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97화 (292/1,794)

템빨 23권 - 11화

<부조리의 반지>

등급:레전드리

내구력:7/10

*마법이나 스킬 사용에 소모되는 자원을 절반 감소.

*마나 회복속도 2배 상승.

대마법사 파울드가 제작한 아티팩트입니다.

우연히 탄생시킨 역작으로서, 이치를 무시하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사용 조건:없음

‘호오, 이것 참 대단한 물건이군. 파울드 놈이 말년에 제대로 한 건 했어.’

브라함의 영혼이 드물게 흥미를 보였다.

“파울드를 알아?”

질문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면박을 주었다.

‘영원한 2인자 파울드를 모르느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만한 이름인데 말이다.’

“모르니까 묻지.”

‘흐음… 하긴, 대장장이인 네가 마법사의 역사를 모른다고 해서 비난할 필요도 없지. 파울드는 불쌍한 녀석이다. 하필이면 나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평생토록 정점에 올라보지 못했던. 뭐, 비운의 인물이랄까. 꽤 제법이기는 했다만 결국 이 몸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녀석이었다.’

“어련하시겠어.”

브라함의 자화자찬에 내성이 생긴 그리드였다.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은 그가 검정색 반지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반지의 안쪽 면에는 의미불명의 도형과 글자들이 깨알 크기로 빼곡하게 음각되어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 섬세한 기술에 감탄하였을 테지만, 손재주가 3천에 육박하는 그리드에겐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이 작은 문자들이 아티팩트의 효과를 발휘하게 만들어주는 건가?”

‘맞다.’

“하여튼 진짜 대박이네.”

마법이나 스킬 사용에 소모되는 자원이란 단지 마나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마법과 스킬의 종류에 따라서 생명력을 소모할 수도, 스태미나를 소모할 수도 있었고 이 모든 것이 다 자원에 포함됐다.

일부 전투 특화 직업군이 보유한 <투지> 등의 특수 게이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싸우면 싸울수록 축적되다가 궁극기를 사용할 때 소모되는 그것들 말이다.

“진심 개쩐다.”

자원 소모를 줄여주는 아티팩트의 가치는 천문학적으로 높다.

특히 그리드처럼 상위스킬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자원 소모 감소 아티팩트는 꿀맛 같은 것. 아니,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리드는 이토록 좋은 아이템을 왜 여태껏 사용하지 않은 걸까?

이유야 간단하다.

워낙에 희귀해서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단 한 번.

자원소모량을 20퍼센트 줄여주는 아티팩트가 경매장에 등장했다가 익명의 플레이어에게 30억 원에 낙찰되었던 사건이 있다.

그리고 당시 30억 원에 아티팩트를 낙찰 받았던 그 의문의 인물을, 훗날 랭커들은 ‘수지맞은 인간’이라며 부러워하게 됐을 정도다. 자원 감소 아티팩트는 그만큼 귀했다.

‘그런데 이 반지는…’

자원 소모량을 무려 ‘절반’이나 감소시켜준다. 덤으로 마나의 회복속도를 2배 상승시켜줬다.

가치는 측정불가.

만약 이 반지를 경매장에 올려놓는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부자들이 아귀처럼 달려들 게 뻔했다.

“대박… 진심 대박…”

부들부들!

역대급 득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득템을 하게 된 그리드가 감격에 몸을 떨었다. 심지어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사람 한 명 잡았답시고, 혜성그룹이라는 대사 10번 외친 것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번 셈이었으니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PK범들만 찾아 죽이는 전문 현상금 사냥꾼이라도 되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해보던 그리드가 이내 이야루그트로 시선을 돌렸다.

허공에 떠오른 이야루그트는 여전히 폭풍과도 같은 검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진화의 과정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 것이다.

‘과연, 레전드리 등급은 특별하다 이건가.’

크라우젤과의 대결 도중에 진화되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기다리는 그리드의 시야로 곧 고대하던 알림창이 떠올랐다.

[마검 <이야루그트>의 성장이 완료되었습니다!!]

“오오…!”

서서히 허공으로부터 내려와 그리드의 얼굴 앞에 멈춰서는 이야루그트.

