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54화 (249/1,794)

템빨 21권 - 13화

스완이라는 이름의 NPC.

<적응>과 <도주>라는 고유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적응은 ‘상태 이상 회복 속도 상승’과 ‘지형에 따른 패널티 감소’, 그리고 ‘아이템 사용 제한 하락’ 등의 효과를 발휘하였으며.

도주는 ‘적에게 절대 잡히지 않고 전투 중 사망하지 않는다.’라는 효과를 지녔다.

<대영주의 검>으로 그를 관찰한 순간 그리드는 설계할 수 있었다.

‘라우엘은 내 생각과 행동을 모조리 예측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해놨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스완에게 본래 자신이 하려던 역할을 일임시켰다.

적들에게 스완을 자신이라고 인식시키고 라우엘의 계책에 당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결과는 훌륭했다.

그리드의 대검과 삼겹갑 등을 무장한 스완.

스컬 분대에게 그리드라고 인식 된 그는 훌륭한 미끼역할이 되어주었고, 라우엘의 계책이 성공했다고 판단한 미국은 그리드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이때부터 그리드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알쏭달쏭 도리깨>의 버프 효과가 발동할 때까지 대기했다가 미국을 위기까지 몰아넣는 대활약을 펼쳤다.

결과는 패배였지만.

***

공성전 종료 후.

부활한 NPC들이 모조리 그리드의 곁으로 모였다.

보아하니 미국측 NPC들도 전원 부활한 것 같았다.

공성전용으로 지급되는 NPC는 일회용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소한 국가대항전용 서버에서만큼은 영생을 누리는 듯했다. 마치 플레이어처럼 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달려온 스완이 그리드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드는 그와 러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들을 갖고 싶다는 강력한 소유욕에 휩싸였다.

‘레이단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무려 3차 전직 NPC.

레이단의 병사들보다 레벨이 2배 가까이 높았으며, 그리드조차도 버프 없이는 혼자 여럿을 상대하기 벅찰 만큼 강하다.

거기에다가 러키는 특수 스탯 행운이, 스완은 유용한 고유 스킬들을 보유했으므로 레이단 전력 상승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들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라는 게 그리드의 생각이었다.

이들은 국가대항전에서만 한시적으로 사용되는 존재들일 테니까.

“네가 잘못한 건 없다. 도리어 내가 부족해서 패배하였으니 미안하다.”

본래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은 잃을 것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고 책임전가를 잘 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정반대였다.

스완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고 심지어 사죄까지 하는 그리드.

고귀한 존재인 그가 겸손함과 책임감이라는 미덕까지 갖췄음에 스완은 감격했다. 그 하해와 같이 넓은 마음에 존경심이 피어오를 지경이었다.

전율하고 있는 스완에게 그리드가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 인사로 악수를 나누자는 걸까?

‘이런 고귀하신 분께서 나 같은 놈과 악수를…’

더욱 더 감격한 스완이 그리드의 손을 맞잡는 순간이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예?”

어리둥절해하는 스완을 바라보는 그리드의 눈에 적개심이 피어올랐다.

“설마 내 아이템 먹으려고?”

“아…”

살기까지 느껴졌다.

기겁한 스완이 잠시 동안 사용했던 그리드의 아이템들을 주섬주섬 벗기 시작했다. 그리드 또한 스완의 아이템을 챙겨 돌려주었다.

“…”

아이템을 교환하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두 남자의 눈빛에 아쉬움이 머문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는 눈치들이었다.

한편, 중년 마법사 러키가 그리드를 바라보는 눈빛은 끈적끈적하고 뜨거웠다.

‘때리는 맛이 아주 좋았어…’

그리드의 단단한 근육을 도리깨로 때릴 때마다 느껴졌던 그 짜릿하고 흥분되는 손맛이 잊혀지질 않는다.

그리드 때문에 새로운 취미에 눈떠버린 러키였다. 안타깝게도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운명이었다.

***

한국과 미국의 전쟁을 통해서 다른 국가들은 유용한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게 됐다.

첫째, NPC들에게는 저마다 숨겨진 능력이 있다는 점.

