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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62화 (257/1,794)

템빨 21권 - 21화

“판미르, 당신 미쳤어? 어째서 일을 이따위로 벌려놓은 거야?”

“Satisfy 최강국이라는 간판과도 올해로 작별이군. 빌어먹을 멍청이의 같잖은 오기 때문에 우리 미국이 종합 순위 1등을 놓치게 생겼으니 말이야.”

기자회견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미국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분위기는 최악이다.

라우엘을 제외한 대표 전원이 판미르를 맹비난하였다. 자칫 욕설이라도 나올 기세였다.

하지만 판미르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미안한 기색조차 없었다.

당당히 허리를 편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Satisfy가 오픈하고 지금까지 3년 반 이상 대장일만 해왔다. 로그인하는 순간부터 로그아웃하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 계속 화덕 앞에서 망치로 모루를 때렸지.”

똑같은 제작법과 똑같은 재료를 사용할지언정 더 좋은 아이템을 탄생시키고자 연구했고 기술을 쌓았다.

지난 세월 동안 판미르가 갈고닦은 실력은 진짜배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템 제작의 결과물이 순전히 운으로 정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기술과 정성이 더 크게 작용한다. 지발, 자네라면 알고 있겠지? 내가 아이템 하나를 제작하는데 무려 8시간씩을 투자한다는 사실 말이야.”

‘그리드님의 아이템 제작 시간은 기본이 20시간이고 늦으면 이틀까지도 걸리는데…’

고작 8시간으로 생색을 내다니!

라우엘이 속으로 가소로워하는 그때 지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판미르 당신의 작업 시간은 일반적인 대장장이보다 배 이상 더 길지.”

“왜일 것 같나?”

“…?”

내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미국 대표들이 슬슬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진정되는 분위기를 확인한 판미르가 본격적으로 설명했다.

“나는 수작업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수작업?”

“사실 아이템 제작 방법은 간단해. 제작하고 싶은 아이템의 도안을 펼치고 제작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등록한 후 <제작>버튼 하나만 클릭하면 자동으로 망치질이 시작되고 잠시 후 아이템이 완성되지.”

이게 대부분의 대장장이들이 아이템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작업 시간은 아이템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지만 최소 5분에서 최대 6시간까지 걸렸다.

너무 짧은 시간을 투자할 경우 불량품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긴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무조건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대장장이들의 평균 작업 시간은 3시간 정도였다.

“하지만 난 제작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다. 내 의지로 직접 망치를 두드리며 아이템을 내가 의도하는 최선의 방향으로 제작한다. 이게 바로 수작업이다.”

“수작업의 장점은?”

“아이템 등급 상승과 옵션 추가 확률이 높아지지. 대부분의 대장장이 랭커들이 나처럼 수작업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아이템을 제작하는 몇 시간 동안 내내 집중해서 작업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심력과 체력을 가혹할 정도로 소모하는 일이다.”

판미르가 장담했다.

“그리드는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한 순간부터 최상급의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습득한 인물이다. 단지 <제작> 버튼 하나만 누르면 레어, 에픽 아이템을 손쉽게 양산할 수 있고 운 좋으면 유니크, 레전드리 아이템까지 만들 수 있는 그가 과연 노력이라는 단어를 알까? 그는 수작업을 모를 것이다. 아니, 설사 안다고 해도 쉽게 얻은 힘이 있는데 그걸 놔두고 굳이 고생을 사서하진 않았겠지.”

요점은 이거다.

“오로지 직업 특성과 행운에만 의지해온 그리드와 나는 격이 다르다. 내일 있을 승부에서 그리드는 언제나처럼 행운에만 의지할 것이고 나는 기술을 선보일 테니까.”

내일, 그리드는 평소처럼 <제작>버튼을 한 번 클릭함으로서 간단하게 상위 등급의 아이템을 완성시킬 것이다.

어쩌면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을 만들 수도 있겠지.

반면 판미르는 아무리 노력하고 기술을 쏟아봤자 에픽,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을 만드는 게 한계일 터였다.

