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2권 - 23화
채챙!
챙!!
공방을 쉬지 않고 이어나가는 그리드와 크라우젤의 몸이 급기야 하늘까지 떠올랐다.
두 사내가 흘리는 핏줄기와 땀방울이 작열하는 태양에 반사되어 별빛처럼 흩어진다.
‘공격력이 너무 강하다.’
크라우젤은 풀 버프 상태의 그리드가 휘두르는 일격, 일격을 감당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전달되어오는 강한 파괴력을 흘려보내고자 매번 검의 궤도를 비틀어놓아야 했고, 이는 손목의 통증과 동시에 빠른 스태미나 하락을 유발시켰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심리적 압박감이다.
자칫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그리드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허용한다면?
결과는 패배로 직결되고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없게 된다.
반드시 어머니의 건강을 되찾아드리겠다는 유일한 바람이 무너질 수도 있다, 라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크라우젤의 정신력을 빠르게 소모시켰다.
‘반드시…!’
반드시 이긴다!
이를 악 물고 재차 다짐하는 크라우젤의 집중력이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하기 시작했다.
타고난 혜안과 <예리한 감각>의 패시브 효과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그가 쌍검술의 묘리를 제대로 펼쳤다.
백아도로 이야루그트를 흘려보낸 후, 그리드가 이야루그트를 재차 휘두르기까지의 간극을 노리고 단도를 찔러 넣는 것이었다.
푹!
챙!
푹!
채챙!!
그리드의 몸에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솟구쳐 오르는 핏줄기가 그의 얼굴 절반을 덮고 있는 가면을 점차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
그리드는 놀라고 또 놀랐다.
공격력, 속도, 체력 모든 면에서 내가 확실히 앞서고 있건만 어째서 나만 상처를 입는가?
도살귀의 안대와 이야루그트의 힘을 빌려서 찾아내는 최선의 경로로 검을 찔러봤자 결국 크라우젤의 몸에 닿지 않았으니 마치 허공에 삽질하는 심정이다.
‘이게 바로 하늘…’
아무리 발악해봤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과거의 그리드였다면, 타고난 재능의 차이를 원망하며 분개하고 급기야 열등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이성을 잃었을 터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리드의 내면에 열등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드는 도리어 지금의 상황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당신을 쓰러뜨린다면…!’
그래,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가 최강임을 입증하고 있는 크라우젤을 쓰러뜨린다면.
‘최강의 칭호는 자연스럽게 내가 쟁취하게 될 테지!’
부족한 재능조차도 결국은 내 발목을 붙잡을 수 없었음을.
그간의 내가 쌓아온 노력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내가!”
쩌정!!
“내가 이긴다!!”
푹!
스스로의 사기를 고취시키고자 있는 힘껏 소리치는 그리드였지만 전황은 최악이었다.
실제로 그는 또 한 번 크라우젤의 단도에 옆구리를 찔리고 있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수를 확보하고 있는 OGC방송국 해설진이 탄식을 금치 못했다.
『아아… 슬슬 끝이 보이는군요.』
『그리드 선수는 정말로 위대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어주었던 그의 활약을 우리는 절대 잊지 못할 테지요.』
『맞습니다. Satisfy불모지라고 조롱받아온 대한민국이 국가대항전에서 종합순위 1등을 노려볼 수 있게끔 만들어준 그리드 선수의 위업은 영원히 찬양받아 마땅하죠.』
『결국 그리드 선수가 패배하게 되었지만 그 누구도 그를 비난해선 안 될 것입니다. 그는 충분히 잘 싸워주었어요.』
혼자서, 고독하게 말이다.
경기를 시청 중인 한국의 젊은 Satisfy플레이어들이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반드시 나도 그리드처럼 강해질 거야.”
“다음 국가대항전에는 나 또한 참가해서 그리드의 힘이 되어주겠다.”
그리드와 같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잠식한다.
그렇다.
그리드가 크라우젤을 경외하고 선망하였듯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는 그리드가 선망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했던 과거의 찌질이가 말이다!
『갓리드는 지지 않을 겁니다.』
모든 해설진이 그리드의 패배를 예측하고 시청자들 또한 그에 반발하지 않는 상황.
