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70화 (265/1,794)

템빨 22권 - 8화

“키에에에엑!!”

[하급 뱀파이어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4,901,000을 획득하였습니다.]

[중급 뱀파이어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6,954,300을 획득하였습니다.]

[최하급 마석(1)을 획득하였습니다.]

PvP까지 3일.

Satisfy시간으로 따지면 9일이 되는 시간 동안 그리드는 사냥에만 매진할 계획이었다.

전투 감각을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이야루그트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이야루그트>

등급:유니크(성장형)

경험치:85.98퍼센트

“경험치가 너무 안 오르네.”

하급 뱀파이어는 40마리, 중급 뱀파이어는 25마리쯤 해치워야 이야루그트의 경험치가 0.01퍼센트씩 오르는 수준이다.

뱀파이어의 도시는 그 특성상 몬스터의 숫자가 제한적이었고, 뱀파이어가 원체 뛰어난 생존능력을 보유한지라 사냥 속도 또한 더뎠기 때문에 그리드는 초조해졌다.

9일 내로 이야루그트의 등급을 성장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국대전에서 다른 랭커들과 싸울 때가 경험치가 더 빨리 올랐다. 음… 여기보다 더 좋은 사냥터는 없을까?’

고레벨 몬스터가 즐비한 번헨 열도의 50번대 섬들이 그립다.

하지만 현재 그리드의 번헨 열도 세이브 포인트는 60번째 섬이었다. 61번째 섬으로밖에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번헨 열도에 가봤자 무의미했다.

“…정보라는 건 정말로 중요한 거구나.”

평소의 내 정보력이 뛰어났다면 사냥터 부족 현상을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즉부터 정보 수집에 노력을 기울일 것을 그랬다.

“쩝… 아?”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던 그리드가 몇 달 전 라우엘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레이단도 기본적인 시설들을 갖추게 되었으니 이제 특수기관의 설치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특수기관?’

‘농업과 산업, 그리고 학업시설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림으로서 최소한의 인프라를 갖췄고 군대까지 만들었으니, 이젠 정보 수집과 교류에 힘을 써야죠. 우선은 외교부와 어쌔신 육성 기관을 만들고, 한편으로는 모험가 길드를 세워서 모험가 NPC와 플레이어들을 유입시키고 그들로부터 정보를 매입할 계획입니다.’

‘음, 그렇구만… 너도 어지간히 바쁘구나. 어련히 잘 해주리라 믿는다.’

“거 참…”

당시에는 정보의 중요성을 몰랐고 라우엘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라우엘의 선견지명이 얼마나 대단한지 더욱 더 실감할 수 있었다.

‘라우엘, 네가 없었다면 지금쯤 난 영주고 나발이고 간에 다 때려치웠을 거야.’

레이단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쇠락만 시키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으리라.

라우엘이라는 존재에게 새삼 다시 큰 감사를 느낀 그리드가 측면에서부터 날아온 뱀파이어의 공격을 일부러 맞아준 뒤 이야루그트로 반격했다.

[크리티컬!]

[대상에게 79,9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엘핀스톤의 반지(에픽)>의 옵션 효과로 인하여 생명력 9,588을 흡수합니다!]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뭘까?

몬스터를 일격에 해치울 수 있는 압도적인 공격력?

몬스터의 맹공을 몇 번이고 견딜 수 있는 방어력?

아니다.

아무리 세고, 단단해봤자 그 지속 시간이 짧으면 의미가 없다.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전투지속력에 있었다.

지속력이 뛰어나야 보다 더 수월하게 오랫동안 사냥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괜히 물약이 사냥의 필수품이 아닌 것이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사냥 내내 물약의 개수와 재사용 대기 시간 등을 염두에 두고 싸워야했고 이는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사정이 달랐다.

그리드에게는 받은 피해의 일부를 회복시켜주는 <도란의 반지>와 12초마다 흡혈 효과를 발휘하는 <엘핀스톤의 반지>가 있었으니까!

거기에 레이단의 대장간에서 제작한 지존급 물약까지 보유하고 있는 그리드의 전투지속력은 힐러 한 명. 아니, 어쩌면 두 명을 대동한 수준이나 다름이 없었다.

블러드 워리어 카츠와 비견될 정도!

‘엘핀스톤의 반지도 등급이 올랐으면 좋겠는데.’

