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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94화 (289/1,794)

템빨 23권 - 8화

세이렌에 입장하기 전.

라우엘이 <풍룡의 숨결>을 캐스팅했다. 그리고 세이렌에 입장함과 동시에 전개시켰다.

그러자 라우엘을 포함한 총 8명의 템빨단원을 노리고 날아들었던 화살과 단일 마법들이 죄다 역풍을 맞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에 파괴되는 건물들을 확인한 라우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쓸데없이 거창한 환영인사로군요. 남의 동네에서 너무 소란피우지 맙시다.”

“뭐지? 우리한테 첩자라도 심어뒀나? 어떻게 알고 기습에 미리 대비한 거냐?”

라인하르트 골렘 침공전 당시 템빨단 소속으로 활약했던 유페미나와 그녀를 지원하러온 폰 일행.

정황상, 이번 퀘스트에 템빨단이 대대적으로 개입하고 있음을 블러드 카니발이 모를 리 없었다.

블러드 카니발은 템빨단의 새로운 지원을 차단해야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세이렌 입구에 병력을 대기시켰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입장하는 족족 쏴 죽였다.

하지만 애꿎은 사람들만 죽어나갔을 뿐이다.

정작 표적이었던 템빨단의 새로운 지원군은 그 기습을 가볍게 막아내 버렸으니 황당할 따름이다.

어이없어하는 블러드 카니발에게 라우엘이 코웃음 쳤다.

“당신들의 생각조차 읽지 못한다면 템빨단의 참모가 된 의미가 없죠.”

잘났다는 표정을 짓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라우엘이었다.

그의 시선은 블러드 카니발의 3차 전직자들이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를 살피고 있었다.

‘카오스의 결계.’

착용자의 10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플레이어’의 귓속말을 차단시키는 아이템이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효용성이 떨어졌지만 비교적 가격이 싸고 구하기도 쉽다. 암살자나 게릴라부대가 애용하는 아이템이다.

‘역시, 저것 때문에 유페미나님과 선발대와의 교신이 끊기는 거였군.’

비교적 가격이 싸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는 <완전한 카오스의 결계>와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다. 카오스의 결계의 시세는 현금으로 5억이다.

1천 병사 모두에게 보급되었을 리는 없고, 블러드 카니발 소속의 3차 전직자 30명만 보유하고 있을 공산이 컸다.

즉, 현재 유페미나와 선발대는 블러드 카니발과 대치하고 있다는 뜻.

“서두르죠.”

자칫하다간 유페미나와 선발대 모두 목숨을 잃을 수가 있다. 특히 유페미나는 장기전에 취약한 인물이라 더 걱정이다.

초조함을 드러내는 라우엘의 어깨 너머로 화살촉 하나가 번뜩였다.

‘신궁…!’

얼굴을 굳힌 블러드 카니발이 일제히 방어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무의미했다.

퍼펑! 펑!

지슈카가 발사한 화살은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궤도를 바꿨고 결국에는 적의 허점에 완벽하게 꽂혀들었다.

솟구치는 선혈이 신호였다.

토반과 이벨린을 필두로 삼은 템빨단원들이 일제히 블러드 카니발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허억… 허억… 이것 참 쉽지가 않군.”

“그러게 말이다.”

레가스가 백요의 발을 묶어놓는 사이.

폰 일행은 적들을 최대한 배제한 후 유페미나와의 합류를 시도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유페미나의 위치 파악부터가 불가능했고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한 번에 대여섯 명씩 몰려오는 놈들을 해치우고나면 또 곧장 다른 놈들이 덤벼오는 형국이었다. 특히 후방에서 활과 마법을 사용하는 원거리 딜러들의 존재가 성가셨다.

그들을 상대로 수인족들을 ‘보호’하며 싸우는 일은 제아무리 폰 일행이라도 힘들었다.

“이대로 가면 끝이 없다. 스태미나가 떨어져서 죽겠어.”

“레가스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고…”

“귓속말 안 되니까 답답하네.”

“끄응…”

갈팡질팡하는 사이 또 새로운 적들에게 포위당한 폰 일행의 얼굴이 곤혹으로 물들었다.

적들의 평균 레벨은 고작 200초중반.

1대1로 싸운다면 초 단위로 해치울 수 있겠지만 다수를 상대하는 건 개념이 다르다.