하지만 판미르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드가 만들어낼 ‘이름뿐인’ 레전드리 아이템보다야 자신의 정성이 깃든 에픽, 유니크 아이템이 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만만하게 구는 판미르를 잠자코 보고 있던 스컬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Satisfy는 결국 게임이외다. 당신이 아무리 정성을 쏟아봤자 손재주나 대장장이 기술 등의 스탯과 스킬 수치가 결과물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한 사실이오. 시스템적으로는 승리보다 패배할 근거가 더 많은 당신이 그렇게까지 자신만만한 게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소.”

판미르가 끌끌, 웃음을 터뜨렸다.

“내 대장장이 기술 레벨도 어느덧 고급 6이다. 여기에 탈리마에서 배워온 드워프의 기술까지 중급 단계에 진입했지. 이로 인해서 내가 제작하는 아이템의 능력치는 도안에 명시된 것보다 무려 12퍼센트 더 뛰어나게 완성된다.”

그뿐이랴?

“수작업을 통해서 꾸준히 상승시킨 손재주 스탯 또한 어느덧 1,700에 육박하고 있어. 내가 장담하건데 수작업의 수자도 모르는 그리드보다야 내 손재주가 훨씬 더 높다.”

‘그리드님의 손재주는 거의 3천이라는 것 같던데.’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늘 자신의 상식선에서 그리드를 가늠하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라우엘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로서는 그분을 가늠할 수 없다니까.’

그리드가 우리보다 더 노력해왔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상, 당신들은 영영 그리드의 아래다.

생각한 라우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

<드레이크의 송곳니>

제2급 금속으로 분류되어 인간계의 광산에서 채취할 수 있는 그 어떤 금속보다 더 단단합니다.

코끼리의 상아보다 더 크고, 덜 휘었으며, 가볍고, 약간의 탄성이 있는 재질입니다. 드레이크의 발톱, 뼈, 비늘보다는 덜 단단합니다.

활대나 창대의 재료로 이상적입니다.

무게:100

<드레이크의 발톱>

제2급 금속으로 분류되어 인간계의 광산에서 채취할 수 있는 그 어떤 금속보다 더 단단합니다.

드레이크의 발톱은 여러 겹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드레이크가 나이를 5살 먹을 때마다 발톱의 겹층이 하나씩 늘어나므로 발톱을 통해서 드레이크의 나이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드레이크의 모든 신체 부위 중 가장 단단하여 검날, 창날 등의 무기 재료로 이상적입니다.

단, 제련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무게:820

<드레이크의 비늘>

제2급 금속으로 분류되어 인간계의 광산에서 채취할 수 있는 그 어떤 금속보다 더 단단합니다.

질기고 탄성이 강합니다. 금속보다는 가죽으로 분류되며 방어구의 재료로 이상적입니다.

무게:250

<드레이크의 뼈>

제2급 금속으로 분류되어 인간계의 광산에서 채취할 수 있는 그 어떤 금속보다 더 단단합니다.

발톱 다음으로 단단한 부위입니다.

방어구의 재료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취성이 매우 커서 충격에 약한 면이 있습니다.

무게:300

<드레이크의 심장>

미약하게나마 드래곤의 피가 흐르고 있는 심장입니다.

극소량의 마력을 무한히 생성하며 화염을 발생시킵니다.

무게:1,000

굳이 ‘인간계’에 존재하는 광산이라고 명시해놓은 것을 보면 신계와 지옥에도 따로 광산이 있는 건 아닐까 싶다.

하긴, 그러니까 신계의 광물 아다만티움이 따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일 터다.

“이거 대박이군.”

재료들의 정보를 확인한 그리드의 표정이 무척 밝다.

2개의 송곳니를 얻은 덕분에 최고의 활과 창을 1개씩 만들 수 있었으니까!

<보우 마스터리>와 <스피어 샷>을 보유하고 있는 그리드에게 있어서 활과 창은 훌륭한 보조 무기였고 투자할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발톱으로는 창날을 만들면 되겠고. 비늘과 뼈는 우선 킵하자.’

삼겹갑, 큰 장갑, 란스티어의 망토 등을 비교적 최근에 제작한 그리드는 스스로의 방어력에 만족하고 있었다. 최소한 국가대항전에서만큼은 이 이상의 방어구가 없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이 시점에서 또 새로운 방어구를 제작한다는 것은 사치나 다름이 없다.