엘핀스톤의 반지는 이야루그트보다 더 경험치가 안 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12초에 한 번만 효과가 발동하였고 경험치가 그때만 올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등급 성장형 아이템인 <티라멧의 허리띠>는 방어구 특성상 공격을 맞을 때마다 경험치가 누적되어 그나마 경험치가 잘 올랐지만.

‘그래도 뭐, 생각해보면 아이템 경험치 획득률 상승 버프 얻기 전하고 비교해서 확실히 빨리 오르긴 하네.’

1.5배는 빨라진 기분이랄까?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사냥감 갈급 현상에 빠진 그리드가 결국 뱀파이어의 도시로부터 빠져나온 뒤 라우엘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좋은 사냥터 정보 없어?

-없습니다.

단호하게도 대답하는 라우엘이었다.

-…그렇군. 하긴,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테지. 알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그리드가 어쩔 수 없이 다시 뱀파이어의 도시에 입장했다.

한편, 라우엘은 그리드에게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사죄하고 있었다.

‘사실은 뱀파이어의 도시 이상가는 사냥터의 정보를 얼마 전 새롭게 입수했습니다만…’

아직은 알려줄 수 없다.

라우엘은 그리드의 성장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PvP에서 크라우젤이 우승하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크라우젤님을 우리 템빨단에 가입시키기 위해서는 변수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리드님, 이는 결과적으로 당신을 위하는 일이니 부디 헤아리고 용서해주십시오.’

아무리 명분이 있다지만 주인을 기만하는 일은 역시 마음이 무겁다.

후.

한숨 쉰 라우엘이 한쪽 손으로 얼굴 절반을 가린 뒤 벽에 몸을 기댔다.

“아아, 충신의 번뇌란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것이로구나…! 하지만 지금의 내가 흘리는 이 한 줄기 눈물이 그리드님의 피와 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난 이 고통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오글오글!

때마침 라우엘의 곁을 지나치던 시녀들의 손발이 오그라졌다.

라우엘의 <레이단 여성 NPC 공략집>제작 프로젝트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

『오늘은 국가대항전 종합순위 1위 후보국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미국. 가장 많은 메달을 확보하고는 있으나 아쉽게도 남은 두 종목에서 금메달을 노려보기 어려운 입장입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죠. 금메달 하나만 딸 수 있다면 미국의 종합순위 1위는 기정사실화 되는 것인데 그 하나를 딸 수가 없다니…』

『그래도 제1회 국가대항전 우승국으로서의 위엄은 이미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이번 대회에 참가한 32개국 중 유일하게 모든 종목에서 상위권에 진출하는 쾌거를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딱히 의미 없는 일이죠. 결국 금메달이 장땡 아닙니까? 한국을 보시죠.』

『총 메달 획득 수 5개… 그 5개가 전부 금메달…』

『참으로 비상식적인 기록입니다. 일부 종목에 특화 된 국가죠.』

『국가로 구분하기 보다는 ‘그리드’ 개인으로 보는 게 적합하지 않을까요? 5개의 금메달 중 4개를 그리드가 혼자서 땄으니까요.』

『유라도 지옥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했으나 역시 그리드의 그늘에 가리는 경향이 있죠. 솔직히 말해서 원맨팀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입니다.』

『그리드 참 대단하죠. 대중 앞에 나타날 때마다 늘 놀라움을 선사하니까요. 하지만 과연 PvP에서도 그가 활약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종합순위 1위 후보국인 러시아의 크라우젤이 있는 이상 그건 불가능하겠죠.』

『그리드가 크라우젤보다 다재다능한 면모가 있다지만 결국 대인전에선 크라우젤보다 아래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Satisfy홈페이지에서 진행 된 설문조사표를 보시죠. 무려 2억 8천만 명의 응답자 중 92.3퍼센트가 크라우젤의 승리를 점치고 있을 정도입니다.』

『2억 8천만 명 중 약 2억 6천만 명 가까이가 그리드가 질 거라고 예상한다 이거죠?』

『그렇죠. 크라우젤은 20억 유저의 정점이자 하늘 밖의 하늘이라 불리는 사내니까요. 포스 면에서 그리드를 압도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전문가 여러분께서 보시기에도 그리드가 크라우젤에게 패배할 것 같습니까?』

『그리드는 가늠하기 힘든 구석이 있어서 함부로 말하기가 좀 꺼려집니다만, 저희도 역시 크라우젤의 승리를 점치고 있습니다.』

『이번 국가대항전 동안 두 사람이 남긴 전투 기록들만 살펴봐도 크라우젤의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게 증명되고 있으니까요.』

『그리드가 공격력과 방어력, 그리고 생명력 수치는 우위에 있지만 크라우젤은 그리드의 공격 대부분을 무력화시킬 것이고 반면 그리드는 그러지 못할 터이니…』

『음… 크라우젤이 어째서 신컨이라고 불리는지 이번 기회에 보면 알게 되겠죠.』

그리드를 비롯한 선수들이 마지막 남은 대회에 대비하여 Satisfy에 접속해 있는 사이.

