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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60화 (255/1,794)

템빨 21권 - 19화

땅에 처박힌 그리드와 그를 노리고 하강하며 박치기를 꽂으려는 드레이크.

해설진은 최악의 사태를 예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드가 큰일 났군요. 드레이크는 너무 빠르고 그리드의 자세는 불완전합니다. 피할 각이 안 나와요.』

『저렇게 누워 있어서야 스킬도 못 쓰죠. 파그마의 검무는 두 다리를 움직여야만 발동하는 스킬이니까요. 이제 보니까 파그마의 검무는 여러모로 제약이 큰 스킬이군요.』

『그리드는 왜 진즉부터 회(回)를 쓰지 않았던 걸까요? 드레이크의 공격을 반격했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전투를 이끌어나갈 수 있었을 텐데요?』

『쓰지 않은 게 아니라 못 쓴 거겠죠. 반격기 타이밍을 맞추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봉드레의 마법을 반격했던 것도 순전히 실력이라기보다는 운이 더 크게 작용했던 거죠. 반격기라는 게 원래 실전에서는 사용하기 무척 어려운 겁니다.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크라우젤 한 명밖에 없을 걸요?』

그리드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그리드의 실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드레이크가 그리드보다 더 강했고 잘 싸웠으므로 그리드의 패배는 당연한 수순 같았다.

“그리드!”

유라와 극검을 비롯한 한국 대표들이 다급해졌다.

그들은 어떻게든 그리드를 구원하고자 드레이크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극검의 공격을 제외하고는 드레이크에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고 드레이크의 기세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극검의 공격이 비교적 강력했지만 어그로를 바꿀 정도는 못 됐다.

결국…

“크라라라라라라!!”

땅에 처박혀있는 그리드의 가슴으로 불꽃에 휩싸인 드레이크의 박치기가 작렬하기 직전까지 왔다.

드레이크는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흉포한 어금니를 드러낸 채 점차 가까워지는 놈의 커다란 마빡을 보면서, 그리드는 겁먹고 오줌을 지리기는커녕 도리어 미소 지었다.

“넌 나한테 안 돼.”

의미심장한 중얼거림과 동시에 발생한 일이다.

푸욱!!

한 자루 삼지창이 날아와 드레이크의 뒷목덜미에 정확히 꽂혔다.

“키에에에에에에!!”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드레이크였지만 놈의 그리드에 대한 분노는 이정도로 멈출 수준이 아니었다.

목덜미에 꽂힌 삼지창을 무시하고 그대로 그리드에게 박치기를 꽂아 넣었다.

하지만 드레이크의 박치기는 그리드에게 닿지 못했다!

삼지창 끝에 달려있는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드레이크의 목을 뒤로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삼지창의 정체, 바로 용작살이었다.

터무니없는 사용 조건 탓에 그리드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다루지 못할 무기를 누가 사용했단 말인가?

바로 갓 핸드다.

그리드 본인의 손을 고스란히 재현하였으므로 모든 아이템을 제약 없이 착용, 사용할 수 있고 대장일과 검술, 마법까지 가능하면서 자아까지 지닌 희대의 개사기 아이템!

그리드가 드레이크와 싸우는 동안 용작살을 수리하고 아이템 합체를 사용하는 등, 휴대용 용광로 앞에서 열일하던 홤금의 손들이 드디어 출진했다.

그리드를 향해서 쏜살같이 날아와 한 자루 검을 건넨다.

상어를 연상하게 만드는 생김새를 지닌 푸른 대검과 반월의 장검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검이었다.

<(합체)실패작+효율적인 사냥 검>

등급:레전드리(초월)

내구력:무한

공격력:1,500~2,180 방어력:120

*민첩성 +100

*일정 확률로 적의 공격을 차단.

*일정 확률로 ‘5연격’ 스킬 발동.

*높은 확률로 ‘절단’ 스킬 발동.

*몬스터에게 40퍼센트의 추가 데미지.

*몬스터에게 공격 스킬 사용 시 크리티컬 확률 60퍼센트 증가.

