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2권 - 16화
-와… 크리스한테 힘으로 이기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리드 보고 있으면 진심 소름 돋음;;
-역시 갓리드입니다. 대진운 최악인데도 3라운드까지 우습게 진출하네요.ㄷㄷ
-클라스가 다르잖아요.ㅎ 괜히 최초의, 유일한 레전드리 클래스 전직자가 아님.ㅎㅎ
-근데 생각해보면 좀 웃기지 않나요? 어째 맞기만 하다가 이기는 느낌…ㅡㅡ;;
-진짜ㅋㅋ 때리는 횟수보다 맞는 횟수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네. 특히 하오랑 싸울 땐 거의 때려보지도 못함.ㅋㅋㅋ
-몰골만 보면 그리드가 패배자…
만약.
정말로 만에 하나 그리드가 PvP에서 금메달을 따게 될 경우 한국의 종합순위 1위는 확실시 된다.
그리고 모양새야 어찌됐든, 실제로 그리드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민국은 축제분위기였다.
Satisfy 약소국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한국이 설마 종합순위 1위를 노려보게 될 줄이야,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순전히 그리드 덕분에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된 대한민국 국민들이 열광했다.
“갓리드! 갓리드! 갓리드!!”
꿈★은 이루어질까!
집집마다 그리드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그리드의 활약에 찬사를 보내는 소식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그리드 이야기요, 한국을 대표하는 톱스타들조차도 SNS에 그리드를 응원하는 글귀를 남기기 바빴으니…
그리드 팬카페의 회원수가 발족 이래 최초로 노에의 팬카페 회원수를 넘어서고 있었다.
과거, 조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국민들에게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김연아의 계보를 잇는 인기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랄까!
“우리 영우 장하다!!”
그리드의 부모님은 사촌의 팔촌에게서까지 걸려오는 축하, 안부전화를 받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스스로의 힘만으로 현재의 위치까지 오른 아들이 자랑스러워 가슴이 뭉클했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 본인은 들뜨지 않았다.
언론의 태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며, 여론의 마음은 그에 따라서 쉽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그리드는 이미 경험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이다.
대장장이 승부 당시 어떠했던가?
한국 언론들은 그리드가 노말 아이템을 만든 그 즉시 그를 비난하는 속보를 쏟아냈던 바가 있다.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리드가 원하는 것은 단발적인 인기가 아니다.
보다 완전하고 확고부동한 명성을 쟁취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신영우라는 인물을 그 누구도, 두 번 다시는 무시할 수 없게끔 만드는 게 그의 바람이었으니까.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는.’
PvP에서 우승하는 것.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
3라운드.
1조부터 6조까지의 경기 결과에 이변은 없었다.
1조에서는 크라우젤이, 3조에서는 스컬이 승리하는 등 전문가들이 예상한대로 각조의 승자가 결정됐다.
하지만 7조 경기의 승자는 그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폰VS카츠.
스페인과 일본 각국을 대표하는 최강자들의 싸움!
폰은 항상 템빨단 탑3로 거론됐던 인물이며 카츠는 블러드 워리어로서 뛰어난 전투력을 자랑해왔다.
누가 더 강하다고 섣불리 장담하기 어렵다.
‘그리드와 붙는 건 나다.’
사나운 눈빛으로 카츠를 노려보는 폰.
그는 레가스와 닮은 구석이 있다. 무의 궁극을 추구하였고, 최소한 이 과정에서만큼은 어떤 불합리함도 용납하지 않았다.
정정당당한 성장, 승부, 결과를 원하는 천상 무인이었다.
라우엘이 크라우젤 영입 계획을 폰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만약 폰이 라우엘의 계획을 알게 된다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비협조적으로 나올 것이 뻔했던 까닭이다.
‘폰님, 마음 같아선 당신께 카츠님에게 져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고 그저 마음속으로 바랄 뿐이다.
‘부디 카츠님에게 패배하시기를.’
폰은 결코 그리드에게 이길 수 없다. 아니,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템빨단원 모두가 그렇다.
그리드는 템빨단원들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꾸준히 제작해온 인물이고, 그 탓에 템빨단원들의 강점과 약점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폰이 카츠를 상대로 승리해서 4라운드에 진출하게 될 경우 그리드의 준결승 진출은 확실시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라우엘이 바라는 것은 카츠의 승리다.
‘카츠님이라면 그리드님께 충분히 승산이 있다.’
남들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라우엘은 알고 있다.
하오와의 대결에서 그리드는 ‘일부러’ 대량의 타격을 허용했다는 것을!
‘그 이유는 아마도…’
아이템이나 스킬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서일 터.
‘그러한 그리드님의 태도는 카츠님께 좋은 기회다.’
대량의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전투일수록 블러드 워리어의 능력은 증폭되는 바.
그리드가 상처투성이가 되었을 때 카츠가 치명상을 입히고 무적 패시브를 빼놓을 수만 있다면…!
『3라운드 7조 경기! 폰 대 카츠! 카츠 대 폰의 대결이 지금! 시작됩니다!!』
라우엘이 기대해보는 사이 무대 위로 폰과 카츠가 올라섰다.
‘탈 것’에 탑승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창기사 폰.
백마 위에 오른 채 청색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그를 보면서 카츠는 생각했다.
‘템빨단원들은 죄다 미남미녀군.’
그리드, 반트너, 툰 등의 예외도 있기는 했지만 미남미녀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길드원을 얼굴 보고 뽑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나도 성형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려해볼 정도로 카츠는 템빨단 가입을 희망하고 있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그 또한 템빨을 원했기에.
하지만 템빨단에 가입하기 위해선 증명해야만 했다.
