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63화 (22권) (258/1,794)

템빨 2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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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22권 - 1화

『아이템 제작 승부의 제한 시간은 총 8시간입니다! 대장장이 여러분께서는 지급 받은 도안과 재료만을 사용해서 아이템을 제작해주십시오!』

국가대항전 17일차.

대장장이 제작 승부가 시작됐다.

본래 이 종목은 비주류로서 주목도가 낮았으나 그리드가 참가의사를 밝힌 이후 상황이 역전됐다.

단체전에 버금가는 관심을 받고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대장장이들이 그리드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드 네 덕분에 우리의 가치가 오르게 되었구나.’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해주다니 고맙다!’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급 대장장이의 화려한 수작업을 선보이고 급기야 전설의 대장장이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아이템을 제작하게 된다면?

그 대장장이의 명성은 필시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다. 제작하는 아이템마다 프리미엄이 붙어서 가치가 폭등할 터이니 때부자가 될 수도 있었다.

이글이글!

그리드를 희생양 삼아서 비상할 계획을 세우는 대장장이들의 눈빛이 불타올랐다.

이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장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자부심이 엄청났고 그리드에게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그리드의 직업빨, 운빨 따위 자신들이 실력으로 짓뭉갤 자신이 있었다.

한편 그리드는 참가자 전원에게 공통적으로 지급 된 제작법과 재료들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도안:장검>

등급:노멀~레전드리

평범한 장검입니다.

뚜렷한 단점이 없어서 누구나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 조건:레벨 300. 중급 소드 마스터리 7레벨. 근력 1,500.

장검의 제작법은 특별한 구석 없이 평범하고 간단했다. 단순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이다.

여태껏 수천 개의 장검을 제작해온 그리드라면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을 수준.

하지만 그리드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아이템 제작의 결과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바로 운빨인 법!

아무리 정성들여서 장검을 잘 만들면 뭐하는가?

단지 운이 나쁘단 이유만으로 결과물이 노말 등급으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었고, 여태까지 그리드는 그런 엿 같은 경험을 수천 번도 더 해왔는데!

‘제작법을 변형시킬 수만 있다면 사정이 달랐을 텐데 말이지.’

그리드에게는 만 단위의 아이템 제작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어있다.

그 경험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제작법의 변형이었다.

자신만의 해석으로 제작법의 단점을 최소화시키고 장점을 부각시키는 기술이야말로 아무나 따라하지 못하는 그리드의 진정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장장이 대결의 규칙은 제작법을 있는 그대로 따르는 것이었으므로 그리드는 실력을 뽐낼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치가 떨렸다.

‘이건 주최측의 농간이다…’

순전히 나를 견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규칙임이 분명하다.

그 탓에 전설의 대장장이인 내가 아직 장인의 반열에도 오르지 못한 대장장이 꿈나무들을 상대로 긴장감을 느껴야하다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씨…악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전설의 대장장이랍시고 주는 혜택은 쥐뿔도 없으면서 매번 페널티만 주는 게 말이 되냐.”

치밀어 오르는 쌍욕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연신 투덜거리는 그리드.

용광로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는 그의 곁으로 한 소년이 다가왔다.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호감을 유발하는 소년이었다.

아이디는 스텡.

대장장이 랭킹 2위에 빛나는 존재다.

“그리드님, 오래간만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벌써 2년도 더 전.

아이린이 막 윈스톤의 영주로 부임했을 당시 그리드는 영주 성의 아이템 경매에 참가했던 전력이 있고 그때 스텡과 짧은 인연을 쌓았었다.

“님이 전설의 대장장이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후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정말로 기쁘고 영광스러운 추억이었습니다!”

“영광까지야… 너는 아직도 NPC 대장장이 스승 밑에서 수련하는 중이냐?”

스텡은 무척 밝은 소년이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고 말도 예쁘게 하는지라 그리드는 내심 호감이 생겼다.

질문하는 그에게 스텡이 고개를 저었다.

“작년부터 독립해서 지금은 혼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중이에요.”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네! 아이템 생산과 유통을 제가 직접 함으로서 소비자들에게 싼 값에 질 좋은 아이템을 제공하고 저 또한 더 높은 이윤을 챙기는 중이죠!”

경매장이나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으니 판매 수수료에 대한 부담이 적어질 것이다.

