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37화 (232/1,794)

템빨 20권 - 19화

『부바트 로그아웃!!』

잿빛으로 산화하는 부바트에 대한 비난이 실시간으로 쇄도했다.

그리드의 공격을 모조리 허용해버리고 무력하게 패배한 그의 한심한 솜씨에 실망한 터키인들의 비난이었다.

-다수 대 다수전이면 본인이 탱킹하는 동안 아군이 적에게 그 이상의 피해를 되돌려주니까 탱킹에 의미가 있지만…

-일대일 전투에서 순진하게 탱킹하는 건 대체 무슨 심보야.

-부바트는 일대일 경험이 너무 부족함. 진심 최악이었음.

-기본적으로 그리드가 강한 게 최악이지. 어떻게 한국 같은 Satisfy 약소국에서 저런 괴물이 나타난 거지? 형제의 국가고 나발이고 간에, 2년 연속으로 한국한테 발목 붙잡히니까 진심 화난다.

-올해도 터키 순위는 최하위권일 듯.

-부바트 아마 조만간 스폰도 끊길 것 같은데?

“…”

로그아웃 당한 부바트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터키에 귀국하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한편, 아직 전장에 남은 그리드는 감탄하고 있는 중이었다.

‘엄청난 패시브 스킬을 갖고 있었군.’

최초, 부바트에게 들어간 극(極)의 데미지를 확인한 그리드는 이후의 극살(極殺)로 부바트를 마무리 지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극살(極殺)의 데미지가 예상보다 훨씬 더 적게 들어갔다.

부바트는 ‘아무리 강력한 일격을 맞아도 최대 생명력의 ??퍼센트 피해만 입는다.’라는 형식의 패시브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만약, 놈의 방어구들이 봉인해제 된 상태였다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끌었을 수도 있었겠어.’

그리드에게는 <대장장이의 눈> 스킬이 있다.

대상의 아이템을 3초 이상 바라볼 경우 그 아이템의 정보를 자연히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반투명한 아이템 정보창이 시야를 방해하는 탓이었다.

어쨌든, 그리드는 대장장이의 눈을 통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부바트가 무장한 방어구들은 현재 봉인 된 상태로서 온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무패의 왕.’

그 또한 9인의 전설 중 하나였을까?

생각해보면서 이동하는 그리드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봉드레와 부바트를 처리하는데 예상보다 더 큰 시간을 소요한 까닭이었다.

‘어째 점점 더 운이 나빠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드가 <삼겹갑>과 <란스티어의 망토>를 비롯한, 국가대항전을 대비해서 새로이 제작한 무구들이 아닌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를 무장한 이유는 단 하나다.

<성스러운 빛의 장갑>에 귀속되어 있는 <5연격>스킬이 발동하기를 바라서였다.

5연격 스킬이 터지면 단순계산법으로 적에게 5배의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으므로, 그리드는 보다 빠르게 적들을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5연격이 터지질 않는 게 문제였다.

번헨 열도에 진입했던 시점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5연격이 터지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다.

확률 게임에 점점 더 약해지는 스스로를 느끼면서 그리드가 이를 갈았다.

‘열 받네.’

그냥 확, 운을 높여주는 아이템을 창조해서 제작해볼까 싶다.

‘…엥? 그거 좋은데?’

행운 스탯은 여러모로 좋게 작용한다. 극단적인 예로, 행운을 높여주는 아이템을 착용한 채 아이템을 제작한다면 보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할 확률이 상승할 것이다.

잡념에 휩싸인 채 한국팀을 구원하고자 이동하는 그리드.

지금 이 순간.

저 멀리, 한국팀이 위기에 빠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도 초조한 기색이 없다.

왜?

동료들을 믿었으니까.

표적 맞추기 개시 직후부터 표적을 처리, 점수를 올리는 대신 적들의 어그로를 끌겠다는 이 위험성 높은 작전을 그리드가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유라와 극검의 실력을 신뢰해서였다.

***

표적 맞추기 개시 후 4분.

그리드가 봉드레와 부바트를 연달아 격파하는 사이, 연합팀과 격돌하게 된 한국팀은 벌써부터 위기에 빠진 상태였다.

“파이어 월!”

