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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243화 (238/1,794)

템빨 21권 - 2화

쿠르르르르릉-!!

초연(超聯)과 연살파(聯殺派)가 발생시킨 폭발을 감당하지 못하고 산의 일각이 무너져 내린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돌덩어리들 사이로, 러시아의 대표들이 각자의 실력을 뽐냈다.

논타켓이라는 한계를 지닌 초연(超聯)은 컨트롤로 회피하였고, 타켓형 스킬인 연살파(聯殺派)는 스킬로 대응함으로서 상쇄시켰다.

퍼펑!

퍼퍼퍼퍼퍼퍼펑!!

과연 3차 전직자들은 다르다.

2차 전직자 2명은 초연(超聯)조차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추락, 전투불능 상태에 빠진 반면 3차 전직자 4명은 연살파(聯殺派)에도 나름 잘 대처했다.

산사태에 휩쓸리면서도 몸을 제대로 가누고 치명상만큼은 피했다. 연합팀의 피라미들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통합랭킹 22위 알렉산더가 군계일학이었다.

양쪽 손목에 매달고 있는 소형 방패 위로 오러를 집중, 경질화시키더니 연살파(聯殺派)의 타격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킨 것이다.

쌍검을 무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아 퓨어 탱커는 아니었고, 횟수 제한을 지닌 스킬 무력화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됐다.

“역시, 네놈도 괴물새끼답구나.”

팔이 저리다는 듯, 손을 털면서 말한 알렉산더가 이죽거렸다.

“스킬의 위력만 놓고 따져보면 크라우젤 이상이겠어.”

다만.

“종합적인 능력은 나보다 아래가 아닐까?”

알렉산더 또한 작년 국가대항전에 참가했었다.

휴렌트와 봉드레를 연달아 격파하고 급기야 PvP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리드의 실력을 그는 바로 곁에서 목도했다.

그때는 솔직히 놀랐다.

현재의 자신으로선 저 황인종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치를 떨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지난 1년 동안 알렉산더는 강해졌다. 남들보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리드 또한 작년과 비교하면 많이 강해졌을 테지만, 성장의 폭은 자신이 훨씬 더 크리라는 확신이 알렉산더에게는 있었다.

“나는 동대륙도 경험한 몸이라고.”

아는 사람만 안다는 번헨 열도.

그 악명 높은 인스턴트 던전에서 알렉산더는 무려 15번째 섬까지 승승장구, 운 좋게 안개섬까지 만나 대량의 엘릭서를 구매하고 동대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수한 퀘스트를 선점하며 온갖 칭호와 세컨드 클래스를 얻었다.

“현재 내 능력치는 동레벨 플레이어와 비교하면 무려 400가량 높다. 또한 오러를 경질화시킴으로서 강력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지. 원숭이 새끼가 이런 나를 감당할 수 있겠냐?”

잠자코 듣고 있던 그리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알렉산더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뭐가 웃기지?”

“아아, 내 경험에 의하면 너처럼 말 많은 놈들이 대게 한 방에 골로 가더라고. 너는 몇 초 안에 죽을지 생각해봤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알렉산더의 성정을 어렴풋이 눈치 챈 그리드는 이 도발이 먹히리라 보았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의외로 냉정한 인물이었다.

“이봐, 원숭이. 그간의 네가 승승장구해왔다는 사실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명심해라.”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Satisfy 플레이어만해도 20억 명이 넘는 실정이야. 각국을 대표한답시고 국가대항전에 참가하는 극소수의 랭커들? 분명히, 하나 같이 뛰어난 강자이긴 하다만 그들 이상의 강자들이 네가 모르는 세계에 셀 수 없이 많다.”

정작 크라우젤급의 진정한 강자들은 국가대항전 같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왜?

자신의 전력을 세상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굳이 전력을 노출시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무엇인가를 갈망하지 않아. 아쉬울 게 없는 완전체니까.”

“말의 요지가 뭐지?”

“뭐, 간단하게 말하자면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랭커들은 결국 B급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고, 그것을 충족시키고자 부득불 전력을 노출시키는 선택을 내린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들이지. 고작 그까짓 놈들을 상대로 좀 활약했답시고 너무 기고만장하지 마라.”

“…호오.”

그럴 듯한 논리다.

당장 그리드만 해도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것은 다 목적이 있어서였다.

