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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83화 (278/1,794)

템빨 22권 - 21화

“최강의 칭호는 내가 갖겠다.”

하늘을 향한 도전!

그리드의 도발적인 한 마디가 스타드 드 프랑스 국립 경기장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궜다.

“그리드! 그리드! 그리드!!”

“너 따위가 크라우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누군가는 그리드를 응원하였고, 또 누군가는 그리드를 비난하였다.

대부분이 후자였다.

크라우젤의 인기가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당연하다.

크라우젤은 감히 시기와 질투조차 할 수 없는 경외의 대상인 바, 그를 향한 사람들의 마음은 각별한 것이었다.

애초에,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리드는 크라우젤의 상대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리드를 주제파악도 못하는 파렴치한 놈으로 보았다.

소란 속에서 크라우젤이 입을 열었다.

“이번엔 지지 않겠다. 아니, 결코 질 수 없어.”

충격적인 발언!

“…”

장내가 일순간 침묵에 빠졌다.

사람들 모두가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또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귀를 의심했다.

‘이번엔 지지 않겠다고…?’

‘이번엔…?’

‘설마!’

설마, 크라우젤은 이미 그리드에게 패배한 전력이 있단 말인가?

소란이 거짓말처럼 잦아들고 찾아온 적막 속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관중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진행자 대신 시스템 알림이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파그마의 검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이를 악 문 그리드와,

“백광보.”

무표정하던 얼굴 위로 비장한 결의를 띄운 크라우젤.

두 사내가 동시에 흑발을 흩날리며 보법을 밟았다.

그리드는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혈빛의 검광을 허공에 수놓아 화려한 반면, 크라우젤은 보다 기품이 있었고 은밀하기까지 했다. 그가 일순간 그리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백광보>

백의 검객의 근간이 되는 스킬로서 이동속도와 지형 적응력을 높여주는 보법이다.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서 돌진기, 회피기로도 응용할 수 있었다.

강렬한 햇빛이나 완연한 달빛 아래에서는 미약하나마 은신 기능까지 발휘했고 지금 결승전 무대 위에는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다.

크라우젤의 능력이 온전히 발휘되는 시간대인 것이다.

“우와!”

“사라졌어!!”

관중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드와 정면으로 맞부딪치는가 싶던 크라우젤의 모습이 일순 거짓말처럼 사라졌으니 놀랄 법도 했다.

이젠 또 귀신처럼 나타나서 그리드에게 치명상을 입힐 테지?

사람들 모두가 당연시 생각하며 기대하는 순간이었다.

검무를 전개하는 와중에 그리드가 마법을 사용했다.

“마력 탐지, 연(聯)”

<마력 탐지(강화)>

일반적인 마력 탐지와는 격이 다른 마법이다.

대마법사 브라함이 공식을 완전히 뒤엎어버림으로서 발동 시간를 최소화시키고 효과는 극대화시켰다.

이를 토대로 크라우젤의 위치를 순식간에 파악한 그리드가 허공에 수십 회의 검광을 그렸다.

그 탓에 기습에 실패한 크라우젤이 방어에 나섰다.

채챙!

채채채채채채채챙!!

빠르고 현란하다.

혈빛의 이야루그트와 순백의 백아도가 초당 수 회씩 얽히고, 맞부딪치며 검광의 폭풍을 만들어냈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불똥이 폭풍의 열기에 발화하며 무대 일부를 불태워버렸다.

최고의 실력자들이 만들어낸 궁극의 이펙트 효과가 사람들의 넋을 빼앗아버렸다.

한편, 각국 방송사 해설진은 물론이고 OGC의 객원해설 극검조차도 그리드와 크라우젤의 움직임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미쳤어.”

신궁 지슈카.

플레이어 중 가장 높은 민첩성과 매의 눈을 지닌 그녀만이 그리드와 크라우젤의 움직임을 모조리 포착했다.

하지만 단지 볼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저들을 상대하게 된다면 반응은 불가능할 터다.