언젠가 더 큰 힘이 필요한 날이 온다면, 그때에 가서 사용하리라.

다짐하며 새로운 제작재료를 다뤄보고 싶다는 대장장이로서의 욕구를 잠재운 그리드가 드레이크의 심장을 꺼내 들었다.

이번 레이드의 가장 큰 보상이 바로 심장이었다.

그리드는 심장이 무한한 화염을 생성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녹여서 무기에 귀속시키면 공격할 때마다 화염 데미지가 추가되고 방어구에 귀속시키면 방어할 때마다 화염을 일으켜서 적에게 반격할 텐데…’

하나밖에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드레이크는 어째서 심장이 하나뿐인가! 한 10개씩 갖고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칸의 대장간.

용광로 앞에 선 채 통탄하고 있는 그리드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라우엘이었다.

“제작 승부에서 꼭 승리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그리드가 콧방귀 뀌었다.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야지? 나를 응원하면 쓰나.”

제2회 국가대항전에서 금메달의 가치는 천문학적이다.

금메달을 하나 딸 때마다 최고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간단한 예로, 대장장이의 경우 최고의 제작 재료인 아다만티움이 보상이었다.

자기발전을 위해서라도 라우엘은 미국의 승리를 기원해야하는 입장인 것이다.

“뭐, 당신께서 잘 되시는 게 궁극적으로 제게도 좋게 작용할 테니까요.”

크라우젤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에도 역시 삼킨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주세요. 아이템을 만들 때 꼭 수작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수작업? 대장일이 당연히 수작업이지 그럼 족작업이냐? 뭘 새삼스럽게 말해?”

“…?”

그리드의 반응이 라우엘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잠시 생각해 본 라우엘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혹시 제작 버튼에 대해서 아십니까?”

“제작 버튼? 그게 뭐야?”

“…”

역시나.

아무래도, 전설의 대장장이인 그리드는 본인도 모르는 패널티를 한 가지 짊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제작 시스템의 혜택을 못 받는 것이다.

그리드는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하고 지금까지 2년이 넘는 세월동안, 화살 하나를 만들지언정 일일이 수작업을 해왔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렇게 작업 시간이 오래 걸렸던 거구만.’

혀를 내두른 라우엘이 그리드에게 측은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냐?”

“그저… 힘내십시오.”

그리드는 왠지 기분이 나빴다.

***

국가대항전 17일차.

대장장이 아이템 제작 승부가 있는 날이다.

이번 종목에 참가한 인원은 총 23명.

본래는 대장장이 랭킹 1위 판미르와 2위 스텡에게 양분되었어야할 사람들의 관심이 오로지 그리드에게 쏠렸다.

전설의 대장장이는 과연 얼마만큼 대단한 아이템을 만들 것인가?

그리드가 그간 제작해온 아이템은 한정적이었고 시장에 풀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궁금증과 기대감은 최고조로 증폭되었다.

『아이템 제작 승부의 제한 시간은 총 8시간입니다! 대장장이 여러분께서는 지급 받은 도안과 재료만을 사용해서 아이템을 제작해주십시오!』

별도의 재료를 추가하거나 도안을 변형하는 건 금지다.

동일한 조건에서 순수하게 실력을 겨루는 것이 이번 대결의 주제였다.

‘어차피 운빨 겜인 주제에 순수한 실력 겨루기는 개뿔.’

투덜거린 그리드가 용광로 앞에 섰다.

다른 대장장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드, 운 좋게 전설의 대장장이로 전직하고 손쉽게 아이템을 제작해왔을 너와 우리의 내공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려 8시간 내내 망치질을 한다는 것, 너로서는 상상조차 못해온 중노동일 테지?’

‘우리가 네게 수작업의 위력을 보여주마!’

사회자가 경기 시작을 외치기 전.

용광로의 화력을 높이며 온도를 조절하고 각자 망치를 꺼내 쥔 대장장이들이 하나 같이 그리드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고작 8시간 만에 아이템 하나를 만들라고? 뭔 작업 시간이 이렇게 짧아? 불량품이나 찍어내라 이건가?’

누구보다 더 중노동에 익숙한 그리드였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생각을 다른 대장장이들이 알게 되었다간 경악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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