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56화 (251/1,794)

템빨 21권 - 15화

7대 길드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골든 길드.

그곳의 마스터인 수에론은 <영혼 약탈자>로 전직한 이후 지난 1년 동안 점차 최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20억 유저의 정점이 되리라는 포부를 품기에 충분할 만큼.

“크크크큭!!”

4강전에서 러시아를 만나게 된 아르헨티나.

크라우젤과 마주보고 선 수에론이 기쁨에 전율했다.

“크라우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너를 꺾을 기회를 얻게 되었음을 나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표적 맞추기에서 아르헨티나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이유는 유능한 원거리 딜러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할 경기 따위에 수에론은 집착하지 않았고 설렁설렁 즐겼다.

하지만 공성전은 다르다.

백단위의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 전장에서, 수에론은 싱싱한 영혼을 충분히 보충할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이는 수에론의 클래스 효과를 도약시켰다.

수에론은 자신한다.

1대1 대결이라면 아직 승부를 장담할 수 없겠지만, 전장에서라면 기필코 크라우젤을 꺾을 수 있음을.

“내 명성의 거름이 되어라!!”

흥분하여 소리친 수에론이 체내에 축적시켜놓고 있던 영혼 중 일부를 구체화시키더니 그것을 작은 구슬로 빚어냈다.

대두만한 크기의 구슬이었다.

스으으윽.

비취색으로 반짝이는 수십 개의 구슬이 수에론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그리드의 이야루그트와 비견되는 아름다운 이팩트다.

“팡!”

총싸움하는 어린아이처럼 신나 외치는 수에론.

그에 호응한 수십 개의 구슬이 맹렬하게 회전하더니 이내 쏘아졌다.

목표는 크라우젤이었다.

크라우젤이 등지고 선 러시아 대표들과 NPC들은 수에론에게 하위의 존재처럼 하찮게 인식되고 있었으므로 표적이 되지 않았다.

투투투투투투투투투퉁!!!

공격 거리가 짧은 대신 속도만큼은 기가 막히게 빠른 영혼 구슬들이 2차 전직자들은 인지하지도 못하는 속도로 날아가 크라우젤을 덮쳤다.

마치 기관총이 쏘아지는 모습처럼 보인다.

경이적인 사실은, 크라우젤이 그 구슬들을 모조리 회피해버렸다는 점이다.

스킬레벨 최대치를 달성한 <예민한 감각>과 타고난 혜안, 거기에 높은 민첩성이 결합되어 일어난 기적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지그재그로 달려 수에론에게까지 도달한 크라우젤이 백아도를 꺼내 휘둘렀다.

쩌엉!!

흉악한 총명검으로 방어한 수에론이 힘에서 밀림을 느꼈다.

‘역시, 이놈의 전투 스탯 총량은 400레벨대에 도달한 것이 분명하다.’

각종 퀘스트와 칭호를 선점한 결과일 터.

모르긴 몰라도 엘릭서도 오지게 먹었을 것이다.

과연 독보적인 존재.

크라우젤의 능력치는 상식선에 두고 판단해선 안 되는 영역이었다.

퍼억!

검을 회수함과 동시에 뒤돌려 차기를 날리는 크라우젤에게 관자놀이를 적중당한 수에론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크라우젤이 그대로 검을 찔러 치명타를 입히려는 순간이었다.

파앗!

최초에 크라우젤이 서있던 자리까지 날아가 멈춰있던 영혼 구슬들이 다시금 움직였다. 크라우젤에게 날아오더니 일제히 거미줄처럼 펼쳐졌다.

이토록 효율적인 스킬이 있으리라고는 크라우젤조차 예상치 못했기에 대응이 다소 늦었다. 그만 한쪽 팔을 거미줄에 칭칭 감기고 말았다.

[오른 팔이 일시적으로 구속됩니다.]

“…”

늘 무표정하던 크라우젤의 얼굴이 드물게 일그러졌다.

백아도를 잽싸게 왼 손으로 고쳐 쥐는 그의 안면으로 수에론의 검이 날아들었다.

회피하면서 반격하는 크라우젤에게 재차 반격을 가해버린 수에론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큭큭, 네 영혼을 구속해주마!”

수에론의 스킬이 발동했다.

크라우젤의 신체에 접촉한 영혼의 거미줄이 크라우젤의 영혼과 링크하였고, 수에론은 크라우젤의 영혼을 일시적으로나마 자신의 지배권에 두었다.

[7초 동안 육체가 통제로부터 벗어납니다!]

크라우젤은 색다른 경험을 했다.

