성 공격력을 보유한 것과 비교하면 솔직히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실망할 리 없다.

나를 위해 애써주는 동생의 마음을 생각하면 이 작은 수치마저도 그저 감사하고 감동적일 따름이다.

“자, 그럼.”

패밀리어들을 척살하며 시가지에 진입한 그리드.

가장 앞에 우뚝 서있는, 성당 같은 모습의 건물 안으로 거침없이 입장했다.

건물 내부에 존재하는 관의 개수는 대략 400개.

7번 도시의 건물들에는 최소 500개씩의 관들이 있던 것과 비교하면 적다.

‘차라리 잘 됐다.’

뱀파이어가 너무 많으면 동생들을 지키기 더 어려워지니까.

“파그마의 검무.”

그리드는 거침없이 행동했다.

잠들어있는 뱀파이어들의 숫자를 최대한 줄여놓고 싸우기 위해서, 곧바로 연살파(聯殺波)를 전개하였다.

쿠콰콰콰콰콰콰쾅!!

휘몰아치는 검기의 폭풍이 관 속에 잠들어있는 뱀파이어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수십의 뱀파이어가 비명횡사하였고, 이어서 다른 뱀파이어들이 깨어나 그리드를 노리고 날아왔다.

그리드는 별 생각 없이, 평소처럼 검을 휘둘러서 뱀파이어들을 베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하급 뱀파이어에게 6,73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홀리 임팩트>의 효과로 공격 대상의 반경 5미터에 존재하는 모든 ‘악한’ 대상에게 500의 추가 신성데미지를 입힙니다.]

“어…?”

본래 스플래쉬 데미지는 범위가 확장될수록 공격력 수치가 떨어진다.

당연한 상식이다.

칼질 한 번으로 여러 명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그 편리한 광역 데미지가 공격력 손실도 없이 적용된다면?

그건 완전히 사기다. 밸런스 붕괴다.

그리고 세희의 홀리 임팩트가 바로 밸런스 붕괴였다.

현재 그녀가 추가해주는 신성 공격력이 고작 500에 불과해서 망정이지, 스킬 레벨이 올라 언젠가 수천 단위까지 뛰어오르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칼질 할 때마다 수천씩의 추가 데미지를 광역으로 입히는 건가? 미쳤어. 진짜 미쳤어.’

잠시 넋을 잃은 그리드에게 접근해온 뱀파이어가 손톱을 찔렀다.

푸욱!

[3,3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공격해온 대상이 악합니다. 홀리 익스플로전의 효과가 발생하여 절반의 데미지를 되돌려줍니다.]

퍼엉!!

“캬악!”

그리드를 공격했던 뱀파이어가 갑자기 발생하는 빛의 폭발에 휩쓸려서 괴로워했다.

반면 그리드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성녀 ‘루비’가 당신의 생명력을 회복시켜줍니다.]

‘이건 사기야.’

내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진짜 대단하다.

이 순간, 그리드는 자신이 성녀 세희의 가치를 완벽하게 이해하였다고 착각했다.

그래, 착각이었다.

[성녀 ‘루비’가 갓 핸드(1)에 <홀리 웨폰>과 <홀리 임팩트>를 부여합니다.]

[갓 핸드(1)이 하급 뱀파이어를 공격합니다.]

[<궁극 강화의 묠니르>효과로 대상에게 3,800의 고정 된 신성 데미지를 입힙니다.]

[<홀리 웨폰>의 효과로 신성 데미지가 500 추가됩니다.]

[<홀리 임팩트>의 효과로 공격 대상의 반경 5미터에 존재하는 모든 ‘악한’ 대상에게 3,800+500의 추가 신성데미지를 입힙니다.]

“…딸꾹!”

갓 핸드와 묠니르, 거기에 성녀의 힘까지 보태진 결과는 굉장했다.

‘상식파괴범’ 그리드의 상식을 깨버릴 정도로 놀라운 효과였다.

너무 놀란 그리드가 저도 모르게 딸꾹질을 하는 사이.

펑!!

퍼퍼퍼퍼펑!!

홀리 웨폰과 홀리 임팩트를 부여받은 갓 핸드들이 미쳐 날뛰며 뱀파이어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리드의 사냥 속도가 최소 6배 이상 빨라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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