각국의 방송사들은 매일 같이 국가대항전 특집 방송을 중계하며 그리드와 크라우젤의 대결 구도를 주제로 떠들어댔다.

실로 수많은 방송사와 전문가들이 그리드와 크라우젤을 분석하였고 그를 기반으로 두 사람의 대결을 예측한 결과 크라우젤이 승리할 가능성이 무려 90퍼센트를 초과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와 같은 지표들은 그리드가 약하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그리드의 강함은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고 세상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만 이번엔 상대가 나쁠 뿐이다.

천외천 크라우젤.

그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산으로 인식 될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템빨단원들조차도 그리드의 승리는 어려울 거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레이단의 승부에서는 크라우젤이 많이 지친 상태였고 풀템도 아니었다지.’

‘심지어 궁극기가 쿨타임에 걸렸었고.’

하지만.

‘그렇게 약화 된 크라우젤이라도 우리는 이길 수 없었을 거다.’

‘오로지 그리드이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거야.’

‘그리드, 힘내라.’

‘늘 그랬듯이 모두의 예측을 부셔버려!’

염원하는 템빨단원들과 이야루그트의 등급 업에 매진하는 그리드.

그리드의 전력을 분석하고 수십 가지 공략법을 준비함으로서 변수를 차단한 크라우젤.

이들 외에도 데미안, 폰, 레가스, 수에론, 크리스, 카츠, 하오, 타르마 등의 강자들이 PvP에 대비해서 철저하게 단련하는 동안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차 운반의 우승국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스페인이 되었고 이후 폐막식 PvP가 거행됐다.

『우선 대진을 짜도록 하겠습니다! PvP 참가자 64인은 무대 위로 올라주세요!』

이번에도 역시 공성전과 마찬가지로 제비뽑기로 대진이 정해졌다.

공정함을 위해서라지만 글쎄, 그리드의 입장에선 불안하기만 했다.

‘1라운드부터 크라우젤을 뽑으면 어쩌지?’

스스로의 악운을 두려워하는 그리드!

긴장한 채 마른 침을 삼키던 그가 이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악운마저도 극복해보이리라 다짐했었음을 상기한 것이다.

‘…간다.’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인 그리드가 다른 선수들과 함께 무대 위로 오르는 그때였다.

“어째서 마차 운반에 참가하지 않은 거지? 공작의 작위를 지닌 당신이라면 필시 높은 매력 스탯을 보유했을 거고, 마차 운반에서 충분히 금메달을 노려볼 수 있었을 텐데?”

어느새 다가온 크라우젤이 질문해왔다.

이에 대한 그리드의 대답은 간단했다.

“당신과 다시 한 번 싸워보고 싶었으니까. 이번엔 동등한 조건에서 말이야.”

국가대항전 개막식을 앞두고 진행됐던 기자회견장에서 그리드가 ‘한국은 최소 다섯 개의 금메달을 딸 것이다.’라고 선언했던 이유.

그가 여섯 개의 금메달을 논하지 않은 이유는 PvP에서의 패배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리드는 처음부터 반드시 PvP에 참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기왕지사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고 싶었고, 하나라도 더 많은 금메달을 확보하여 큰 보상을 받길 원하기는 했지만.

“그것들을 희생해도 좋을 정도로 당신과의 싸움이 그만큼 내게는 중요해.”

지존과의 싸움.

과거에도 그랬듯이, 이는 나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는 발판이 될 것이라 믿는 그리드였다.

아니, 사실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드는 그저 순수하게 크라우젤과 자웅을 겨뤄보고 싶었다.

“나 또한 지존을 꿈꾸고 있으니까. 내가 무너뜨려야할 하늘이 얼마나 높이 떠있는지 대충 가늠은 해봐야할 거 아니야?”

“…”

국가대항전의 꽃, PvP.

수억 명의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있는 가운데, 시선을 마주한 그리드와 크라우젤이 나란히 무대 위로 오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그리드! 그리드!”

“천외천! 천외천! 천외천!!”

두 명의 동양인이 지구 전체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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