스킬과 마나, 그리고 체력과 스태미나를 적절히 안배해야했고 집중력도 빠르게 소모됐다.

크라우젤이 아닌 이상 여러 방향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모조리 무력화시킬 수도 없었으므로, 지속적으로 생명력이 소모되는 건 덤이었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부여받은 미션의 내용에 있었다.

단순히 적을 전멸시키라는 미션이었다면 뒷일 생각 안 하고 일단 죄다 죽이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폰 일행에게는 수인족을 보호하고 유페미나와 합류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무턱대고 싸울 수가 없었다.

“일단, 수인족들을 보호하기에 적합한 시설을 찾아서 이동하도록 하자.”

극검은 은기사 길드의 마스터 출신답게 전장을 파악하는 능력과 통솔력이 수준급이었다.

라우엘에게 괜히 선발대 대장으로 임명된 게 아니다.

비교적 안전한 구역을 빠르게 파악한 그가 폰과 후로이에게 수인족을 인솔하여 이동하게끔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동 경로를 막고 있는 적들을 일망타진시켰다.

“발검, 섬(殲).”

“캭!”

“으아악!!”

과연 발검술의 위력은 군계일학이었다.

단, 마나의 소모가 크고 준비동작과 재사용 대기 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푸욱!!

“윽…!”

퇴로를 확보하고 검을 다시 칼집으로 회수하는 사이를 정확하게 노리고 날아오는 공격.

언월도에 상처를 입은 극검이 주저앉았다.

어마어마한 공격력이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극검이 언월도의 주인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치사한 새끼가 뒤치기를…!”

“전장에서 주변을 살피지 못한 네놈의 무능함을 탓해라.”

“무, 무능?”

무능!

극검이 제2회 국가대항전에서 얻게 된 수식어다.

극검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염병!! 무능한 놈한테 어디 한 번 맞아 죽어봐라!!”

곧바로 몸을 일으킨 극검이 언월도의 주인을 공격했다.

상대의 아이디는 맛다시.

어떻게 보나 한국인이었다. 그것도 군필자!

그에게 공격을 차단당한 극검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3차 전직자? 대한민국에도 3차 전직자가 있었어?”

맛다시가 어깨를 으쓱였다.

“많지 않을까? 너나 그리드와 달리 눈에 띄는 짓을 안 하는 것뿐이지. 세상 사람들 모두가 너희들처럼 나대길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

“이런 매국노들…!”

얼굴을 붉힌 극검이 검을 휘둘렀다.

“힘이 있으면서도 은둔생활이나 하다니! 국가대항전에 참가해서 조국의 위상을 높일 생각은 않고!!”

“민주주의국가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살던, 그건 내 자유다.”

언월도로 횡을 그린 맛다시가 극검의 검을 또 한 번 쉽게 맞받아쳤다.

극검은 일반적인 검사가 아닌 발검술사인 바.

소드 마스터리 스킬이 일반적인 검사의 소드 마스터리 스킬과는 달라서 평타가 매우 약했고 또한, 발검술을 제외하면 마땅한 공격 스킬도 없었다.

1대1 승부에 취약하다는 뜻이며, 이는 극검이 국가대항전 당시 PvP에 참가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극검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보조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극검은 혼자였다.

앞서간 폰과 후로이는 적들로부터 수인족을 보호하느라 필사적이었고, 수인족 병사들은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제길!’

재차 공격을 허용하기 시작한 극검이 치를 떨었다.

‘하필이면 발검술이 쿨 타임일 때 기습을 당해갖고…!’

온전한 상태였다면, 내가 아무리 1대1에 취약하더라도 이런 놈에게 지진 않았을 것이다.

극검이 억울해하는 그때였다.

“핫, 더럽게 약하네.”

누군가의 콧방귀 섞인 조롱이 들려왔고,

콰르르르르르르릉!

이어서 날아온 피의 기둥이 맛다시를 집어삼켰다.

[21,5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독하게 비릿한 피 냄새가 현기증을 유발합니다. 스킬 캐스팅 시간이 20퍼센트 상승하고 저항력이 20퍼센트 하락합니다.]

[갑옷 틈새로 끈적거리는 피가 스며들었습니다. 갑옷의 이음새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방어력이 10퍼센트 하락하고 둔화 상태에 빠집니다.]