“빠르기만한 게 아니야. 검의 궤도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

크라우젤의 별명 중 하나가 신컨이다.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컨트롤 실력을 발휘한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그리드의 컨트롤 솜씨가 여기까지 성장했을 줄이야, 지슈카조차도 몰랐던 사실이다.

‘국가대항전 기간 동안 또 한층 성장한 걸까?’

특히 PvP에서 최강자들을 상대하면서 말이다.

쩌정!!

연(聯)의 마지막 타격이 끝나면서 그리드와 크라우젤이 서로로부터 튕겨져 나갔다.

벌어진 거리 사이로 시선을 엮는 두 사내의 심정은 매우 상반됐다.

‘전과는 비할 바 없이 섬세해졌군.’

크라우젤은 나지막이 감탄할 뿐이었고,

‘미친… 스킬을 평타로 막아?’

그리드는 경악하고 동요했다.

크라우젤의 평타, 연(聯)과 맞부딪칠 때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궤도를 비틀어버림으로서 연(聯)의 위력을 약화시켰다.

‘저게 사람인가…’

하긴, 크라우젤은 이미 레이단에서 피아로와 겨뤘던 시점부터 검호 시절 피아로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던 괴물이다.

피아로가 크라우젤을 표현하기를 ‘천재 중의 천재이며 검성의 자격을 갖췄다.’고 하였다.

이제와 새삼 놀랄 것도 없다.

‘순수한 피지컬 싸움으론 결코 이길 수 없어. CC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판단한 그리드가 제(制)의 검무를 펼치기 시작함과 동시에 갓 핸드를 소환, 크라우젤을 압박했다.

크라우젤이 갓 핸드를 상대하는 동안 자신은 제(制)의 검무를 무사히 완성할 심산이었다.

그리고 계획은 정확히 먹혀들었다.

검을 휘두르는 동시에 매직 미사일까지 발사하는 갓 핸드들을 떨쳐내기까지 크라우젤은 약 1.5초의 시간을 허비하였고, 그 틈에 그리드는 제(制)의 검무를 완성시켰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제(制)의 효과가 발동하는 순간 크라우젤이 열 손가락에 끼고 있는 열 개의 반지 중 하나가 빛을 발휘하더니 그리드에게 충격적인 알림창을 선사한 것이다.

[대상이 압도 효과에 저항하였습니다!]

“…템빨!”

그래, 템빨은 그리드와 템빨단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특히 크라우젤은 그 누구보다도 많은 모험과 레이드를 경험한 인물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아이템을 획득하고 있었고 개중에는 이렇듯 특정 상태이상을 저항하는 액세서리도 있었다.

당혹을 금치 못하는 그리드에게 크라우젤이 백아도를 찔렀다.

<심장 뽑기>의 패시브 발동 효과를 노리고 심장을 겨냥하였으나 그리드에게는 <도살귀의 안대>와 <이야루그트>가 알려주는 최선의 검로가 있다.

급소 공격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다.

쩌정!

백아도와 이야루그트가 또 한 번 맞부딪쳤다.

[<이야루그트>의 경험치가 0.1퍼센트 상승하였습니다!]

“핫…!”

단지 몇 합을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유니크 아이템의 경험치가 오르다니?

이건 단지 크라우젤의 검술 솜씨가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레벨 차이가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어쨌든 땡큐지!’

지금처럼 계속 버틸 수만 있다면, 수십 분 내에 이야루그트의 등급이 오르고 전황을 역전시키는 게 가능할 수도 있…

[2,1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

언제?

크라우젤이 쥐도 새도 모르게 꺼내든 단도에 옆구리를 찔린 그리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한 손에는 백아도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용의 꼬리가 아로새겨진 단도를 거머쥔 크라우젤이 공세를 이어나갔다.

쩌정!

쩌저저저저정!!

“크…윽!”

쌍검술을 사용하기 시작한 크라우젤의 공격이 더욱 더 위협적으로 변모했다.

