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4권 - 3화
“헐 10강….”
아이템을 최대치까지 강화한다는 것.
그리드의 목표에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재벌들조차도 갖지 못한 10강 무기를 바란다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가 10강을…”
강화석 구입에만 현금 수백억을 사용했다는 어떤 재벌 2세가 밝힌 통계에 따르면, +7이상 강화 된 아이템에 축복받은 강화석을 바를 경우 +1 강화가 될 확률은 0.01퍼센트 미만, -1이 될 확률은 99.9퍼센트 이상이라고 했다.
한 번에 +2이상 강화하는 것은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부어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였고.
물론 +8아이템, +9아이템은 강화 성공률이 더 떨어지고 실패율이 확 올라간다.
그렇기에 재벌들조차도 +7이상의 아이템을 강화하는 건 사실상 포기하는 추세였다.
+6아이템에 축복받은 강화석을 발라서 +9아이템을 만드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조차도 천 번, 만 번 시도해서 한 번 성공할까 말까였지만.
한데 재벌도 아닌 그리드가 10강화 무기를 갖게 된 것이다.
파그마의 후예가 보유하고 있는 패시브 스킬 <아이템 강화 확률 상승>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긴… 나는 5강화까지는 거의 100퍼센트 확률로 해내니까.”
비단 그리드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5강화까지는 쉽게 한다.
아이템의 강화수치가 6이 되기 전까지는 강화 성공률이 무척 높았으므로.
하지만 역시 실패확률이란 존재했고 운 없는 사람은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반면 그리드는 그렇지 않았다. 최소 5강화까지는 거의 무조건 성공했다. 매일 투덜거리고는 있었지만 강화 확률 상승 패시브 효과를 톡톡히 누려온 것이다.
“으으윽…”
멍하니 있던 그리드가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았다.
쿵쾅쿵쾅!
지금 이 순간이 꿈이아니라 현실임을 인지한 순간,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어서 통증이 느껴지는 까닭이었다.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플레이어 최초로 10강화 무기를 얻게 되었다는 기쁨?
느낄 겨를조차 없다.
너무 얼떨떨하고 흥분되어 머리가 완전히 새하얗다.
‘흐음.’
브라함은 잠자코 지켜볼 따름이었다.
궁극의 강화.
사실 파그마도 몇 번 못 이뤘던 업적이지 않던가.
현재 그리드가 어떤 심정을 느끼든, 그것을 만끽할 기회를 브라함은 주고 싶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하아… 하아…”
드디어 안정을 되찾은 그리드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해냈어! 내가 해냈다고!!”
방방 뛰는 그리드.
평생토록 자신을 괴롭혀왔던 악운과 맞서 싸워 이겼다는 생각에 그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그간 겪어왔던 일을 고려해보면, 지금 이 순간의 행운이 훗날 더 큰 악운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높다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그때 가서 또 극복하면 그만이다.
꾸욱, 주먹을 불끈 말아 쥔 그리드가 +10묠니르의 정보를 확인했다.
<궁극강화의 묠니르-인계ver>
내구력:689/689
공격력:1,333~2,363
*명중률 +50퍼센트
*투척 시 가속력 상승.
*대상을 타격할 때마다 0.3초의 경직을 확정적으로 유발.
*타격하는 물건의 내구력을 하락 유발(본인 소유의 아이템 제외).
*마족과 언데드에게 고정 데미지 3,800 추가.
*적으로 인식한 대상에게 높은 확률로 상태이상 ‘공포’ 유발.
*대장장이 제작 관련 스킬의 전개속도 대폭 상승.
*<마력 탐지(변형)>이 귀속 된 상태입니다. 이로 인해 명중률 50퍼센트 추가 보너스를 얻습니다.
강화는 어렵다.
수백만 원쯤 우습게 잃게 되는, 실패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시스템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엄청난 부담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사람들이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강화 성공 시 발생하는 능력치 상승 수치가 이처럼 대단했으니까.
강화 수치를 하나 올릴 때마다 아이템의 능력치가 5~7퍼센트 상승하니까 안 하고는 못 배기는 거다.
“진짜 미쳤다…”
공격력과 옵션 상승 수치가 어마어마하다.
최소 공격력만 해도 무려 1,333.
어지간한 레전드리 등급의 무기보다 더 강력하다. 물론 6강 이하의 무기들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어쨌든 이걸로 둔기류의 한계를 극복했다.”
최소 공격력만 빵빵 터질지언정 상관없다.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게 됐다.
