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57화 (252/1,794)

템빨 21권 - 16화

“나는 배부르단다.”

어머니의 말버릇이었다.

차디찬 이국땅에서 여인의 몸으로 홀로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

본인은 매일 같이 배를 곯아 비쩍 마르셨음에도, 아들의 삼시세끼만큼은 꼬박꼬박 챙겨주셨던 분이다.

그녀가 감내해왔을 무수한 고생을 크라우젤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저.

그저 꼭 성공하여 어머니께서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늘은 허락하지 않았다.

마치, 너의 어머니는 불행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조롱하기라도 하듯.

***

국가대항전 14일차가 끝난 후 선수들에게 이틀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일종의 정비기간이었다.

선수들은 남은 다섯 개의 종목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새로운 아이템을 마련하고 레벨을 올리는가 하면, 높은 보상을 주는 퀘스트를 무리해서라도 클리어하거나, 컨트롤 솜씨를 끌어올리고자 대련에 열중하는 이들도 있었다.

크라우젤도 그중 하나였다.

남들은 찾지 않는 고난이도 던전에 홀로 입장한 그가 몬스터를 닥치는 대로 사냥했다.

조금씩 경험치를 쌓아가는 그의 뇌리에 의사와의 통화내용이 맴돌았다.

-어머님의 정신행동증상이 심해지셨습니다. 어서 신약을 구하지 않으면…

국가대항전 참가기간 동안, 크라우젤은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수밖에 없었고 주치의와 꾸준히 연락해왔다.

그리고 매일 전달받게 되는 사항은 불행하기만 했다.

머잖아 신체적 합병증까지 나타날 경우, 어머니의 남은 생은 길어야 수년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

알츠하이머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신약.

그것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 크라우젤은 러시아를 반드시 우승으로 이끌어야만 했다.

하여 자존심과 양심을 버리고 더러운 거래에 응했다.

공성전 당시.

승부를 ‘양보’해주는 대가로 템빨단에 가입해달라는 라우엘의 제안을 크라우젤은 뿌리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흐름이 썩 좋지 않다.

남은 다섯 개의 종목과 참가자 명단을 보건데, 러시아가 우승할 가능성은 무척이나 희박했다.

러시아가 노릴 수 있는 메달은 PvP금메달 하나뿐인 반면 미국은 보스 레이드와 대장장이 제작 승부에서도 금메달을 노려볼 수 있는 입장이었으니까.

특별한 이변이 없는 이상 국가대항전 우승국은 미국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보스 레이드나 대장장이 승부에서 다른 국가가 금메달을 따준다면 내게도 희망이 생길 테지만…’

지발의 보스 레이드 능력은 독보적이었고, 판미르는 그리드의 뒤를 잇는 대장장이 실력자다. 또한 그리드는 대장장이 승부에 참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미국이 그 두 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늘은 정녕 어머니를 버리시는가.

절망감이 크라우젤의 뼛속 깊숙이 사무쳤다.

***

템빨단원들은 그리드의 레이드 능력을 잘 알고 있다.

특히 극검은 그리드가 대악마 헬가오를 일인 레이드하는 모습까지 목격했었다.

이후 뱀파이어 백작 엘핀스톤과 뱀파이어 자작 티라멧까지… 그리드는 네임드급 보스 몬스터를 거침없이 해치워왔었다.

하지만 지발은 그 이상이다.

지발이 레이드한 네임드급 보스 몬스터는 무려 20마리에 육박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드비리온의 사자>에게는 몬스터에게 추가 데미지를 입히는 패시브 스킬과 각종 액티브 스킬이 존재한다는 게 정설.

지발은 진정한 레이드 스페셜리스트였다.

“갓리드! 우리는 은메달을 노리자!!”

그간 방송을 통해서 공개된 지발의 레이드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그리드.

말없는 그를 보고 긴장하는 것이리라 짐작한 극검이 힘차게 외쳤다.

국가대항전 기간 동안 메달 하나 따지 못한 ‘무능한 극검’이 할 일이라고는 그리드의 사기를 유지시키는 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띠링~

보스 몬스터를 처단하는 영상 속 지발의 모습을 관찰하고 탐구하며, 레이드라는 분야를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고자 노력하고 있는 그리드와 한국 대표들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주최측의 공지사항이 국가대항전 참가자 전원에게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레이드 대상 몬스터의 정보가 공개되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TV나 인터넷을 통해서 확인해주세요.>

그리드는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재생 중이던 지발의 영상을 종료하고 Satisfy관련 뉴스 방송국으로 채널을 돌렸다.

