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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44화 (239/1,794)

템빨 21권 - 3화

템빨을 앞세운 그리드의 강함과 용맹, 보통내기가 아니다. 호랑이라고 자처할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초연(超聯)과 연살파(聯殺派) 콤보를 비교적 쉽게 피하고, 막은 러시아의 실력자들조차도 무지막지한 템빨 앞에선 위축되는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더를 가뿐히 압도하다니… 템빨의 위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크라우젤의 포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이트와는 비견해도 되겠는걸.’

‘우리 셋이서 덤벼봤자 끽해야 공멸이 한계겠군.’

나이트.

러시아 출신의 비공식 랭커로서, 러시아 정부가 개최했던 PvP대회에서 알렉산더를 박살낸 전력이 있다.

그자의 파격적인 강함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그리드는 강했다.

몸서리친 러시아의 대표들, 즉 3차 전직자 셋은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켰다.

‘그리드의 초연(超聯)을 피하지 못하고 산 아래까지 추락한 2차 전직자 둘.’

‘그 둘은 약하다. 우리가 그리드와 공멸할 경우, 크라우젤과 그 둘만으로 표적 맞추기에서 우승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여기선 타협을 보는 게 맞다.’

저벅저벅.

그리드가 다가오고 있다.

파국으로 치닫고 싶지 않다면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한다.

눈치를 교환한 러시아 대표들이 그리드에게 제안했다.

“동맹을 맺는 게 어때?”

“피차 전력에 큰 손실을 입은 상태지 않냐? 우리끼리 끝까지 싸워봤자 다른 나라들을 도와주는 꼴밖에 안 된다고. 반면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천하무적 아니겠어?”

“금메달과 은메달을 사이좋게 나눠먹자.”

러시아 대표들은 이 제안을 그리드가 흔쾌히 수락하리라 보았다.

현재 한국의 생존자는 그리드, 유라, 극검 셋뿐이었고 그중 유라와 극검은 곧 크라우젤에게 로그아웃 당할 게 분명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리드가 무리할 리 없었다.

‘그리드가 고집을 부려서 우리와 싸웠다가는.’

‘결국 그리드마저 죽게 되고 한국은 그대로 탈락이다.’

‘그리드도 바보가 아닌 이상 끝까지 우리와 싸우려하진 않겠지.’

러시아 대표들은 확신하였으나,

“싫은데?”

그리드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바보라서?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발전해온 그리드는 무력뿐만이 아니라 사고력까지 성장한 상태였다.

라우엘의 조언을 늘 명심하고 있는 그, 보다 대국적으로 전장을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끼리 동맹을 맺는 순간, 지금은 서로 싸우느라 바쁜 다른 나라들이 일제히 우리를 경계하게 될 가능성이 높잖아?”

현재 생존해있는 국가들은 하나 같이 강국이다. 그들에게 협공당할 빌미를 제공해봤자 좋을 게 없다.

“쉽게 쉽게 가자고. 처음의 계획대로 너희들은 여기서 죽인다.”

러시아 대표들은 황당할 따름이었다.

당황한 그들이 다급히 설득했다.

“냉정하게 생각해라! 네가 굳이 우리와 싸워서 서로 공멸하는 것보단 차라리 힘을 합치는 게 당연히 좋은 거 아니냐!”

“공멸?”

그리드가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희들하고?”

“…?”

움찔한 러시아 대표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그 반응은? 설마, 너 혼자서 우리 셋을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고 믿는 건 아니겠지?”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을까?”

어깨를 으쓱인 그리드가 합체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리드의 대검+실패작>을 고쳐 쥐었다.

그리드의 대검과 실패작은 모두 레전드리 등급의 무기인 바.

이 두 개가 <아이템 합체>를 통해서 하나로 거듭난 이상 그 위력은 ‘봉인 된’ 신화급 무기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현재 플레이어들의 상식으로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무기라는 뜻이다.

여기에 귀속 아이템 <암흑의 룬>효과와 버프 스킬 <대장장이의 분노>가 추가된다면 어떻게 될까?

PvP데미지 적용률 50퍼센트 하락 패치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암흑의 룬을 개방합니다. 악마력이 영구적으로 10 상승합니다. 1분 동안 일반 공격, 스킬 공격 시 암흑 속성 공격력이 20퍼센트 추가됩니다.]

[대장장이의 분노를 사용합니다. 35초 동안 공격력이 25퍼센트, 공격 속도가 40퍼센트 상승합니다.]

터엉-!

그리드가 러시아 대표들에게 돌진했다.

그 비상식적인 판단에 혀를 내두른 러시아 대표들이 일제히 무기를 투척, 그리드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고자 시도했지만…

터터터터터터터텅!!

“……!”

