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65화 (260/1,794)

템빨 22권 - 3화

[극도로 집중하여 <전설적 대장장이의 인내심>효과가 발동합니다!]

[1시간 동안 생명력과 방어력, 그리고 손재주가 200퍼센트 상승합니다!]

[<장검>의 제작을 완료합니다!]

[<(신의 무기를 이해한)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레벨이 7에서 8로 상승합니다!]

[<(신의 무기를 이해한)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레벨 8이 아이템의 능력치를 20퍼센트 증폭시킵니다!]

이 대목에서부터 그리드는 큰 불안감에 휩싸였다.

발동 확률이 <대장장이의 숨결>보다 훨씬 더 희박한 <대장장이의 인내심>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모자라서.

레벨 업까지 무려 0.2퍼센트나 되는 경험치가 남아있던 <대장장이의 기술>레벨이 장검 하나 제작했답시고 오르다니?

‘이거, 설마…’

반납해야하는 아이템이 레전드리 등급으로 떠버리는 것은 아닐까?

최악의 사태를 떠올린 그리드가 몸을 떨다가 이내 질색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숨결>레벨 6이 발동합니다!]

[<전설적 대장장이의 숨결>레벨 6이 아이템의 능력치를 8퍼센트 상승시킵니다!]

[등급 성장형 아이템 <봉인된 초월적인 억제의 장검>의 제작에 성공하였습니다!]

[플레이어 최초로 등급 성장형 아이템을 제작하여 칭호 <무구의 진리에 도달한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효과로 <아이템 경험치 획득률 상승>패시브를 항시 적용 받습니다!]

“아…!”

단순한 레전드리 아이템보다 더 대단한 아이템이 떠버렸다.

진심 지랄하고 앉았다.

로또 1등 당첨 복권의 소유권을 억울하게 잃게 된 심정이다.

“…아!”

그리드가 좌절했다.

***

등급 성장형 아이템.

많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강해지는 아이템이다. PvE와 PvP를 통해서 경험치를 누적시키고 등급을 성장시킬 수 있다.

동급의 아이템과 비교해서 높은 능력치를 보유하였으며 등급이 오를 때마다 상승하는 능력치의 폭 또한 컸다.

등급 성장형 아이템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특정 대상의 영혼이 귀속 된 아이템.

아이템의 등급이 상승할 때마다 영혼이 살아생전에 보유하고 있었던 스킬, 혹은 특성이 개화된다. 스킬과 특성의 개수와 위력은 영혼의 등급에 따라서 차이가 있으며 주인과 궁합이 나쁠 수도 있다.

대게 영혼과 관련 된 특수한 스토리가 내장되어 있으므로 히든 퀘스트를 얻을 확률이 높다.

그리드가 엘핀스톤을 레이드한 후 획득한 <엘핀스톤의 반지>와 <이야루그트>가 바로 여기에 속했다.

엘핀스톤과 이야루그트의 영혼 등급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둘째, 영혼이 귀속되지 않은 아이템.

등급이 오를 때마다 새로운 옵션이 고정적으로 1개씩 추가되는 아이템이다.

무작위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보다 용이하게 작용할 수 있는 옵션이 선별되어 추가되므로 등급이 오를수록 사용자와의 궁합이 무척 좋아진다. 쉽게 말해서 직업 전용 아이템과 비슷한 성질을 지닌다고 할까.

영혼이 귀속 된 아이템과 비교하면 안정적인 위력을 발휘하지만 그만큼 극적인 효과를 누리기 어렵다는 뜻도 됐다.

그리드가 제작한 <봉인된 초월적인 억제의 장검>이 바로 여기에 속했다.

‘뭐가 됐던 그 가치는 천문학적!’

세상이 고요하다.

“…”

스타드 드 프랑스 국립 경기장을 가득 매운 수십만 관중들과 선수들, 그리고 TV나 인터넷을 통해서 경기를 시청 중인 수억 명의 시청자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들 중 99.99퍼센트는 등급 성장형 아이템을 개념으로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 목격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드의 작품으로부터 받은 충격이 너무 컸다.

‘아마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일평생 손에 넣지 못할 아이템을…’

‘그리드는 직접 만들어버렸다!’

괜히 전설의 대장장이가 아니다.

그리드가 남기는 발자취 그 모든 게 전설적이었다.

모두가 넋을 잃고 있는 가운데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사전에 공지했던 바와 같이, 이번 승부의 아이템 심사 기준은 ‘가치’에 있었습니다.』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영상 위로 대장장이들이 제작한 23자루 장검의 목록이 떠올랐다.

『가치의 척도로 삼기에 가장 좋은 부분이 바로 ‘등급’과 ‘성능’이죠. 보시다시피 등급 면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작품은 판미르와 스텡의 장검이며, 성능 면에서 가장 훌륭한 성적을 거둔 작품은 판미르의 장검입니다.』

그리드의 작품은 어디에도 끼지 못했다.

당연하다.

성능이 좋으려면 등급이 높아야하는 게 정석이었으니까.

그리드가 등급 성장형 아이템을 제작하는 위업을 세우기는 하였으나, 결국 그가 만든 장검은 노말 등급이었고 판미르의 장검보다는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 시점에서의 이야기였다.

