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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88화 (283/1,794)

템빨 23권 - 3화

그리드에게는 남은 과제가 많았다.

사하란 제국을 등에 업고 왕위에 오른 아스란.

자신에게 렌 왕자를 시해하였다는 누명을 씌우고 레이단을 견제 중인 그자와 승부를 봐야만 했고, 전쟁에 앞서서 뱀파이어 도시를 완전히 공략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사하란 제국의 제3황자가 무슨 꿍꿍이속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해야했으며 번헨 열도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도 강구해야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이 지옥과 연관될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유라의 육성에 힘을 쏟는 등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그리드는 개인적으로 해결해야할 일들이 있었다.

‘아다만티움과 블러드 스톤의 제련.’

15번째 레전드리 아이템을 만들 순간이 다가왔다.

3번째 특별한 일을 겪음으로서 한층 더 성장할 타이밍인 것이다.

라우엘의 말에 따르면 크라우젤이 ‘최강의 전투 특화 클래스’ 검성을 획득한 것 같았지만 그리드는 본인이 뒤쳐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 국가대항전을 통해서 템빨을 보다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었으니까.

‘크라우젤, 네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나 또한 강해지겠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은 이사부터 한다!’

무려 1년 1개월이라는 기간과 1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한 건물이 완공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가대항전을 토대로 쌓은 인지도 덕분인지, 벌써부터 사람들로부터 입주 문의가 끊이질 않았고 주변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100억 들여서 만든 건물의 가치가 사실상 150억까지 치솟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정도!

‘나도 이제 갓물주다!’

평생 월세만 받고 살아도 굶어죽을 걱정이 없다는 GOD물주!

아무나 꿈꿀 수 없는 신세계의 왕좌에 올라선 그리드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앞으로 제가 평생 두 분과 세희를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가족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맹세하는 그리드와 그를 얼싸안는 가족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사실이 드디어 실감났던 것이다.

30년 가까이 정들었던 낡은 집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향하고자 이삿짐을 싸는 그리드와 가족들은 한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

“으잉~~? 크라우젤이 랭커목록에서 화끈하게 사라졌다지 말입니다?”

벨토 왕국.

사하란 제국에 매년 막대한 공물을 바치느라 무척 가난한 나라이다.

20억 플레이어 중 벨토 왕국을 시작지점으로 삼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고 지리적으로도 중앙 대륙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오지로 분류됐다. 플레이어들의 발길이 뜸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이곳이 최근 변화하기 시작했다.

주변 약소국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흡수하면서 차츰 세력을 키워나갔다.

군대를 육성할 자금조차 없던 벨토 왕국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는가?

비공식 랭커 <아레스>와 그의 사병들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드디어 히든 클래스를 얻은 건가?”

주섬주섬, 적장들의 수급을 챙기고 있던 아레스가 럭의 외침에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럭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이구~~ 그 센 놈이 더 세지게 생겼는데 반응이 고작 그겁니까? 좀 더 화끈하게 긴장하셔야지 말입니다!”

“대장장이 나부랭이한테 털린 허접을 상대로 뭔 긴장을 하냐? 애초에 그놈은 네 상대도 아니잖아?”

“허유~~ 기억력 참 화끈하게 나쁘시지 말입니다? 저 그놈한테 졌었지 말입니다?”

“그때 넌 개피였고. 네 상태가 온전했으면 당연히 네가 이겼다.”

“흐음~~ 맞긴 하지만 어쨌든 그놈이 화끈하게 센 놈인 건 맞지 말입니다.”

“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럼 나보고 겁먹고 벌벌 떨고 있으라고?”

“흐유~~ 그게 아니고 크라우젤을 화끈하게 견제하시라 이겁니다. 그놈이 더 세지면 솔직히 조금 무섭지 말입니다?”

“에잉, 정말 별 같잖은 걸 다 신경 쓰게 만드네. 네가 알아서 애들 보내 밟아놓던가.”

“옛~~~썰!”

20억이라는 숫자는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것이다.

각국을 대표하는 최강자로 소개되고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랭커들?

Satisfy전역에 셀 수 없이 많이 흩어져 있는 은둔고수들을 상대로는 약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은둔고수들의 목표 또한 지존이 되는 것이었다.

아레스도 그중 하나였다.

그의 목표는 대륙의 지배자!

자신의 국가를 건설하고, 언젠가는 사하란 제국을 집어삼켜 황제에 등극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

수인족의 왕국 세이렌.