첫째, 세상에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고, 둘째, 아다만티움과 템빨단의 홍보를 위해서였다.

만약 목적이 없었다면 굳이 국가대항전에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페이커도 2년 연속으로 국가대항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잠자코 생각해보던 그리드가 결론을 내렸다.

“결국 알렉산더 너도 B급이란 뜻이군? 그러니까 설령 너를 쓰러뜨리더라도 기고만장하지 말라고 사전에 경고해두는 거고?”

알렉산더가 콧방귀 뀌었다.

“아니, 나는 A급이다.”

알렉산더는 이미 충분히 강했다. 국가대항전의 보상을 바란답시고 전 세계에 자신의 전력을 노출해가면서까지 싸울 만큼 아쉬운 입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국가대항전에 출전한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오로지 조국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 자, 어디 한 번 A급의 힘을 체험해봐라. 그리고 러시아의 영광의 초석이 되어라!”

“……!”

그리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발을 딛고 서있는 지면으로부터 가시처럼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솟구쳐 오른 까닭이었다.

높은 통찰력과 도살귀의 안대의 힘을 토대로 지면의 이상을 빠르게 감지한 그리드, 번헨 열도에서 성장시킨 민첩성을 기반으로 움직여 가시들을 회피한다.

그 날렵한 움직임은 솔직히 말해서 알렉산더의 예상보다 더 대단했다.

‘과연 템빨, 스탯빨, 스킬빨의 삼위일체라 이건가.’

감탄한 알렉산더가 스킬을 연계시켰다.

“하지만 소용없다! 오러 익스플로러!”

퍼퍼퍼퍼퍼퍼펑!!

그리드가 서있던 지면으로 솟구친 가시들의 정체, 경질화 된 오러였다. 그것이 폭발하면서 그리드에게 끔찍한 피해를…

[대상에게 68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599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605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어?”

알렉산더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지? 왜 딜이 안 박히지?’

그리드놈, 설마 그 짧은 시간에 보다 신속하게 움직여서 폭발 반경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진 건가?

생각하면서 폭발로 인해 발생한 먼지더미를 주시하던 알렉산더가 뒤늦게 깨달았다.

‘아니, 놈은 피하지 못했다.’

그리드는 단지 방어력이 터무니없이 높을 뿐이다.

‘템빨러…’

과거, 그리드가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당시.

야탄의 종 니베리우스에게 스스로를 템빨러라 칭한 바 있다.

그 강렬했던 첫 등장을 회상하게 만드는 방어력이다.

‘하지만 결국 부수면 그만!’

알렉산더가 몸을 날렸다.

쩌저저저정-!

호쾌한 쌍검술이 허공의 그리드를 가른다.

만약 그리드에게 플라이 마법이 없었더라면, 그리드는 쉽게 대응하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벌써 2년 가까이 활용해온 플라이 마법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하늘에서도 마치 땅에 있는 것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비교적 쉽게 알렉산더의 검을 막아낸 뒤 반격했다.

쿠콰콰콰콰쾅!!

“뭣…!”

현재 그리드는 대검을 무장한 상태이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공격속도가 느려야 정상이었다.

한데 그리드의 공격속도는 무척 빨랐다.

한손 검과 대검의 거의 중간 지점에 속하는 공격속도였으므로, 자칫 방심했다가는 방어에 실패할 뻔했다.

‘심지어 파괴력은 독보적…!’

간신히 방패를 들어 방어했다고는 하나, 검에 실린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알렉산더는 지상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땅에 처박힌 몸을 곧바로 일으키는 그에게 그리드가 쇄도해왔다.

“파그마의 검무.”

허공에서부터 유려한 검무를 밟아 이동, 연(聯)을 전개시킨다.

핏!

피피피피피피피피핏!!

대검술사라고는 믿기지 않는 신속의 검격.

알렉산더의 커다란 몸을 수십 개의 검광이 휘감는다.

그리드는 잠시 후, 알렉산더의 몸으로부터 수십 줄기의 선혈이 솟구치리라 믿었다.

여태껏 연(聯)에 대응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니까.

한데 알렉산더 또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리드가 연(聯)을 사용하는 순간, 그는 오러 토네이도를 전개하여 자신의 몸 주변으로 오러의 장벽을 만들어낸 뒤 그것을 경질화시켰다.

찰나의 시간에 말이다.

퍼퍼퍼퍼퍼퍼펑!!

