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0권 - 20화
티라 섬의 중심부에는 우뚝 솟은 산이 3개 있다.
그중 가장 높은 산은 해발 723미터로,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있었다.
하늘을 배회하는 표적들을 저격하기에 이만한 명당도 없었다.
이 명당을 차지한 팀?
바로 미국이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미국 대표 7명은 전원 3차 전직자였고, 그들 모두가 최강의 네임드였으니까.
<제1대 10인의 루키 중 정점>, <천재 중의 천재>, <그리드의 지낭>, 그리고 <중2병> 등등…
수많은 칭호를 보유한 라우엘의 명성조차도 미국 팀 내에서는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다. 명함을 내밀 짬이 안 됐다.
‘라우엘, 이 매정한 자식.’
고지 점령을 놓고 지발과 사투를 벌이던 폰이 산사태에 휩쓸려서 절벽으로 떨어졌다.
산사태를 일으킨 범인, 다름 아닌 라우엘이다.
“끄응.”
간신히 창을 벼랑에 꽂고, 그를 버팀목으로 삼아 추락사를 모면하긴 했지만 위태롭다.
현재 폰은 언제 추락하여 로그아웃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발을 집중 공격… 으악!}
{이런! 제퍼가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견제해!!}
{빌어먹을! 뒤에 스컬이다!!}
{라, 라우엘이 또 산사태를…! 끄아아아악!!!}
폰이 고립되어 있는 사이 스페인팀 파티 대화창은 난리가 났다.
Satisfy 7강에 속하는 스페인이라고는 하나, 역시 미국을 상대로는 역부족이다. 미국의 평균 전력이 터무니없이 압도적이었다.
‘라우엘 녀석, 명색이 같은 길든데 눈치껏 봐주면서 좀 하지.’
재수 더럽게 미국과 동선이 겹치는 바람에 이 꼴이다.
‘아무래도 메달은 포기해야겠구만.’
하나, 둘씩 로그아웃 당하는 동료들을 확인한 폰이 쯧, 혀를 찬 뒤 벼랑에 꽂아두었던 창을 뽑았다.
그리고 그대로 추락하면서, 마지막 남은 마나를 쥐어짜 혼신의 일격을 날렸다.
표적은 산 정상에 올라있는 지발의 뒤통수다.
“너라도 저승길 동무로 삼아주마.”
파직! 파지직!!
폰의 손아귀에 쥐어진 붉은 창 주변으로 전격의 기운이 실렸다.
전자기력을 이용, 창을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쏘아버리는 <레일 스피어>의 전조였다.
쿠르르르르르르릉!!!
끝을 가늠할 수 없이 깊디깊은 벼랑.
어두운 그곳으로부터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천둥 같은 폭음이 폭발한다.
그 소리를 인지하는 순간 이미 지발의 뒤통수에는 창이 꽂혀오고 있었다.
“뭣이!”
경악한 지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지룡의 발톱. 풍룡의 숨결.”
쿠르르르르르릉!!
폰의 성격을 고려, 작금의 사태를 예측하고 있던 라우엘이 2개의 스킬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서 지발의 보호에 나섰다.
역풍을 소환하여 레일 스피어의 속도를 늦췄고, 또한 지반을 솟구치게 만들어 장벽을 생성함으로서 레일 스피어의 진로를 막았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레일 스피어의 위력이 워낙에 강력했다. 바람과 장벽 모두 간단히 허물어뜨렸다.
라우엘은 지발의 보호에 실패하였고, 지발은 치명상을 입었다. 잠시 전투에서 물러나있어야 할 지경이었다.
“포오오오오온!!!”
“핫!! 하하하하핫!!!!”
산의 정상으로부터는 지발의 분노 섞인 외침이, 벼랑의 끝으로부터는 폰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솟구치며 얽힌다.
전장은 차츰 더 격화되고 있었다.
***
『폰 로그아웃! 스페인팀 전멸!』
『제아무리 스페인이라도 미국을 상대로는 역시 안 되는군요. 미국, 정말로 강합니다! 단체전에서 미국은 가히 최강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쪽의 스타트 지점에서는 한국팀과 연합팀이, 각 고지에서는 그 외의 팀들이 서로 박 터지게 싸우고 있는 이때.
신궁 지슈카가 이끄는 브라질 팀은 은밀하게 이동해서 북쪽 숲 깊은 곳까지 도달해 있었다.
