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234화 (229/1,794)

템빨 20권 - 16화

개막전이 시작되기 1시간 전, 한국 대표팀 대기실.

티라 섬의 지도를 펼친 극검이 11개의 포인트를 설정했다.

“올해 표적 맞추기는 32개국 대표 전원이 참가하기 때문에 무척 혼잡할 거다.”

무려 224명이 32개 팀으로 나뉘어서 경쟁한다. 사방팔방이 적으로 득실거리는 셈이었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팀은 협공을 당할 공산이 커. 우리는 표적 처리보다 유리한 지형 확보에 우선 집중하도록 하자.”

유라의 사격술은 표적 맞추기에 최적화 되어있다. 하지만 그녀만 믿고 표적 처리에 집중했다가는 다른 팀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위험을 자처할 것이 뻔했다.

전장의 중심부에서 최대한 이탈, 진지를 구축한 후 표적 처리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게 극검의 판단이었다.

지도에 체크 된 포인트들을 확인한 박종와가 의아해했다.

“언덕이나 강을 등진 장소들이네요?”

궁사 박종와의 레벨은 235이다.

국가대항전 참가자 평균 레벨보다 무려 39나 낮았지만, 한국팀 내에서는 극검, 그리드, 유라 다음가는 상위 랭커였다.

지인들을 만날 때면 무조건 담배를 얻어 피고, 지갑을 집에 두고 나오는 등 이름난 구두쇠였으나 궁수로써의 실력은 제법이다.

그의 안목으로 봤을 때 극검이 표시한 포인트들은 큰 매력이 없었다.

“차라리 고지를 점령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표적과 적을 저격하기에 용이할 텐데요.”

“높은 곳은 경쟁률도 높고 무엇보다 너무 눈에 띄잖아. 운 좋게 점령하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극검은 한국팀의 전력을 현실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그리드와 유라가 있다고 해도, 7명의 평균 능력치를 매겨보자면 다른 나라보다 약한 게 사실이다. 철저히 눈치를 살피는 게 맞았다.

“…”

극검이 딱 잘라 말하자 박종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이 묵살당한 것에 빈정 상한 것이다.

“언덕이나 강을 등지면 방진을 구축하기 용이하죠. 고지에 비해서 점령 경쟁률도 낮을 테고요. 저는 좋다고 봅니다.”

233레벨 탱커 경훈이 극검의 작전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220레벨 마법사 수민과 191레벨 재단사 진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장 중요한 그리드와 유라는 아무 말이 없었으므로, 극검은 그들 또한 자신의 작전에 찬동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극검이 11개의 포인트 중 B포인트를 지목해보였다.

“이 포인트가 특히 좋아. 숲 속 깊은 곳에 위치해서 은밀하게 행동하기에 최적화되어 있거든. 표적 맞추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는 전원 북쪽 숲으로 이동, 적들의 시선을 피함과 동시에 B포인트를 확보하고 진희가 방어용 천막을 펼칠 때까지 시간을…”

“잠깐.”

내내 잠자코 있던 그리드가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극검이 그리드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이번 국가대항전의 작전관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 그리드와 유라의 추천이라지만 작전의 최종결정권은 역시 그리드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게 대장의 권한이며 책임이었다.

“처음에는 좋은 작전이라고 생각하면서 들었는데, 듣다 보니까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는데요.”

“뭐가 이상해?”

그리드의 의문을 극검은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드가 그에게 반문했다.

“적들과의 충돌을 피하고, 진지를 구축하고 나서야 표적을 저격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느긋하게 행동해도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겁니까?”

“금메달…?”

종와, 희철, 수민, 진희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균 레벨과 전력이 가장 낮은 팀 중 하나인 한국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다고?

그것 참 꿈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다.

이들은 그리드가 농담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리드는 진지했다.

“금메달을 따려면 가장 먼저 400점을 확보해야하지 않습니까? 무슨 캠핑 온 것도 아니고, 어느 세월에 진지를 구축하고 앉았어요? 그 사이에 다른 팀들과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질 텐데. 그냥 처음부터 표적 처리에 집중하도록 하죠.”

박종와가 눈살을 찌푸렸다.

“적들과 전면전을 하자는 말씀입니까? 그건 자멸을 자초하는 길이죠. 그리드님 당신들은 강할지 몰라도 우리 네 명은 아닙니다. 우리는 타국 대표들과 1대1도 불가능한 스펙을 갖고 있어요. 명색이 단체전인데 팀의 평균 수준을 고려하고 말씀해주시죠.”

박종와는 스스로를 영리한 인간이라고 믿었다. 자신이 봤을 때 아니라고 판단 드는 일에 대해선 절대적으로 부정적이었다.

“막말로 미국팀 하나에게만 잘못 걸려도 우리는 순식간에 전멸할 겁니다.”