‘좋은데?’

대장간을 운영한다는 것, 대장장이로서 무수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리드 또한 체다카 길드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지금쯤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돈 많이 벌겠네?”

스텡의 나이는 대략 18살 전후로 추정됐다. 영국인인 점을 감안해보면 벌써 면허를 땄을 수도 있다.

‘저 외모, 저 나이에 슈퍼카를 끌고 다니면 매 주마다 애인을 갈아 치울 수도 있겠군…!’

잘 생긴 사람은 얼굴값 한다, 라는 편견을 지닌 그리드가 부러움을 느끼는 그때 스텡이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헤헷…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할머니랑 여동생을 부양할 수 있게 됐어요. 그 사실이 늘 기쁘고 감사해서 항상 열심히 사는 중입니다.”

“…”

왠지 나만 철 안든 놈 된 기분이다.

돈 벌고 빚을 청산하자마자 8억짜리 차를 산 전력이 있는 그리드!

머쓱해진 그가 헛기침을 하는 동안 용광로의 온도가 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확인하고 철광석을 쏟아 붓는 그리드를 곁에서 지켜본 스텡이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대단하세요! 불을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하시군요!”

그리드를 제외한 다른 대장장이들은 아직도 철광석의 제련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용광로의 온도를 원하는 대로 정확하게 조절하는 일은 그렇게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단하다기보다는 너희들의 실력이 형편없는 것 같은데.’

그리드가 혀를 찼다.

스텡이나 다른 대장장이들은 둘째치고라도, 기자회견장에서 그토록 기고만장하게 지껄였던 대장장이 랭킹 1위 판미르의 불을 다루는 솜씨가 기대 이하였던 까닭이다.

대장장이 칸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접하달까!

‘저게 랭킹 1위라니.’

고작 저 정도 실력자를 상대하면서도 긴장해야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다.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한숨 쉰 그리드가 철광석 제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용광로에서 녹은 철광석의 불순물이 걸러지며 주황색 철물이 쭉쭉 뽑혀 나오는 광경이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힐끔힐끔.

그리드를 훔쳐보던 다른 대장장이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토록 순도 높은 쇳물을 뽑아내다니?’

‘그것도 이렇게 빨리…!’

‘직업빨이다!’

대장장이들은 감탄하다가도 부정했다.

그리드의 제련 솜씨가 뛰어난 이유, 그리드의 경험과 기술이 축적되어 발생한 결과가 아니라 순전히 직업빨에 스킬빨 덕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곁에서 그리드를 지켜본 스텡의 생각은 달랐다.

‘이건 그리드님의 순수한 실력이야!’

그리드의 움직임은 하나부터 열까지 퀄리티가 높았다. 오토 제작 시스템에만 의존해서는 결코 저런 움직임을 선보일 수 없다는 사실을 대장장이 랭킹 2위 스텡은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드님께서도 수작업을 하고 계신다!’

스텡의 의욕이 들끓었다.

전설의 대장장이가 바로 곁에서 진정한 실력을 뽐내고 있었으니 그 또한 자극 받은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그리드와 실력을 겨루고 이 경험을 토대로 더욱 성장하고 싶었다.

“그리드님! 한 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운빨 게임에 한 수는 개뿔.”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치는 스탱 역시 철광석의 제련을 끝내가고 있었다.

그 실력이 판미르나 다른 대장장이들과 달리 제법이었기에 내심 놀란 그리드가 또 한 번 세상의 부조리함을 느끼고 치를 떨었다.

‘이런 꼬맹이가… 전설의 대장장이도 아닌 이런 꼬맹이가 이런 실력을 갖고 있다니!’

역시 타고난 재능이란 중요하다.

인생은 재능빨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만약 내게도 눈곱만한 재능이 있었다면 세상 살기 얼마나 편했을까?’

지나온 세월을 회상해보니 서글퍼져서 눈시울을 붉힌 그리드가 제작용 망치를 꺼내 쥐더니 미친 듯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쩌엉! 쩌엉!!

“……!”

단조질에 앞서 쇳물을 틀에 담아 검의 모양을 잡고 있던 스텡이 화들짝 놀랐다.

그리드가 쇳물을 틀에 담지 않고 그대로 물에 식히더니 모루 위에 올려 망치질을 시작한 까닭이었다.