*몬스터 처치 시 아이템 획득 확률 30퍼센트 상승.

*착용자보다 레벨이 15 이상 낮은 적에게 공포 효과

*어두운 장소에서 공격력 30퍼센트 상승.

전설의 대장장이 그리드가 창조한 전설급 명작 ‘실패작’과 역작 ‘효율적인 사냥 검’을 하나로 합침으로써 장점을 극대화시킨 무기입니다.

사용 조건:파그마의 후예

*합체 유지 시간은 2분입니다.

*거래가 불가능한 아이템입니다

그리드가 만든 효율적인 사냥 검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여러 개를 만든 이유야 당연히 레전드리 등급을 띄우고 싶어서였다.

결국 실패해서 유니크 등급만 완성됐지만 말이다.

여전히 운 나쁜 그리드였다.

“크랄랄랄랄랄!!”

용작살에 구속당한 드레이크가 몸부림치는 사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리드는 <큰 장갑>을 <성스러운 빛의 장갑>으로 교체했다. 이어서 갓 핸드가 건네주는 새로운 무기를 거머쥐는 그의 등 뒤로 석양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드가 처음부터 아이템 합체를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드는 석양을 등지고 출현했던 드레이크의 등장 타이밍을 토대로 시간을 계산하여 실패작의 옵션 효과를 극대화시킬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전문용어로 빅 픽쳐라고 한다.

“이제 그만 죽어서 재료를 남겨라. 가죽, 뼈, 살, 이빨, 발톱, 심장, 눈알 다 뱉어.”

지금 이 순간의 그리드는 드레이크를 적수로 인식하지 않았다. 먹음직한 사냥감으로 볼 뿐이다.

타앗!

크게 내딛으며 검무를 펼치는 그리드의 움직임을 따라서 칠흑의 마기가 나부꼈고 그 모습은 잔혹하게도 아름다웠다.

“쿠워어어엉!”

용작살에 구속당한 채 위험에 무방비하게 노출 된 드레이크가 공포감에 휩싸였다.

애처롭게도 포효하며 몸부림치는 놈이었지만 어느새 용작살용 망치를 거머쥔 갓 핸드들이 연신 용작살을 때리고 있었기 때문에 구속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용작살과 용작살용 망치, 그리고 갓 핸드의 조합은 실로 템빨에, 템빨에 이은 템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용작살의 내구력이 무한할 수만 있다면 대상을 무한히 구속할 수도 있을 터였다.

“히야압!”

드레이크의 마빡을 정확하게 겨냥한 그리드가 기합을 내지르며 도살귀 안대 너머의 적안을 번뜩였다.

그리드가 아이템 합체를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았던 두 번째 이유!

아이템 합체의 위력을 극대화시키고자 드레이크의 약점을 만들어놓기 위함이었고, 그 약점이란 바로 전투 내내 때려놓은 드레이크의 마빡이었다!

“극살(極殺)!”

칠흑의 길을 남기며 쇄도한 그리드의 손끝으로 최강의 스킬이 전개되었다.

극의에 이른 베기에 극한의 살기를 내포한 찌르기가 연계된다.

[크리티컬!]

[약점 공격이 발동하였습니다!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성스러운 빛의 장갑>의 옵션 효과로 인하여 ‘5연격’ 스킬이 발동합니다.]

[<(합체)실패작+효율적인 사냥 검>의 옵션 효과로 인하여 ‘5연격’ 스킬이 발동합니다.]

[<(합체)실패작+효율적인 사냥 검>의 옵션 효과로 인하여 ‘절단’ 스킬이 발동합니다.]

[대상에게 21,300,59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플레이어 최초로 2천만 단위의 데미지를 기록하였습니다!]

[칭호 <한 방에 한 놈!>을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효과로 <치명타 데미지 30퍼센트 상승> 패시브가 항시 적용됩니다!]