왼 팔을 움직이려고 하면 오른 발이 움직였고, 왼 발을 움직이려하면 오른 팔이 움직이는 등 몸이 제멋대로 굴었다.

크라우젤 최고의 강점인 컨트롤이 봉쇄되는 순간이었다.

서걱!

크라우젤의 가슴을 베어버림과 동시에 14개의 영혼 창을 소환한 수에론이 전 세계를 호령할 기세로 외쳤다.

“백전불패의 힘을 맛보아라!”

허언이 아니다.

영혼 약탈자로 전직한 이후, 수에론은 대인전에서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다.

딱 한 번.

레이단의 <기간제 농부>라는 놈에게 패배한 전력이 있기는 하지만, 놈은 필시 네임드급 NPC였으니 논외로 치는 수에론이었다.

이 순간 수에론은 승리를 확신했다.

그는 몰랐던 것이다.

눈앞에 있는 크라우젤이 바로 그 기간제 농부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성장했군.”

과거, 레이단에서 수에론을 만났을 당시에도 그를 인정했던 크라우젤.

비처럼 쏟아지는 영혼 창들을 모조리 막고, 회피하며 수에론을 치하한다.

‘어떻게?’

수에론이 경악했다.

영혼을 구속당한 크라우젤이 구속당하기 전과 다를 바 없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움직였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 짧은 시간에 적응해버린 건가!!’

하얗게 질려버리는 수에론의 목덜미를 백아도가 찔렀다. 즉시 <영혼 갑옷>을 생성하여 방어력을 높인 수에론이 애꿎은 아군을 죽여 새로운 영혼을 착취한 후 이를 토대로 더욱 강력한 반격을 시도했다.

두 사람의 화려한 전투가 전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으며 차츰 심화되어간다.

***

“거 참, 뒤지는 줄 알았네.”

부르르!

카페를 떠나는 그리드의 몸이 연속적으로 경기를 일으켰다. 얼핏 보면 탭댄스를 추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현란한 경련이었다.

에스프레소를 마신 후유증이다.

지끈지끈!

두통까지 밀려온다.

“빌어먹을…”

감기약도 어린이를 위한 시럽형 감기약만 복용할 정도로 쓴맛을 싫어하는 그리드.

그에게 있어서 커피란 썩은 물과 진배없다. 남들은 생수처럼 마시는 아메리카노조차도 그는 혐오했다. 카페에 가면 생과일주스나 코코아만 먹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한데 에스프레소를 마시게 되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사약을 마신 심정이다.

하지만 보람은 있었다.

이상적인 계약을 성사시켰으니까!

육시현에게 압박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용량이 작은 음료를 선택한 게 제대로 작용했다.

그렇다.

그리드가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이유는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고 필요에 의해서였던 것이다.

이제 그는 ‘행동 전 계획’이라는 절차를 제대로 밟고 있었다. 앞뒤 분간 못하고 움직이는 일이 없다. 신중해졌다는 뜻이다.

-계약서 잘 읽어보세요. 완전히 이해가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요. 녹취도 절대 잊지 마시고요.

-갓리드! 한국인인 이상 대한민국 기업이랑 계약하는 게 좋지 않을까?

-♣떳다Go!♣가입 시◆무조건◆※100만※캐쉬증정!!☜☜♨흙수저가♨★재벌되기★

-김미영 팀장입니다…^^

육시현과 대화 도중 도착한 문자들 또한 그리드가 의도한 바다.

유라와 극검에게 정확히 몇 시, 몇 분에 문자를 보내달라고 사전에 부탁했었다.

스팸 문자는 우연히 날아온 것이지만.

매달 내야하는 2천원이 아까워서 스팸 문자 차단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은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다니…

‘돈은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선인들의 말씀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또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그리드가 앞으로는 간짜장 대신 그냥 짜장면을 시켜먹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맙소사…! 미국의 성이 점령당했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러시아가 우승을 차지합니다!!』

샹그X라 호텔로 향하는 길.

그리드가 지나치고 있던 매장 안으로부터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고, 제자리에 멈춰 선 그리드는 매장 안 TV로 시선을 돌렸다.

‘러시아가 이겼다고?’

그것도 미국을 상대로?

그리드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자신은 넘어서지 못한 미국을 크라우젤은 넘어섰다고 생각하자 감정이 격하게 끓어올랐다.

‘크라우젤…’

당신은 정녕 모든 면에서 나보다 우위에 있단 말인가?

그리드는 납득할 수 없었다.

크라우젤이라는 인물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니다.

