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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98화 (293/1,794)

템빨 23권 - 12화

“우…. 우으윽…”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내가, 같은 곳에 두 번이나 공격을 허용하다니?

그것도 농기구에!

“다, 당신의 정체가 대체 뭐야?”

스스로를 최강의 플레이어라고 자부해왔던 백요에게 있어서 눈앞의 농부는 가히 충격적인 존재였다.

행색은 영락없는 농부였지만, 평범한 농부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컸다.

피아로 본인 또한 스스로를 평범한 농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리드 공작각하를 섬기는 대단한 농부다.”

“대단한…! 농부!!”

“그렇다.”

“그렇… 어? 뭐야! 그러니까 결국은 농부라는 뜻이잖아!”

“그렇다만?”

‘말도 안 돼! 이거 미친놈인가?’

왠지 상종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피아로로부터 뒷걸음치면서 물러난 백요가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려다가 문득, 오래 전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7대 길드가 레이단에 침공하였다가 농부들에게 격퇴 당했다.’

라는 짤막한 소식.

너무 황당무계한 소식이었고, 애초에 7대 길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가볍게 흘러들었던 바가 있다.

‘그래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7대 길드는 설마 진짜로 농부들에게 격퇴 당했던 건가?

눈앞의 농부는 진짜 농부고?

‘농부가 이렇게 강할 수 있나?’

가능하다고 치자.

그럼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레이단의 농부들은 이렇게 강하다고?’

레이단.

그리드가 다스리는 곳이다.

농부조차도 이만큼 강하다면, 병사들은 도대체 얼마만큼이나 강하단 뜻인가?

‘말이 안 돼!’

백요의 혼란이 가속화되는 그때 피아로는 재차 권유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 땅을 갈고 씨를 심자. 그대에게는 충분한 재능이 있다. 필시 살빼기에도 도움이 될 터이니 손해 볼 것은 없어.”

백요가 도끼눈을 떴다.

“농사일에 재능이 있다고 들어봤자 하나도 안 기뻐!”

그리고!

“그놈에 살! 살! 살!! 왜 멀쩡한 사람을 돼지라고 놀리는 거야!! 이봐, 아저씨! 만약 내가 남자였어도 돼지라고 놀렸을 거야? 당신, 지금 완벽히 남녀차별에 기인한 성희롱을 하는 거라고! 고소해버릴 거야!!”

“음? 나는 돼지라고 말한 적이 없다만?”

피아로가 드물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남녀차별에 기인한 성희롱이라니? 그리고 고소는 무슨 뜻이지?

백요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피아로는 당최 이해가 안 갔다.

백요는 동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뭣들 해? 우선 나와 함께 이 미친 아저씨부터… 헉?”

뒤늦게 주변을 둘러본 백요가 경악했다.

무려 1천 명의 대군이 채 20명도 안 되는 적들에게 도륙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나중에 나타난 그리드가 소환한 기사들의 활약이 압권이었다.

“지나갈 수 있으면 지나가 봐라! 푸하하핫!!”

“이, 이런 제길.”

“너무 단단하잖아! 이걸 어떻게 뚫어?”

대머리 반트너가 내세우고 있는 방패 하나에 아군 수십 명의 발이 묶였고,

“크하하하하핫!!”

“으아아악!”

“크억!”

툰이라는 이름의 외눈박이가 광소를 터뜨릴 때마다 아군 대여섯 명이 박살이 났다.

“…”

“헉…”

“윽…”

사신 페이커가 소리도 없이 나타날 때마다 영문도 모르고 죽어나가는 아군들은 부지기수였다.

무엇보다도 대단한 사람은.

“섬화의 검.”

“캭!”

“커억!”

아스모펠이라는 이름의 NPC였다.

그가 장검을 휘두르는 족족 아군들의 목이 떨어져나갔다.

필시 기사급 NPC 같았지만, 레이단은 농부조차도 강한 도시라지 않은가?

일개 병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일개 병사조차도 저렇게 강하다니…!”

“…?”

이젠 심지어 일개 병사취급까지 받게 된 아스모펠이 귀를 의심하는 그때.

“에잇!”

어떻게 봐도 승산이 없다.

