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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45화 (240/1,794)

템빨 21권 - 4화

1, 2위를 다투던 한국과 러시아의 점수판이 거의 동시에 멈췄을 때, 하오는 예상할 수 있었다.

한국과 러시아가 충돌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잠시 후면, 러시아의 점수판이 다시금 움직이고 한국의 점수판은 영영 멈추게 되리라.

하오는 그렇게 믿었다.

한데 결과는 정 반대였다.

‘설마… 설마, 크라우젤이 그리드에게 당했다고?’

하오는 혼란스러웠다.

과거, 레이단 침공전 당시 라우엘에게 들었던 말이 그의 귓전에 맴돌았다.

“그리드님의 행보를 지켜보십시오. 그분만이 유일한 하늘임을 머잖아 알게 될 겁니다.”

누가 봐도 명백한 허언이었기에, 그저 콧방귀만 뀌었었다.

하지만.

‘허언이 아니었던 것이냐?’

휘청.

하오의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울어졌다. 그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서야 간신히 버티고 설 수 있었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하오가 받은 정신적 충격이 컸다.

‘크라우젤…’

천하에 둘 도 없는 천재라고 믿었던 내게 좌절감을 안겨줬던 유일무이한 존재.

아무리 노력할지언정 결코 도달하지 못하리라 보았던 하늘.

그 높디높은 하늘이 내가 아닌 다른 자의 손에 의해서 무너졌다고?

그것도 고작 그리드에게?

“확인…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 한다.”

그전까진 납득할 수 없다.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넋을 잃은 채 그대로 전장을 이탈하려하는 하오.

그의 앞길을 데미안이 가로막았다.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당신을 그냥 보냈다가는 제가 또 국민들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어요. 이번엔 화교냐는 소리까지 들을 거라고요.”

“가고, 안 가고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뭔 소리하는 건지 모르겠는 데미안에게 일갈한 하오가 진정한 힘을 개방시켰다.

콰앙!!

강렬한 기파가 휘몰아치더니,

쩌적! 쩌저적!!

하오의 전신 근육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가슴, 등, 어깨, 복부, 허벅지 등 몸 곳곳의 피부가 갈라졌다.

갈라진 피부 틈새로 보이는 것?

살, 근육, 혈관 따위가 아니다.

적색의 비늘이었다.

펄럭!

하오의 등을 꿰뚫고 튀어나온 한 쌍의 날개가 활짝 펼쳐진다. 그 모습이 마치 드래곤의 날개와 닮았다.

꾸득! 꾸드득!!

검게 물든 10개의 손톱이 칼날처럼 튀어나왔고, 동공과 흰자위가 구분 없이 온통 황금색으로 물들어 보는 이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쿠르르…

화염과도 같이 뜨거운 입김을 토해내는 반(半) 용족.

생김새는 한없이 인간에 가깝지만, 부분적인 특징들이 드래곤과 흡사한 이 존재가 바로 하오의 실체였다.

현재 하오의 반용족화 레벨은 2.

용족의 힘을 개화할 시 근력과 민첩성, 생명력과 저항력이 15퍼센트씩 증가하고 화염 능력과 함께 불완전한 비행 능력, 그리고 체력재생 회복속도 상승효과를 누리게 된다.

인간일 때 사용할 수 있던 스킬 대부분을 봉인 당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애초에 하오는 스킬에 의존하는 경향이 적었다.

궁극의 피지컬을 기반으로 삼은 평타 콤보와 보조 무기를 활용한 제압술에 능하기 때문이다.

용족으로 변화하며 성장한 능력치가 그의 전투력을 극대화시켰다.

“썩 꺼져라!”

쿠와아아아앙!

브레스를 토해내는 하오.

그의 크라우젤에 대한 감정은 순수한 동경에 가깝다.

언젠가는 크라우젤을 넘어서겠다는 열망을 품은 채 크라우젤을 주시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크라우젤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정작 크라우젤은 하오를 몰랐지만, 하오의 인생 전반은 크라우젤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었다.

당장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이유 또한 크라우젤이 참가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일 정도다.