공격력이 약하다는 묠니르의 유일한 단점이 높은 강화수치를 통해서 극복된 것이다.
‘노력한 보람이 있어.’
4자루 묠니르를 전부 레전드리 등급으로 만들기 위해서 무려 29일 동안 대장간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결국 해냈다.
제작과 파괴, 파괴와 제작을 반복한 끝에 4자루 묠니르를 전부 레전드리 등급으로 완성시켰다.
그 과정에서 드레이크의 송곳니 1개가 견디지 못하고 파괴되었고, 나머지 아다만티움의 내구력도 한계치까지 도달하여 결국 포기해야하나 싶었지만 결국 해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또 +10강화를 성공했다.
기쁘다. 너무 기쁘다.
‘앞으로 더 열심히 게임해야지.’
전율하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그리드에게 알림창이 떠올랐다.
[<검귀, 이야루그트 소환>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좋아.”
무기 테스트하기 딱 좋은 상대가 눈을 떴다.
씨익, 사악한 미소를 그린 그리드가 연병장으로 향했다.
***
심연 속.
이야루그트의 영혼이 분개하고 있었다.
‘지옥 제일의 검사인 이몸께서 고작 인간 따위에게 패배하다니…’
정말이지 같잖고 열 받는다.
이게 다 힘이 봉인 된 탓이다.
빨리 힘을 되찾고 싶다.
하지만 그 전에, 그리드를 길들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리드를 입맛대로 이용할 수 있어야지만 부활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테니까.
한데.
‘도리어 놈이 나를 길들이려하고 있다.’
어제, 놈이 나를 소환했을 당시 주변에 적 따위 없었다.
놈은 순전히 나와의 1대1 대면을 목적으로 나를 소환했던 것이다.
‘괘씸한 놈.’
길들일 기회라고 생각해서 공격에 나섰더니만, 미리 무기를 대기시켜놓고 있다가 내 허를 찔러?
‘네놈 또한 처음부터 나와 싸울 생각이 충만했던 것이었을 테지…!’
빌어먹을 놈!
약한 주제에!
내가 본래의 힘만 되찾으면 한입 거리도 아닐 것이 감히 내게 덤벼!
크르르르르…!
이야루그트의 분노가 차츰 더 짙어졌다.
복기하면 복기해볼수록 그는 억울했다.
고작 인간 따위의 함정에 당했다는 게 너무 치욕적이었다.
‘두 번 다신 안 당한다.’
앞으로 놈이 또 나를 소환한다면, 그때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싸움에 임할 것이다.
‘방심만 안 하면 내가 이긴다.’
확신하던 이야루그트가 문득 생각을 바꿨다.
‘아니,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어.’
내 몸을 두들겨 팼던 4자루의 황금 망치.
‘그것에 깃들어있는 신성력이 너무 위험하다.’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다.
만약 그 무기가 조금만 더 강력했다면, 어쩌면 대악마를 위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 무기의 위력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
그리드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싸워서 이겨야한다. 그것이 힘의 순리를 따르는 악마의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놈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 망치들을 무력화시켜야하는데…’
위력은 둘째 치고 피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갓 핸드라는 황금 손들이 그냥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것 같은데 정작 피하려고 보면 피할 길이 보이질 않는다.
애초에 그리드가 그 망치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해보던 이야루그트가 묘안을 떠올렸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일단은 싸울 의사가 없다고 굽히고 들어간 후, 놈이 방심할 때를 노리고 뒤통수를 후려치는 방법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좋아. 오늘은 어제의 복수를 완성하고 앞으로 또 네가 나를 소환할 때마다 착실하게 길들여주도록 하지. 크크큭!’
이야루그트가 혼자서 신나하는 그때였다.
파앗!
영겁의 어둠이 갈라지면서 한 줄기 광명이 쏟아졌다.
소환이 개시된 것이다.
‘좋아, 간다!’
이야루그트의 영혼이 빛을 따라서 이동했다.
마검의 마기를 빌려서 육신을 형성하고 인계에 현신한다.
“달콤하다.”
고정적인 등장대사를 읊은 이야루그트.
그가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그리드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제는 미안했다. 내가 다짜고짜 네게 싸움을 거는 결례를 범하고 말았군.”
무려 지옥제일의 검사인 자신이 하는 사과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 리가 없다고 확신한 이야루그트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놈이 내 사과를 받아준답시고 악수를 청해오겠지.’