‘미리 모양을 잡지 않고 단조를 한다고?’

쇳물을 틀에 부어서 모양을 잡는 일은 중요하다. 아니, 중요하고 말고를 논하기에 앞서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지금처럼 장검을 만드는 게 목적일 경우, 검날의 모양을 균형 있게 잡기 위해서는 틀에 의존하는 게 당연했다.

한데 그리드는 그 과정을 생략해버린 것이다!

그냥 뭉텅한 쇠뭉치를 집게로 잡은 채 정신없이 때리기만 했다!

‘뭐지? 설마 승부를 포기하신 건가?’

동요한 스텡의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그는 단조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리드에게 시선을 사로잡혀 있다가 이내 기겁했다.

아무런 형태도 잡히지 않았던 그저 뭉텅한 쇠뭉치가 그리드의 손끝에서 점차 검날의 형상을 갖춰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헐…”

그리드의 실력은 상식을 초월하고 있었다.

스텡이 퀘스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났던 그 어떤 장인급 NPC보다 더욱 더 대단했다.

그리드가 그간 얼마나 많은 아이템을 수작업으로 제작해왔을지 스텡은 간접적으로나마 유추해볼 수 있었다.

‘역시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었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일이 어디 쉬울까?

단순히 행운만으로 최고가 된다는 것은 단언하건데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스탱은 그리드가 단순히 운빨로 전설의 대장장이로 전직하고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 확신했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그리드는 그간 그 누구보다도 더욱 더 노력해왔다는 사실을!

스텡이 전율하는 사이, 그리드는 어느덧 검날의 형상을 갖추게 된 강철을 다시 불로 달군 후 단조작업을 이어갔다.

폈다가 접기를 몇 회나 반복하며 강철의 강도를 높여갔다.

그것도 일반적인 대장장이보다 족히 3배는 빠른 속도로 말이다.

‘대단해…! 정말로 대단해!’

스텡은 확신했다.

“그리드님, 당신은 노력의 대가임과 동시에 타고난 천재이시군요! 존경스럽습니다!”

“…?”

천재라니?

살면서 들어본 개소리 중에 가장 황당무계한 개소리였기 때문에 그리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드는 아직 몰랐다.

부족한 재능을 노력으로 극복해낸 시점부터, 본인은 이미 평범함의 척도를 넘어섰다는 사실을 말이다.

***

“의외로 재밌네?”

“흥미진진하구만.”

8시간 동안의 아이템 제작 승부.

사람들은 지루한 대회가 될 거라고 예견했었다.

8시간 내내 불 앞에 앉아 강철을 두드리는 대장장이들의 작업을 지켜보는 일이 설마 재미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치 못했다.

하지만 직접 보니 사정이 달랐다.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아이템을 제작하면서도 대장장이들은 각기 다른 작업 방식을 선보였고 끓어오르는 화염 앞에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멋졌다.

대장장이들의 작업 과정을 재치 있게 해석하고 해설하는 MC의 진행방식 덕분에 지루할 틈도 없었다.

친구끼리, 혹은 가족이나 연인끼리 둘러앉아 술 한 잔 마시며 대회를 시청하다보니 어느새 8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참가자들이 속속들이 아이템을 완성하기 시작합니다!』

『오오…! 영롱하게 빛나는 저 검신을 보십시오! 대단합니다!』

23명 대장장이들이 탄생시킨 장검들이 차례대로 클로즈업되었다.

기본적인 생김새는 똑같으나 검신이 내포하고 있는 예기는 약간씩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야! 대장장이 랭킹 1위 판미르와 2위 스텡은 무려 유니크 등급의 장검을 만들어냈군요! 다른 대장장이들 또한 최소 레어에서 에픽 등급의 장검을 만들었고 추가 옵션을… 어?』

장검의 정보를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공개하기에 앞서.

경기장에 입장하여 장검들을 일일이 확인해보던 MC가 당황했다.

『저,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만이 유일하게 노말 등급의 장검을 만들었습니다…?』

“노말이라고?”

시청자들이 귀를 의심하는 그 순간 카메라가 그리드에게 클로즈업 됐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씨벌…”

얼굴을 일그러뜨린 그리드가 결국 참지 못하고 쌍욕을 입에 담았다.

세상은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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