퍼엉!!

위협용으로 발사한 브레스를 데미안이 방패로 막는 사이, 브레스를 연막삼아 이동한 하오가 데미안에게 도달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철벽같은 방패를 재차 들어서 그를 방어한 데미안이지만,

화르륵!

하오가 몸에 두르고 있는 불꽃의 영향을 받아 화상을 입고 말았다.

하지만 데미안은 큰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레베카교 제일 성기사 출신이며, 최초의 유니크 클래스 전직자 <여신의 대행자>임과 동시에 교황인 데미안.

심지어 피아로에게 검술까지 사사한 그의 스펙은 그리드와 필적하는 수준이다.

압도적인 방어력과 저항력으로 하오의 화염을 견뎌낸 그가,

서걱-!

검성을 꿈꾸지는 못할지언정 전성기의 검호를 바라보는 검술 솜씨로 반격, 하오의 가슴을 벤다.

하오의 금색 안광이 흔들렸다.

‘검의 달인이기까지 하다고?’

하오가 알고 있는 <교황>이란 사제의 궁극적인 모습이었다. 검, 둔기 등을 사용하는 성기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데 데미안은 각종 버프 스킬과 힐, 거기에 광역 공격 마법까지 보유한 교황임과 동시에 성기사의 면모까지 갖췄다.

그렇다.

데미안은 역대 최강의 교황이 될 잠재력을 지닌 개사기급 캐릭터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탑클래스였다.

쩌엉!

데미안에게 베이는 순간, 피해를 최소화시키고자 회전하였던 하오가 그대로 발을 올려 참으로서 데미안에게 반격을 가했다.

그리고 이때 생긴 반동을 이용해서 데미안과의 거리를 벌림과 동시에 쇠사슬을 전개, 데미안의 양쪽 손목을 구속시켰다.

끼릭! 끽!!

손목이 구속되어 검과 방패를 휘두를 수 없게 된 데미안.

당황하는 그를 정면으로 바라본 하오가 날개를 힘껏 펼쳤다.

그리고 한 번 펄럭이자,

퍼엉-!

불시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하오의 몸이 데미안에게 벼락처럼 쇄도했다.

데미안은 그에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쇠사슬에 구속당한 양쪽 손목이 좌우로 동시에 당겨졌으므로,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양팔을 벌리고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오가 그의 가슴을 머리로 힘껏 박은 후, 이어서 손톱을 꽂아 넣는 순간이었다.

“여신의 격노.”

결국, 데미안이 교황의 권능을 선보였다.

지이이이이잉-

데미안의 등 뒤로 지름 3미터가량의 거대한 마법진 2개가 순식간에 생성되었고,

퍼어어어어어어엉!!

직선상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거대한 빛의 기둥 2개가 마법진으로부터 방출, 하오의 몸을 관통했다.

그 기세가 대지를 격동시킬 정도로 엄청났다.

덕분에 하오가 멀찍이 날아갔으며 데미안을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도 느슨해졌다.

쇠사슬을 풀고 무기를 고쳐 쥔 데미안이 식은땀을 닦아냈다.

“제가 만약 교황이 되기 전이었다면, 당신을 상대하기엔 조금 벅찼을 수도 있었겠네요.”

감상을 읊는 데미안에게 하오가 콧방귀 뀌었다.

“교황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네가 강한 건 인정하지만 나를 감당하기엔 어림도 없지.”

광역 마법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또한 현재 전투의 무대는 PvP 데미지 적용률이 50퍼센트에 불과한 국가대항전이었다.

하오는 여신의 격노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만 넉백 효과에 자세가 무너졌을 뿐이다.

태세를 정비한 하오가 다시금 데미안에게 쇄도했다.

날갯짓을 적절히 활용, 순간적인 가속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의 움직임은 현란하였으며 또한 효율적이었다.

데미안의 방어를 절묘하게 파쇄시킴과 동시에 데미안의 반격은 확실하게 피했다.

전투가 진행될수록 데미안만 일방적인 피해를 입었다.