“굳이 치고 박고 싸울 필요 없잖아? 표적 맞추기의 근본적인 목적을 잊지 말아야지.”
퍼펑!
퍼퍼퍼퍼펑!!
과연 신궁답다.
지슈카가 시간 차 없이 쏜 속사가 온갖 장애물 사이를 빠르게 날아다니는 표적들을 순식간에 처리해나갔다.
몇 개의 표적을 더 처리한 지슈카가 팀원들에게 물었다.
“후훗, 어때? 우리가 무난하게 일등 하겠지?”
“당연하지! 어?”
힘차게 대답하며 점수판을 확인하던 브라질팀 랭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무리 봐도 점수가 이상했던 까닭이다.
석상처럼 굳어버리는 그를 보고 불안감에 휩싸인 지슈카가 점수판을 확인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1등. 한국-41점
2등. 브라질-23점
3등. 미국-18점
4등. 러시아-11점
…
..
“뭐… 뭐?”
처음부터 날뛰는 바람에 여러 팀의 표적이 된 한국이 어떻게 1등일 수가 있지?
당황하던 지슈카가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갓 핸드구나.’
그리드 본인은 연합팀을 상대하는 한편, 갓 핸드를 하늘 곳곳으로 산개시켜 표적들을 파괴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갓 핸드의 작동원리는 무척 단순했고 컨트롤하기가 쉬웠으니,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과연 멋진 남자야.”
경기 시작과 동시에 표적들을 파괴, 적들의 어그로를 끈 그리드를 최초의 지슈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리드에게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적들의 의식을 갓 핸드로부터 완전히 떨어뜨려놨어. 본인의 존재감을 최대한 활용해서 말이야.’
심지어 그 유라조차도 미끼일 터다.
현재 전장에서, 하늘을 유유히 맴돌며 표적을 처리해나가는 갓 핸드의 존재를 의식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었다.
만약, 한국이 연합팀의 공세를 견딜 수만 있다면 무난히 메달권 성적을 유지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연합을 이룬 국가들은 대부분 애초에 메달권을 노릴 수 없는, 비교적 약소국이었으므로 한국이 연합의 공세를 견딜 가능성은 무척 높았다.
한국에는 그리드뿐만이 아니라 유라와 극검이라는 실력자가 함께 있었으니까.
‘훌륭해, 그리드. 하지만 미안해. 금메달은 내꺼야.’
지슈카가 표적 처리를 시작한 시점은 숲에 들어온 후 확실한 안전을 확보하고 나서부터였다.
즉, 시합 개시와 동시에 표적 처리를 시작한 한국과 비교하면 시작이 무척 늦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점수 차가 좁혀지고 있다.
브라질팀은 안전하게 표적 처리에 열중할 수 있는 반면, 한국팀은 적들의 위협을 감당해야하기 때문에 속도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특히 지슈카의 궁술이 워낙 대단했다.
‘그리드, 이번만 은메달로 만족해줘.’
지슈카는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안다. 평소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없었고, 그만큼 본인 또한 존중 받길 원했다.
끼릭-!
그리드에게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며 활시위를 당기는 지슈카.
반드시 금메달을 획득, 보상을 받고 더욱 더 강해져서 최강의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쟁취하리라, 다짐하는 그녀의 눈빛이 더 없이 강렬하며 섹시하다.
하지만, 늘 당당하게 빛나던 그녀의 두 눈은 곧 크게 흔들리고 만다.
“그대를 방치해서는 안 될 것 같아 뒤따라왔다.”
어두운 숲속으로부터 들려오는 중저음의 음성.
이성을 간단하게 현혹시킬 수 있을 듯한, 그 매력적인 목소리의 주인이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지슈카와 브라질팀 랭커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처, 천외천…!”
통합랭킹 1위, 크라우젤.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을 위로 올려 묶은 그가, 붓으로 그린 것처럼 수려한 눈매를 매섭게 빛냈다.
“미안하지만, 처단하마.”
러시아를 국가대항전 종합순위 1위로 만들 것.
러시아 정부가 개발한 신약을 크라우젤의 어머니에게 지급해주는 대가로 요구한 조건이다.
그리고 크라우젤은 오로지 어머니를 위해서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경쟁자들을 쓰러뜨리고, 짓밟으며 나아가 러시아를 우승으로 이끌겠노라고 이미 다짐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표적 맞추기에서 그의 당면한 목표는 원거리 딜러들을 암살하는 일이었으며 지슈카는 벌써 다섯 번째 희생양이다.