모두가 상상을 초월하는 크라우젤의 강함에 압도당하고 있는 그때 극소수의 사람들만큼은 끝까지 그리드를 믿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OGC 객원해설 극검이었다.
『갓리드는 이전에도 크라우젤과 싸워서 이긴 바 있습니다. 아니, 비단 크라우젤 뿐만이 아니죠. 그는 늘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로 싸워서 이겨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반드시요!』
흥분한 극검의 외침을 시작으로.
“우리 아들 이겨라!!”
“…”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는 그리드의 부모님과 두 손을 꼭 모은 채 기도하는 세희.
“그리드가 이긴다에 내가 10만 골드 건다!”
“난 100만 골드!”
“그럼 난 전재산이야!”
“야, 이것들아. 그리드한테만 걸면 내기가 안 되잖아.”
템빨단원들.
“빌어먹을… 비록 우리가 옛날에는 너를 조롱하고 괴롭혔다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너는 평생 우리를 용서하지 못하겠지만, 우리 모두가 이제는 너를 인정하고 응원하고 있어. 그러니깐 제발 이겨라, 신영우!”
영웅고 45회 졸업생들.
“영우 오빠 파이팅!”
섹시여고생 예림이에 이르기까지.
그리드가 변화해온 과정을 조금이라도 곁에서 목격했던 사람들은 끝까지 그리드를 믿고 응원하였다.
그리드가 밟아온 노력의 길이 헛되이 되는 것을 그들은 원치 않았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믿음과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푸욱-!!
단도의 공격을 연달아 허용하고 자세가 흐트러지는가 싶던 그리드가 급기야 백아도에 목을 꿰뚫리고 말았다.
“…아!”
끝이다.
크라우젤을 응원하던 사람들이 환호하였고 반전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탄식을 흘렸다.
관중석 한쪽의 라우엘은 질끈 눈을 감았다.
크라우젤의 승리를 바라는 입장이라고는 하나, 역시 그리드의 패배를 두 눈에 담기는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보십시오! 그리드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데미안과의 대결에서 증명됐듯이 그는 불사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데미안과의 전투 당시 그리드는 생명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마법을 맞고 살아남아 데미안을 쓰러뜨렸었다.
그때부터 그리드에게 불사 패시브가 있음을 확신해온 해설진의 외침이 세계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리드는 하나의 알림창과 조우하고 있었다.
[<악귀의 피눈물>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공격력이 5초 동안 50퍼센트 상승합니다.]
크라우젤에게 공격을 허용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핏물에 젖어가던 반쪽짜리 가면.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는 기묘한 생김새의 그 <도살귀의 가면>이 완연한 적색으로 물든 것이다.
바로 이게 그리드의 노림수 중 하나였다.
“흐아아아압!”
쩌어어엉!!
“흡…!”
갑자기 상승한 그리드의 공격력은 크라우젤이 단지 기술만으로 흘려 넘길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그리드가 기합과 함께 힘껏 휘두른 이야루그트와 충돌한 순간 백아도의 내구력이 큰 폭으로 손실되었고 크라우젤의 오른팔이 경기를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압도적인 힘의 차이!
더 이상 중력의 영향을 견디지 못하고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하는 크라우젤의 동공이 흔들렸다.
‘광전사 스킬인가?’
생명력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공격력을 상승시켜주는 스킬 말이다.
결국엔 대장장이인 그리드가 어떻게 광전사 스킬을 갖고 있는가?
새삼 의문을 품을 이유 따위 없다.
이 또한 템빨일 테니!
“크윽…!”
추락하는 자신을 뒤쫓아 검을 휘두르는 갓 핸드들의 공격을 단도로 힘겹게 막아내는 크라우젤.
그의 얼굴에 암운이 드리웠다.
갓 핸드들의 뒤를 바짝 쫓아온 그리드로부터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검기가 발산되고 있었기에!
“파그마의 검무!”
“초감각!”
“연살파(聯殺波)!!”
쿠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해일처럼 쏟아지는 혈빛의 검기!
하나하나가 강맹한 기운을 품고 있는 검기의 폭격을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는 단 하나, 재앙이었다.
‘한 대라도 맞으면 끝이다!’
또한, 초감각을 발동한 이상 수초 내로 승부를 봐야만 한다.
그리드의 무적 패시브가 끝날 때까지 버티다가 최후의 일격을 꽂아 넣는 게 관건이었다.