러시아 대표들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그리드가 칠흑의 망토로 몸을 휘감자, 기껏 투척한 무기들이 그에 막혀서 튕겨져 나온 까닭이다.

{뭐, 뭐야? 방금 봤어? 세상에 뭐 저딴 망토가 다 있어?}

{여태까지 몇 개의 레전드리급 망토를 봤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호들갑 떨지 말고 침착해라.}

하긴, 새삼스레 템빨에 놀라는 것도 웃긴 일이다.

애초부터 그리드는 템빨의 제왕이었으니까 말이다.

{놈의 템빨이 아무리 뛰어날지언정 놈에게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하급 랭커 수준에 불과한 컨트롤 실력.

{그 점을 파고 든다.}

파앗!

그리드가 일정 거리까지 진입해온 순간, 일제히 산개한 러시아 대표들이 트라이앵글 형태로 대열을 맞추면서 그리드를 중앙에 고립시켰다.

이들은 각기 다른 무기의 장점을 살린 스킬을 연계시킴으로서 그리드의 혼란을 유발하고 지속적인 피해를 입힐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의도를 모를 그리드가 아니다.

농후한 전투 경험이 그리드의 판단능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증폭시키고 있었다.

“파그마의 검무.”

비장함이 깃든 검무를 펼침으로서 자연스럽게 이동한 그리드가 러시아 대표들의 논타켓 스킬들을 회피하였고, 이 부분에서 러시아 대표들은 경악했다.

‘스킬을 피해?’

‘그리드가?’

이들은 모른다.

지난 1년 동안, 그리드가 자신보다 강한 적들을 꺾기 위해서 얼마나 부단히도 노력해왔을지, 또 그를 통해서 얼마나 발전했는지 말이다.

그들에게 그리드가 절망을 선사했다.

“제(制).”

순식간에 광역 CC기가 발동되었고, 러시아 대표들의 얼굴은 사색이 된다.

<브라함의 부츠>를 <그리드의 부츠>로 스왑, 대검의 파괴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 그리드가 그들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이 순간, 각국 방송사의 해설진과 전문가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으며 전 세계 시청자들은 전율했다.

『파그마의 검무에는 명백한 약점이 있었습니다! 전개하려면 반드시 보법을 밟아야한다는 점이었죠!』

『실제로, 작년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는 몇 명의 랭커들에게 그 약점을 공략 당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의 그리드는 다릅니다! 스킬을 사용할 때 밟는 보법!! 약점이 되었던 그 과정을 그리드는 도리어 회피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약점을 극복하고 심지어 무기로 승화시키다니…! 실로 훌륭합니다!! 정말로 훌륭해요!! 그리드는 사실 천재인 거 아닙니까!!』

그리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2년이 넘은 시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서야, 드디어 세상이 그리드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탑클래스로서의 진가 말이다.

***

‘작은 섬나라에 저만한 괴물이 숨어있었다니.’

중국 대표들이 당황했다.

한낱 소국이라고 무시했던 일본.

그곳에 속한 카츠라는 인물의 강함이 터무니없이 굉장했던 까닭이다. 여러 지표를 토대로 예측했던 것 이상이었다.

한편, 데미안도 매우 놀란 상태였다.

‘템빨단의 평균 수준을 웃돈다.’

전투의 귀재, 하오.

인구가 무려 13억을 넘는다는 중국에서 단연코 최고라 꼽히는 인물이라더니, 그 강함은 독보적이었다.

특히 쇠사슬을 비롯한 각종 보조 무기를 수족처럼 다루는 컨트롤 솜씨가 일품이다.

데미안이 알고 있는 템빨단 최고 실력자들과 비교해도 하오가 한 수 위 같았다.

한데 더 놀라운 사실은…

‘카츠님도 하오님과 동급.’

“블러드 브레스!”

“드래곤 피어!”

쿠콰콰콰콰콰쾅!!

마치 헐리웃 블록버스터급 영화에서나 등장할법한 광경이 연달아 펼쳐졌다.

하오와 카츠의 화려하고 파괴적인 대결이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전장이 쑥대밭으로 변해갔다.

아군이 피해에 휩쓸리지 않도록 광역 보호마법을 전개하고 있던 데미안의 시야로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됐다.

‘승부를 보려는 건가.’

오로지 하오의 강함만을 믿고 거만한 폼으로 서있던 중국 대표들.

일본 따위, 하오 혼자서도 궤멸시키리라 믿고 있었던 그들은 하오가 카츠 한 명에게 발이 묶이자 초조한 상태였다.

결국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일제히 움직여 일본팀을 급습한다.

“정면으로 맞서지 말고 후퇴하며 싸워라!”

중국은 아시아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며 일본보다 평균 레벨이 15 이상 높았다. 3차 전직자도 무려 셋이나 있었다.