바다 아래 존재하는 이 신비로운 왕국의 규모는 상당히 작았다.

인구는 고작 10만이 전부였고 땅의 크기는 레이단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다.

사냥터와 퀘스트도 적어서 플레이어들의 발길이 차츰 뜸해졌다.

하지만 세이렌의 최초 발견자 유페미나에게 있어서 이곳은 천국이었다.

<수인족의 친구>라는 칭호 덕분에 그녀는 수인족들과 친밀도를 손쉽게 쌓았고 숨겨진 에피소드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4개월 전에는 히든 퀘스트도 획득했다.

<다가오는 멸망>

★히든 퀘스트★

수인족의 심장은 막대한 마력을 품고 있습니다.

사악한 인간들이 이를 노리고 세이렌을 침공해올 것이라는 미래를 <미옹>이 예언하였습니다.

대마법사의 제자 <무무드>이후 두 번째로 수인족들과 교감해온 당신!

미지의 적들을 상대로 세이렌을 수호하세요!

퀘스트 클리어 조건:적의 침공으로부터 세이렌을 지킨다.

퀘스트 실패 조건:세이렌의 내정시설이 70퍼센트 이상 파괴, 혹은 세이렌의 인구가 40퍼센트 이상 감소.

퀘스트 클리어 보상:칭호 <세이렌의 수호자>획득. <무무드의 마법서> 획득. 수인족 왕실과의 친밀도 MAX.

칭호 세이렌의 수호자가 정확히 어떤 효과를 지녔는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일국을 구원하고 특정 종족의 멸망을 막아내는 대가로 얻는 칭호의 효과가 저급할 리 없었다. 어마어마한 성능을 보이리라는 게 유페미나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유페미나는 그보다도 무무드의 마법서가 기대됐다.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의 제자, 무무드.

여러 문헌들이 ‘사실은 브라함보다 무무드가 더 뛰어난 마법사였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었다.

유페미나가 무무드의 마법서에 기대감을 품는 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마지막으로 수인족 왕실과의 친밀도 최대치.’

지난 세월 동안 유페미나는 수인족 왕 <맥스옹>과 꾸준히 친밀도를 쌓아왔다. 수인족 왕의 눈물을 얻기 위해서 맥스옹과 친해지는 건 기본전제였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왕자들이 문제였다. 보수적인 왕자들은 인간인 유페미나를 탐탁찮게 여겼고 그 탓에 여러 번 충돌이 발생했다.

하지만 세이렌을 수호하고 친밀도가 최대치가 된다면?

왕자들 모두가 유페미나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며 이는 템빨단과 레이단의 동맹관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반드시 지켜 보이겠어.’

국가대항전이 시작되기 두 달여 전.

유페미나는 이번 퀘스트에 대해서 이미 그리드에게 보고한 바 있고 그리드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노라 약조했다.

어느 날, 그리드가 유페미나의 귓속말을 받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던 그때 말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적의 침공이 예상보다 빨라!’

예언가 미옹의 예언보다 한 달이나 빠른 시점이었다.

이래서야 그리드로부터 약속 받았던 지원이 늦어지는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드님은 3주 후부터 원군을 보내겠다고 하셨는데…!’

서둘러야한다.

초조해진 유페미나가 그리드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그리드님!

[대상이 접속 중이 아닙니다.]

“뭐야!!”

본래 그리드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풀로 게임에 접속해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침 그리드가 깨어있는 시간대였고 말이다.

한데 비접속 중이라니?

당황한 유페미나가 재차 귓속말을 보내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

절박한 상황.

필요할 때 없는 그리드에 대해서 원망을 느끼기보다는 걱정부터 하는 유페미나였다.

그녀 또한 템빨단원으로서 그리드에게 높은 호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라우엘님!

유페미나가 차선책으로 라우엘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국가대항전이 끝나자마자 또 과중한 업무를 떠안고 있는 걸까?

라우엘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힘없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우리의 숨은 보석 유페미나님.

그에게 유페미나가 다급히 소리치는 순간이었다.

-세이렌으로 지원을 부…!

할-짝!

“꺅?!”

거칠면서도 부드럽고, 동시에 끈적거리는 무엇인가가 유페미나의 하얀 뺨을 핥았다.

기척도 없이 찾아온 불쾌감에 소름이 돋은 유페미나가 비명을 질렀고,

“히힛! 이히히힛!!”