“멀티 샷!”

궁사 종와와 마법사 수민이 마나의 안배를 고려하지 않고 스킬을 남발, 적들의 발을 최대한 묶어놓고자 노력했고, 그 틈에 재단사 진희가 방어용 천막의 설치에 최선을 다한다.

탱커 경훈은 스킬 세례를 꿰뚫고 접근해온 적들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서 이 악물고 견뎠다.

하지만 이들은 약하다.

다른 참가국의 선수들과 비교하면 레벨이 최소 40 이상 낮았으므로 활약이 불가능했다.

“제길, 그리드는 대체 언제 오는 거지?”

비쩍 말라 신경질적인 인상을 가진 박종와.

처음부터 이번 작전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그가 연신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쉴 새 없이 화살을 날려보지만 그의 화살에 쓰러지는 적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의 나약한 화살은 적들의 방어력을 꿰뚫지 못했다.

“윽!”

도리어 반격을 당하는 종화의 상처만 늘어났다. 생명력이 벌써 위험수준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PvP데미지 적용률 50퍼센트 하락 패치가 없었다면 진작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수민의 마나도 바닥났다.

“더 이상 마법을 사용할 수가…”

“제길! 이봐, 진희씨! 천막의 완성은 아직 멀었어?”

“죄, 죄송해요. 앞으로 최소 3분은 더 걸릴 것 같아요.”

“이런… 으악!”

우당탕탕!!

간신히 버티던 경훈의 몸이 방패와 함께 통째로 날아가 뒹굴었다.

그를 날려버린 인물, 호주를 대표하는 검사 루카였다.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두시죠. 시간 끌어봤자 피차 피곤하기만 하잖아요?”

루카는 통합랭킹 80위권의 하이랭커로서 3차 전직자다.

그녀로부터 전달되는 위압감을 한국팀 대표들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지릴 정도였다.

‘끝이다.’

늘 부정적인 박종와가 좌절하는 그때였다.

“우리의 목적은 시간 끌기가 아니라 우승이에요.”

팀원들의 보호를 받는 동안 장총으로 표적을 처리하고 있던 유라.

그녀가 이번엔 도리어 팀원들을 보호하고자 나섰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그녀를 보면서 루카가 코웃음쳤다.

“과거의 랭킹 5위께서 대체 어떤 히든 클래스를 얻었기에 랭킹계로부터 사라진 건지 궁금했었는데, 끽해야 총사였나요?”

총사계열 히든 클래스.

그중에서도 장총사의 장점은 궁사보다 긴 공격거리와 강력한 공격력에 있다.

물리계열 딜러 중 가장 높은 공격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약점이 명확했다.

생명력과 방어력이 무척 낮았고, 회피율도 터무니없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마법사처럼 유틸성이 높은 것도 아닌지라 적의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그냥 죽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딜탱인 루카에게 있어서 총사는 좋은 먹잇감에 불과한 것이다.

“안 그래도 동양인 주제에 예쁘장한 그 얼굴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참에 아주 짓뭉개드릴게요.”

방긋 웃은 루카가 유라에게 달려들었다.

그 속도, 매우 빨랐다. 방어력과 반사 신경 또한 훌륭해서 유라가 쏘는 총을 몇 방 맞고도 치명상은 피했다.

“유라님!”

한국팀원들이 절망했다. 경기를 시청 중인 한국 국민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여신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모습, 그들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함일까?

유라는 당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접근해온 루카의 공격을 회피함과 동시에 베어버렸다.

그래, 베었다.

총사가 말이다.

“이, 이게 무슨?”

끔찍한 고통 속에, 루카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

“발검.”

극검이 칼집 위로 손을 얹는 순간.

그와 대치하고 있던 연합팀 랭커 십여 명이 일제히 움찔했다.

전장에서 극검의 존재감, 다소 멍청해 보이는 평상시와는 확연히 달라 어마무시하다.

“섬(殲).”

번쩍-!!

한국의 은기사 길드가 일본의 사쿠라 길드와 코크로 섬을 두고 전쟁했을 당시, 극검의 일검이 해일처럼 몰려오는 수십 명의 적을 베어버렸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 전설과도 같은 일화가 바로 지금,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현되었다.

