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20권 - 17화
[아이스 실드(Lv.8)를 전개합니다.]
[10,000(+11,532)의 데미지를 흡수하는 보호막이 생성됩니다.]
[보호막이 유지되는 동안 물리 방어력이 30퍼센트, 마법 저항력이 20퍼센트 상승하고 적에게 받은 피해의 30퍼센트를 얼음 파편으로 반사합니다.]
마법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마법을 많이 사용해야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무의미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용도에 맞게끔 사용해야지만 숙련도가 올랐다.
예를 들어, 실드 계열 마법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적의 공격을 실드로 방어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마법사는 생명력과 방어력이 취약한 클래스다. 적의 공격을 허용하는 일을 극도로 꺼려했고, 실제 전투 방식 또한 적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데 중점을 뒀다. 각종 마법을 활용함으로서 적과의 적정 거리를 유지, 적이 접근해오기도 전에 처단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필연적으로 실드 계열 마법의 레벨이 낮았다.
하지만 봉드레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아이스 실드의 레벨을 높여왔다. 2레벨만 더 올리면 무려 마스터였다.
마법사 특유의 전투 방식을 버리고, 무수한 적의 공격에 실드로 맞서온 결과다.
왜?
어째서 봉드레는 개고생을 자처하면서까지 아이스 실드의 레벨을 올렸을까?
이유야 간단했다. 오로지 그리드와의 결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네놈에게 복수할 이날만을 꿈꿔왔다!’
대장장이 주제에 플라이를 사용해서 날아온 그리드, 각종 방해 마법까지 저항하면서 나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온다.
정말이지, 마법사에게 극단적인 카운터로 작용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그리드를 상대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봉드레는 당황하지 않았다.
지척까지 날아온 그리드가 전개한 살(殺)에 직면하는 순간, 침착하게 아이스 실드를 전개한 그가 곧바로 공격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실드로 버티면서 폭격을 가해주마!’
봉드레는 본인의 실드를 믿고 있었다.
PvP데미지 적용률이 50퍼센트 하락한 국가대항전에서, 8레벨의 아이스 실드가 파괴될 일은 결단코 없으리라는 확신이 그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반전을 일으키는 존재다.
쩌정!!
푸욱-!!
[23,21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21,532의 데미지를 흡수합니다.]
[대상에게 입은 피해의 30퍼센트를 되돌려줍니다.]
[대상에게 6,96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아이스 실드가 해제됩니다.]
“쿨럭…! 아, 아니, 이런 미친!!”
피를 토하는 봉드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작 더 큰 피해를 입은 쪽은 그리드였지만, 봉드레는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나도 컸다.
‘뭐 이딴 괴물 새끼가!’
데미지가 50퍼센트 하락한 상태에서 내 실드를 일격에 박살내다니?
본래 공격력은 대체 얼마나 강력하다는 말인가!
찰나지간이었지만, 봉드레는 그리드에게 두려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마음을 다잡았다.
41만 얼음술사의 정점으로서, 조국 프랑스를 대표하는 입장으로서, 무엇보다도 과거의 원한을 되갚아주기 위해서라도 그는 결코 나약해질 수 없었다.
쩌정!
빙판을 소환, 그리드가 휘둘러오는 검격을 옆으로 간신히 흘려낸 봉드레가 갓 완성시킨 마법의 시동어를 외쳤다.
“빙룡의 격노!!”
쿠콰콰콰콰콰쾅!!
일대가 냉기에 지배당했다.
격동하는 대지로부터 용처럼 거대한 얼음 기둥이 솟구쳤고, 이내 소용돌이치면서 그리드를 위협했다.
위력, 속도, 범위.
봉드레의 마법에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었다.
망신창이가 된 대지가 순식간에 얼어붙었으며 숲은 서리가 되어 흩어졌다.
나부끼는 서리 속, 덮쳐오는 얼음기둥과 마주한 그리드는 석상처럼 굳은 채 꼼짝도 안 했다.
경이적인 마법 앞에 압도당한 모양새였다.
그를 본 프랑스 국민들이 환호했다.
“저 그리드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다니!”
“마법에 퇴로가 없어! 과연 봉드레는 대단해! 천재야!”
“맞아! 작년의 봉드레는 방심했을 뿐이지! 가라, 봉드레! 그리드를 쓰러뜨려라!!”
“봉드레!! 봉드레!! 봉드레!!!”