[검이 피로 얼룩집니다. 검날이 무뎌져 공격력이 10퍼센트 하락합니다.]

‘뭣…!’

디버프 계열의 스킬은 데미지가 약한 게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맛다시를 집어삼킨 피의 기둥은 어지간한 플레이어의 궁극기만큼이나 강력했다. 심지어 디버프 내용도 치명적이었다.

맛다시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떤 괴물이…!’

설마, 네임드급 보스 몬스터라도 나타난 건가?

시선을 돌려본 맛다시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을 목격하고 할 말을 잃었다.

“블러드 워리어?”

템빨단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저자가 어째서 여기에?

“더 이상 나를 블러드 워리어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들 조직 이름하고 어감이 비슷해서 나까지 저급해지는 느낌이니까.”

카츠가 템빨단에 가입한 이유는 오로지 템빨을 원해서였다.

그에게는 그리드에게 잘 보여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기에, 극검이 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말했다.

“앞으로는 나를 그리드의 씨다바리라고 불러라.”

“씨다바리…!”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용어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카츠가 템빨단 소속임은 확실해졌다.

빠르게 머리를 굴린 맛다시가 즉시 행동에 나섰다.

퇴각이었다.

피가 난무하는 전쟁에서 블러드 워리어와 싸워 이길 리가 없었으니까!

“도망쳐? 역시 태생적 한계란 어쩔 수 없군. 천민에게는 프라이드라는 게 없어.”

그리드의 시다바리임을 자처하는 사람이 할 말인가?

극검이 의문을 품는 사이.

“천 명분의 피다. 많이 아플 거야.”

읊조린 카츠가 도망치는 맛다시를 정확히 겨냥해서 피의 기둥을 쐈다.

블러드 워리어의 스킬들은 사용하는 피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강화되는 속성 특화 스킬.

맛다시는 도망칠 수 없었고 잠시 후 잿빛으로 산화해버렸다.

“헐…”

3차 전직자를 순식간에 해치워버리는 카츠의 강함이 극검을 전율시켰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의 카츠는 크라우젤과 그리드 이상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보며 멍하니 있는 극검에게 카츠가 속삭였다.

“방금 있었던 일, 그리드에게 잘 말해줘라.”

“…”

***

우유처럼 하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에 금발이 젖어든다.

“하아… 하아…”

호흡을 한 번 내쉴 때마다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복제술사 유페미나.

그녀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어느덧 3번째 부활한 흑요와 싸우는 사이 스태미나가 거의 대부분 손실 된 까닭이었다. 복제술사가 체력 스탯이 높을 리 없었으므로 유페미나는 애초에 스태미나가 약했다. 여태까지 버틴 것도 용한 것이다.

“힛! 이히힛!”

반면 흑요는 팔팔했다.

거의 다 드러내놓고 있는 커다란 가슴을 출렁이며 웃은 그녀가 낼름, 기다란 혓바닥으로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이젠 내가 이기네? 힛힛!”

“당신 완전히 사기잖아요.”

대체 어떻게 자꾸 부활하는 걸까?

<스킬 관찰>조차 먹히지 않는 상대인지라 능력을 가늠할 수가 없다.

‘더 이상 못 버텨.’

이번 퀘스트는 실패다.

무려 8개월 이상 세이렌에 머물렀던 의미가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그동안의 노고가 헛된 것으로 퇴색되어버린다고 생각하면 너무나도 아쉽고 원통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페미나는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기껏 도와주러 오신 분들께 아무런 보답도 할 수 없게 되었네요. 빚지고 사는 건 질색인데.’

분한 표정을 금치 못하고 있는 유페미나에게 흑요가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힛! 히힛!! 이~제~ 죽~인~다~~~아~?”

“…하.”

복제해놓은 스킬들은 아직 꽤 남았다. 하지만 사용할 수 없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

결국, 마음을 정리하고 질끈 눈을 감은 유페미나가 고개를 떨궜다.

“빨리 죽여요.”

그녀에게 화답하는 것은 흑요의 칼이 아니라 누군가의 쓴 소리였다.

“포기하면 안 되지.”

“…힛?”

유페미나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던 흑요가 뒷걸음쳤다.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녀의 행동을 제약시킨 까닭이었다.

이 기운을 유페미나는 알고 있었다.

‘제(制)…!’

거기에 이은 살(殺)이 흑요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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