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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51화 (246/1,794)

템빨 21권 - 10화

근력, 체력, 지력, 민첩성을 제외한 특수 스탯들은 특정 퀘스트를 클리어하거나 칭호, 작위, 지위, 직업 등을 획득해야지만 개방시킬 수 있다.

또한 스탯 포인트를 분배할 수 없기 때문에 특수 스탯을 올린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예외다.

그리드는 일정 등급 이상의 아이템을 제작할 때마다 ‘모든 스탯’이 상승해왔다.

거기에다가 <정의의 사도>, <구국의 영웅>, <최초의 공작> 등 각종 스탯을 올려주는 칭호까지 보유 중이다.

심지어 템빨까지 갖췄다.

300의 지능과 200의 위엄을 높여주는 <성스러운 빛의 왕관>, 150의 위엄, 통찰력, 통솔력을 올려주는 <대영주의 검>을 때에 따라서 활용할 수 있었다.

결과?

현재 그리드의 위엄 스탯은 무려 2천에 다다랐으며 매력은 1천, 통솔력은 300단위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파그마의 후예>에게는 ‘쉽게 인정받는다.’라는 클래스 효과까지 있다.

NPC들, 특히 적절한 안목을 갖춘 NPC들은 그리드를 본능적으로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다.

단지 그리드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고 고개를 수그리게 됐다.

그만큼 그리드의 존재감이란 압도적인 것이다.

‘그리드님은 왕의 자격을 갖춘 분.’이라고 라우엘이 종종 표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자, 장비를 벗으라니요?”

아무리 대단한 사람의 명령일지라도 그 내용이 황당하다면 납득할 수 없는 법이다.

다짜고짜 장비를 벗으라니?

호감도라도 높았다면 또 모를까, 50인의 NPC들은 그리드의 불합리한 명령을 섣불리 따르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군주의 망토>를 꺼내 착용한 그리드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벗어. 전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나를 믿고 따라라.”

“……!”

그리드는 그저 읊조리듯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리드의 목소리는 성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듣는 이에게 전율을 유발시킬 정도로 강력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군주의 망토에 귀속 된 패시브 스킬, <군주의 목소리>의 효과였다.

“…알겠습니다.”

그리드의 말에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왠지 그리드가 말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그리드에게 무한한 신뢰감을 느낀 50인의 NPC들이 하나, 둘씩 장비를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대영주의 검>으로 그들을 관찰하는 그리드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진중했다.

‘이들을 강하게 만드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수단은 아이템 강화다.’

최초에는 50인 NPC들의 장비를 일일이 다 강화해줄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경제적 지출이 너무 컸다.

이들 NPC가 ‘일회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으니 과한 투자는 지양해야했다. 애초에 현재 보유 중인 강화석도 많지 않았다.

국가대항전에 대비하여 새로 제작한 <삼겹갑> 등을 강화하는데 대부분의 강화석과 재산을 탕진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리드가 생각해낸 방법은 2개다.

첫째는 <전설적 대장장이의 감정> 스킬을 활용하는 것.

NPC들의 아이템을 모조리 감정하고 숨겨진 기능을 끌어냄으로서 결과적으로 NPC를 강하게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뭔 죄다 꽝이야?’

그리드는 50인 NPC의 아이템을 모조리 감정했지만 숨겨진 기능이 있는 아이템은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시간만 버린 셈이다.

그리드는 실망했지만 상황이 최악이라는 판단을 내리진 않았다.

NPC를 강화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이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그 방법이란, 다름 아닌 대영주의 검에 귀속 된 <캐릭터 관찰>스킬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이름:트론

레벨:300

클래스:중갑창기사

근력:1,610 체력:1,300

민첩:500 지력:105

보유 스킬:<꿰뚫기>, <차징>, <3인 도발>, <방패 던지기>, <강철 피부>, <중급 스피어 마스터리 3레벨>, <중급 실드 마스터리 5레벨>

고유 스킬:<공격력 상승(패시브)> <회전 베기>, <고급 소드 마스터리 5레벨>

이름:캐리

레벨:300

클래스:경갑검기사

근력:1,500 체력:600

민첩:1,415 지력:80

보유 스킬:<공격력 상승 오러>, <3단 베기>, <승천 베기>, <중급 소드 마스터리 8레벨>

고유 스킬:<멀티샷>, <속사>, <고급 보우 마스터리 6레벨>

“트론.”

