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42화 (21권) (237/1,794)

템빨 2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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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21권 - 1화

『스컬, 라우엘 로그아웃!!』

『미국의 생존자들이 속속들이 퇴각을 시작합니다!』

『크라우젤이 단신으로 3명의 발을 묶은 게 컸죠. 러시아가 수적 우위를 잘 살렸습니다.』

『지발이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전력 손실이 매우 심합니다. 미국은 이대로 메달권으로부터 멀어질 듯 하군요.』

『강력한 우승 후보국 미국이 개막전부터 고배를 마시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단합니다! 정말로 대단한 크라우젤입니다!』

Satisfy가 오픈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크라우젤은 통합랭킹 1위의 자리를 쭉 고수해온 인물이다.

하지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혼자서 활동하는 그의 특성상 대중들은 그의 실력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저 극소수 랭커들의 목격담을 기반으로 강하겠거니, 어렴풋이 추측해왔을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천외천이라느니, 절대 지존이라느니, 크라우젤을 표현하는 온갖 ‘과장 된’ 수식어들에 대해서 대중은 크게 공감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오늘 바뀌었다.

크라우젤의 무위를 직접 목도할 수 있게 된 대중들은 깨달았다.

크라우젤에 대한 소문들, 과장되기는커녕 도리어 축소되었던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크라우젤은 그야말로 상상초월의 인물이었다.

***

“하찮은 원숭이 새끼가 그래도 싸움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한단 말이야?”

러시아의 스킨헤드족은 극단적 인종차별주의 성향을 보인다.

지난 1세기 동안 그들이 폭행하거나 살해한 동양인의 숫자가 십만 단위였다.

고려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고려인들이 자의로, 혹은 타의로 러시아의 국적을 취득하였고 이후 몇 대째 러시아에 거주 중이었지만 스킨헤드족에게 동포로 인정받지 못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멸시와 위협을 당했다.

2005년, 고려인 출신의 러시아 가라테 챔피언 ‘야코브 칸’이 스킨헤드족에게 살해당한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뭘 쉬고 있어? 대회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알렉산더.

통합랭킹 22위의 강자인 그가 바로 스킨헤드족이다.

그는 크라우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했다.

표적 맞추기 내내 누구보다도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 크라우젤을 응원하거나, 치하하거나, 존중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개처럼 부릴 따름이었다.

“…”

단신으로 지발, 스컬, 라우엘을 제압함으로서 러시아의 승리를 이끈 크라우젤.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주저앉는 그에게 다가온 알렉산더가 속삭였다.

“엄살 그만 피워라. 어미의 병을 고치려면 열심히 일해야 하지 않냐?”

“…”

“어쭈? 안 일어나?”

알렉산더는 크라우젤이 이번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이유를 알고 있었고, 이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아, 이 새끼가 엄살 피우니까 나도 의욕 안 생기네. 나도 지치는데 국대전이고 나발이고 때려치우고 그냥 쉴까?”

“미안하다. 금방 일어나마.”

급기야 드러누우려는 알렉산더를 제지한 크라우젤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휘청거리는 그에게 알렉산더가 점수판을 가리켜보였다.

“우리가 미국 놈들과 싸우는 동안 한국이 다시 1위를 탈환했다. 금메달을 놓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분발해서 놈들을 박살내야할 거야.”

“…그래야지.”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신약.

상용화되기까지 최소 2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입장이었으므로, 크라우젤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

1등. 한국-244점

2등. 러시아-195점

3등. 미국-167점

4등. 캐나다-153점

5등. 영국-119점

..

점수판을 확인한 그리드의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러시아가 다시 점수를 올리기 시작했다.’

미국과의 전투에서 러시아가 승리했다는 뜻이다.

“과연 크라우젤.”

평균 전력은 미국이 러시아를 상회한다.

한데 미국이 패배했다는 건 오로지 크라우젤이라는 변수 때문이었을 터다.

유라와 극검은 작금의 결과를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지만 그리드는 달랐다.

‘나조차도 활약할 수 있는 무대에서 크라우젤이 그 이상을 못해낼 리가 없지.’

과거, 그리드는 온전한 상태도 아닌 크라우젤과 싸워서 패배할 뻔한 전력이 있다.

그만큼 크라우젤은 강했고, 활약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흐음.”