중국 대표들의 기세에 위축 된 요시무라와 일본 대표들이 뒷걸음치는 그때였다.

“도망치지 말고 싸우세요. 성스러운 보호, 빛의 화신, 여신의 가호.”

데미안이 전면으로 나서더니 각종 버프 스킬을 사용했다.

[성스러운 보호의 효과로 자신과 파티원의 방어력이 3분 동안 20퍼센트 상승합니다.]

[빛의 화신의 효과로 자신과 파티원의 공격력이 3분 동안 10퍼센트 상승합니다.]

[여신의 가호 효과로 자신과 파티원의 모든 능력치가 5분 동안 10퍼센트 상승하고, 타격을 1회 무효화시키며 8,000의 데미지를 흡수하는 보호막을 생성합니다.]

“……!”

이름난 성직자들이 사용해주는 버프와 비견되는 효과들이다.

특히 여신의 가호라는 스킬의 효과는 상상초월이었으므로 일본팀 대표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츠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괜히 교황이 아니군.’

블러드 워리어의 패시브 스킬 중에는 흡혈 효과가 있으므로 전투 지속력이 무척 좋다.

여기에 데미안의 버프와 힐링 능력이 더해진다면 무한 사냥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카츠는 이번 국가대항전이 끝난 후, 반드시 데미안을 자신의 사람으로 회유하겠노라고 결심했다. 자신의 재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큭…!”

갑자기 상승한 카츠의 능력치에 적응하지 못한 하오가 가슴을 베이며 신음했다.

씨익, 승리의 미소를 지은 카츠가 콤보를 넣으려는 순간이었다.

“무기 흘리기.”

“……!”

색다른 스킬을 통해서 하오가 경이적인 컨트롤 솜씨를 선보였다.

카츠가 날린 검의 궤도와 속도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손으로 붙잡더니, 그대로 카츠의 검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무기 <크레이브>가 해제되었습니다!]

[스킬로 인한 결과입니다. 아이템 소유권을 잃지 않습니다. 12초 후, 아이템이 인벤토리로 되돌아옵니다.]

‘무기 강제 해제라고?’

바닥에 떨어진 검을 다시 줍지 못할 경우, 무려 12초 동안이나 무기가 없는 셈이 된다.

어처구니없어하는 카츠의 가슴을 어깨로 때리며 접근한 하오가 다음 스킬을 연계했다.

“갑옷 흘리기!”

덥썩!

“이런 썅!”

무장하고 있는 갑옷의 목덜미가 하오의 손에 붙잡힌 순간, 최악의 결과를 직감한 카츠가 반사적으로 쌍욕을 뱉었다.

이어서 달랑 천 옷 한 장만을 걸치게 된 그의 복부로 하오의 검이 꽂혔다.

“쿨럭…!”

‘여기까지.’

하오의 심정 같아서야 카츠를 완전히 끝장내놓고 싶었다.

하지만 데미안의 개입이 걱정이었다. 카츠가 위축되어 있는 동안 황급히 뒤로 물러선 하오가 전장을 살폈다.

“으악!!”

“히익!”

전장을 지배하는 비명소리 대부분이 중국 대표들이 내는 소리다.

중국이 일본에게 완전히 밀리고 있었다.

‘교황…’

사기적인 버프를 일본 팀 전원에게 내려준 것으로 모자라서 간간히 공격 마법과 힐까지 사용하는 데미안.

마실 나온 노인네처럼 느긋한 표정을 지은 채 말도 안 되는 사기급 능력을 선보이는 유저 최초의 교황을 보면서 하오는 확신했다.

‘올해의 일본은 강팀이다.’

그것도 우승후보급이다.

그리드와 템빨단이 속해있는 그 어떤 국가들보다도 일본의 전력이 강하게 느껴졌다. 거의 미국이나 러시아급이었다.

여기서 하오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지? 너희들은 이만큼 대단한 전력을 지녔으면서도 왜 표적 처리에 열중하지 않은 거냐? 어째서 처음부터 메달을 포기한 거지?”

데미안이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드님이 참가한 종목이잖습니까? 괜히 까불다가 혼쭐나서 팀의 사기를 잃느니, 이런 경기는 순순히 포기하는 게 속 편하죠.”

“…?”

하오에게는 그리드와 직접 대면한 경험이 없다.

그리드를 오직 과거의 영상으로만 목격했던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라우엘도 그렇고, 저 데미안도 그렇고.

어째서 자신이 인정한 사람들은 죄다 그리드를 과대평가하는 걸까?

‘아니?’

의아해하던 하오가 당황했다.

내 유일한 경외의 대상, 천외천 크라우젤이 소속 된 러시아의 점수판은 완전히 멈춘 반면 한국의 점수판은 빠르게 가속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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