한 명, 한 명이 블러드 카니발들과 비견되거나 그 이상으로 강한 템빨단원들. 거기에 그들을 압도하는 NPC 2명.

이 괴물들을 상대로는 수적우위가 무색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백요가 그리드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적의 수장을 인질로 삼아서 전세를 역전시킬 계획이었다.

피아로가 따라붙었지만 예상한 바였다. 백요는 현명하게 대처했다.

“체지방 상승!”

[체내의 지방량이 일시적으로 10배 상승합니다.]

[지속시간 동안 적의 공격을 무효화시키고, 이때 자신을 공격하는 대상을 최대 10미터 바깥까지 날려버립니다.]

푹!

“허?”

백요의 퉁퉁한 뒤통수에 호미를 찍은 피아로가 놀랐다.

폭하는 소리가 나지 않고 푹하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무척 미묘한 차이였지만 피아로가 이질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그와 동시였다.

출~~렁!!

호미에 찍히면서 깊이 쑥 들어갔던 백요의 뒤통수가 다시 볼록 튀어나왔다.

이때 발생한 탄력으로 인하여 피아로의 몸은 호미 째로 멀리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그리드으으으!!”

방해물이 사라졌으니 두려울 게 없다.

도끼눈을 뜬 백요가 동생의 원수이자 적장인 그리드를 향해서 성난 멧돼지처럼 돌진했다.

발바닥의 지방탄력을 이용하여 높이 떠오른 그녀가 탱탱 볼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앞세워서 하강하는 모습, 웃기기보다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물리 공격은 튕겨낸다 이거지?’

이미 멀리 날아간 피아로를 보고 대처법은 강구했다.

“갓 핸드. 무한 매직 미사일.”

피잉-!

피핑! 피피피피피핑!!

그리드의 후위로 떠오른 4개의 황금 손이 백요에게 계속해서 백색 섬광을 쏘았다.

<부조리의 반지>덕분에 스킬 자원 소모량이 절반이나 줄어든 그리드였기 때문에 전보다 매직 미사일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매직 미사일?’

최하급 마법 따위, 내게 아무런 위협도 안 된다.

콧방귀 뀌는 백요였지만…

펑!

퍼퍼퍼퍼펑!!

“욱?”

백색 섬광에 타격을 입을 때마다 백요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파?’

아픈 게 당연했다.

<수인족 왕의 눈물>효과로 갓 핸드에 귀속된 <매직 미사일(강화)>의 위력에는 그리드의 지력 수치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현재 매직 미사일의 레벨은 무려 3이었다. 국가대항전에서 꾸준히 사용한 끝에 1레벨이 또 오른 것이다.

3레벨 매직 미사일(강화)!

그것은 대상의 마법 저항력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리드의 지력에 120퍼센트에 해당하는 피해를 고스란히 입혔다.

번헨 열도에서 40개의 지력 엘릭서를 복용하고 1,171까지 폭등한 지력의 120퍼센트 말이다!

[2,576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2,576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2,576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2,576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으아아아앗!!”

실로 황당한 데미지.

연신 얻어맞으면서 물약을 복용한 백요가 순식간에 그리드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녀의 육중한 몸은 그리드에게 닿지 못했다.

이미 브라함의 부츠를 착용하고 있던 그리드가 플라이를 사용, 그녀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순간 자신은 도리어 하늘 위로 떠오른 까닭이었다.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퍼펑!

퍼퍼퍼퍼퍼퍼퍼펑!!

4개의 황금 손과 함께 쉬지 않고 매직 미사일을 폭격하는 그리드.

그는 한 가지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백요는 물리내성에 특화되어 있다.’

풀 버프 상태의 데미안과 호각을 겨뤘던 아수라 레가스의 공격력은 그리드조차 두려워하는 수준이다.

한데 백요는 그를 가볍게 이겼을 뿐더러, 실제로 피아로의 호미질과 낫질에 3회나 찔리고도 살아남았다. 특히 한 번은 튕겨내기까지 했다.

막강한 방어력과 더불어서 물리공격을 무력화시키는 특성을 지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마법 폭격이야.”

퍼펑!

퍼퍼퍼퍼퍼퍼퍼펑!!

“크아아아아악!!”