[미개한 용 드레이크가 죽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파티장’ <그리드>가 드레이크의 송곳니(2개)를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그리드>가 드레이크의 발톱(4개)를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그리드>가 드레이크의 비늘(6개)를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그리드>가 드레이크의 뼈(10개)를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장’ <그리드>가 드레이크의 심장(1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드레이크의 거체가 대지를 격동시키며 쓰러졌다.

생명력이 절반 가까이 남아있던 놈이 단 일격에 사망하는 순간이었다.

“…”

해설진이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이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그들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다.

전 세계 시청자들과 스타드 드 프랑스 국립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관중들 또한 붕어처럼 입만 뻥긋거릴 따름이었다.

한국 대표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국 대표들은 남들과 다른 의미에서 놀라고 있었다.

‘아이템 습득 권한을 언제 파티장으로 바꾼 거지?’

아무도 몰랐다.

그만큼 모두가 그리드의 전투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갓 핸드들이 구석에서 죽어라 망치질하고 있었단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

[미개한 용 드레이크가 죽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레이드 개시 후 14분이 지난 시점에서 미국팀이 드레이크 레이드에 성공했다.

“좋아!”

“우리가 금메달이다!”

미국 대표들이 환호하였다.

어쩌면 러시아에게 종합 순위 1등을 뺏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소중한 금메달을 얻었으니 기뻤고 자랑스러웠다.

반면 라우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제대로 협력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레이드 개시 전 진행 된 작전회의에서 라우엘은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레이드는 비전문 분야이기 때문에’였지만, 사실 라우엘이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던 이유는 미국이 금메달을 따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하여 드레이크의 비행을 봉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구했다.

하지만 지발의 레이드 능력이 너무나도 뛰어난 게 문제였다.

지발은 드레이크를 공략할 수 있는 전략을 실시간으로 완성시켰고 팀원들의 강점을 활용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신위를 앞세워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 결과 단 14분 33초 만에 드레이크를 레이드해버렸으니 미국의 금메달은 확정적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20분… 아니, 18분까지만 끌었어도.’

그리드님께서 먼저 드레이크를 잡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라우엘이 로그아웃했다.

그 뒤를 따라서 로그아웃한 지발의 표정이 오래간만에 밝았다.

‘내가 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디어 증명했다.’

내가 약한 분야는 PvP뿐이다. 그것도 탑 클래스들 사이에서만.

그 외의 모든 분야에서 나는 우수하고 특히 레이드 실력은 최고다.

그렇게 자부하면서 캡슐에서 빠져나온 지발이 관중들의 환호를 기다렸다.

하지만 어째 반응이 미약했다. 작은 박수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이었다.

‘내가 사람들을 너무 놀라게 만들었나?’

저 강한 드레이크를 너무 빨리 잡아버린 나와 미국팀의 위대함에 할 말을 잃은 것일 터.

콧대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진 지발이 훗훗,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당당히 폈다.

지발은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의 금메달을 알리는 진행자의 외침을!

한데…

『14분 33초 만에 드레이크를 레이드한 미국이 은메달을 차지하였습니다!』

“뭣이!!”

진행자의 개소리에 지발을 비롯한 미국 대표들이 귀를 의심했다. 라우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나 같이 당황한 그들의 시선이 뒤늦게 전광판으로 향했다.

전광판에는 미국보다 앞서 드레이크를 레이드한 국가의 기록이 명시되어 있었다.

한국:8분 59초.

“…?”

이건 말도 안 된다.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데미안의 버프가 있는 일본이라면 또 몰라도 한국이 9분도 안 되는 시간에 드레이크를 잡았다고?

그리드와 극검 아니면 드레이크에게 딜도 못 넣을 피라미들만 모인 그 약소국이?

“조작이 틀림없다!”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지발이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쳤다.

조작이라는 의심이 당연히 발생할 정도로 한국 팀의 기록은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한데 그때 전광판의 화면이 전환되면서 한국 팀의…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리드의 레이드 하이라이트 영상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

영상을 확인한 지발과 미국 대표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턱이 빠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될 지경으로.

“하핫! 푸하하하하핫!!”

라우엘의 경쾌한 웃음소리만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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