지금 이 순간, 세상사람 대부분이 그리드의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
일격에 봉드레를 해치우지 못했던 시점부터 작년과 올해의 그리드는 다르단 인식이 사람들에게 심어지고 있었다.
저 멀리, 고지를 점령하고자 다른 팀들과 경쟁 중인 미국팀의 지발 또한 봉드레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하늘을 꿰뚫듯이 높게 솟은 얼음 기둥을 확인한 지발이 미소 지었다.
“봉드레의 마법은 단지 위력이 강한 것으로 끝이 아니야. 얼음을 구조물로 활용함으로서 적의 행동을 봉쇄시키고 완전한 승리를 설계하지. S급 마법의 발현에 성공한 이상 그리드는 연계기에 당할 수밖에 없다.”
“웃기는군.”
잘난 듯이 지껄이는 지발에게 누군가가 콧방귀 뀌었다.
미국팀과 대치하고 있는 스페인팀의 대표, 폰이었다.
일점돌파의 창격으로 지발을 위협한 그가 단언했다.
“너로서는 그리드를 가늠할 수 없다.”
“피라미 새끼가.”
통합랭킹 10위에 등극한 폰은 템빨단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지발은 통합랭킹 2위다.
전력상 지발이 우위에 있는 게 당연했다.
한데…
“뭣이!”
지발이 경악했다.
정면으로 날아오던 폰의 창이 갑자기 측면으로 궤도를 바꿔버린 까닭이었다. 법칙에 어긋나는 현상인지라 예상하지 못한 지발의 대응이 늦고 말았다.
푸욱-!
“크윽!”
옆구리를 베인 지발이 신음을 터뜨렸다.
데미지를 확인한 그가 또 한 번 경악했다.
‘뭐가 이렇게 아프지?’
지발은 7대 길드의 마스터로서 쌓아온 압도적인 재력을 이용, 꾸준히 엘릭서를 복용해왔고 최강의 방어구까지 무장한 상태다.
심지어 폰보다 레벨이 20 이상 높았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발은 폰의 평타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한데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자 혼란스러웠다.
돌풍을 소환, 폰을 지발로부터 떨어뜨린 라우엘이 경고했다.
“지발, 당신이 강한 거 하나만큼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방심하지 마시죠. 템빨단의 전력은 1년 전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훌륭하니까.”
그렇다.
레이단의 사막과 뱀파이어의 도시, 그리고 번헨 열도를 거치면서 성장해온 템빨단의 저력은 상식을 초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템빨단 중에서도 압도적인 발전을 이룩한 그리드는 상식에 반하는 존재이다.
[강력한 냉기에 몸이 얼어붙습니다. 모든 속도가 20퍼센트 저하됩니다.]
[저항하였습니다.]
“회(回).”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헉!”
용처럼 거대하고 위력적인 얼음 기둥이 코앞까지 직면해올 때까지 가만히 서있던 그리드.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가 싶더니 아니었다.
선회하는 검무를 펼침으로서 얼음 기둥의 경로를 역으로 바꿔버렸고, 이에 직격당한 봉드레는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뭐, 뭐 이딴 반격기가…!”
일반적으로 반격기란, 같은 형태의 공격만을 반격할 수 있다.
물리력이 실린 반격기는 물리 공격을, 마력이 실린 반격기는 마법 공격을 반격하는 식으로 말이다.
한데 그리드의 반격기는 물리력을 기반으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을 반격한 것이다.
더군다나 피해량도 100퍼센트 이상으로 되돌려줬다.
믿을 수 없는, 막말로 개사기급의 스킬이었다.
하지만 봉드레가 놀란 부분은 스킬 그 자체의 기능이 아니다. 반격기를 완벽하게 활용한 그리드의 솜씨에 놀랐다.
반격기는 완벽한 타이밍에 사용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었고, 상위 랭커간의 싸움에서 반격기를 활용할 수 있는 실력자는 매우 드물었다.
한데 그리드가.
하급 랭커 수준의 컨트롤 솜씨가 한계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리드가 반격기를 완벽하게, 그것도 자신을 상대로 활용한 것이다.
‘이놈… 지난 1년 동안 대체 뭘 하고 다닌 거지?’
피투성이가 된 채 경기를 일으키는 봉드레.
저벅저벅, 다가오는 그리드의 깊은 눈동자를 목도하면서 그는 깨달았다.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다.’
그리드가 지난 1년 동안 어떤 시련을 겪었고, 극복해왔는지.