내내 잠자코 있는가 싶던 13인의 심사위원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이템의 잠재적 가치까지도 고려해야만 합니다.』

『잠재적 가치가 월등히 높은 아이템은 단연코 그리드의 장검입니다.』

『등급이 오르면 오를수록.』

『판미르의 장검보다 그리드의 장검이 더욱 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죠.』

『더군다나 판미르의 장검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사용 조건이 추가됐다는 점입니다.』

『제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사용 조건이 까다롭다면 아이템의 효용성과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13인의 심사위원은 그리드의 작품이야말로 최고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리드에게 금메달을 수여하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의 결정에 대한 반발은 발생하지 않았다. 반박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며 그리드의 승리를 축하했다.

판미르 또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정작 그리드가 금메달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금메달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으니까 내가 만든 검은 내가 갖고 가게 해줘요.”

그리드는 이번 대회를 통해서 등급 성장형 아이템의 제작원리를 파악했다.

기존의 아이템 제작법을 고스란히 따르되, 제작법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위력을 아이템에 내포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쉽게 만들어낼 자신은 없었다.

원리에 따라서 아이템을 제작하면 뭐하는가?

앞으로 1천 개, 1만 개의 아이템을 더 제작할지라도 결국 운이 없으면 원하는 아이템을 얻지 못하는 게 현실 아니던가!

“빌어먹을…! 내 칼 내놓으라고!!”

그리드는 필사적이었다.

사회자의 손에 들려있는 <봉인된 초월적인 억제의 검>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력시위라도 불사할 각오였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현재 그리드의 외침은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음소거의 위력이었다.

“그리드가 왜 저러지?”

“표정이 내내 안 좋더니만 지금은 사회자한테 뭐라고 계속 화내는 것 같은데?”

“아니, 왜 그리드의 목소리만 안 들리는 거야?”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시청자와 관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그때였다.

대회 현장으로 로그인한 S.A그룹의 윤상민 이사와 프랑스 총리가 그리드에게 다가갔다.

그리드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기 위해서였다.

“오우, 그리드. 망나서 방가워우요. 당시네 화략울 잘 보구 이쏘요~”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면서 인사한 프랑스 총리가 그리드에게 악수를 건넸다.

타국의 고위 정치가가 공식석상에서 건네는 악수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마 몇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거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선 총리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리드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이 제작한 장검에만 꽂혀있었다.

부들부들, 급기야 주먹을 말아 쥐기 시작하는 그리드였다.

자칫하다가는 이성을 잃고 날뛰기라도 할 기세였기 때문에 윤상민 이사가 좌시하지 못하고 속삭였다.

“그리드님, 당신의 작품은 앞으로 영원히 명예의 전당에 전시된 채 무수한 찬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작품을 감상하며 당신의 업적을 기릴 것이고 이는 당신이라는 인물의 가치를 평생토록 빛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니 당장 눈앞의 이득에 집착하지 말고 진정하세요.”

규칙은 규칙이다.

바라선 안 되는 것에 집착해봤자 본인만 손해다.

엄한 표정으로 경고의 뜻을 전하는 윤상민 이사를 확인한 그리드가 결국 이성을 되찾고 고개를 숙였다.

“…염병.”

“…”

찰칵!

찰칵찰칵!

불쾌한 심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그리드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는 프랑스 총리와 입을 비죽 내밀고 있는 그리드의 모습이 사진에 담긴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해야할 금메달리스트가 울상을 짓다니?

지금 그리드의 모습은 베를린 올림픽 당시의 손기정 선수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처참했다.

***

“내년 국가대항전에선 반드시 당신을 넘어서 보이겠다.”

“그리드님, 오늘 정말로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귀중한 체험이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꼭 다시 봬요!”

“…”

터덜터덜.

판미르와 스텡을 비롯한 대장장이들이 뭐라고 연신 떠들어댔지만 그리드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그는 맥없이 걸으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난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걸까?’

내가 오지게 운 없는 놈이라는 사실은 이미 철이 들 무렵부터 깨달았다.

하지만 그 불운이 평생토록 발목을 붙잡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하필이면 반납해야하는 아이템이 최상급으로 뜨다니.’

평소에 떠주면 어디 덧나냐? 빌어먹을!

“…가만.”

씩씩거리면서 복도를 가로지르던 그리드가 문득 미소를 피어 올렸다.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악운에 계속해서 저항하고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나는 악운마저도 극복해낼 수 있지 않을까?’

여태까지 넘어왔던 시련들처럼 말이다.

그렇다.

이 순간의 그리드는 하늘이 내리는 악운조차도 자신이 극복할 수 있는 형태의 시련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

언제나 그랬듯이, 결국 최후의 승자는 내가 될 테니까.

하늘에 보란 듯이 다짐한 그리드가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했다.

우선 방금 전 대회를 돌이켜봤다.

‘얻은 게 크다.’

등급 성장형 아이템을 제작하는 방법을 알게 됐고 거기에 금메달까지 얻었다.

이 귀한 것들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 작은 희생을 치룬 것이라고 생각하자 반납한 장검이 아깝지 않았고 슬슬 마음이 진정됐다.

“이것 참 재미있네.”

똑같은 일이라도 관점을 달리해서 생각해보면 받아들여지는 게 틀리다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그리드는 이제야 깨달았고 정신적으로 한층 더 성숙해졌다.

급기야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기 시작하는 그에게 누군가가 달려왔다.

길고 길었던 국가대항전도 이제 슬슬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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