확신하는 종와에게 그리드가 실소를 터뜨렸다.

“자멸을 자초해? 전멸 당할 거라고?”

움찔.

그리드의 눈매는 맹금류의 것처럼 사납다. 그가 노려봐오자 위축 된 종와가 뒷걸음쳤다.

그에게 성큼 다가선 그리드가 확실하게 못박아두었다.

“네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건 상관없다만, 타인까지 동급으로 매도하지는 마라. 특히 나는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거든.”

그리드가 극검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답해 봐요. 당신의 작전은 한국을 몇 위로 만들 수 있죠?”

“3위.”

극검에게는 본인의 작전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평균 전력이 약한 한국일지라도, 유리한 지형부터 확보하고 그리드와 유라에게 의지한다면 필시 동메달을 획득하리라 믿었다.

동메달.

32개국 중 3위는 굉장한 성적이었다. 어쩌면 한국 국민들 대부분이 기대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꿈의 성적이었다.

하지만 그리드를 만족시키기엔 불충분했다.

그리드가 원하는 것은 아다만티움이라는 보상이 걸린 금메달이었으니까.

“3위? 그러지 말고 세게 나갑시다. 유라는 처음부터 표적처리에 집중하고 나머지 인원은 그녀의 보호에만 힘쓰세요.”

“하지만 그랬다가는 다구리를 지대로 당할 텐데…”

“특히 하이 랭커들에게 집중 포화라도 당하게 된다면 우리가 방어해봤자 순식간에 궤멸될 걸요.”

여기서 말하는 하이 랭커는 3차 전직을 완료한 80위권 랭커들이었다.

걱정하는 팀원들에게 그리드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걱정 마. 불나방은 내가 태워버리면 그만이니까.”

그 결과가 지금이다.

“한국이다! 한국부터 막아!”

“저것들이 미쳤나!”

표적 맞추기 개시 직후.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눈에 띌 것을 우려,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던 31개국 대표들이 일제히 한국에 집중했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당최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으나,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오로지 한국만이 표적들을 폭발시키고 있었으니까.

안 그래도 경쟁자를 줄여야하는 입장이었던 타국의 대표들에겐 좋은 희생양이 생긴 셈이었다.

“우리도 간다.”

한국팀의 폭주를 막고자 일제히 나서는 타국 대표들을 확인한 지발이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지발은 눈엣가시 같던 그리드를 이참에 완전히 박살낼 심산이었다.

라우엘이 그를 진정시켰다.

“다른 팀이 알아서 견제해줄 한국에 굳이 집착할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는 이틈에 고지를 점령하고 표적 처리에 집중하도록 하죠.”

“음…”

그래, 잔챙이 따위를 굳이 나까지 신경 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좋다.

냉정하게 판단한 지발이 고개를 끄덕였고, 미국팀은 혼란을 틈타 자리를 이탈했다.

영국, 러시아, 캐나다, 이탈리아, 브라질, 일본 등 약 20개국의 팀도 미국과 같은 판단을 내리고 자리를 떴다.

한국팀을 처단하고자 나선 팀은 부바트가 이끄는 터키팀과 봉드레가 이끄는 프랑스팀을 필두로 삼은 11개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들 77명을 한국은 고작 7명이서 막아내야만 했으니까.

부바트와 봉드레가 회심의 미소를 그렸다.

‘PvP 데미지 적용률은 50퍼센트 하락한 상태.’

‘그리드가 초연(超聯)이라는 광범위 원거리 스킬로 우리를 견제해봤자 별 위협이 되질 않는다.’

‘멍청한 한국 놈들! 가장 먼저 탈락해서 망신 한 번 톡톡히 당해봐라!’

희열에 찬 채 우르르 몰려오는 77명의 적들.

불나방 같은 그들의 면면을 살핀 그리드가 타겟을 설정하더니 검무를 펼쳤다.

한데 그 검무라는 것이, 종전의 검무들과는 비할 바 없이 화려했다.

“연살파(聯殺派).”

<연살파(聯殺派)>

세 가지 검무를 동시에 춥니다.

물리 공격력 1,500%의 피해를 입히는 살(殺) 8개를 연속적으로 소환, 반경 2미터 이내의 대상들을 추격시킵니다.

적중당한 대상은 모든 속도가 50% 감소합니다.

*이 스킬은 연(聯), 살(殺), 파(派)와 재사용 대기 시간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스킬 마나 소모:2,0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20분

쿠콰콰콰콰콰쾅!!

기본 공격력이 이야루그트를 초월하고, 거기에 스킬 피해량을 상승시켜주는 <그리드의 대검>.

그것으로부터 방출 된 8줄기의 검기가 그리드를 덮쳐오던 적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연살파(聯殺派)?’

