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4권 - 4화
대한민국 서울에 위치한 S.A그룹 본사.
그리드를 모니터링하고 있던 운영팀 직원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우와!! 드디어 그리드가 해냈어!!”
“네 자루 묠니르를 전부 다 레전드리 등급으로 띄웠다!!”
“저게 바로 인간 승리!!”
현실 시간으로 열흘 동안, S.A그룹 내부에서는 한 가지 이슈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그리드의 아이템 제작 과정이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아이템 창조>를 토대로 황금망치 <묠니르>의 도안을 창조한 그리드.
그가 레전드리 등급의 묠니르를 만들기 위해서 게임 시간으로 29일 동안 노가다에 집중하는 모습은 화제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이야, 저걸 정말로 해낼 줄은 몰랐네.”
“집념의 힘이지. 하나 만드는데 평균 22시간을 소요한 아이템을 파괴하고 또 다시 만들기를 반복 하다니, 저거 그리드 아니면 절대로 못할 중노동이야.”
“그치. 22시간 동안 단순히 멍때리는 것도 아니고 극도의 집중력을 유지한 채 작업해야했는데, 그 짓을 수십 번 반복한다는 게 어디 쉽겠어?”
“하여튼 대단해. 나라면 한 3~4번쯤에서 포기했을 텐데. 생각해보라고. 하루온종일 개고생해서 만든 아이템이 결국 레전드리 등급으로 안 뜨면? 허탈감과 좌절감이 엄청날 테고 그대로 맨탈이 박살날 거야. 근데 그리드는 견뎠어.”
“흐음… 그것보다 15번째 레전드리 아이템을 만들었을 때 파그마의 후예가 겪는 특별한 일은 뭐지?”
10번째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했을 때 그리드가 겪은 일은 아이템 페널티의 삭제였다.
15번째는 더욱 대단한 혜택을 얻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뭔지 알 수 없었다.
“그건 그리드 본인이랑 제1개발팀만 알겠지.”
제1개발팀의 팀장은 임철호 회장이다.
Satisfy의 중추적인 설정과 스토리를 개발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팀으로서 성장형을 제외한 계승형 레전드리 클래스들은 전부 그 팀에서 제작했다.
“킁… 알려달라고 졸라봤자 누설 안 하겠네. 제길, 궁금한데. 그냥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는 수밖에는 없나?”
한편, 게임 속 그리드는 이야루그트를 제압하고 있었다.
높은 명중률을 자랑하는 묠니르의 위력을 보고 감탄하던 운영팀원들이 이내 쯧쯧, 혀를 찼다.
“그리드 또 개고생하겠구만.”
경매장으로 향한 그리드가 대량의 강화석을 구매하고 있었다.
구매 버튼을 클릭할 때마다 바들바들 떨리는 그의 손가락을 보면서 운영팀원들은 예상했다.
‘이번에야말로 그리드의 맨탈이 폭발하겠군.’
보나마나 뻔하다.
운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그리드.
늘 그렇듯 강화를 계속해서 실패할 테고, S.A그룹의 확률 조작설을 제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것이다.
예상하는 팀원들에게 운영팀장 윤나희가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설마 그러겠어? 그리드가 국가대항전에서 번 돈만해도 200억이 넘는다는데, 고작 강화 몇 번 실패한다고 해서 예전처럼 욕하고 난리 부르스를 출까?”
잠시 후.
“…여전하네.”
“…”
영상 속 그리드는 반쯤 미쳐가고 있었다.
연속되는 강화 실패로 인해서 그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입에 걸레를 문 채 연속적으로 쌍욕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불쌍하다…”
예전에는 운 지지리도 없는 그리드를 보고 즐겼던 운영팀원들이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지금의 그리드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의 자랑인 바.
국가대항전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여준 그리드가 잘 되기를 바랐으면 하는 게 운영팀원들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들의 마음 같아서야 그리드를 직접 도와주기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S.A그룹은 원칙상 운영자가 게임 내 일에 개입할 수 없다. 시스템적으로도 불가능했다. 심지어 임철호 회장조차도 말이다.