감히 무엄하게도 말이다.
‘그때 악수를 받아주는 척하면서 뒷통수를 힘껏 후려치면…’
완벽하다.
복수를 성공할 수 있다.
“큭큭… 헉?”
음침하게 웃던 이야루그트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드의 등 뒤로 4개의 갓 핸드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끔찍하게도, 갓 핸드들은 어제 보았던 그 황금 망치들을 하나씩 거머쥐고 있었다.
당황하고 있는 이야루그트에게 그리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사과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이야루그트가 발끈하고 말았다.
“뭐라…! 그럼 내가 네게 무릎이라도 꿇어야한단 말이냐! 지옥제일 검사인 내가! 고작 인간 따위에게!!”
“고작 인간 따위가 아니라 주인님이지.”
그리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퍼퍼퍼펑!!
갓 핸드들이 이야루그트에게 덤벼들었다.
폭음과도 같은 파공성을 터뜨리면서 미친 듯이 망치를 휘둘러댔다.
“이익! 이 무엄한 놈이 또 나를!!”
꽈드득!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이야루그트가 이를 갈았다.
무식하게 휘둘러지는 황금의 망치들.
정말로 이상하게도 피할 길을 찾기 어려웠던 까닭에 방어를 시도했다.
한데.
까앙!!!
“억?”
가장 선두에 있는 묠니르를 마검으로 맞받아친 이야루그트가 경악성을 내질렀다.
묠니르가 내포하고 있는 위력은 그가 힘으로 맞상대하기도, 기술로 흘려내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했기에.
‘뭐, 뭐지? 어째서 무기의 위력이 어제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거지?’
그렇다.
지금 이야루그트는, 하필이면 +10묠니르를 맞받아치고 있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강력한 충격을 견디지 못한 마검 <이야루그트>의 내구력이 80 하락하였습니다.]
[망치에 얻어맞은 충격이 큽니다. 0.3초 동안 경직됩니다.]
[망치에 얻어맞은 충격이 큽니다. 0.1초 동안 경직됩니다.]
[0.1초 동안…]
명중률 100퍼센트를 자랑하게 된 궁극강화 묠니르에 얻어맞을 때는 0.3초 경직.
그 외 묠니르에 얻어맞을 때 또 0.1초씩 경직된다.
네 자루 묠니르가 번갈아 가면서 때리면 이론적으로 무한 경직도 가능하다.
이야루그트는 어제보다 더 볼품없는 꼴로 쓰러지고 말았다.
“끄… 끄으윽… 이럴… 수가…”
어제는 그나마 분리되는 검에 허를 찔렸다는 핑계거리라도 있었지, 오늘은 아니다.
처참할 정도로 완벽하게 패배해버렸다.
그것도 무기를 상대로!
“내가… 이 이야루그트가 고작 무기와 싸워서 지다니…!”
심지어 저항조차 못해보았음에 울분을 토하는 이야루그트.
소멸하는 불꽃처럼 영혼으로 회귀하기 시작하는 그의 육신을 지긋이 바라보던 그리드가 입을 열었다.
“이거야 원. 나는커녕 내 무기조차 못 이기다니, 그렇게 약해서야 어디 쓰겠어?”
“잘난 척하지 마라…! 네가 강한 게 아니라 네 무기가 강한 거니까!!”
“그래, 그리고 그 무기를 만든 게 바로 나지. 그러니까 내가 강한 거다.”
“……!”
이야루그트가 합죽이가 되었다.
그리드의 말이 뭔가 납득하기 어려우면서도 반박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에게 그리드가 빙그레 웃어주었다.
완벽한 승자의 미소다. 여유가 철철 넘쳤다.
“내일 또 보자. 내일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최소한 살기만큼은 지워주길 바란다.”
“크윽…!”
어느덧 마기를 완전히 손실한 이야루그트가 마검 속으로 되돌아갔다.
그리드는 남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이건 진짜 대박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도 강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 힘을 더욱 더 격렬하게 만끽하고 싶다고 생각한 그리드가 뱀파이어의 도시로 눈을 돌렸다.
“경험치 버프가 아직 남아있는 동안 신기록을 세워볼까?”
템빨단의 최정예 7인 파티가 뱀파이어 도시 한 바퀴를 도는데 소요하는 시간이 최근 5시간까지 단축됐다고 들었다.
그 기록을 혼자서 깨보면 어떨까?
단언하건데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세상을 개벽시킬, 그리드의 광렙 신화가 태동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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