중년의 앵커가 지금 막 입수된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달하고 있었다.

『32개국 참가자들이 레이드하게 될 보스 몬스터의 정보가 공개되었습니다. 바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속보의 생명은 신속함에 있다.

혹 뜸이라도 들였다가는 타 방송국에 시청자를 빼앗길 수도 있었으므로, 앵커는 뉴스를 빠르게 진행하였고 TV화면으로 보스 몬스터의 정보가 순식간에 떠올랐다.

<드레이크>

레벨:420

드래곤의 피가 극소량 섞인 비행형 몬스터.

비룡과 비교하면 지능이 월등하게 떨어지나 브레스의 위력과 전투능력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상태이상 저항, 극단적인 물리 공격 내성과 마법 공격 내성, 비교적 높은 체력과 무한한 체공 시간을 갖춤.

드롭 아이템:드레이크의 심장, 드레이크의 가죽, 드레이크의 이빨, 드레이크의 뼈.

『드레이크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레이드된 사례가 없는 고위 몬스터입니다. 공략 방법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뜻이죠.』

『모든 팀들이 공평한 조건으로 레이드에 임할 수 있겠는걸요?』

『그렇죠. 아무래도 주최측에서 형평성을 고려한 듯합니다.』

『하지만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절망적이겠군요. 비행형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선 원거리 딜러와 마법사에게 의존해야하는 경향이 큰데, 드레이크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만한 원거리 딜러와 마법사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비행능력을 봉쇄하는 것이 공략의 관건입니다. 하지만 상태이상 저항능력을 갖춘 몬스터의 비행능력을 과연 어떻게 봉쇄해야할지…』

『애초에 400레벨대의 몬스터이다보니 최소 3차 전직자는 되어야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 겁니다. 레이드에 성공할 수 있는 국가가 과연 몇 개나 될지 의문이네요.』

“저걸 어떻게 잡아?”

“미국도 어려워하겠는데?”

한국 대표들이 술렁였다.

유라와 극검의 표정 또한 좋지 못했다.

비행형 보스 몬스터를 단 일곱 명이서 레이드해야 한다니, 특히 한국에는 3차 전직자가 그리드와 극검 단 둘 뿐이다.

불가능한 레이드라고 판단하며 모두가 절망하는 그때.

“이틀 동안 캡슐 룸에 가있겠다.”

그리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사냥이나 하자. 레벨 하나라도 더 올려야 저놈 가죽이라도 뚫어보지.”

극검 또한 그리드를 따라서 일어났다.

공략법을 떠올리는 게 불가능한 상위 몬스터.

괜히 놈에게 집착하여 심신이 지치느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종목에 대비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는 한국 대표들이었다.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 모여 있는 다른 국가의 대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드레이크 공략법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팀은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캐나다와 프랑스 등의 극소수 국가밖에 없었다.

***

국가대항전 17일차.

마지막 단체전 <보스 레이드>가 진행되는 날이다.

세계의 관심이 뜨거웠다.

드레이크.

만나기조차 어려운 그 강력한 보스 몬스터의 위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기회를 얻었으니 사람들은 흥분했다.

선수들 또한 처음과 달리 제법 고양되어 있었다.

드레이크가 아이템을 드롭할 것이라는 주최측의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적 앞에 의욕을 잃은 선수들의 태도가 혹 대회의 흥행을 방해할까 우려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결과는 훌륭했다.

최초에는 ‘우리가 어떻게 드레이크를 잡아?’라고 투덜거리며 조기 탈락을 계획했던 각국 대표들이 의욕을 품었다.

드레이크가 드롭할 아이템들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반드시 레이드에 성공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졌다.

한국 대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드레이크가 드롭하는 재료들은 여태까지 Satisfy에 유통되어온 재료들과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상위의 재료들인 바.

하나만 얻어 일곱 명이 나눠도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었다.

“갓리드! 우리 최선을 다하자! 설령 메달을 못 따게 되더라도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드레이크는 레이드하자고!!”

텐션 높아진 극검이 소리쳤다.

반면 그리드는 여전히 침착했다.

그의 태도가 유라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왜일까?’

혜성 그룹으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약속 받고 Satisfy 게이머들의 가치를 전체적으로 끌어올리는 공훈을 세운 그리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며 기뻐해도 될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째선지 혜성 그룹과 계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기분이 별로 같았다.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걱정거리가 생긴 건 아닐까?

유라의 염려와는 관계없이 대회는 일정대로 진행됐다.