‘나의 강함을!’
콰르르르르륵!!
평범하게만 보였던 카츠의 장검 위로 꿈틀거리는 혈관이 수십, 수백 가닥 솟아나 뒤엉키기 시작했다.
블러드 워리어의 흡혈검이 그 역겨운 자태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혈빛 마기에 휩싸인 카츠가 폰의 창끝을 시야에 담았다.
‘마하 스피어와 레일 스피어만 조심하면 된다.’
라우엘은 그리드뿐만이 아니라 폰의 공략법까지도 카츠에게 일러주었다.
카츠 본인 또한 폰의 전투영상들을 수십 회씩 반복해 보면서 연구했다.
‘그 두 개의 스킬이 발동하게 되면 반응하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용할 때 특유의 모션이 있어서 특정하기가 쉬워. 그 틈을 노리고 공략하면 된다.’
낙마를 시켜서 능력치 저하를 유발하는 게 최우선이다.
생각하면서 카츠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파직!
“레일 스피어.”
“……!”
전류가 튀기는가 싶더니 폰의 최강최악 스킬이 즉시 발동하였다.
아무런 준비동작도 없이 말이다!
쿠콰콰콰콰콰콰쾅!!
“크악!!”
어떻게 이런?
가슴이 꿰뚫리고 치명상을 입은 카츠가 혼란에 휩싸였다.
상태이상 ‘기절’의 영향은 둘째 치고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컸다.
폰이 이죽거렸다.
“템빨이다.”
<폰꺼>
티라멧 레이드 당시 무력했던 폰.
그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리드에게 제작의뢰를 맡겼던 특수한 단창이다.
장창에 비해서 공격력과 내구력이 뒤떨어지지만 사용하기가 무척 편해서 창기사의 패시브 스킬 <탈 것에 탑승 시 스킬 모션 단축>을 극대화시키는 구조였다.
이 단창의 최대 단점은 일회용이라는 것.
심지어 필요한 재료도 구하기 어려워서 여러 개 만드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폰이 이 아이템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최초였다.
철컹!
레일 스피어를 사용한 여파로 볼품없이 타오른 단창을 집어던지고 새로운 창을 꺼내 무장한 폰이 말을 달렸다.
청발을 흩날리며 무대 위를 질주한 그가 아직 기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카츠의 목에다가 그대로 마하 스피어를 꽂아 넣었다.
블러드 워리어의 특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중갑보다는 경갑을 선호하는 카츠였기 때문에 그 공격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잿빛으로 산화하고 말았다.
『카…카츠 로그아웃!!』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5초.
단 5초 만에 폰이 승리를 거뒀다.
창기사의 압도적인 공격력과 그리드의 템빨, 그리고 예측치 못한 변수가 결합되어 발생한 결과였다.
표적 맞추기 당시 카츠와 직접 겨뤄봤기 때문에 카츠의 강함을 잘 알고 있던 하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템빨단… 미쳤군.’
폰이 쉽게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장의 패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며, 그 패는 앞으로 다른 참가자들에게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폰은 이번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서 자신의 전력을 크게 노출한 셈이었다.
이로 인해 발생할 후폭풍이 언젠가 폰의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었다.
‘과연 이번 승부에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어차피 금메달도 못 딸 텐데.’
생각해볼 부분이었지만 어찌됐든 이번 대결로 인해서 국가대항전의 분위기가 고조된 것은 사실이다.
스타드 드 프랑스 국립경기장의 열기가 활화산처럼 달아올랐다.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작년의 그리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이군요!!』
진행자들의 격앙 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라우엘이 이를 갈았다.
‘저런 아이템을 만들고도 내게 보고하지 않았다니… 아니, 저런 아이템이기 때문에 더욱 더 은밀히 보관해온 건가.’
크게 한 방 먹었다.
‘이제 남은 패는 데미안님뿐…’
데미안마저 진다면 그리드는 결승전에서 크라우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 만약 그리드가 이기게 되면 크라우젤 영입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금메달 하나를 희생해가면서까지 세운 계획이 말이다.
라우엘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해하는 사이, 그리드와 데미안이 무대 위에 오르고 있었다.
고조 된 분위기를 더욱 더 살려보고자 진행자가 선수 인터뷰를 진행했다.
“데미안님,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승리를 점치는 분위기입니다만. 자신 있으십니까?”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리드의 필살기는 <흑화>다.
그리고 흑화는 플레이어를 암흑속성으로 바꿔버리는 스킬이다.
궁극의 신성력을 갖추고 있는 데미안에게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상성상 데미안이 우위에 있는 게 사실이었다.
한데 데미안의 답변은 예상 외였다.
“당연히 자신 없죠.”
“…?”
너무나도 시원한 표정을 짓고 대답하는 데미안 때문에 진행자가 당황하고 말았다.
데미안의 황당한 발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드님이야말로 전 교황 드레비고와 교황후보 파스칼을 ‘1인 레이드’한 장본인이시니까요! 그리드님은 완전히 교황 킬러이십니다, 교황 킬러! 새내기 교황인 저 따위가 저분의 상대가 될 리 없지요!!”
“…예?”
진행자를 비롯한 관중들과 시청자들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그리드가 파스칼을 레이드했다는 건 당시 정황상 많은 사람들이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레이드했다고?
아니, 지금 와서 교황 ‘후보’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전 교황 드레비고.
무려 수천만 신도들의 어버이였던 그 존재를 하루아침에 지워버린 인물이 그리드였다니?
그 당시 그리드가 완전히 무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그리드는 양파다…”
관중석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까도, 까도 새로운 그리드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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