둘째, NPC들에게 새로운 아이템을 무장시킬 수 있다는 점.

셋째, 여덟 갈래의 길에 현혹될 필요가 없다는 점.

“그냥 중앙대로로 진격하면 간단한 일이잖아.”

가장 넓고, 짧은 길.

부정확한 계책을 토대로 병력을 여러 곳으로 분산, 위험을 감수하느니 가장 효율적인 길에 힘을 집중시키는 편이 낫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와 같이 판단한 결과 공성전은 무척 단조롭게 진행됐다.

공성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중앙대로로 집결해서 싸우고 거기서 이긴 국가가 승리를 차지하는 형국이었다.

물론 단순한 힘겨루기는 아니었다. 용병술이 관건이 되는 전투였다.

각국 대표들은 본인들의 아이템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분배, NPC들에게 무장시켜 강화시킨 뒤 저마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적과 싸워나갔다.

그 결과 공성전은 꾸준히 높은 시청률을 유지했고 많은 화젯거리를 낳았다.

하지만 역시 한국VS미국의 경기가 최고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기존의 ‘무식한 템빨러’라는 이미지를 깨고 제법 많은 수 싸움을 준비했던 그리드와 그를 모조리 무력화시킨 라우엘의 지력.

미국 진형을 종횡무진하였던 그리드의 파괴적인 무력.

잠시나마 호각을 이뤘던 한국VS미국전은 시청자들을 자극할만한 요소가 그 어떤 경기보다 더 많았다.

그리드와 라우엘의 평판이 전과 비할 바 없이 올랐고 이는 즉 템빨단의 인지도 상승과 직결됐다.

***

국가대항전 3일차 오후.

32강전, 16강전에 이은 8강전까지 모두 끝나고 4강 진출국들이 확정됐다.

데미안의 권능 아래 <최강의 군세>라는 이명을 얻게 된 일본.

적진을 일점돌파하여 성까지 도달해버리는 신위를 선보인 크라우젤의 러시아.

문무를 겸비한 세계최강 미국.

여기까지는 큰 이변이 없었다.

미국과 일본이 4강에 진출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한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러시아의 활약 또한 허용범위 내였으니까.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달랐다. 아르헨티나가 4강까지 진출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아르헨티나 국민들조차 기대하지 못한 일이다.

아르헨티나는 제1회 국가대항전 당시 참가 자격조차 얻지 못했던 Satisfy 약소국 중 하나인 바.

거의 한국과 동급이라고 평가받는 나라였다.

한데 그 나라가 무려 4강까지 진출하여 최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수에론.

오직 그 한 명의 절대적인 무력이 발생시킨 결과였다.

“영혼 약탈자…”

관계자 관람석.

유라와 극검을 포함한 한국 대표들이 수에론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다.

공성전을 관람 중인 모든 국가의 모든 선수들이 수에론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만큼 수에론의 존재감이 뛰어났다. 크라우젤, 데미안, 그리드와 놓고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저게 바로 전투 특화 유니크 클래스의 위엄.’

적군과 아군의 시신으로부터 영혼을 착취하여 이를 자신의 힘으로 삼는 수에론의 독자적인 전투능력은 훌륭함을 넘어서 완벽했다.

물리 공격력, 마법 공격력, 방어력, 저항력, 광역기, CC기 모든 면에서 약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갓리드라도 흑화를 쓰지 않으면 수에론한텐 안 될 것 같은데…’

그리드의 열렬한 추종자인 극검조차도 이런 생각을 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그리드는 수에론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드는 오로지 크라우젤에게만 집중했다.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3차 전직 NPC 수십 명의 집중되는 공격을 모조리 회피하고 그와 동시에 이동하여 적진을 돌파해버리는 크라우젤의 움직임.

그리드는 흉내는커녕 상상조차 못할 움직임이었다.

이 대목에서 그리드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상상력.’

어쩌면 이 상상력이라는 것도 강함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남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움직일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엄청난 무기다. 예측을 뛰어넘을 수단이 되니까.

하지만 상상력이 뛰어나려면 똑똑해야하지 않던가?