혹시 모를 조작에 대비해서 모든 통제는 슈퍼컴퓨터 모르페우스가 담당하고 있었다.
“어어?”
“아이고, 완전히 맛탱이 가버렸네.”
운영팀원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6아이템에 연달아 바른 축복받은 강화석이 죄다 실패하며 증발해버리자,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그리드가 +7묠니르에다가 강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7무기에 강화를 시도할 경우 강화 실패 확률은 99.9퍼센트.
운영팀원들은 그리드의 묠니르 강화수치가 당연히 +6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웬걸?
“헐…?”
운영팀원 전원의 넋이 나가버렸다.
반면 게임 속 그리드는 환호하고 있었다.
이 순간.
운영팀원은 물론이고 각 개발팀 전원의 컴퓨터 모니터에 붉은색 창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게임 내에 큰 이슈가 발생하였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게임 내 궁극 강화 아이템 출현. 게임 내 궁극 강화 아이템 출현. 궁극 강화에 성공한 플레이어 아이디 ‘그리드’.]
***
뱀파이어의 도시는 총 15개 존재한다.
하지만 템빨단이 점령에 성공한 도시는 아직 7개에 불과했다.
1번부터 8번까지의 도시에는 ‘마리로즈’라는 최강의 뱀파이어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었던 까닭에 함부로 입장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사정이 바뀌었다.
브라함 덕분에 그리드는 마리로즈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2번 도시에 있단 말이지?”
‘그래, 그 외에 도시에서 그녀가 나타날 가능성은 없다.’
“좋아. 그럼 우선 8번 도시부터 차근차근 정복해볼까.”
국가대항전에서 종합순위 2위를 차지한 대한민국의 플레이어들은 지난 보름 동안 <경험치 획득률 27퍼센트 상승>버프를 적용받고 있었다.
순전히 그리드의 활약 덕분에 온 국민이 혜택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세이렌에 다녀오고 아이템을 제작하느라 혜택을 조금도 보지 못 했다.
사냥 한 번 못하였건만 어느덧 버프 유지시간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 억울할 법도 했지만.
“뭐, 내가 선택한 결과니까.”
레전드리 등급의 묠니르 4자루를 만들고 그중 1자루는 무려 궁극 강화를 이뤄낸 그리드.
그는 그저 긍정적일 따름이었다.
또한,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다.
결과가 좋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사막을 횡단하여 7번 도시 입구까지 도달한 그가 랭킹창을 확인했다.
국가대항전 이후 랭킹계는 대격변을 맞이한 상태였다.
1위.크리스
2위.만도
3위.레드
4위.아그너스
5위.팽
‘레드랑 팽은 또 누구야.’
최근 지발이 랭킹계에서 사라졌다. 그 또한 히든 클래스를 획득한 것으로 추정됐다.
1위였던 크라우젤과 2위였던 지발이 사라지자 자연히 크리스가 1위로 등극하게 되었고, 2위에는 ‘만년 4위’ 만도가, 4위에는 바알의 계약자 아그너스가 올랐다.
한데 레드와 팽은 도무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비공식 랭커였나?’
비공식 랭커 중에 기존 랭커를 위협할 정도로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는 엄청 많다.
그리드도 그중 하나다.
아니, 그중 하나였다.
‘지금 내 레벨로는 60위권에도 못 들겠네.’
대장간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경험치 버프를 등에 업은 각국 랭커들이 레벨을 엄청 많이 올렸다. 격차가 상당히 벌어졌다.
하지만 문제없다는 게 그리드의 판단이었다. 아니, 도리어 이 상황이 그는 좋았다.
“슬슬 과시할 타이밍이지.”
지존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이상 랭킹 1위를 노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또한 그리드는 그 과정을 세상사람 전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랭킹 등록.”
[비공식 랭킹을 해제하면 모든 플레이어에게 레벨이 공개됩니다. 괜찮으십니까?]
