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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47화 (242/1,794)

템빨 21권 - 6화

장 뛰르 호텔.

러시아, 브라질, 일본의 대표들이 배정받은 이 최고급 호텔의 라운지 한편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국가대항전 기간 동안 한정적으로 마련 된 캡슐 룸이었다.

각국의 대표들이 언제라도 Satisfy를 플레이할 수 있도록 호텔측에서 배려한 것이다.

그곳을 크라우젤이 방문했다.

국가 대항전 2일차가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14시간 23분.

그동안 크라우젤은 Satisfy에 접속하여 레벨 올리기에 집중할 계획이었다.

대부분의 대표들이 파리 관광을 즐기거나 술판을 벌이면서 회포를 풀었지만, 크라우젤에게는 현재를 즐길만한 여유가 없었으니까.

오로지 국가대항전 우승을 목표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보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

캡슐에 들어가 앉으려는 크라우젤을 누군가가 불러 세웠다.

러시아 대표 중 하나인 알렉산더였다.

“그렇게 죽어라 게임만 하면 뭐하냐? 결국에는 금메달 하나도 못 따는 주제에 말이야.”

이죽거린 알렉산더가 저벅저벅, 크라우젤의 앞으로 다가왔다. 키가 190센티미터에 육박하고 근육질의 몸매를 지닌 그는 누가 봐도 위협적이었다.

그가 두꺼운 손가락으로 크라우젤의 가슴을 꾸욱, 꾸욱 찔렀다.

“천외천? 지랄하고 앉았네. 결국 너의 무능함 때문에 우리 러시아는 금메달을 놓쳤고, 너는 네 어미의 병을 고칠 수 없게 됐다.”

황인족을 원숭이 이하의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스킨헤드, 알렉산더.

러시아가 그리드에게 기습당했을 당시, 끝끝내 구원하러오지 않은 크라우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 그의 막무가내 비난이 작렬한다.

잠시 잠자코 있는가 싶던 크라우젤이었으나.

꽈악!

“윽?”

알렉산더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크라우젤이 자신의 손목을 낚아채 붙잡았는데, 악력이 어찌나 강한지 끔찍한 고통이 타고 올라온 까닭이었다.

‘황인종 따위가 어떻게 이런 힘을?’

심지어 크라우젤은 여성처럼 가녀렸다. 한데 자신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자 알렉산더는 믿기지가 않았다.

당황하는 그의 손목을 정말로 부셔버릴 기세로, 손에 더욱 더 큰 힘을 실은 크라우젤이 스산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개막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참았지만 말이다.”

그래, 표적 맞추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크라우젤은 아직 팀원들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했었다.

하여 알렉산더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너는 내게 함부로 말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굳이 관계를 따지자면 내가 군림하는 쪽이야.”

흠칫!

크라우젤의 검은 눈동자가 심연보다 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런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기에 알렉산더는 묘한 두려움을 느꼈다.

고작 황인종 따위에게 말이다.

인정할 수 없었던 알렉산더가 이를 갈며 주먹을 휘둘렀다.

“이 빌어먹을 원숭이 새끼가 주제파악을 못하고…!”

“…”

현실 육체의 운동능력이 가상현실 속 육체에 영향을 주는가?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소견은 ‘아니다.’였다.

가상현실 속 육체는 현실 육체와 완전히 별개의 것인 바.

가상의 육체를 보다 잘 움직이기 위해서 중요한 요소는 현실 육체의 발달이 아닌, 뇌와의 상호작용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상식적이었다.

이에 대해서 크라우젤은 ‘경험’이라는 요소를 중요하게 봤다.

예를 들면 검술.

현실에서 검을 10번 휘둘러보는 경험을 축적시킨 후 가상에서 검술을 구사하는 것과, 검을 쥐어본 경험도 없이 가상에서 검술을 구사하는 것.

당연히 전자의 경우가 더 뇌에 명령전달을 잘 하여 훌륭한 검술을 구사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그리고 Satisfy가 출시되기 전.

아직 어머니의 병세를 몰랐던 그 시절.

크라우젤은 순수한 열정으로 수많은 스포츠와 무술을 섭렵했다.

오직 Satisfy의 지존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에서였다.