말인 즉…

‘싸움도 똑똑해야 잘 한다?’

그러고 보니, 운동도 똑똑한 사람들이 잘한다는 이야길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그것 참 열 받네.”

똑똑하지 못한 그리드의 입장에선 참으로 절망적인 현실이었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정말로 모든 면에서 보통 사람보다 높은 장벽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다.

과거의 그리드였다면 부들부들 치를 떨면서 신세한탄을 쏟아냈을 터였다.

‘하지만 신세한탄 해봤자 부질없지.’

그리드는 이제 알고 있다.

스스로의 부족한 재능을 원망할 시간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편이 훨씬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으음…”

그리드가 더욱 더 집중해서 크라우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PvP에서 크라우젤을 이길 수 있을까, 궁리하고 또 궁리해보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띠링~

영우의 핸드폰으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세흰가?’

평소엔 울리는 일이 거의 없는 핸드폰.

여동생이나 부모님이겠거니, 기대 없이 확인했던 그리드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혜성 그룹.

그리드에게 스폰서를 제안했던 국내 기업 중 하나인 그곳으로부터 재미있는 문자가 발송되었기 때문이다.

<신영우님께.

국가대항전에서의 활약,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귀하가 자랑스럽고 또한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일전에 무산되었던 계약에 대해서 다시 논의해보는 게 어떠신지요?

귀하를 만족시켜드릴 수 있도록 본사에서 최선을 다 할 예정입니다. 부디 긍정적인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홍보팀 팀장 육시현 올림.>

스폰 금액으로 3억을 제시했던 회사다.

3억.

단지 혜성 그룹의 마크를 가슴에 달고 다니는 대가로 받는 액수치고는 엄청 큰 금액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리드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가치는 그보다 훨씬 더 높았다.

근거 없는 자부심이 아니다.

당장 지발만 해도 세계적인 기업 라디다스로부터 36억의 스폰을 받았다는 기사가 뜨지 않았던가?

‘나도 최소 10억은 받아야지…’

생각하면서 문자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는 그리드에게 유라가 말해왔다.

“만나겠다고 답장하시는 게 어때요?”

“흠…”

그리드가 유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보다 흰 유라의 뺨에 분홍색 홍조가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영우의 문자 내용을 엿본 스스로에게 당황하며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그리드였다.

“괘씸해서라도 만나고 싶지 않아. 이들은 나의 가치를 모르고 있다고.”

아집이 아니다.

그리드는 무엇보다도 템빨단의 마스터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릴 수 없는 입장이었다.

자신이 싸구려가 되는 순간 템빨단의 가치도 떨어질 것을 염려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유라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현재 영우씨의 현금자산이 60억쯤 되던가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50억이야.”

여기에 한 달 후 완공 예정인 빌딩시세까지 합하면 총자산이 150억은 된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빚쟁이 신분이었던 그리드.

그 시절을 회상해보면 현재 자신의 신세가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돈 걱정 않고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흐뭇한 표정을 짓고 대답하는 그리드에게 유라가 현실을 주지시켰다.

“50억은 영우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은 재산이 아니에요. 영우씨가 궁극적으로 수집해야하는 아다만티움이나 드래곤의 비늘 같은 최고급 재료들의 경우 시세가 개당 수십억으로 책정 될 가능성이 무척 높죠.”잠자코 있는가 싶던 극검도 거들었다.

“세상에는 부자가 엄청 많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부자가 탄생하고 있을 테니까. 차량 수집하는데만도 50억 넘게 쓰는 금수저가 한국에만도 수백 명은 되잖아? Satisfy유저가 늘어나고 평균 레벨이 상승함에 따라서 아이템 값은 점점 더 폭등할 거고, 우리 또한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충분한 자금력을 갖춰야지.”

말의 요지는 간단했다.

최소한 지존을 목표로 하는 입장이라면, 혹시라도 현재에 안주할 생각일랑 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존심을 챙긴답시고 굴러 들어오는 호박을 내쳐도 될 만큼 그리드는 여유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맞는 말이다.’

큰 깨달음을 얻은 그리드가 육팀장에게 답장을 보냈다.

-4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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