무표정한 얼굴로 하늘 위에 떠오른 채, 매초마다 다섯 발의 매직 미사일을 방출하는 그리드의 파괴력.

그것은 기존의 마법사 랭커들과 비견되는 수준이었다.

대장장이가 발휘하면 안 되는 수준의 압도적인 힘이었다.

특히 마법에 취약한 면이 있는 백요에게 그 힘은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치사한 새끼…! 남자라면 내려와서 정정당당하게 싸우라고!!”

어느새 대마법사용 액세서리 몇 개를 착용한 백요가 발악적으로 외쳤다.

그리드가 비꼬았다.

“엥?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돼? 그거 완전히 성차별 아니냐?”

‘뭐 저딴 놈이 다 있어!’

블러드 카니발에는 나쁜 놈, 미친 놈, 얄미운 놈이 수두룩하게 많았다.

하지만 그리드보다 얄미운 놈은 또 없었다.

국가대항전에서 2년 연속 활약하고 대길드의 수장이기도 한 자가 저토록 가볍다니!

이를 간 백요가 다시 한 번 도약했다. 그리드와의 접근을 재차 시도하는 것이었다.

물론, 막무가내식 돌진은 아니다.

백요는 최강자.

그리드의 매직 미사일 타이밍과 궤도를 순식하게 계산한 후 나름 완벽한 타이밍에 도약하는 것이었다.

한데 그때.

“어디 감히 주군께.”

멀리 날아갔던 미친 농부가 다시금 뒤따라오더니 도리깨질을 해왔다.

처얼썩!!

“찰지구나!”

“꺄악!”

뒤룩뒤룩하게 살집이 오른 등짝을 도리깨질 당한 백요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 비겁한 놈들! 2대1이 어디 있어!”

“싸움에서 비겁한 게 어딨어?”

어깨를 으쓱이며 비웃는 그리드였지만, 얄밉게 말하는 것치고 피아로와 합격을 펼치지는 않았다.

피아로 혼자서 백요를 상대하게끔 만들었다.

정정당당하려고?

아니다.

그리드는 블러드 카니발의 3차 전직자들을 모조리 해치운 후, 그들이 드롭할 아이템을 챙기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강한 백요에게 굳이 길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었다.

“피아로, 걔가 죽을 때 떨어뜨리는 아이템… 아니, 전리품 잘 챙겨줘.”

“예, 주군!”

여기서 그리드가 지칭하는 ‘걔’란 당연히 백요였다.

“죽긴 누가 죽는다는 거야!”

감히 나를 우습게 봐?

눈이 뒤집힌 백요가 궁극기를 사용했다.

“지방 연소!”

치이이이이이익-

200킬로그램이 넘는 백요의 몸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백요의 몸 속에 알차게 들어차있는 지방들이 연소되는 과정이었다.

“호오?”

“헐.”

피아로가 흥미를 보였고, 그리드를 비롯한 템빨단원들은 모두 경악했다.

비상식적으로 뚱뚱한 나머지 보기에 다소 부담스러웠던 백요의 몸매가 갑자기 모델처럼 날렵해졌기 때문이다.

늘씬하게 뻗은 긴 팔과 다리, 잘록한 허리, 그리고 탄력이 넘치는 엉덩이와 커다란 가슴.

심지어 얼굴은 엄청난 미인이다.

미모 세계 투탑급인 유라, 지슈카와 비견하기에는 다소 개성이 부족했지만 경국지색쯤은 되었다.

말로만 들었던 긁지 않은 복권이 바로 백요였던 것이다.

“크라우젤조차도 나의 이 모습은 보지 못했어. 영광으로 알아.”

자신만만하게 외친 백요가 피아로에게 기다란 다리를 내질렀다.

회전력이 실린 발차기의 위력이 대단하여 태산마저 가를 기세였다.

‘기세에 눌려서 회피를 시도하겠지?’

찰나의 순간.

피아로의 대응을 예측한 백요가 다음 공격까지 연계하려는 순간이었다.

“필멸.”

폭!

[사망하였습니다.]

“…?”

호미질 한 방에 태양이 떨어졌다.

대장격이었던 백요가 죽자 블러드 카니발과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모조리 죽이고 전리품을 빼앗아라!”

그리드의 힘찬 명령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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