그렇다.
그리드와 달리 은밀하게 행동하며 근접 딜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크라우젤, 그는 그리드가 대중의 이목을 끌고 있는 사이 이미 네 명의 원거리 딜러들을 암살한 상태였다.
쥐도 새도 모르게 말이다.
“누가 쉽게 당할 줄 알고?”
설마 이런 거물에게 뒤를 잡힐 줄이야…
경악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며 잠시 넋을 잃었던 지슈카가 마음을 다잡았다.
끼릭-!
본래라면 표적을 노릴 예정이었던 활시위가 크라우젤을 겨냥했고…
퍼엉!!
신궁(神弓).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궁사의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키이이이이잉-!
퍼퍼퍼퍼펑!!
회전하면서 날아온 한 자루 화살이 다섯 자루로 분리, 크라우젤의 퇴로를 차단함과 동시에 폭발했다.
지슈카는 크라우젤이 타격 딜레이를 당하게 된 그 타이밍을 이용, 재차 활시위를 당겼다.
그녀는 크라우젤이 혼자라는 점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우선 내가 최대한 데미지를 입히고, 팀원들과 협공한다면.’
상대가 제아무리 크라우젤이라도 승산이 있다. 라고, 통합랭킹 14위 지슈카는 긍정적으로 분석할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신(神)조차도 하찮은 존재로 만드는 하늘(天)이라는 게 문제였다.
타고난 혜안과 패시브 스킬 <예리한 감각>을 활용, 다섯 개로 분리되어 폭발한 지슈카의 화살들을 대부분 회피하고 치명상을 면한 크라우젤이 폭발을 꿰뚫고 나타나 지슈카에게 돌진했다.
“…어머?”
설마 그 공격으로부터 저렇게 멀쩡한 사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각하며 당황한 지슈카가, 그러면서도 침착하게 또 활을 쏘았다.
쐐액!!
날카로운 파공성을 터뜨린 날카로운 화살이 크라우젤의 미간을 노렸고,
스윽.
크라우젤은 고개를 비틀어서 화살을 피했다.
예상했다는 듯, 지슈카의 화살은 그대로 폭발하면서 크라우젤에게 피해를 입히고자 시도했지만.
<백광보>의 묘리를 살린 크라우젤은 그마저도 가뿐하게 회피해버렸다. 이어서 자신을 덮쳐오는 브라질팀 랭커들을 차례차례, 성급하지 않고 착실하게 베어나간다.
“크악!!”
“억!”
“히익!”
크라우젤의 움직임은 그리드나 크리스처럼 파괴적이지도, 페이커나 레가스처럼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리드와 크리스만큼 강했고 페이커만큼 신속하였으며, 또한 레가스만큼 변칙적이었다.
보고 있노라면 마치 흐르는 물과 같다.
그의 행동이 만들어내는 모든 결과가 자연의 이치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리드한텐 왜 진거야?”
지슈카가 계속 쏘는 화살을 피하고, 막으며 순식간에 브라질팀을 전멸시킨 크라우젤.
몇 발의 화살이 몸에 박히긴 했으나 그마저도 절묘하게 치명상은 피하고 있다.
어째서 크라우젤이 하늘 밖의 하늘이라고 불리는지, 지슈카는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
『지슈카 로그아웃! 브라질팀 전멸!!』
“역시,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아. 그치?”
폰과 지슈카.
템빨단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최강자들이 연달아 탈락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리드이다.
그리고 11개국 연합팀 또한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본인들이 한국이라는 Satisfy약소국 하나에게 궤멸당하리란 사실을 말이다.
“괴, 괴물 놈…”
연합팀의 마지막 생존자가 잿빛으로 산화하며 말한다.
그를 비롯한, 연합팀 사상자들의 잔재가 눈처럼 흩날렸고 그 중심에는 그리드가 있었다.
가쁜 호흡을 뱉고는 있으나 몸에 뚜렷한 상처는 없다.
블랙 드래곤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미늘이 치렁거리는 묵색 갑주.
오우거의 주먹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적색 건틀릿.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내피의 색상이 변화하는 흑색 망토.
금빛으로 번들거리는 각반과 두 개의 뿔이 양쪽으로 솟아있는 플레이트 투구.
새로운 아이템들로 무장한 그리드의 모습, 웅장하여 태산과도 같았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으니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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