가녀린 몸매?

옷을 입었을 때의 이야기다.

옷 속에 감춰진 크라우젤의 날렵한 근육은 프로 격투기선수들과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단련되어 있었다.

퍼억!

“커윽…!”

알렉산더의 주먹을 가볍게 회피한 후 안면에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는 크라우젤.

그 일련의 과정이 전광석화와 같았으니 알렉산더는 영문도 모른 채 별을 보았다.

쿠웅!

요란한 소리를 내며 大자로 뻗는 알렉산더의 두꺼운 목덜미 위로 크라우젤이 발을 올렸다.

꾸욱!

“켁…! 켁켁!”

성대가 짓눌려 고통스러워하는 알렉산더.

코뼈가 주저앉은 채 겁에 질린 그에게 크라우젤은 무심히 말했다.

“나는 너 같은 놈들을 잘 안다. 잔인하게 짓밟고 공포를 심어줘야만 비로소 복종하는 유형의 양아치 말이야. 가상현실 속이었던 표적 맞추기에서는 공포를 심어주기에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일단 참았었다만, 이곳은 현실이다. 안 그래?”

꾸욱!

알렉산더의 목덜미를 짓밟은 크라우젤의 발에 더 큰 무게가 실렸다.

결국 알렉산더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자신을 내려 보는 크라우젤의 눈동자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기에.

크라우젤은 사람을 해함에 있어서 일말의 두려움도 없어 보였으므로 알렉산더는 깨달았다.

‘이놈은… 이놈은 진짜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놈이다. 나 같은 허당이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될 놈이다.

덜덜덜 떨기 시작하는 알렉산더에게 크라우젤이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만약, 다음에 또 다시 그 더러운 주둥이로 내 어머니를 거론한다면 혀를 뽑아버리겠다. 또한, 다음 단체전부터는 결코 내 발목을 붙잡지 마라. 신약? 러시아만이 가진 패가 아닐 수도 있는 그것으로 네깟 놈이 나를 통제할 순 없다.”

“……!”

탕탕탕!!

급기야 호흡이 곤란해진 알렉산더가 손으로 바닥을 때리면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였으니 살려달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크라우젤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정말로 죽기 진전까지 목을 짓누른 채 잠자코 바라보다가, 시간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서야 천천히 풀어주었다.

산소결핍으로 현기증을 느끼게 된 알렉산더는 두 번 다시 크라우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상하관계가 완벽하게 정리 된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알렉산더 같은 쓰레기들이 득실거리는 러시아에서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크라우젤이 살아남고자 터득한 방식이다.

이와 같은 성격은 과거, 피아로와 처음 만났을 때도 얼핏 드러난 바 있다.

눈치를 살피다가 후다닥 도망치는 알렉산더.

그를 뒤로하고 캡슐에 들어가 눕는 크라우젤의 표정이 썩 편치만은 않았다.

‘신약이라는 패는 러시아만이 가진 게 맞다.’

Satisfy는 세계 최고최대의 문화이자 사업이며, Satisfy의 정점인 크라우젤의 가치는 천문학적이다. 그의 이민을 바라는 국가가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중 그 어느 국가도 알츠하이머를 고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지 못했다.

그래, 크라우젤은 반드시 러시아를 우승으로 이끌어야만 했다.

[신체를 스캔합니다.]

[홍채를 인식합니다.]

[사용자 정보를 확인합니다.]

[캡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Satisfy에 로그인합니다.]

지이이이잉-

크라우젤의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한다. 오감이 Satisfy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캡슐 룸 구석에 있던 캡슐 한 대가 오픈됐다.

그 속에서 몸을 일으킨 인물은 다름 아닌 지슈카였다.

“크라우젤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크라우젤보다 한 발 앞서 캡슐에 누웠다가, 아직 로그인하기 전에 들려오는 소란을 듣고 의도치 않게 크라우젤의 사정을 알게 된 지슈카.

이 정보를 그리드를 비롯한 템빨단의 동료들에게도 알려야한다고 판단한 그녀가 샹그X라 호텔로 향했다.

***

“단 맛과 짠 맛의 조화가 아주 훌륭해.”

“입에서 살살 녹네요.”

샹그X라 호텔 내 식당.