봉드레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봉드레! 우리도 참전하겠다!}
그리드와 1대1 대결을 부탁한 봉드레 탓에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던 프랑스팀 대표들.
봉드레가 죽게 생기자 다급히 외치는 그들에게 봉드레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아니, 나는 버리고 도망쳐라. 우리들만으로는 그리드를 희생 없이 처리할 수 없다.}
{뭐?}
빠르게 성장하는 템빨단원들 탓에 통합 랭킹이 지속적으로 떨어졌다고는 하나, 봉드레는 여전히 통합 랭킹 20위권을 고수하는 인물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긍지가 매우 높았고 실제로 실력도 최고였다.
작년에 그리드에게 패배한 것도 단지 방심했기 때문이라고, 봉드레 본인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어왔을 정도다.
한데 봉드레가 지금 이 순간 그리드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본인보다 몇 수나 위의 실력자라 판단했다.
봉드레를 알아온 세월이 제법 긴 프랑스팀 대표들에게는 봉드레의 그러한 모습이 생소하게 받아들여졌다.
{내가 최대한 시간을 벌 테니까 어서 도망쳐. 한국팀은 다른 놈들에게 맡기고 지금부터라도 표적 처리에 집중해라. 동메달이라도 노려봐.}
봉드레가 자국 팀원들과 파티 채팅을 교환하는 사이,
사아아아아-
그리드의 대검을 회수한 그리드가 마검, 이야루그트를 소환했다.
보석처럼 흩어지는 혈빛의 검기가 냉기로 물든 공간을 수놓으며 수십 만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각국 방송국의 카메라맨들 또한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이야루그트를 클로즈업했다.
이야루그트의 주인, 그리드의 모습이 이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봉드레, 작년과 비교하면 많이 발전했군. 성장을 치하하마.”
본래 그리드의 성격이었다면, ‘에라이, 허접 X밥.’이라고 봉드레를 조롱하고도 남았다.
봉드레는 레이단을 침공했던 7대 길드의 빌어먹을 마스터 중 한 명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리드는 봉드레를 폄하하지 않았다.
수억 명이 지켜보고 있을 대회에서 함부로 발언했다간 템빨단의 이미지가 실추 될까봐서?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그리드가 봉드레를 조롱하지 않고 도리어 치하하는 이유, 봉드레의 실력을 진정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성장한 봉드레가 얼마나 노력해왔을지, 노력가인 그리드였기에 잘 알 수 있었고 그 가치를 함부로 깎아내릴 수 없었다.
“너는 강해. 하지만 내가 더 강해서 졌다.”
“…핫! 당연한 말을 지껄이는군.”
너털웃음을 터뜨린 봉드레가 얼음 장벽을 소환했다.
동료들이 자리를 이탈하는 과정에서 혹 그리드의 표적이 될까 우려, 마지막 힘을 쥐어짜 최대한 시간을 벌 요량이었다.
“내년에 다시 만날 땐 이번처럼 쉽지 않을 거다.”
얼음 장벽 너머의 그리드를 향해서 외치는 봉드레.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화답해준 그리드가 돌진했다.
쩌엉! 쩌정! 쩌저저정!!
연속적으로 솟아나는 얼음 장벽들이 차례차례 이야루그트에 베여 파괴된다.
날카로운 얼음 화살과 창들은 그리드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 없었다.
그리드는 얼음 화살과 창들을 피하지도 않고 그냥 맞으면서 봉드레에게 접근, 반격을 가했다.
마법 저항력이 극도로 높은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가 PvP데미지 적용률 50퍼센트 하락 패치와 시너지를 일으킴으로서 봉드레를 바보로 만들고 있었다.
『보, 봉드레 로그아웃!!』
Satisfy 강대국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력자, 봉드레가 결국 혈빛 검광 앞에 무릎 꿇었다.
그 무력한 모습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선사하고도 남았다.
“다음.”
승자의 패자에 대한 감흥은 짧은 법이다.
잿빛으로 흩어지는 봉드레로부터 시선을 뗀 그리드,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팀 진형을 향해서 빗살처럼 쏘아졌다.
“흑화.”
퍼엉-!!
폭발하는 마기가 그리드의 이동경로에 검은 길을 만든다.
나부끼는 흑발 사이로 엿보이는 그리드의 피부가 눈보다 더 하얗게 질려있었으니, 이에 따라 만개하는 미모에 여성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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