서걱!!

극검의 발검술에는 극단적인 쾌(快)가 실려 있다.

칼집에서 뽑힌 검이 공격지점에 이르기까지, 최단 거리의 직선 경로를 이용함으로서 적이 자각도 못 하는 사이에 베어버린다.

“어…?”

쿠구구구구궁-

눈앞에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우리 등 뒤에 서있던 거목들이 일제히 양단되어 쓰러진다?

연합팀 랭커들의 등골이 오싹해졌고,

[13,52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2,144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9,05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8,600의 피해를…]

..

“크윽!!”

“쿨럭!!”

고통은 뒤늦게 찾아왔다.

‘어떻게 범위 스킬의 공격력이 이렇게 무지막지한 거지…!’

일격에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만 연합팀 랭커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극검은 스스로의 공격력에 만족하지 못했다.

‘제길, 패치의 영향이 너무 크다.’

공격 딜레이가 무척 큰 발검술의 유일한 장점은 일격필살의 위력이다. 단 한 방의 공격으로 적에게 전투불능 직전까지의 치명상을 입혀야지만 존재가치가 있었다.

한데 국가대항전에서는 본래의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고 발검술의 장점이 사라져버렸다.

“어서 놈을 덮쳐!”

“가자!”

상처를 입고 위축됐는가 싶던 연합팀 랭커들이 일제히 극검에게 달려들었다.

이들은 공격 후 다음 공격까지의 간극이 무척 큰 발검술의 약점을 숙지하고 있었다.

극검이 뽑았던 검을 칼집으로 회수하고, 다음 공격을 연계하기 전까지 무방비한 극검을 끝장내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하지만 극검에게는 전설의 대장장이가 제작해준 명검이 있었다.

<이상적인 장검>

등급:유니크

내구력:308/308 공격력:680

공격 속도:+21%

*스킬 ‘칼바람’ 생성.

*스킬 ‘신속한 몸놀림’ 생성.

사용 조건:레벨 310 이상. 고급 소드마스터리 레벨 5 이상.

같은 유니크 등급의 한손 검인 이야루그트와 비교하면 내구력과 공격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최상급 한손 검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리드가 기존에 애용하던 이상적인 단검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집약시켜놓은 장검이었다.

공격 속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발검술사 극검에게 매우 적합한 무기였다.

더군다나 그리드는 극검을 위한 선물을 또 따로 준비했다.

선물이란 칼집이었다.

<극검꺼>

*발검 속도 20퍼센트 상승.

*착검 속도 40퍼센트 상승.

수인족의 왕국 세이렌을 여행 중인 유페미나가 꾸준히 보내주고 있는 <수인족 왕의 눈물> 중 하나를 재료로 사용, 바람술사 랭킹 1위 제드노스의 바람 마법을 귀속시킨 칼집이다.

발검 시 돌풍이 일어나 발검 속도를 상승시키고, 착검 시에는 작은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검을 흡착시킴으로서 착검 속도를 극단적으로 높인다.

“갓리드! 내가 반드시 템값 이상을 하겠다!!”

갑자기 생뚱맞게 눈물을 흘리면서 외치는 극검.

그가 뽑았던 검을 회수하는 사이를 노리고 덤벼들던 연합팀 랭커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착검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다!’

상식을 초월하는 착검 속도를 경계하면서도 랭커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물러날 수가 없었다. 이미 극검의 지척까지 도달해 있었으므로 모 아니면 도였다.

“죽어라!”

“Satisfy 약소국이면 약소국답게 제발 좀 빨리 찌그러지라고!!”

연합팀 랭커들의 온갖 무기가 극검의 몸을 찔러왔고,

퍼어어어엉!!

재차 발검하는 극검을 중심으로 폭풍이 발생하면서 검광이 번뜩였다.

“크아악!!”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적들을 확인한 극검이 전율했다.

‘지리는 템빨이다!’

발검술사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어주는 템빨이라니… 극검은 놀랍고 또 놀라울 따름이었다.

같은 시각.

“처, 천외천…!”

한국팀과 연합팀뿐만이 아니라 온갖 팀들이 곳곳에서 격돌하고 있는 혼돈의 티라 섬 한쪽에서, 크라우젤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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