녀석의 투명한 검신은 전보다 더욱 더 짙은 혈빛을 머금고 있었다. 최고의 보석 중 하나라는 레드 다이아몬드보다 더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물결치는 모양의 검정색 손잡이가 인상적이었다.

간결하고 세련되어 다소 여성적인 취향이 강했던 이야루그트의 전체적인 디자인에 강렬함이 추가됐다.

이제는 아름답기만한 것이 아니라 거친 위압감까지 발산하는 것이다.

‘성능은 얼마나 더 좋아졌을까?’

두근두근!

기대감에 들뜨는 그리드의 시야로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이야루그트>의 고유 스킬과 특성이 개방됩니다!]

[<이야루그트>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띠링~

<이야루그트>

등급:레전드리(성장형)

내구력:522/522 공격력:1,293

*소드 마스터리 레벨 +7

*스킬 <피의 울음>이 생성됩니다.

*스킬 <지옥 검귀 이야루그트 소환>이 생성됩니다.

*공격 명중 시 대상의 치유력을 70% 감소시킵니다.

*치명타 발동 시 대상에게 5초 동안 유지되는 출혈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출혈 데미지는 당신의 공격력과 비례합니다.

*3콤보 달성 시 대상의 출혈 효과를 극대화시킵니다. 이때 대상에게 입히는 피해량이 2초 동안 300% 증가합니다.

*5콤보 달성 시 대상의 이성을 0.3초간 붕괴시킵니다. 이때 스킬 <나락의 검>을 연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검귀의 감각>효과가 발동하며 회피율이 5초 동안 극단적으로 높아집니다.

*이야루그트 소환 상태에서는 검귀의 감각 효과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사용 조건:이야루그트의 선택을 받은 자.

“헉.”

기본 공격력이 무려 500이나 올랐다.

레전드리 등급의 <그리드의 대검>과 비견되는 수치다.

물론, 한손 검이니만큼 공격속도는 대검보다 더 빨랐고 최대 데미지 기댓값은 그리드의 대검보다 이야루그트가 훨씬 더 높아졌다.

기본 공격력만 놓고 봐도 말이다.

그 외 옵션들의 효과가 모조리 상승한 것을 고려해봤을 때, 이야루그트는 이제 한손 검계의 실패작이라고 자부해도 될 정도로 최강의 무기였다.

‘오늘 왜 이러지?’

이야루그트의 등급성장 결과물은 기대 이상.

그리고 예상치 못한 득템.

오늘처럼 운 좋은 날이 또 있던가 싶다.

‘이거 어쩌면…’

악운이 덮쳐오려는 징조?

“미친.”

대체 얼마나 큰 악운이 닥쳐오려고 이러는 거지?

김칫국 마시며 불길해하던 그리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세이렌 중앙 시가지.

레가스와 백요가 싸우는 곳으로 추측되는 그곳으로부터 거대한 폭음과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온 까닭이었다.

‘레가스…!’

적의 숫자는 최소 1천, 거기에 3차 전직자가 서른 명이라고 했다.

상기한 그리드가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두 번 다시는 동료들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

‘흑요가 죽었어?’

흑요가 사망하였다는 파티 알림창을 확인한 백요가 이를 갈았다.

“누가…! 누가 감히 내 동생을!!”

망상가인 흑요는 레벨 올리기가 무척 힘들다.

본신의 전투능력이 미약하여 사냥을 거의 분신에게만 맡겨야 했는데, 그 분신이 죽으면 흑요 본인의 경험치가 떨어져버렸다.

레벨 올리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죽음이란 반드시 피해야하는 일이었다.

특히 현재 흑요의 악인 수치는 최대치였다. 거의 99퍼센트의 확률로 아이템을 떨어뜨렸을 수가 있다.

최소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을 잃었다는 뜻.

안 그래도 분신에게 무장시킬 아이템을 계속해서 장만하느라 늘 자금난에 허덕이는 흑요에게 있어서 이번 죽음은 치명적으로 작용할 터이다.

“죽여 버린다!!”

이제 수인족 처치 퀘스트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수인족을 1만 명, 10만 명 죽여서 보상을 얻더라도 흑요의 죽음과 맞바꿀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격분한 백요가 모든 길드원과 그들의 군세를 자신의 곁으로 집결시켰다.

“수인족은 나중이다! 우선 템빨단을 끝장내!!”