“당신, 정말로 강하네요.”

데미안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어느새 데미안은 생명력을 3분의 1이나 손실한 반면 하오의 생명력은 도리어 회복됐다.

정말로 하오는 강했다.

어찌나 움직임이 굉장한지 공격을 적중시키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내가 그리드님도 아닌 다른 누군가를 상대로 이 기술까지 선보이게 될 줄이야.”

한숨 쉰 데미안.

그가 <여신의 대행자>의 궁극기인 <빛의 가호>를 전개하였다.

교황 한정 스킬 <여신의 가호>와 유일하게 비견할 수 있는 최고위 버프 스킬의 발현이었다.

[빛의 가호의 효과로 자신과 파티원의 공격력, 방어력, 명중률이 3분 동안 80퍼센트 상승합니다.]

말도 안 되는 효과.

이 스킬의 단점은 재사용 대기 시간이 다소 길다는 점과 높은 마나 소모량에 있다.

특히 <여신의 대행자>의 경우 최대 마나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마나의 안배에 약간만 실수해도 빛의 가호를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데미안은 교황이라는 지위를 획득한 상태이다.

이전과 비교하면 마나량이 족히 10배 이상 폭등한 상태였으므로 버프 스킬 정도야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서걱!!

“큭…!”

데미안이 휘두르는 검의 적중률이 갑자기 높아졌다. 궤도를 읽고 피해봤자 자석처럼 끌려오며 내 몸을 벤다.

하오가 당혹을 금치 못했다.

‘명중률을 대폭 증가시키는 버프라니…!’

높은 명중률은 컨트롤을 기반으로 하는 회피력을 ‘시스템’적으로 짓뭉개버린다.

하이 랭커들 사이에서 명중률의 가치가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명중률을 높이는 스킬이나 아이템은 보기 드물었고, 여태껏 하오의 컨트롤 솜씨를 무력화시킬 수준의 명중률을 발휘하는 랭커는 찾기 어려웠다.

한데 지금 나타난 것이다.

데미안.

심지어 놈의 버프는 공격력과 방어력까지 대폭 증가시키고 있었다.

채챙! 챙!!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한다.

하오가 점차 수세에 몰렸다.

더욱 더 중요한 사실은, 일본의 대표들이 중국의 대표들을 완전히 압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잠시 후, 중국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 하오가 고립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광경이 아시아를 충격에 빠뜨렸다.

『주, 중국이…! 아시아 최강국이라는 중국이 일본에게 무참히 패배했습니다!!』

『데미안의 능력이 너무나도 대단합니다. 저 하오와 1대1로 싸워도 전혀 밀리지 않을뿐더러 광역 버프로 파티원의 능력을 몇 배나 증폭시키다니…』

『어쩌면, 이번 대회의 최고 이변은 일본으로 인해서 발생하지 않을까요?』

『올해 국가대항전의 우승국, 일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겠군요.』

데미안이 발생시킨 파장은 그리드가 발생시킨 파장 이상이었다.

한편, 결국 로그아웃 직전까지 몰리게 된 하오가 데미안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만한 힘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너 본인보다 그리드를 더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뭐냐?”

데미안이 답했다.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신 분이 바로 그리드님이시거든요.”

타락한 교황 드레비고를 꺾고 <여신의 대행자>로 전직할 수 있었던 것도, 드레비고보다 더욱 더 악독했던 교황 후보 파스칼을 꺾고 <교황>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다 그리드의 도움 덕분이었다.

데미안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레베카교 제일 성기사라는 타이틀을 쟁취하는 게 한계였을 터다.

오로지 그리드 덕분에 데미안은 성장할 수 있었고, 오로지 그리드 덕분에 레베카교와 레베카의 딸들은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리드님은 저의 신입니다. 그분이 저보다 훨씬 더 대단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현재, 데미안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수백 대의 카메라가 데미안의 모습을 촬영하며 각국으로 실시간 송출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드를 신격화시키는 데미안 덕분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그리드에 대한 세계인들의 호기심과 선망이 점차 더 깊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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