‘초연(超聯)이라는 기술과는 다르다!’

‘훨씬 더 강력해…!’

팟!

파파팟!!

기세 좋게 그리드를 공격해오던 각국의 대표들이 일제히 산개했다.

이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중 8명은 이미 연살파(聯殺派)의 타켓이 된 상태였다.

쐐애애애애액-!!

연살파(聯殺派)는 마치 유도탄처럼 궤도를 바꾸며 8인의 뒤를 쫓았고, 이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31,3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격에 큰 상처를 입어 기절합니다.]

[34,1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프레임 실드를 전개합니다. 10초 동안 방어력이 30퍼센트 상승합니다.]

[19,5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3단 선회를 전개합니다.]

[회피에 실패합니다.]

[37,5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

콰콰콰콰콰쾅!!

실로 압도적인 위력이었다.

각국을 대표하는 최강자들이 일격에 전투불능에 빠지거나 잿빛으로 산화하는 모습, 스타드 드 프랑스 국립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십 만 관중들을 침묵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이번 국가대항전에서 PvP데미지 적용률은 50퍼센트 하락한 상태이다.

한데 일격에 랭커들을 때려잡다니?

‘뭐가 저렇게 세?’

그리드의 공격력, 모두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이래서야 패치가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이번 패치, 작년 국가대항전에서 독보적인 강함을 뽐냈던 그리드를 저격한 너프가 아니었던가?

믿을 수 없는 결과에 놀라 입만 뻥긋거리는 부바트에게 봉드레가 속삭였다.

“침착해. 사망자들은 전원 3차 전직을 하지 못한 200레벨대의 랭커에 불과했다. 게다가 대부분이 딜러였지. 그리드가 기선제압용으로 비교적 약한 상대들만 공격한 거야.”

듣고 보니 그랬다.

냉정을 되찾은 부바트가 씨익,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드, 아무래도 궁극기를 사용한 것 같은데 그걸로 고작 피라미들이나 처리하는 게 한계인 거냐?”

그리드가 이죽거렸다.

“너도 피라미라는 걸 알아야지.”

그리드는 7대 길드의 마스터들에게 갚아줘야 할 빚이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 레이단을 침공했던 치졸하고 간악한 놈들에 대한 응징이 떨어졌다.

“파그마의 검무.”

터엉-!

도약하더니 접근해오며 검무를 펼치는 그리드.

부바트는 반사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했다.

한데 그리드가 스킬을 전개하지 않고 그를 그냥 지나쳐갔다.

“페이크다, 이 자식아.”

“뭣…!”

부바트는 자신의 곁을 스쳐지나간 그리드가 어느덧 봉드레에게 도달한 것을 보았다.

그리드와 직면한 봉드레가 흥분했다.

4초!

작년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에게 일격에 패배한 뒤,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개망신을 당해왔던가?

그때의 원한을 갚아줄 절호의 기회다.

막말로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빗발치는 얼음 창!!”

콰득!

콰드드드득!!

“……!”

압도적인 장관이 펼쳐지면서 수십만 관중들이 경악했다.

직면해오는 그리드를 피해 하늘로 몸을 날린 봉드레의 주변으로 수십 개의 날카로운 얼음 창이 생성, 그대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기에.

“이 자식, 봉드레에!!”

한국 팀에게 신경을 쏟고 있던 타국 대표들이 원한에 찬 비명을 질렀다.

일시적으로나마 같은 편이라 믿었던 봉드레의 광역 마법에 큰 피해를 입은 까닭이었다.

[대상에게 8,9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7,5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

“하핫!! 크하하하하핫!!”

봉드레는 끊임없이 떠오르는 알림창을 확인하면서 희열했다.

광역 마법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본인의 마법에 전율하는 것이었다.

봉드레는 자신의 바로 발밑에서 마법에 얻어맞고 있는 그리드가 곧 사망에 이르리라 믿었다.

이 <빗발치는 얼음 창>은 마나가 허용하는 한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마법이었으므로, 일단 한 번 발동에 성공하면 봉드레는 그 지역을 완벽하게 초토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한데 연신 갱신되는 알림창 사이에 자꾸만 거슬리는 문구가 떠올랐다.

[대상에게 3,1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이 마법에 저항하였습니다.]

[대상에게 2,900의 피해를…]

“이게 무슨?”

봉드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독 한 놈에게만 내 마법의 데미지가 제대로 들어가질 않고 있었으니까!

그 놈이란 당연히,

“그리드으으으!!”

“플라이, 살(殺).”

푸욱-!!

그리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비명을 토하는 봉드레의 가슴으로부터 선혈이 솟구쳤고, 빗발치는 얼음 창들이 붉게 물들었다.

붉은 얼음 창에 투영되는 그리드가 무장한 방어구, 최강의 대마법 아이템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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