스윽.
검기의 폭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크라우젤이 그리드와의 거리를 벌렸다. 이 과정에서 검기들이 끝까지 쫓아왔으나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소멸시켜버리는 크라우젤의 움직임은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흉포한 야수와도 같았다. 불사 상태에 돌입한 이상 거칠 것도 없었기에 막무가내로 크라우젤을 뒤쫓았고 순식간에 또 다시 거리가 좁혀졌다.
결국, 크라우젤은 그리드에게 공격의 기회를 허용하고 말았다.
츠칵-!
반월의 혈빛 검광이 크라우젤의 코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초감각 덕분에 간신히 피하고 목숨을 부지한 크라우젤이 그리드의 두 눈을 정확하게 노리고 반격했다.
물리적으로 실명상태를 유발할 의도였다.
스팟!
그리드의 목덜미로부터 분출 된 핏방울 중 하나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며 쏘아지는 백색의 섬광.
그것이 그리드의 눈에 닿기 직전의 시점에서 불사의 지속 시간은 3초, 초감각의 지속 시간은 4초 남았다.
까강!
아슬아슬하게 날아온 갓 핸드가 크라우젤의 공격으로부터 그리드를 지켰다.
2.5초, 3.5초.
“파(波)!”
검기의 파도를 전개한 그리드가 크라우젤에게 도달하며 공격을 연계하였으나 크라우젤이 또 이를 회피해버렸다.
2초, 3초.
쩌정!
그리드를 보좌하며 공격해오는 갓 핸드를 발판으로 이용한 크라우젤과 그리드의 거리가 다시 크게 벌어졌고,
“히랴앗!!”
크라우젤이 도망칠 것을 예측하고 있던 그리드가 어느새 꺼내든 창을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푸욱-!
“큭…!”
그리드의 투창 솜씨를 간과하고 있던 크라우젤의 어깨에 창이 꽂혔다.
크라우젤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지는 반면 그리드는 <엘핀스톤의 반지>덕분에 생명력을 일부 회복하였다.
1초, 2초.
여기서.
타앗!
이번에는 도리어 크라우젤이 그리드에게 달려들었다.
갓 핸드가 각기 다른 궤도로부터 발사하는 매직 미사일을 현란하게 회피하고 허무하리마치 쉽사리 그리드에게까지 도달했다.
초감각과 결합 된 백광보의 묘리였다.
‘드디어.’
이 힘든 싸움도 끝이다.
밝게 미소 짓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슈욱-!
염원을 담은 크라우젤의 백아도가 그리드의 목을 파고드는 순간이었다.
[지옥 문을 닫는 과정에서 큰 힘을 손실하였던 브라함의 영혼이 수면에서 깨어납니다!]
[스킬 <동화>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동화!”
그리드의 마지막 노림수가 전개됐다.
평소보다 더욱 더 날카로워진 눈빛을 번뜩이면서 백발을 너울거리는 그의 미모가 만개하니, 전 세계 여성 시청자들의 심장이 두근거렸고 반면 크라우젤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
“실드.”
쩌저저정!!
반투명한 마력의 장벽이 크라우젤의 검을 가로막는다.
충격과 절망으로 일그러진 크라우젤의 얼굴을 재미있다는 듯이 감상한 백발의 그리드가 이죽거렸다.
“하늘이 내린 재능인가. 하지만 그래봤자 아직은 애송이다.”
화르륵!
그리드의 손끝으로 불꽃이 맺히는 순간,
턱.
곳곳에 이가 나간 백아도를 던져버린 크라우젤이 그리드의 몸을 감싸고 있는 실드 위로 손을 얹었다.
“호랑이 울음.”
“……!”
퍼엉!
무형의 기가 실드 너머 그리드의 가슴을 관통하였고, 그리드가 발악적으로 발사한 불꽃은 크라우젤의 몸을 불태워버렸다.
“이, 이럴 수가.”
“도대체 누가 이긴 거지?”
거의 동시에 잿빛으로 산화하는 두 사내를 목격한 세상이 혼란에 빠졌다.
무너진 것은 하늘인가, 철옹성인가.
비디오 판독 전까진 섣불리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리드와 크라우젤 당사자들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어머니…”
몸을 떠는 크라우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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