한국 대표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 중이었다.

과연,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3개를 받은 식당이라더니 음식 맛이 일품이다.

한식 매니아인 극검조차도 이 맛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솜씨가 대단하다. 이 레스토랑의 주방장이 만든 김치찌개를 먹어보고 싶어.”

“…”

왜 굳이 프랑스인 요리사가 만든 김치찌개를 먹어보고 싶다는 건지, 일행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분위기가 요상해지는 가운데 그리드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양은 쥐똥 만큼인 주제에 음식 나오는 속도가 왜 이렇게 느려? 여기 식당 주인 엄청나게 게으른가보네.”

그리드는 배달음식과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전형적인 현대 한국인이다.

평균 식사시간이 15분 내외였다.

한데 프랑스 레스토랑의 코스요리는 평균 2~3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니 그리드는 아주 그냥 속이 터질 지경으로 답답했다.

“이럴 거면 그냥 라면 하나 끓여먹는 게 낫겠다. 미슐랭은 개뿔.”

“음… 이 레스토랑의 주방장이 만든 된장찌개와 청국장도 먹어보고 싶군…”

“…”

테이블 양 끝에 앉은 채 연신 투덜거리는 그리드와 헛소리를 일삼는 극검.

두 사람 탓에, 일행은 음식을 마음 편히 먹기가 어려워졌다.

다음 끼니부터는 그리드, 극검과 함께 식사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행이었다.

반면 유라만큼은 기뻐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리드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단 사실만으로 묘한 행복감에 빠졌다. 그리드와 함께라면 평생 하루 세끼를 라면만 먹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기껏 와인의 본고장까지 오셨으면서 와인 한 잔 안 하시는 겁니까?”

듣기 좋은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레스토랑.

유일하게 소란스러운 한국 대표팀 테이블로 은발의 미청년이 다가왔다.

푸른 눈동자가 하늘처럼 맑고 아름다운 이 비율 좋은 백인, 다름 아닌 라우엘이다.

캐쥬얼한 차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귀족처럼 기품이 흐르는 그가 품에서 레드와인 한 병을 꺼냈다.

비교적 최근의 빈티지를 지닌 로마네 X티.

한 해 약 6천 병만이 한정 생산되는 최고급 와인이었다.

오직 그리드를 위해서 그 진귀한 와인을 어렵사리 공수해온 라우엘이 스스로의 충성심에 도취되어 떠들었다.

“장인이 빚어낸 이 한 잔의 술, 천 년의 세월동안 흘러온 내 몸 속 차가운 피처럼 영롱하며 숭고하지요. 이 순간부로 이 붉은 한 잔의 술은 바로 나 라우엘의 상징… 고스란히 집어삼킴으로서 나를 영원토록 당신의 가슴에 품으시길.”

오글오글!

한국 대표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손발이 오그라지게 만드는 라우엘의 지껄임에 놀라 속이 얹힌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와 극검, 유라는 멀쩡했다.

유라는 원체 평정심이 뛰어난 인물이었고, 그리드와 극검은 영어를 잘 몰랐기에.

“오케이, 오케이.”

“두 유 노우 갓리드?”

제멋대로 화답한 그리드와 극검이 라우엘이 가져온 와인을 따더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역시 술은 소주가 최고라느니, 소맥이 최고라느니 떠들어댔다.

“…”

수만 달러짜리 와인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광경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한 라우엘이 할 말을 잃었다.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내 이야기 좀 들어봐!”

헐레벌떡 달려온 지슈카가 크라우젤의 사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통역기가 있었다면 또 모를까, 포르투칼어를 사용하는 지슈카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유라와 라우엘밖에 없었다.

그리드의 눈치를 살핀 라우엘이 유라와 지슈카에게 신신당부하였다.

“당분간 이 일은 그리드님께 비밀로 하세요.”

라우엘은 그리드와 크라우젤이 서로에게 어렴풋한 호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다.

만약 그리드가 크라우젤의 사정을 알게 된다면 국가대항전에 집중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고, 이는 라우엘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이 문제는 제가 해결해보도록 하죠.”

크라우젤을 템빨단으로 영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회심의 미소를 그린 라우엘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날.

국가대항전 2일차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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