다시 1위를 탈환했다고는 하나, 현재 한국의 상황은 무척 좋지 못하다.

그리드야 갓 핸드가 있었기 때문에 느리더라도 착실하게 점수를 쌓을 수 있었지만, 총을 쏠 때마다 마나를 소모해야하는 유라와 근거리 딜러인 극검은 표적 처리에 한계가 있었다.

유라의 표적 처리 속도는 현저히 줄어든 상태였고, 극검에게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표적을 처리할 수단 자체가 적었다.

‘박종와가 살아있었다면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이 상태로는 결국 러시아나 캐나다에게 점수를 역전당할 수밖에 없다, 라고 판단한 그리드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러시아가 여기까지 치고 올라올 수 있었던 비결.’

크라우젤이라는 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이다.

크라우젤은 표적 맞추기 내내 티라 섬을 누볐고, 홀로 여러 국가를 궤멸시킴으로서 러시아를 위협할만한 요소를 처단해나갔다.

그리고 현재 러시아에게 위협이 되는 국가는 단연코 한국이다.

러시아는 보다 확정적인 승리를 위해서 또 한 번 크라우젤을 움직일 공산이 컸다.

한국을 표적으로 말이다.

‘곧 크라우젤이 습격해올 거다.’

내가 그에 맞서서 싸울 경우, 결과는?

‘한국이 진다.’

그리드가 크라우젤에게 발목이 붙잡힌다면 유라와 극검 둘이서만 표적을 처리해야하는데, 그래서야 점수 오르는 속도가 무척 느릴 수밖에 없다.

결국 러시아에게 점수를 따라잡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라와 극검이 크라우젤을 상대하게끔 만드는 건…’

도리어 역효과다.

뱀파이어의 도시와 번헨 열도를 통해서 급성장한 유라라고는 하나 여전히 레벨이 260대에 불과했고, 극검은 애초에 크라우젤의 상대가 아니다.

그리드가 표적 수십 개를 처리하는 동안 그 둘은 결국 크라우젤에게 로그아웃당할 터였고, 이후 그리드는 홀로 남아 고립 당하게 된다.

한국의 패배라는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어째야하지?’

그리드가 일반적인 실력자였다면 순순히 금메달을 포기했을 정도로 작금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드는 일반적인 실력자가 아니다. 크라우젤과 마찬가지로 상식을 뒤엎는 파괴력을 지닌 존재다.

그렇기에, 그만이 할 수 있는 발상을 한다.

‘내가 러시아를 덮쳐서 조지면 되겠군?’

그래, 내가 굳이 크라우젤과 맞상대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크라우젤이 이곳까지 달려와서 유라와 극검과 대치할 동안, 나는 역으로 러시아의 거점으로 달려가서 러시아놈들을 박살내면 될 일이다.

‘이후엔 크라우젤의 추격을 피하면서 갓 핸드로 표적을 꾸준히 처리하면 되고.’

캐나다가 문제로 남게 되지만, 현재 전장에 남은 건 한국, 캐나다, 러시아 삼국이 전부가 아니다.

영국, 아르헨티나, 중국, 일본이 비교적 건재한 상태였다.

그들 또한 메달을 노리는 입장이라면, 돌아가는 상황을 읽고 캐나다를 견제해줄 가능성이 높았다.

“좋아.”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도 어느 정도 돌아왔고 마나도 꽤나 회복된 상태.

결정을 내린 그리드가 유라와 극검에게 말했다.

“크라우젤의 표적이 될 수 있도록 눈에 띄는 곳에 있도록 해. 그러다가 크라우젤이 습격해오면 최대한 도망치면서 시간을 끌고.”

“…설마, 갓리드 너.”

유라는 원체 똑똑했고 극검은 대길드의 수장 출신이다.

두 사람 다 그리드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혼자서 러시아에게 역습을 가할 생각인가요?”

“아무리 갓리드 너라도 위험하다고! 러시아가 미국을 이길 수 있었던 건 단지 크라우젤 덕분만이 아니야! 러시아의 평균 전력이 그만큼 강하단 뜻이고 특히 알렉산더는…!”

“하이 리스트 하이 리턴이란 말도 있잖수? 최선의 결과를 원한다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지.”

걱정하는 극검의 말을 끊더니 나름 멋지게 말한 그리드가 곧장 숲으로 몸을 날렸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극검이 중얼거렸다.