타고난 재능과 그를 기반으로 노력해왔을 크라우젤의 행적을 그리드는 감히 함부로 유추할 수도, 평가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크라우젤은 노멀 클래스 전직자이지 않던가!

그가 언제까지고 자신보다 앞서나간다는 건 그리드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잔혹한 현실이었다.

그리드는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으니까.

정말로 어렵사리 키워온 자존감이 한 순간에 짓뭉개졌다.

***

국가대항전 3일차 일정이 끝난 후.

국가대항전 종합순위가 갱신되었다.

1위. 한국 (금2)

2위. 러시아 (금1 은2)

3위. 미국 (금1 은1 동2)

4위. 브라질 (금1)

공동 5위. 영국, 프랑스 (각 은1)

6위. 캐나다 (동2)

7위. 일본 (동1)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는 많이 다른 흐름이다.

설마 Satisfy 최강국 미국이 3위에 머물고 약소국으로 분류되는 한국과 브라질이 두각을 나타낼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국가대항전은 이제 막 시작이었으니까.

아직 16개나 되는 종목이 남아있었고, 날이 갈수록 종합순위는 사람들의 예상대로 형태를 잡아갈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모두의 생각대로, 국가대항전 14일차가 끝난 시점에서 종합순위가 안정화되었다.

1위. 러시아 (금4 은3 동2)

2위. 미국 (금4 은2 동4)

3위. 캐나다 (금3 은3 동3)

4위. 한국 (금2)

5위. 스페인 (금1 은2)

6위. 일본 (금1 동2)

7위. 브라질 (금1)

공동 8위. 영국, 프랑스 (각 은3)

공동 9위. 아르헨티나, 중국 (각 동 2)

10위. 터키 (동1)

한국과 브라질은 3일차 이후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한 반면 Satisfy 강국으로 손꼽혔던 국가들은 대량의 메달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선수층이 두터운 팀과 얇은 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시점이었다.

이제 남은 종목은 단 다섯 개.

세상 사람들이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캐나다 삼국 중 과연 어느 국가가 우승을 차지하게 될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하지만 아무도 쉽게 예측할 수가 없었다.

선수들 개개인이 모두 탑클래스라고 단언할 수 있는 미국.

선수층은 미국보다 얇지만 정점 크라우젤이 있는 러시아.

크리스와 반트너 듀오가 점점 좋은 궁합을 선보이기 시작한 캐나다.

하나 같이 너무 강력했다.

누가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여러분들은 잊으셨군요. 우승 후보국으로 꼽을 수 있는 국가가 하나 더 있지 않습니까?』

우승 후보국이 또 있다고?

전문가들의 생뚱맞은 말에 어리둥절해졌던 각국의 시청자들이 문득 떠올렸다.

그리드.

상식파괴의 주범인 그가 아직 단 한 차례도 개인전에 출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설마 또 다른 우승 후보국이 한국?

-어차피 국대전은 금메달만 따면 장땡임. 그리드가 레이드 단체전에서 금메달 하나 따고 남은 개인전 3개에서도 모조리 금메달 따면 한국 우승각ㅋㅋㅋㅋㅋ

-와, 맞네. 갓리드가 금메달 4개 따고 러시아랑 미국은 금메달 1개도 못 따면 한국이 우승이네…

-근데 그게 불가능해서 문제죠.-_-;

이제, 세계인들은 그리드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진정한 탑클래스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드와 비견할만한 탑클래스 플레이어가 이번 국가대항전에는 즐비하다는 점이었다.

러시아의 크라우젤, 캐나다의 크리스, 일본의 데미안, 아르헨티나의 수에론, 스페인의 폰, 영국의 레가스, 그리고 미국의 지발…은 제외하더라도 어쨌든 하나같이 쟁쟁한 인물들이다.

각 종목의 스페셜리스트로 나서게 될 그들을 상대로 그리드가 홀로 금메달 4개를 획득한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정말로 만에 하나 그리드가 금메달을 4개 따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게 된다면.』

『그는 신화가 되겠지요.』

『하지만 역시 불가능한 일입니다. 20억 유저의 정점, 크라우젤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니까요.』

『크라우젤을 논하기에 앞서서 지발이라는 산을 넘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비록 지발이 대인전에서는 약한 면모를 보였다지만, 애초에 그는 사냥과 레이드에 최적화 된 존재가 아닙니까? 레이드 단체전에서 한국이 미국을 꺾을 가능성은 10프로 미만입니다.』

초치는 말의 연속이다.

그리드의 출전만 고대하고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