“예!”

“넌 창 버리고 칼 들어. 칼은 캐리껄 받아서 써라. 캐리, 너는 칼 얘 주고 활 들고.”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겐 저마다 적합한 적성과 특기가 있다.

하지만 사회를 살아가다보면 어쩔 수 없이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서 적성이나 특기와는 관계없는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는 NPC 또한 마찬가지다.

저마다 각자의 사정으로, 혹은 뜻하지 않게 적성을 살리지 못한 채 재능을 낭비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사실, 레이단의 병사와 기사들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그리드는 깨달은 바 있다.

“저분께서는 어찌…”

“오늘 처음 본 내 특기를 한 눈에 간파하신 거지?”

“경갑기사단에 공석이 없다고 해서 평소엔 관심도 없던 방패술을 익히느라 고생했었는데…”

“…그리드님 덕분에 뒤늦게나마 적성을 살릴 수 있게 됐어.”

[트론과의 호감도가 20 상승하였습니다!]

[캐리와의 호감도가 20 상승하였습니다!]

[화이바와의 호감도가 20…]

..

NPC들의 그리드에 대한 호감도가 일제히 오르기 시작했다.

NPC들의 적성을 일일이 확인하고 아이템과 역할을 재분배시킨 그리드의 공로였다.

NPC들은 그리드의 능력이 너무나도 대단하고 신기하여 그리드로부터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건 한국의 대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 거지?’

‘그리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괜히 탑클래스가 아니야. 평범한 플레이어와는 격이 달라.’

감탄하는 한국 대표들과 NPC들.

그들을 등진 채 나머지 NPC들을 진중히 관찰하던 그리드가 문득, 이상야릇한 미소를 흘렸다.

“재미있는 인물이 하나 계셨군.”

그리드의 날카로운 시선이 마법사들 사이에 서있는 NPC <러키>에게 고정됐다.

러키는 50명의 NPC 중 유일하게 특수 스탯을 개방한 존재였고, 그가 지닌 특수 스탯이란 이름과 어울리게도 <행운>이었다.

풀템 착용 시 무려 14종의 스탯을 보유하게 되는 그리드조차도 지니지 못한… 그래, 어쩌면 그리드는 평생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그 스탯 말이다.

“넌 이걸 무기로 써라.”

“…?”

그리드가 러키에게 무엇인갈 건네주자 러키를 비롯한 자리의 모두가 일제히 두 눈을 껌뻑였다.

그들은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드가 그저 장난치는 걸로만 보였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마법사’ 러키에게 그리드가 건네준 새로운 무기, 다름 아닌 도리깨였으니까.

“왜…, 왜 저에게 농기구를…?”

난 마법이 적성에 맞을뿐더러 농사엔 관심도 없는데?

심지어 지금은 전시상황인데 농사를 지으라고?

‘나 따위는 쓸모없단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건가?’

러키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일단 받아봐.”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러키에게 도리깨를 떠넘긴 그리드가 이어서 다른 NPC를 지목했다.

“스완, 너는 잠시 나를 따라와라.”

또 다시 이상야릇한 미소를 짓는 그리드.

그에게 천막 안까지 끌려온 검사 스완이 불안감에 휩싸였다.

***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드의 행동을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군요.』

국가대항전을 중계 중인 각국 방송사의 해설진이 혼란에 휩싸였다.

50인 NPC의 아이템을 모조리 벗겨낸 후, 무기와 방어구 일부를 서로 교환하게끔 만드는 그리드의 행동을 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멋대로 NPC 역할군을 바꾸네?