“당연히 괜찮다.”
고개를 끄덕인 그리드가 각각 +7까지 강화한 검은 귀신과 3자루 묠니르, 그리고 +10묠니르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7번 도시에 입장했다.
***
“어?”
“그리드다! 그리드가 랭킹에 등록했어!”
그리드의 비공식 랭킹 해제가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각국 언론들과 플레이어들이 그리드에게 높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왜 랭킹에 등록한 거지?”
“버프 얻고 레벨 올린 거 자랑하고 싶었나보지.”
“그런 것치고는 레벨 의외로 낮은데? 306밖에 안 돼.”
“겨우 76위네… 레벨링 능력은 형편없구나.”
게임 실력에는 레벨링 능력도 당연히 포함된다.
레벨이 낮다고 해서 그리드의 강함을 부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리드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하고 물어뜯기 즐기는 네티즌들이 특히 그리드를 비하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리드였으면 당연히 랭킹 1위 찍었을 텐데ㅉㅉ
-게임 더럽게 못하나봄 ㅎㅎ템빨이 아깝네 ㅋㅋ
-아니, 뭔 개소리들이야? 게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국가대항전에서 금메달을 혼자서 다섯 개나 따냐?
-그럼 그리드가 레벨 낮은 이유 설명 좀?
-바빠서 사냥 못했나보지.
-헛소리ㅋㅋㅋ 게임에서 가장 근간이되는 컨텐츠가 바로 사냥인데 뭔 바빠서 사냥을 못해. 그리드 그냥 게임 못하는 거임.
그리드는 이와 같은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던 걸까?
왜 굳이 지금 이 타이밍에 랭킹에 등록해서 일부 개념 없는 네티즌들의 표적이 된 걸까?
“그리드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대?”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대머리 반트너에게 라우엘이 싱글벙글 웃어주었다.
“임팩트 있는 등장을 노리신 거겠죠.”
“…?”
이제 고작 306레벨에 불과한 그리드가 설마 랭킹 1위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 반트너는 상상조차 못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세상사람 중 99.9퍼센트 이상이 그랬다.
하지만 그리드의 실력과 잠재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드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크라우젤이다.
“이거 큰일났군.”
어머니께서 건강을 회복하신 이후, 다시금 순수한 마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크라우젤.
랭킹 1위라는 왕좌를 되찾고자 노력하고 있던 그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왕좌를 되찾기 어려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때마침 하오로부터 귓속말이 도착했다.
-크라우젤님, 아직 파오넬 늪지대에 계십니까? 물약 사다 드릴까요?
국가대항전 이후.
크라우젤은 의도치 않게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오와 알렉산더를 비롯한 수많은 하이랭커들이 그를 받들고 따랐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니, 어쩔 수 없다기보다는 크라우젤의 성격이 변한 게 컸다.
예전 같았으면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차단했을 크라우젤이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드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서로를 진실 되게 위하며 게임을 즐기는 그리드를 보면서 그는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되었고 차츰 변해가는 중이었다.
“뭡니까? 그 약해빠진 표정은? 안 어울리지 말입니다?”
하오의 귓속말을 확인하고서 피식, 기분 좋게 웃은 크라우젤이 답변하려는 순간이었다.
군인을 연상하게 만드는 반삭 머리의 사내가 나타나 크라우젤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당신, 아직 120레벨도 안 됐지요? 이것 참 좋은 기회지 말입니다. 앞으로 나한테 자주 죽읍시다.”
“럭…!”
크라우젤이 당혹을 금치 못했다.
설마, 군신(軍神)의 무장 중 하나와 이런 저레벨 사냥터에서 조우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에.
“하핫, 천하의 크라우젤이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네?”
재미있다는 듯이 웃은 럭이 몸을 날렸다.
퍼억-!
찰나였다.
크라우젤의 안면에 바위조차도 부수는 럭의 주먹이 꽂힌 것은.
크라우젤의 생명력 게이지가 일격에 10분의 9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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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새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