공격 간극이 최소화되었고 궤도 또한 더욱 복잡해졌다.

변칙성이 레가스를 초월하여 대응하기 어렵다.

그리드가 타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1,95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5,13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티라멧의 허리띠 등급이 오른 덕분에 단도의 데미지는 딱히 부담스럽지 않았다. 심지어 그리드는 삼겹갑 등의 최강 방어구들까지 무장한 상태가 아닌가!

하지만 백아도는 문제였다.

<+9 진(眞) 백아도>

그리드는 그 위력을 잘 알고 있다. 크라우젤이 3콤보를 달성하게 만들면 치명상을 피할 수 없다.

하여 어떻게든 공격을 끊어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4,9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약점이 노출됩니다!]

[도란의 반지를 장착합니다.]

[날카로운 베기에 당하여 12,9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도란의 반지>의 옵션 효과로 6,450의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쿨럭…!”

순식간에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그리드가 피를 토했다.

그를 보면서 관중들과 시청자들은 역시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치열했던 공방이 순식간에 일방적으로 변했군…”

“그리드가 생각보다 더 잘 버티긴 했지만 이제 슬슬 끝이겠네.”

“그럼 그렇지! 천외천 크라우젤이 그리드에게 졌을 리가 없어!”

본래 강함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여태껏 그리드가 뛰어난 무위를 보여 왔다지만 ‘정점’ 앞에서는 초라했다.

그렇다.

지금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그리드는 상정불가능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크아압!”

크라우젤의 타격을 연달아 허용하는 한편 허공으로 손을 뻗는 그리드.

그에게 갓 핸드 중 하나가 날아와 <그리드의 대검>을 건네주었다.

[<+8그리드의 대검>을 보조 무기로 장착하였습니다.]

[이도류 페널티 발생으로 <+8그리드의 대검>의 공격력이 50퍼센트만 적용됩니다.]

[<그리드의 대검>의 옵션 효과로 베기 공격력이 30퍼센트, 스킬 공격력이 20퍼센트 상승합니다.]

그리드도 쌍검술에는 일가견이 있다.

오른 손에는 이야루그트를, 왼 손에는 그리드의 대검을 거머쥔 그가 크라우젤의 쌍검술을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크라우젤의 마음에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대검을 장검처럼 사용하는 공격 속도…’

그리드의 민첩성은 대체 얼마나 높은 것일까?

또한, 애초에 저 흑청색 대검에는 공격속도 하락 페널티가 붙어있질 않는 것 같다.

쩌정!

“흡…!”

공격력에서 밀린 크라우젤의 몸이 허공에 살짝 떠올랐다. 그리드가 힘으로 밀어붙이자 견디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그리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제대로 몸을 제어하지 못하게 된 크라우젤의 허점을 노리고 파그마의 검무, 극살(極殺)을 전개하였다.

회피가 불가능한 타켓팅 스킬, 극살(極殺).

방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막강한 위력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간파한 크라우젤이 반격기를 사용하려다가 멈췄다.

‘이건 안 된다.’

위력이 강해도 너무 강하다.

크라우젤이 보유한 반격기는 결국 노말 스킬인 바, 그리드의 회(回)와는 달라 공격력에서 압도당하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초감각을 사용할 타이밍인가?

그리드와의 승부는 장기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그것도 안 된다.

결국 크라우젤이 선택한 대처법은 지근거리에서도 발동하는 발차기였다.

“자진모리.”

쩌어어어엉!!

<차징>의 효과를 발휘하는 발차기가 그리드의 복부를 정확히 걷어찼다.

하지만 그리드는 밀려나지 않았고 극살(極殺)을 무사히 전개하고 있었다.

크라우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진모리가 어느덧 날아온 갓 핸드에게 가로막혔음을 확인한 것이다.

서걱!!

강력한 베기에 이은 찌르기가 크라우젤의 복부를 관통했다.

푸욱-!

하늘이 쏟아내는 붉은 비가 세상을 경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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