개구리처럼 동그란 눈을 지닌 정체불명의 여자가 유페미나의 코앞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당신! 지금 내 뺨을 핥은 건가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외치며 물러서는 유페미나에게 여성이 기다란 혓바닥을 내밀어보였다.

“힛! 히힛! 부드러워!”

“기분 나빠!”

눈살을 찌푸리며 뺨을 부풀린 유페미나가 즉각 마법을 사용했다.

현재 정황상 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았으므로, 그녀가 문답무용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상적인 행동이었다.

“아쿠아 쓰론!”

재수 없지만 마법 실력만큼은 뛰어난 수인족 1왕자 파옹의 마법이다.

S급 마법으로 수속성 단일 공격 마법 중 위력은 최강이라는 게 유페미나의 판단이었다.

한데…

“힛! 이히히힛!!”

퍼엉!!

다크써클이 내려앉은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연신 기괴하게 웃는 여자.

아이디 ‘흑요’가 아쿠아 쓰론을 정면으로 맞고도 멀쩡하게 이동하여 유페미나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흥!”

유페미나가 20억 유저 중 최초로 에픽 클래스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경험과 실력, 그리고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복제술사로 전직한 이후부터는 필연적으로 하이랭커들의 자취를 쫓아 전투를 훔쳐봤기 때문에 안목도 뛰어났다.

적의 정면공격을 쉽사리 허용할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흑요의 공격을 회피하며 물러선 그녀가 사태를 심각하게 판단했다.

‘수속성 저항력이 높은 방어구와 아티팩트들로 도배를 하고 있잖아?’

세이렌을 침공해온 적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대목이었다.

-어서 세이렌에 지원을…!

재차 라우엘에게 귓속말을 보내는 유페미나의 시야로 절망적인 알림창이 떠올랐다.

[귓속말 보내기에 실패합니다!]

[<카오스의 결계>가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하, 정말로 준비가 철저하네요.”

기습이라는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별걸 다 갖췄다.

흑요의 커다란 가슴굴곡 사이에서 찰랑거리고 있는 검은 펜던트를 노려본 유페미나가 새로운 복제 스킬을 꺼냈다.

***

“형님! 사악한 인간 놈들이 외성벽을 부수고 도시 안까지 진입하였습니다! 놈들이 우리의 터전과 백성들을 짓밟고 있다고요!!”

허겁지겁 달려온 수인족 3왕자 골옹의 외침에 1왕자 파옹이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게 다 유페미나라는 인간 암컷 때문이다!”

그 저주받은 인간이 세이렌을 발견한 탓에 세이렌이 욕심 많은 인간들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원망하고, 저주하며 창과 오브를 챙긴 파옹이 군대에 출진 명령을 내렸다.

“나가서 싸워라! 적에게 맞서 우리의 나라와 백성들을 지켜라!!”

“우오오오!!”

수년 전 공주를 잃은 후부터 시름에 잠겨있는 수인족 왕 맥스옹을 대신한 파옹의 힘찬 외침이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하지만 전쟁이란 기세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세이렌을 침공해온 인간의 군세는 무척 강했다. 수인족 병사들은 상대가 안 될 정도였다.

특히 백발의 암컷이 귀신같은 실력자였다.

마법과 창술에 모두 능한 파옹조차도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파도의 신은 우리를 버리셨는가…!”

하필이면 파도 고래들이 수면기에 접어든 이때 적들의 침공을 허용하다니!

눈앞에서 가족과 동료를 잃고 죽어가는 수인족들의 처참한 절규가 수중도시 세이렌에 울려 퍼지는 그때…

“이 나를 선발대로 선택한 것은 무척 훌륭한 판단이다. 과연 라우엘의 안목은 제법이군. 괜히 영주대행 역할을 맡고 있는 게 아니야.”

“이봐! 폼 그만 잡고 빨리 엎드리라고! 비룡이 균형을 못 잡잖아!!”

“와… 저거 거의 반트너급 트롤이네.”

후로이의 비룡 위에 올라탄 다섯 명의 사내가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후로이, 극검, 폰, 레가스.

그리고 블러드 워리어 카츠였다.

같은 시간.

“히… 힘들어.”

그리드는 이삿짐 옮기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구석에 처박아놓은 핸드폰 벨소리를 아예 듣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드의 새로운 방 중앙에는 혜성그룹에서 만든 다이아몬드 클래스의 캡슐이 번쩍번쩍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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