연(聯)이 벤 것은 경질화 된 오러의 장벽.

사방으로 흩어지는, 마치 돌조각 같은 수백 개의 오러 조각들 사이로 그리드와 알렉산더의 시선이 교차한다.

알렉산더는 웃고 있었다.

“아까보다 셀 거다! 오러 익스플로러!!”

퍼어어어어어어어어엉-!!

“큭!”

그리드가 신음했다.

표적 맞추기 개시 후 처음으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십 개의 오러 조각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자 그 피해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게 바로 A급의 힘이다!”

기세를 살린 알렉산더가 그리드의 가슴을 왼 손의 검으로 벤 후, 동시에 회전하면서 오른 손의 검을 그리드의 복부에 찔러 넣었다.

군더더기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리드의 템빨이 훨씬 더 훌륭했다.

[큰 장갑이 물리 공격으로 받는 피해를 4퍼센트 경감시킵니다.]

[반짝 각반이 물리 공격으로 받는 피해를 5퍼센트 경감시킵니다.]

[두꺼운 투구가 물리 공격으로 받는 피해를 6퍼센트 경감시킵니다.]

[란스티어의 망토가 찌르기, 베기 공격으로 받는 피해를 20퍼센트 경감시킵니다.]

[삼겹갑이 물리 공격으로 받는 피해를 30퍼센트 경감시킵니다.]

[삼겹갑이 베기, 찌르기 공격으로 받는 피해를 50퍼센트 경감시킵니다.]

[삼겹갑의 미늘 틈새로 적의 검이 맞물립니다. 스킬 <소드 브레이커>가 전개됩니다.]

[대상의 무기 내구력을 하락시킵니다.]

콰지직!

“…뭐라고?”

알렉산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단지 그리드를 베고, 찔렀다는 이유만으로 검의 내구력이 대폭 손상되었으니 소름이 돋았다. 심지어 딜도 안 박혔다.

이건 마치 네임드급 골렘 보스를 상대하는 기분이다.

그에게 그리드가 속삭였다.

“네가 A급이면, 나는 트리플 S급이 아닐까?”

“빌어먹을 템빨 새끼…!”

이를 간 알렉산더가 검을 회수, 그리드에게 재차 공격을 꽂아 넣었다.

경질화 된 오러를 검 끝에 집약시킨 최강의 공격 스킬, <엑시드 소드>의 발현이었다. 엑시드 소드는 적의 방어력을 일정량 무시하는 옵션까지 보유했다.

그를 그리드는 피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피하기 어려웠다. 괜히 심력 낭비하지 않고 그냥 맞았다.

물리 공격에 높은 내성을 보유한 방어구들, <두꺼운 투구>, <큰 장갑>, <반짝 각반>, <삼겹갑>, 그리고 <란스티어의 망토>를 믿었기에.

그리고 역시나, 템빨은 그리드의 믿음에 확실하게 보답했다.

[8,144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최강 공격 스킬이 고작 이 정도 데미지밖에 입히지 못한다고? 덤으로 검의 내구력까지 또 깎였다.

질색하는 알렉산더에게 그리드의 연살(聯殺)이 꽂혔다.

알렉산더는 피할 수 없었다.

그리드가 공격을 순순히 맞아주는 동시에 스킬을 전개하였으므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알렉산더가 검을 채 회수하기도 전에 연살(聯殺)이 알렉산더의 심장을 관통했다.

푹-!

푹푹푹!!

알렉산더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연살(聯殺)의 최초 타격을 오러 경질화 실드로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리드의 연살(聯殺)은 대상을 최소 3회 타격하는 유형의 스킬이다. 이번엔 운 좋게 6회까지 터졌다.

<그리드의 대검+실패작>이 발휘하는 압도적인 공격력을 감당하지 못한 알렉산더가 결국 피를 토하더니 잿빛으로 산화해버렸다.

“…”

러시아의 대표들이 할 말을 잃었다.

크라우젤 다음가는 실력자라고 믿었던 알렉산더가 그리드에게 무참하게 패배할 줄이야, 그들은 상상조차하지 못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알렉산더가 그리드를 꺾을 줄 알고 참전하지 않았는데 결과가 정 반대다.

넋 놓고 있는 그들에게 그리드가 질문했다.

“아직도 내가 개로 보여?”

도리도리.

러시아 대표들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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