본래 블러드 카니발에는 상하관계라는 게 없다.

심지어 마스터조차도 길드원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설령 명령을 내릴지언정 따를 길드원도 없었다. 대신 서로 의뢰나 퀘스트를 교환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비상사태다.

이대로 템빨단이 날뛰게 놔뒀다가는 모조리 엿 되는 수가 있었다.

이를 악 문 블러드 카니발 소속 플레이어들이 각자 이끌어왔던 용병단, 혹은 친구들과 함께 백요의 주변으로 집결했다.

그러자 레가스와 노에는 졸지에 1천 대군에게 포위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캬악! 이게 뭐냐옹!”

과거, 비룡의 냄새를 맡고 드래곤이라고 착각해서 벌벌 떨었던 노에다.

제아무리 지옥제일마수일지라도 죽음은 두려웠다.

눈을 바둑알처럼 뜨고서는 후덜덜덜, 곤두세운 털을 떠는 노에를 레가스가 품에 안았다.

“걱정마. 너만은 지켜줄 테니까.”

“묘옹… 감히 인간 주제에 멋지다, 냥.”

레가스를 바라보는 노에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그때였다.

“레가스님!!”

뒤늦게 달려온 라우엘의 외침이 들려왔다.

템빨단 본대와 후로이, 그리고 극검과 폰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다급히 소리친 라우엘이 <천룡의 눈물>을 전개, 비와 번개를 불러일으켰고 제드노스와 라엘라는 마법을 연사했다.

지슈카도 쉬지 않고 활을 쐈다.

폰과 극검, 그리고 이벨린을 비롯한 근접 딜러들은 후로이의 버프와 토반의 탱킹 능력을 앞세워서 전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레가스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홀로 너무 오랫동안 싸웠다.

동료들이 그에게 도달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그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잘 가, 노에.”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화사하게 웃는 레가스.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금발 사이로 상냥한 눈빛을 보낸 그가 노에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힘껏,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하늘 높이 집어던졌다.

덕분에 무사히 전장으로부터 이탈한 노에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주인이다! 냥!!”

“종횡무진.”

목표 대상에게 도달하기까지 모든 논타켓 스킬을 회피해버리는 최강의 칭호 스킬.

이를 토대로 레가스의 곁까지 순식간에 도달한 그리드가 분노로 점철 된 음성으로 읊었다.

“기사 소환. 페이커, 반트너, 툰, 아스모펠.”

“너구나! 내 동생을 죽인 놈이! 그리드으으으으!!”

레가스를 공격하려다가 갑자기 나타난 그리드를 발견하고 공격대상을 바꿔버리는 백요.

원망이 뒤섞인 고성을 내지르면서 팔을 휘두르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친 그리드가 마지막 기사의 이름을 서늘히 뱉었다.

“그리고 피아로.”

“…!!”

팟!

파파파파파파팟!!

그리드와 레가스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금빛 기둥이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사내들 중, 흙 묻은 작업복 차림에다가 손에는 호미를 쥔 중년인이 백요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앙!!

“…허억?”

갑자기 나타난 농부를 보고 내가 좀 많이 당황한 걸까?

어떻게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급소를 공격당한 거지?

“내, 내게 이딴 치욕을…”

이마에 박힌 호미를 부여잡으면서 뒷걸음치는 백요의 표정이 혼란과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급소를 공격당했어도 그렇지, 고작 농기구에 찍힌 것치고는 너무 아팠다.

성큼.

백요에게 한 발 크게 다가선 농부가 허리춤의 칼집(?)으로부터 이번엔 곡도… 아니, 낫을 꺼내들었다.

“자네, 나와 밭일해보지 않겠나? 살빼기에 도움이 될 걸세.”

“무슨 개소리를!”

신경질적으로 이마의 호미를 뽑아낸 백요가 피아로에게 정권을 내질렀다.

무려 2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체중이 한 곳으로 집중 되는 공격으로서, 엄청난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레가스조차도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피하느라 급급했던 공격이다.

하지만 피아로에게는 큰 위협을 주지 못했다.

라우엘이 태양급 강자라고 표현하는 존재들, 아직까지도 그 수준이 전설의 농부에게는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폭!

호미에 찍혔던 이마를 이번엔 낫에 찔린 백요가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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