“리스트가 아니라 리스크다…”

설마, 유치원 다닐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요즘 세상에 나보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아는 영어라고는 두 유 노우 밖에 없던 극검의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

“한국의 점수 오르는 속도가 부쩍 느려졌는데?”

“크라우젤이 벌써 한국의 거점을 습격한 건가?”

“아니, 크라우젤은 지쳤다. 한국의 거점까지 도달하려면 꽤나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고, 만약 도달하더라도 그리드에게 큰 위협을 줄 수 없는 상태야.”

“그럼 한국의 점수 오르는 속도는 왜 느려진 건데?”

“크라우젤에게 지레 겁먹은 놈들이 도망치기 시작한 거 아닐까?”

“하긴, 한국엔 유라가 있지. 다음 크라우젤의 표적이 자신들이라는 사실쯤 그녀라면 빠르게 파악했겠지.”

“하핫! 겁쟁이들이로군.”

본래는 미국의 거점이었던 산 정상에서 러시아팀 대표들이 표적 처리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과연 하나 같이 뛰어난 실력자들답게 점수 오르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최소 한국의 5배는 빨랐으니 역전은 시간문제 같아 보였다.

“근데 알렉산더, 최소한 국가대항전 기간 동안만큼은 크라우젤을 너무 괴롭히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나도 공감한다. 크라우젤은 현재 우리의 최대 전력이라고. 매번 그의 자존심을 짓뭉개서 사기를 꺾기라도 했다간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알렉산더를 제외한 러시아팀 대표들은 크라우젤이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진짜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그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금메달과 포상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알렉산더가 콧방귀 뀌었다.

“걱정하지마라. 누구보다도 러시아의 우승을 바라는 게 바로 그놈이니까. 아무리 개처럼 취급해도 놈은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

알렉산더는 크라우젤이 무척 싫었다.

황인종 주제에 러시아를 조국으로 삼을 수 있게 된 영광이 감사한 줄 모르고, 순수하게 조국을 위해서가 아닌 개인의 바람 때문에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놈의 태도가 거슬렸다. 그래서 보면 더 괴롭히고 싶었다.

러시아 대표들이 그렇게 잡담을 나누면서 표적처리에 열중하고 있는 그때였다.

“크라우젤을 괴롭혀? 하이에나 따위가 사자를 어떻게 괴롭히지?”

익숙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은 음성이 들려온다.

알렉산더를 비롯한 러시아 대표들의 시선이 일제히 음성이 들려온 방향으로 돌아갔다.

“네놈…”

“그리드?”

저 자식이 여기엔 어떻게?

어리둥절해하는가 싶던 러시아 대표들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호오, 그렇군. 네놈, 크라우젤이 한국을 습격하는 사이 역으로 우리를 습격해온 건가?”

가소로울 따름이다.

“혼자서 우릴 습격할 계획을 세우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제 발로 죽으러 온 셈이나 다름이 없잖아?”

“피라미 몇 놈 잡더니만 네가 정말 엄청난 거물이라도 되는 줄 아나보다?”

“너는 크라우젤이 아니야. 크라우젤이 사자고, 우리가 하이에나라고? 그럼 넌 개다, 개.”

학창시절 내내 왕따를 겪었던 그리드는 괴롭힘이라는 단어를 혐오한다.

러시아 대표들의 대화를 통해서 크라우젤의 입장을 대강이나마 추측할 수 있었던 그리드가 안 그래도 날카로운 눈매를 무섭게 찢었다.

“나는 호랑이지, 멍청한 놈들아.”

꽈악!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아이템 합체>스킬을 사용한 그리드.

그리드의 대검과 실패작을 결합시킴으로서 지상최강의 공격력을 발휘하는 무기를 손아귀에 쥔 그가,

“초연(超聯). 그리고 연살파(聯殺派).”

러시아 팀을 폭격했다.

쿠콰콰콰콰콰콰콰쾅!!

“……!”

폭풍보다도 위협적인 검기의 쇄도가 산봉우리의 일각을 파괴시킨다.

지형을 붕괴시킴으로서 산사태를 유발했던 라우엘과 달리, 그리드는 순수한 파괴력만으로 산사태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에 휩쓸린 러시아 대표들이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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