『선수들은 캡슐 룸으로 이동해주십시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서 각자 배정 받은 캡슐로 이동한 32개국 224명의 선수 전원이 Satisfy에 로그인했다.

국가별로 다른 MAP으로 입장하게 된 그들의 눈앞으로, 한 마리씩의 드레이크가 나타나 포효했다.

“크라라라라라라라라라!!”

[드래곤의 피는 모든 하위 존재에게 공포심을 선사합니다!]

[10초 동안 상태이상 공포에 빠집니다!]

[모든 버프 상태가 해제되고, 방어력과 저항력이 50퍼센트 하락합니다. 적으로부터 뒷걸음치게 됩니다.]

[드레이크의 포효가 청력을 일시적으로 상실시킵니다!]

[1분 30초 동안 모든 종류의 대화가 차단됩니다!]

[드레이크의 날갯짓이 일으키는 돌풍에 신체가 제압당합니다!]

[드레이크의 날갯짓이 지속되는 한 모든 속도가 30퍼센트 하락합니다!]

선수들 개개인의 레벨과 저항력에 따라서 디버프의 지속 시간이 다르게 적용됐다.

하지만 어찌됐든, 각국의 선수 전원은 공통적으로 낭패를 겪게 됐다.

특히 지레 겁먹고 미리 버프 스킬을 사용했던 선수들은 그 효과를 누려보기도 전에 잃어버렸으니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휘체계가 무너진다!’

미국의 지발 또한 낭패를 금치 못했다.

‘모든 종류의 대화를 차단’시키는 드레이크의 포효 효과 때문에 아무리 소리쳐봤자 동료들에게 그 내용이 전달되지를 않았으니 문제였다.

미지의 적, 드레이크.

놈의 전투성향을 지발은 무수한 레이드경험을 토대로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으나, 그 사실을 동료들에게 통보할 수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크악!”

“윽…!”

총장 5미터가 넘고 배는 불뚝 튀어나온 드레이크가 그 큰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도 광속으로 이동, 미국 대표들을 유린하기 시작했고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최강의 미국을 저토록 쉽사리 짓밟다니…! 강합니다! 정말로 강합니다, 드레이크!』

『모든 속도 저하 30퍼센트라는 디버프가 너무나도 치명적으로 작용하는군요. 심지어 크라우젤조차도 공격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선 저 날갯짓을 멈추게끔 만드는 게 공략의 기본인 것 같은데…』

『아! 말씀드리는 순간 프랑스의 봉드레가 얼음 마법을 전개, 드레이크의 한쪽 날개를 얼려버렸습니다!!』

『…하지만 금방 부셔버리는군요. 마법에 대한 내성이 터무니없이 높습니다.』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그때였다.

“어라! 혜성그룹에서 이번에 새롭게 출시한 신형 캡슐의 성능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타사의 캡슐들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더 몸이 잘 움직여지는걸!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부드럽게 움직이네!! 이야! 놀랍다!!”

한국의 그리드가 갑자기 큰 소리로 국어책 읽기를 시작했다.

너무나도 생뚱맞아 해설진과 시청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리드가 무장하고 있는 삼겹갑 가슴부근에는 혜성그룹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고 있는 그리드를 보면서 유라는 깨달았다.

지난 며칠 동안 그리드의 심기가 불편해보였던 이유, 저 멘트를 입에 담을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창피해서였으리라.

“…”

유라는 그리드를 측은하게 바라보았고, 시청자들은 몰입감을 깨뜨릴 정도로 노골적인 그리드의 PPL에 분개했다.

그리드를 물질만능의 시대가 낳은 괴물이라면서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청자들의 목소리는 그리드에게 닿지 않았다.

그리드는 동요하지 않고 레이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인벤토리로부터 길이 3미터 직경 80센티미터의 기둥을 꺼내 땅속 깊숙이 박더니, 기둥 끝에 밧줄로 매달려있는 삼지창을 무장하여 드레이크에게 집어던졌다.

번헨 열도에서 획득했던 히든 투창 스킬 <스피어 샷>의 발현이었다.

푸욱!

삼지창에 가죽을 꿰뚫린 드레이크가 몸서리치며 더욱 높이 떠오르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삼지창과 기둥을 연결하고 있는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드레이크의 비행이 봉쇄됐다.

그렇다.

또 템빨이었다.

지난 이틀의 휴식기간 동안, 그리드는 비행형 몬스터의 강점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궁리하고 창조해온 것이다.

그것도 여러 개나 말이다.

그리드가 또 새로운 아이템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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