-뭔가 깊은 뜻이 있을 거라고 해석하기엔 너무 황당하고 바보 같은 짓이군요.

-마지막에 마법사한테 농기구는 왜 준거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네…

시청자들의 혼란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일부 예리한 전문가들이 추론했다.

『기억났습니다. 현재 그리드가 무장하고 있는 검은 <영주의 검>과 흡사하게 생겼습니다. 영주의 검이란 오로지 왕이나 황제로부터만 하사받을 수 있는 보검으로서, 원하는 캐릭터의 상세정보를 관찰하는 기능을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죠.』

『즉, 그리드는 NPC들의 능력치를 확인한 후 그들에게 보다 적합한 아이템을 무장시키고 역할군을 새로 정해준 듯한데…』

『공교롭게도 확신은 할 수 없습니다. 영주의 검이 워낙 진귀한 아이템인지라 정보가 부족하고, 또한 그리드의 검은 일반적인 영주의 검과 일부 특징이 불일치하거든요.』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마법사에게 농기구를 쥐어준 행위는 아무 의미 없는 짓궂은 장난일 거라는 점이죠.』

『하하… 아, 말씀드리는 순간 미국과 한국 양측이 출진하기 시작했습니다.』

20분의 준비 시간이 끝났다.

이제 공성전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

미국 진형.

지발, 라우엘을 필두로 삼은 미국 대표들과 NPC들이 일제히 성을 빠져나왔다.

눈앞에 펼쳐진 안테라바 숲을 잠시 응시하는가 싶던 지발이 성벽 위로 시선을 돌렸다.

성벽 위에는 대장장이 판미르가 있었다.

“판미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묻겠다. NPC들의 무장상태에 이상은 없는 거겠지?”

“몇 번이나 묻는 거야? 내가 살펴본 결과 이들은 전원 300레벨 제한의 레어 아이템을 무장하고 있었고 내구력에도 문제가 전혀 없었어.”

“좋아, 그럼 이제부터 넌 공성 병기 제작에 집중해라.”

“네가 말만 안 시키면 집중할 수 있다.”

대장장이 랭킹 1위 판미르.

그는 드워프들의 대장장이 기술을 배워왔고 그 결과 에고 아이템, 마법 공학 무기, 공성병기 등 다양한 종류의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게 됐다.

판미르가 자부하건데 본인이 그리드보다 더 뛰어났다.

‘그리드, 부디 이곳까지 도달해라. 그리고 내게 짓밟혀라.’

운 좋게 레전드리 클래스로 전직하여 노력도 없이 최고의 대장장이라는 수식어를 가져간 그리드.

그에 대한 판미르의 박탈감과 적대감은 형용할 수 없이 컸다.

이를 간 판미르가 공성병기 제작에 박차를 가하는 사이, 지발은 스컬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8명의 NPC를 이끈 스컬이 본대로부터 이탈, 라우엘이 예측한 ‘그리드 등장 지점’으로 이동했다.

“그리드가 정말로 그곳에 나타날까?”

“100프로 확실합니다.”

“흐음…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거겠지. 뭐, 나는 너의 두뇌를 신뢰하니까 믿겠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그리드의 발을 묶는데 정말로 저 많은 인원이 필요한 거냐? 심지어 스컬까지…”

멀어지는 스컬 분대를 바라보며 질문하는 지발에게 라우엘이 단언했다.

“그리드님이 흑화를 사용하면 초감각을 사용하기 전의 크라우젤님보다 더 강합니다.”

“그 정도냐? 설사 맞다고 해도 지속 시간은 3분가량에 불과한 것 같던데.”

“그 3분을 버티기 위해서 스컬님과 3차 전직자 여덟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

당최 얼마나 강하다는 건지, 솔직히 납득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랭킹 2위인 자신조차도 스컬과 3차 전직자 넷을 상대론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납득이 안 간다고 해서 라우엘의 의견을 부정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 알았다. 우리도 이만 이동하도록 하지.”

지발 본대가 숲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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